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과 불법 사이' 흥신소 채권추심의 함정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정말?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못 받은 돈 회수

거리를 걷다보면 이 같은 현수막이나 전단, 전봇대의 스티커를 가끔 볼 수 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기재된 번호로 전화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게 만든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빚 독촉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수막과 광고는 누가 붙이고 어떤 방식으로 채무를 받아주는 것일까.  

이런 광고는 대부분 신용정보회사(채권자를 대신해 채무자에게 채권추심을 대행해주는 회사)가 붙이는 것이다. 신용정보회사는 채무금을 받아낸다는 업무특성상 기획재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회사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2016년 현재 29개 신용정보사가 기재부의 허가를 받아 채권추심행위를 하고 있다.

업체 30% 이상
‘해결사’ 노릇

의뢰자 입장에선 기재부의 허가를 받은 업체인지 먼저 확인해야 하고, 법무법인에 문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법무법인을 통해 재산조사와 통장 압류, 유체동산(가재도구, 집기 등 재산권을 제외한 물건 및 유가증권) 압류, 재산명시신청, 감치명령 등 강제집행절차를 밟을 수 있다.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한 후 공탁을 할 수 있고, 형사고소 등도 병행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채권추심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광고 중에서 약 30% 이상이 소위 ‘해결사’를 자처하는 불법추심업체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불법추심 관련 민원은 2013년 4535건, 2014년 3090건, 2015년 3197건, 올해 1/4분기 900건으로 집계되는 등 지난 수년간 꾸준히 증가해왔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께부터 증가 추세에 있다. 지자체에서 강력하게 대응 관리 중”이라면서 “민원을 받고 조사를 하다보면 공식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암흑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조직폭력배들이 하는 업무 중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불법 추심 행위 유형에 대해 “영업장에 찾아오고 행패부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알려 창피하게 한다”며 “그나마 그런 것들은 신고를 하기라도 하지만 조직폭력배와 연결된 것은 더 심한 데도 신고가 안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정채권추심법에 의하면 미등록 대부업체나 채권추심권한이 없는 사람이 추심을 하는 경우, 채권추심자가 채무내용을 제3자에 알리거나 제3자에게 변제를 요구하는 경우, 폭행·협박·감금 등 과도한 추심행위를 하는 경우는 모두 불법이다.

이렇게 음지에서 일어나는 불법적 빚 독촉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법에 의해 빚 독촉을 하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불법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결문이나 공증서 등 법적인 효력이 있는 증빙자료가 있어야 신용관리사들이 채무자를 상대로 추심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법적 절차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나마 ‘차용증’을 써두지 않았다면 소송에서 이기기도 어렵다.

“못 받은 돈 회수” 전화 해보니…
누가 붙이고 어떻게 채무 받나

한 신용관리사는 “차용증이나 공증서 등 증빙서류가 없으면 접수 자체를 받을 수가 없다”면서 “의뢰를 받는 것이 추심법상으로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7년 동안 어렵게 모은 5000만원을 빌려줬는데 받지 못했다고 울면서 전화한 의뢰인도 있었다. 차용증이 없어서 도울 길이 없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이 많다. 우리도 도울 길이 없어 답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신용관리사에 의하면 다양한 채권이 추심대상이 된다. 상거래채권이 주를 이루지만 2010년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면서 개인 민사채권 의뢰도 증가하고 있다. 병원 입원 채권도 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만 받고 도주하는 행위에 따른 것이다. 그는 “내연남을 남편 명의로 입원시켰다가 남편에게 들켜서 이혼 당한 부인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지인을 믿고 금전을 빌려주면서 차용증 등을 써두지 않은 경우에 채무자가 대여가 아닌 ‘증여’라고 주장할 경우 소송에서 이기기 어렵다. 또 수년에 걸쳐 소송에서 이겨 ‘지급명령’을 받아도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파산신청, 개인회생신청을 통해 면책 받을 경우, 추심행위가 금지된다. 대부분 악성 채무자는 이러한 법의 맹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경우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서민들 중 상당수는 불법추심업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비용은 얼마?
20∼50% 수수료

그렇다면 이러한 불법추심업체는 어떤 방법으로 채무를 받아내고, 비용은 얼마나 요구할까. 인터넷에선 “직접 만났더니 5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선수금만 받고 잠적하는 사기가 많다” “수수료를 받은 다음 더 달라고 요구한다” 등의 글이 눈에 띄었다. 심부름센터 등 추심업체 여러 곳에 직접 전화로 문의를 한 결과, 저마다 ‘못 받은 돈’을 받아내는 다양한 노하우를 제시했다.
 

A업체는 채권전문팀을 운용하고 있다며 1년 이상 지급기일이 경과된 채권은 30%, 미만은 20%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했다. 착수금을 미리 입금해야 추심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 업체는 일단 ‘채권양수도 계약서’를 써서 자기 업체에 채권을 넘겨야 한다고 했다. 헐값에 채권을 사고파는 행위의 실체를 해당 업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차용증 등 증빙서류가 없어서 법적 절차를 밟지 못했던 경우도 매매계약을 통해 양수인이 되면 소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그간 양수금 소송을 거의 다 승소했다”면서 “판결을 받으면 강제집행할 수 있고 시간 제약 없이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주말에 찾아갈 수도 있다. 채무자에게 공증서를 쓰게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선 오전 9시 이전, 오후 8시 이후 추심행위는 금지돼 있다.

