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왕국’ 북한 마약유통 실태

최상급 아편 전세계로 배달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최근 북한에서 생산된 필로폰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투약한 탈북자와 중국동포 수십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까지 북한산 마약을 중국에서 구해 국내에 가져와 투약할 정도로 북한에서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한반도 내 마약 제조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다. 당시엔 조선총독부 내 전매국에서 ‘식물분석국’이라는 부서를 설치하고 실제론 모르핀과 아편을 취급했다. 전매국은 공식적으론 인삼과 담배를 독점 취급하는 부서였으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전국의 양귀비 농장을 관리하고 양귀비를 수확·분석해 군납용 모르핀 생산에 관여했다.

집집마다 재배
상비약처럼 구비

이렇게 생산된 모르핀은 만주의 야전병원으로 보내져 부상병 마취와 고통 경감에 쓰였다. 당시 일제가 함경도 지역에 광범위하게 양귀비 농장을 조성하고 운영한 것은 함경도의 토양이 양귀비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양귀비 재배가 성행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3월 발간한 <2015 국제마약통제전략(INCRS) 보고서>는 북중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북한에서 마약이 성행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북한 당국이 만든 마약은 아편을 뜻하는 ‘백도라지’ 와 필로폰, 헤로인뿐만 아니라 진통진정제 역할을 하며 일명 ‘총탄’으로 불리는 화학합성제 ‘덴다’, 각성제 ‘얼음’, 강심지혈제 ‘파인디아’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내가 북한에 있었을 땐 아편 엑기스가 비상 상비약처럼 집집마다 있었다”며 “진통제, 몸살 감기 등에도 쓰고 만병통치약처럼 썼다. 대흥, 장진, 요덕, 맹산, 양덕군 일대에 아편재배지가 많다”고 북한의 마약실태를 전했다.


강 대표는 지난 1992년 함남 요덕군에서 거주하다가 탈북했다. 그의 진술로 볼 때 당시에도 마약류가 일반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강 대표와 센터 측은 현재 미국 국무부에서 의뢰한 북한 내 마약 실태를 조사 중으로 오는 6월 말까지 조사를 완료해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 초 해외공관의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마약 제조를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정권 차원의 외화벌이 수단으로 아편 재배와 마약 생산을 대대적으로 증대시켜왔다.

탈북자들 중국 통해 국내로 들여와
국경지대 광범위 양귀비 농장 조성

특히 1989년 8월, 김정일이 양귀비를 심어서 외화를 획득하라는 지시를 내림에 따라 재배면적이 대폭 확대됐다. 이후 김정일 직속의 노동당 39호실과 대성무역총국의 주관 아래 은밀하게 마약사업이 전개돼왔다.

이미 김일성 시절부터 마약은 정권이 장려하는 주요 시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양귀비를 많이 심어 이것을 정제해 외국에 팔고 인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교시했다.

김일성은 “백도라지 농사를 잘 지어 백도라지만 수출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식량난을 해결하고 우리 인민들은 가까운 연간에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의 마약 거래는 북한주민이 두만강을 직접 건너가거나 압록강에 소형 배를 띄워 마약 원료가 들어가고 완성품이 중국으로 나간다고 전해진다. 이밖에 기차 화물칸과 선박의 컨테이너 박스 안에도 마약을 숨겨 밀거래한다고 알려졌으며, 회당 0.5∼1㎏ 단위로 거래된다고 한다.


지난 2002년부터 마약은 대대적으로 중국으로 밀수되기 시작했다. 당시 필로폰 1㎏은 미화 5600달러에 거래됐다.

이렇듯 북한에서 마약 제조 및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일반 주민들 입장에선 굉장한 수입원이 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8세 어린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가 아닌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바다에서 조개를 잡아오다 ‘마약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이들이 ‘장마당세대’로 불리면서 마약 제조와 운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외국에 팔고
식량문제 해결

개인의 급여가 월 5000원 정도라면 실제 생활비는 일주일에 평균 5만원 정도 든다. 마약을 취급하면 하루에 10만원도 벌 수 있다. 정권에서 사형을 시킨다고 선전해도 마약 판매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북한산 마약은 순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순도 99%를 자랑하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중국 마약은 불순물이 많이 첨가돼 복용 후 환각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두통이나 어지럼증, 구토를 유발한다. 북한 마약은 “뒤끝이 깔끔하고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남한처럼 주사기 투여 방식보다 서양처럼 코로 흡입하거나 은박지 위에 놓고 가열해서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70년대 해외공관 운영비 조달 위해 시작
90년대 들어 정권 차원의 외화벌이 수단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는 탈북자 진술을 인용해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마약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탈북자에게 물어보니 회령 출신자는 다 한다. 중학생 이상은 다 한다고 언급했다”면서 적어도 국경지대 주민의 70∼80%는 복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탈북연도를 기준으로 2005년 이후 탈북자는 50% 이상 복용 경험이 있다고 말했고 2008년 이후 탈북자는 70∼80%대로 높아졌다. 최근엔 100% 다 한다. 애들도 다 한다고 하더라. 드문 현상이 아니고 꽤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 충격을 안겼다.

2009년 실시됐던 화폐개혁 이후 보유하고 있던 화폐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 새로운 시장경제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자녀들의 부양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 장마당(시장)에서 장사로 먹고 살 만한 능력이 없는 이들 사이에서 마약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북한의 고급 식당은 ‘사우나’를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진수성찬을 먹은 후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며 마약을 함께 한다고 알려졌다. 상류층 사이에서도 마약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탈북자들은 “마약에 빠지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물건” “마약을 (복용)하면 겁이 없어진다” “폭행, 살인, (성적) 문란이 온다” “포고문도 내고 사형도 시키지만 근절이 안 된다”고 했다. 
 


