북한은 지금…여성 상위시대 막후

무능한 남편이래 콕 처박혀 있으라우∼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2010년 북한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속 한 여성 등장인물이 “내가 장사를 안 하면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나”라며 “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큰소리치는 모습이 나왔다. 이것은 북한의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대사로 보인다. 계획경제가 붕괴된 후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북한에선 여성이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의 대기근(일명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제가 무너지고, 주민들은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로 먹고 살기 시작했다. 현재 북한엔 400여개의 장마당(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계획경제는 실종됐고 사적 경제가 주요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국영기업은 제 역할을 못하고 경쟁력이 없어진 지 오래다. 사경제의 발원지이자 사회변화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장마당이 지목됐다. 이러한 장마당의 구성자는 4분의 3 이상이 여성이다.

400여개 장마당
대부분 여성들

탈북민을 대면조사한 결과를 담은 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민의 90% 이상이 북한에서 사적 경제 활동을 했고, 70% 이상이 장사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약 70%가 집을 사고팔았다고 진술했다. 이미 전체 경제의 80%가량이 사적 소유로 구성돼 있다.

이렇듯 ‘고난의 행군’ 이후 사회주의 경제가 붕괴하면서 남성들이 가동을 멈춘 공장에 출근하는 동안 여성들은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했다. 1998∼2008년 사이 비공식적 경제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북한 가구 전체소득의 78%에 달할 정도였다. 북한 노동자가 받는 한달 3000∼4000원가량의 급여로는 쌀 1㎏을 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가정경제를 책임지면서 여성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원래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초의 여러 사상 중 가장 ‘여성주의적’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제도적 성평등 뿐 아니라 양성의 완전한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추구했다. 1920년대 레닌이 지도자였던 시절의 소비에트 연방에선 실제로 차별철폐 정책이 시행됐다.


1945년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다음해 성평등법이 선포됐다. 이에 따라 축첩이 금지됐고 이혼에 대한 제약이 완화됐다. 법으로 여성의 재산권을 보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북한사회는 제도적으로만 양성평등을 부르짖을 뿐 실제론 극단적인 ‘가부장제’ 사회다. 북한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론 무신론 사회인 것과 마찬가지다. 동유럽 국가에서 사회주의 경제 붕괴는 성평등 붕괴로 이어졌지만 반대로 북한에선 여성지위 향상을 가져왔다.

1995년부터 도시에 장마당이 생겼다. 장마당은 곧 경제생활의 중심이 됐다. 수백만의 여성들이 장사와 가내수공업으로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처음엔 가재도구를 음식과 물물교환하다가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았다. 더 큰 규모의 장사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2006년 12월 북한정권은 신체 건강한 남성이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것을 금지했다. 북한에서 남성들은 공식적인 직장(국영기업)을 가지도록 강제된다. 만약 결근하면 노동단련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남성이 장마당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규제는 실제론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90년대 중반 대기근 후 배급제 해체
각자 전역 돌면서 장사로 먹고 살아

1년 후인 2007년 12월, 당국이 50세 미만의 여성은 시장거래를 할 수 없다고 금지시키자, 이번엔 달랐다. 여성들은 즉각 반발했다. 다음해 3월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특히 청진시에서 크게 일어났다. 당국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나이든 여자 친척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보안원(경찰)이 물어보면 "시어머니가 장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잠시 들렀다"고 둘러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금지령은 흐지부지 됐고 여성들은 예전처럼 장마당에서 장사를 했다. 시장을 직접 단속해야 하는 하급관리들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눈감아 준 영향이 컸다.


이렇게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달라지면서 미미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으로 보이는 징후도 포착됐다. 일례로 여성이 신청하는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탈북자를 직접 면담하는 한 북한학 연구자는 “북한은 모든 통계를 비공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할 순 없지만 결혼연령이 늦춰졌다거나 여성이 먼저 이혼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예전처럼 온 동네가 나서서 비난하진 않는다”고 귀띔했다.

갈수록 지위 향상
먼저 이혼 요구도

여성의 사회 진출도 증가했다. 북한은 2002년 9월 유엔에 제출한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에 대한 최초 보고서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공적 영역의 여성간부 비율을 증가시켰으며 여성재판관 비율이 10%, 외무성 직원의 15%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국제기구에 제출된 국가 발간 정식 보고서이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또 북한 여성은 바지를 입을 수 없게 돼 있다. 바지가 ‘여성에게 걸맞지 않으며 조선의 미풍양속에 배치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법적으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도 없다.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점차 사문화됐고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이제 북한 전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바지를 입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다.  

북한 여성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는 “과거와 비교해 여성의 지위가 나아진 면은 있다”며 “말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다거나 원하는 것을 추구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장사를 하면서 많이 다니고 아는 사람이 생기고 그런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예전엔 25세가 넘기 전에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현재는 돈을 잘 벌고 똑똑한 여자는 혼자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통념도 있다. 그래도 독신은 없는 것 같다. 결혼연령이 서른 정도까지 용인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김석향 교수는 북한여성이 여전히 ‘열악한’ 지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마당에 나가서 돈을 벌어도 가정폭력이 줄지 않았다. 인민반(20∼40가구 정도 묶어 감시관리하는 우리의 통·반 개념) 기준으로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를 조사하면 90% 정도는 맞고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학교나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을 제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버지나 남편의 지위에 여자가 편승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체소득의 80% 부인 수입
반대로 남자들 위치 급락

김 교수에 의하면, 시장에서 큰 규모로 장사하는 여성의 뒤엔 거의 언제나 ‘카바꾼’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영어 ‘cover’의 한국식 변형이지만, 정작 북한인들은 이것이 영어인 줄 모른다고 한다. 뇌물을 ‘카바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힘 있는 남성이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북한에선 여성이 높은 직위에 있으면 "누구 딸이냐" "남편이 누구냐"고 먼저 물어본다. 가족이 고위직이 아니라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직접 만난 소위 ‘접견자’여야 한다.

북한 주체사상을 연구해온 정대일 북한인권제3의길연구소장은 “사회가 병영화되면 근력 숭배 사회가 된다. 배급이 끊기면서 국경지대 거주 여성들이 중국으로 나와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 평양과 변경은 차이가 많이 난다. 변경과 하층의 변화가 유의미하려면 평양에서 개혁개방으로 나가야 한다. 계속 폐쇄적으로 남아있으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럼에도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시장화를 주도할 주체로 신흥부유층(돈주), 젊은 학생그룹과 함께 ‘여성’을 꼽는 전문가가 많다. 북한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공권력 지식인이 주도해야 하지만 신흥부유층과 장마당 여성 등 변경의 변화도 ‘주요변수’라고 본다.

잘 버는 여성
뒤엔 카바꾼


대북접촉을 30년간 해온 김천식 통일평화연구원 특임연구원(전 통일부 차관)은 “여성들이 사회변화에 수용성이 더 높다. 사회변화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민생에의 요구가 시장활동을 자극, 확산했고 시장화는 정보화, 자유화와 서로 의존적 관계다. 김정은 승계 이후 학생들이 변화 주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shin@ilyosisa.co.kr>


[참고문헌]

안드레이 란코프 <리얼 노스코리아> 개마고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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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