그는 채권을 넘긴다는 계약서를 작성해도 지급에 성공하면 앞서 밝힌 수수료 20%만 지불하면 된다고도 했다. 계약서는 금전을 받아내기 위한 명목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일단 만나자”며 적극적으로 영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적으론 막을 수 없다”고 전제한 후 “채권자 입장에선 포기한 금전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만이라도 받고자 채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 업체 역시 2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계약금을 받고 추심에 착수한 후 차례로 중도금과 잔금을 받는다고 했다. B 업체 관계자는 일단 거주지를 파악한 후 부모 등 가족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부모만 찾으면 대신 변제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 신고도 병행해야 한다. 전체 금액이 안되면 일부라도 받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3∼4명이 가족을 가장해 동행한다”고도 했다. 또 폭행을 가하지는 않지만 법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채무자가 많으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전화선 너머의 관계자는 “채무금이 너무 크면 갚을 의지가 없어서 받기가 어렵다”며 “찾아가면 도망가지도 않고 태연히 살던 곳에서 살면서 못 갚는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몇 천 정도면 갚고 편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그나마 받아내기 쉽다”고 귀띔했다. 

대부분 신용정보회사 홍보물
29개 업체 허가받고 추심행위


마지막으로 접촉한 C 업체는 “추심은 대행하지 않는다. 돈을 갚지 않고 도주한 사람은 찾아줄 수 있다”고 했다. 업체 측은 “돈을 갚으라고 다그치거나 협박하면 큰일 난다”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신 그는 “이름,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 주민번호 앞자리, 사진만 있으면 이틀 안에 찾는다”며 “사례는 80만원”이라고 제시했다.

이 일을 10년 이상 했다는 이 관계자는 “채무자들 대부분은 주민등록지에 살지 않는다. 도망 다니면서 원룸, 고시원, 찜질방에서 먹고 잔다. 그런 사람은 돈을 여기저기서 빌려서 피해자가 여럿이다. 그래서 찾기가 더 쉽다. 원가는 15만원 뿐이고 나머지는 인건비, 장비 명목이다. 더 이상은 영업 비밀이라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착수금조로 30만원을 입금하면 잔금은 은신처를 알려주기 직전에 받는다고 했다. 

“도주한 사람도
찾아줄 수 있다”

이렇듯 업체들은 예상보다 낮은 20∼30%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또 일절 추가요금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앞서 금감원 관계자는 “법정수수료는 30% 미만인데, 불법추심업체는 성공보수금 등 각종 수수료 명목으로 30% 이상 요구한다”며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하는 걸 서로 아니까 그런 걸 빌미로 ‘불법추심을 교사하는 거 아니냐’며 나중에 추가적으로 각종 명목을 붙여 더 달라고 한다. 심부름 업체는 조폭 수준의 인사가 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돈을 받는 게 목적”이라며 의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렇듯 불법추심업체를 이용하면 오히려 협박당할 수도 있고 ‘불법추심행위교사’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추심하는 업체라도 관련 법을 완벽히 준수하면서 추심을 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취재 결과, 추심업체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드나들며 빚 독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금감원 관계자는 “등록된 신용정보회사나 대부업체라도 불법, 탈법추심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부여한 자격을 갖춘 신용관리사라 할지라도 거주지나 직장으로 찾아가 협박성의 발언을 하거나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거나 가족 등 제3자에게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용정보회사 측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한 신용정보업체는 “미안해하고 일부라도 변제하면 우리에게 맡기지 않는다”며 “채무자가 되려 화를 내고 ‘배 째라’하면 배신감을 느끼고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받기 위해 채권자가 채무자를 달래고 사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항변했다. 

이들 업체의 법정수수료는 30% 미만으로 정해져 있는데, 평균적으로 25% 내외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무자의 재산조사와 신용조사를 위해 추가로 수십만원의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연락이 안 되는 채무자는 직접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 숙박비, 식비, 일당여비 등의 실비용도 따로 청구해 받는 경우도 있다. 지급기일이 1년 이상 지난 불량채권의 경우엔 조금 더 요구하기도 하지만 앞서 밝힌 법정수수료 이상으로 받을 순 없다. 따라서 의뢰자 입장에선 허가받은 업체인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국내에 정식으로 등록된 신용정보회사는 29개 업체인데, 이름만 도용해 몰래 영업하거나 지점 개설 방식으로 명의를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실태에도 단속의 손길이 일일이 미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불법과 탈법 채권추심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법을 다 지켜가면서 돈을 받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신용정보회사들의 ‘개인 채권 회수율’은 어느 정도일까. 업계에 따르면 사적 거래에 관한 민사채권은 의뢰가 적은 편이고 상사채권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각 사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기 때문에 취재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용관리사들이 주로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 따르면 5∼10% 이하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론 그보다 낮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불법추심은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특성상 회수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 금감원은 불법채권추심을 ‘5대 금융악’으로 규정하고 척결에 나서고 있지만 피해자 본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피해를 구제하기가 어렵다.  

회수 얼마나?
5∼10% 이하

불법추심은 신고 전 증거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 평소 휴대전화 등의 녹취 및 촬영 기능을 잘 익혀두었다가 불법추심을 당할 경우 휴대폰을 이용해 통화 내용을 녹취하거나, 사진·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증거자료를 확보한 후 경찰(112) 또는 금감원 콜센터(1332)에 신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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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