북한사회서 마약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단속을 하고 적절한 처벌을 내려야 하는 인민보안원, 보위원, 법관 등이 마약을 복용하고 압수된 마약을 은밀히 빼돌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마약을 선물로 주고받기를 즐기고 단속된 마약을 착복해 가족을 시켜 장마당에 내다팔도록 하며 지인이나 친척에게도 나눠준다.

이처럼 지도자의 어리석은 판단과 부패, 탐욕, 빈곤으로 인해 북한사회 전반이 ‘마약공화국’으로 변질됐다. 마약을 위해서라면 권력자가 주민을 생산자로 부리고, 생산자는 권력자를 속여 빼돌린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마약은 살인과 강도 등 ‘강력범죄’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국경지대 주민
70∼80% 복용

지난 1997년 탈북한 이애란 박사는 <북한의 백도라지 농장의 실체와 마약 남용>에서 “북한주민들의 이러한 일탈과 도덕적 해이는 앞으로 통일조국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한 민족임을 감안할 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shi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한 마약’ 어떻게 풀렸나  

 


원래 북한 불량정권은 마약 제조 및 유통을 외화벌이 목적으로 시작했다. 실제로 전 세계를 상대로 마약밀매와 위조지폐 유통 등 국제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박스 기사 참조) 그러나 현재와 같이 북한 내부에 마약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 것엔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김정일이 직접 마약 생산을 지시하면서 생산량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과잉생산이 초래됐고 중국 당국이 지난 2003∼2004년께부터 마약밀매를 엄격히 단속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수로 풀린 것이 한 원인으로 보인다. 또 1990년대 중반 대량 아사 사태(고난의 행군 시기)가 발생했을 당시 북한당국이 집중 육성했던 마약제조기술자들이 내수용 마약을 대량 제조했던 것이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함남 함흥시 흥남구역 내엔 유명한 ‘흥남비료공장’이 있다. 해당 공장은 1927년 일본질소비료(주)에 의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세워져 1930년대에 화학비료와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했다. 함흥 앞바다에서 일제가 패망 직전까지 ‘핵실험’을 했다는 미국의 정보자료도 존재한다. 그러한 이유로 6.25 당시 혹시 잔존할지도 모를 핵실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미군이 흥남을 폭격한 후 흥남철수작전을 감행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부터 화학실험과 관련 제조에 능한 곳이었던 것이다.

현재 함흥시엔 함흥약학대학과 흥남제약공장이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마약을 생산했고 최근엔 흥남비료공장 6직장에서도 마약을 생산한다는 보도가 일제히 나왔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공장 가동이 멈추자, 그때까지 국가에서 특별 배급을 받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살던 화학전문가들이 굶주리는 상황에 처했다. 그때부터 생존을 위해 중국에서 마약원료를 들여와 마약 제조가 시작됐고 현재 마약 제조의 ‘본산지’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처음 마약을 연구하고 시험생산을 한 평양시 상원군 마장리 연구소에서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한 흥남제약공장, 나남제약공장, 평양선교제약공장에 몸담았던 기술자와 전문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마약 제조와 유통이 시작됐다. 결국 2000년 이후 북한 전 지역은 마약의 늪에 빠지게 됐다. <신>

<기사 속 기사> 북한의 국제범죄는?

2006년 10월11일자 <타임> 영국판은 북한이 일본의 야쿠자, 러시아의 마약중개상, 아일랜드 해방군(IRA)의 테러리스트, 아프리카의 밀렵꾼, 이집트·이란·리비아·파키스탄·시리아·베트남·예멘의 군대 등을 상대로 위조·밀매·밀수 등의 불법거래를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제범죄를 자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늘날 북한은 마약을 해외 공관의 ‘외교 행낭’을 이용해 밀반출하고 있다. 본국과 대사관을 오가는 외교 행낭이라고 불리는 큰 자루 안에 마약, 위조지폐, 가짜 담배 등을 넣어 이동시키는 것이다. 북한의 마약사업은 아편ㆍ필로폰ㆍ헤로인을 비롯해 최근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유행 중인 ‘샤부’ 등 각성제도 포함하고 있다.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의 쟁점: 북한의 국제범죄 유형과 특징>(2007)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은 지난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라오스·인도·이집트·동독·파나마·스웨덴·러시아·중국·잠비아·일본·멕시코·시리아 등 전 세계 각지에서 마약을 소지, 밀반입, 판매해 온 혐의로 추방당했다.

북한은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등 국제범죄조직과 연계하는 한편 중국 베이징의 신흥 폭력조직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육성해 마약밀매 하부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중국의 동북 3성 지역과 러시아의 극동지역을 주요 밀매 루트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선 현지 파견된 벌목공과 임업대표부 직원들을 활용해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아편·헤로인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러시아 마피아와 손잡고 아편과 헤로인을 유럽으로 밀반출하고 있다.  지난 1999년 1월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는 북한이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마약 밀수로 벌어들인 외화로 전투기와 헬기 등 러시아제 군사장비를 구입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신>

[※참고문헌]

이애란, <북한의 백도라지 농장의 실체와 마약 남용>, 북한연구소, 2009
이석영, <북한은 어떻게 마약천국이 되었나>, 북한연구소, 2015
윤황, <동북아 평화질서구축의 쟁점: 북한의 국제범죄 유형과 특징>, 통일문제연구19, 2007
김철추, <덴다, 총탄, 돌이돌이, 위폐, 무기...북한의 추악한 지하경제>, 조선미디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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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