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국정원 대북정보력 논란

'헛다리' 정보당국 믿어도 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국가정보원은 지난 2월 개성공단 폐쇄 직후 리영길 전 인민군 총참모장이 종파분자로 지목돼 처형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근 열린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그가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것이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대북정보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정원은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배당받고 있지만 대북·해외정보 수집에서 ‘아마추어’ ‘흥신소 직원’ 수준이라는 비아냥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동안 국정원은 대북정보와 관련해 여러 차례 설익은 정보를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현재까지 국정원은 2008년께 김정일의 건강 이상과 2013년에 있었던 장성택의 실각 정도를 제외하면 잇따라 잘못된 발표를 내놨다. 국정원이 흘린 정보를 언론이 ‘받아쓰기’ 했다가 오보 낸 일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계속 헛발질

국정원은 지난 2010년 민간인 2명과 해병 2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예측하지 못해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군 정보당국이 감청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국정원에 넘겼음에도 국정원 측은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

2011년엔 당시 후계자로 막 떠오른 김정은이 중국을 단독 방중한다는 발표를 냈으나 김정일이 직접 방중하면서 망신을 샀다. 같은해 12월엔 김정일 사망을 조선중앙TV가 공식 발표할 때까지 감지하지 못하면서 무능의 극치를 드러냈다. 사망 발표 당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중이었다.

지난 2012년께에도 김정은이 리설주를 대동하고 나왔을 때까지 그의 결혼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복수의 전문가들은 리설주를 여동생 김여정으로 판단했을 정도였다. 김정일이 생전에 비밀리에 여러 명의 처를 뒀기 때문에 서방 지도자들처럼 공식적으로 부인을 대동한다는 것을 북한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같은해 12월 북한이 갑작스럽게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을 때에도 그 전날까지 로켓이 해체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014년 5월엔 처형됐다던 인민가수 현송월이 조선중앙TV에 나왔다. 전해 8월, <조선일보>는 현송월을 포함해 은하수관현악단 및 왕재산예술단원 9명이 음란물 제작·유통 혐의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다. 직후 <아사히신문>까지 김정은이 리설주가 유사한 행위에 연루됐다는 소문을 막기 위해 처형을 지시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신빙성을 더했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국정원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국회에서 발언하면서 관련 보도를 부추겼다. 그러나 현송월은 지난해 말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에도 나타나 인터뷰에 응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4월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은이 모스크바 전승절에 참석할 것”이라고 보고했지만 다음 날 북한이 불참을 통보하면서 망신을 당했다.

국정원은 북한 당군정의 동향이나 인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엔 핵심 측근의 한 사람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추방돼 지방의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국회에서 보고했으나 올해 1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상 혁명화 교육기간으로 2~3개월 정도면 매우 짧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가 평양에서 자숙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기도 했다. 최룡해 역시 이번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것이 확인되면서 신변이상설을 불식시키고 최측근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한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도 얼마 뒤 <노동신문>을 통해 등장했다.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시에도 미국과 일본은 핵실험을 사전에 인지한 반면 국정원은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러한 국정원의 반복되는 ‘헛다리’는 근본적으로 북한체제의 폐쇄성 탓도 있겠으나 국정원의 대북정보력 부재에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북전문가들은 국정원이 확보하고 있는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 인적 정보망)의 질과 양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자들로부터 동향을 청취하거나 중국 내 조선족, 탈북자, 한족 정보원, 북한 내 북한인으로 구성된 정보망을 통해 대북정보를 수집, 분석한다고 알려졌다. 특히 북한인 휴민트를 구축하는 것에 크게 공을 들이지만 국경 밖에서 북한 내에 연계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대북정보 라인이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붕괴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2009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부임 직후 대북전략국이 해체됐고 북한 전문요원이 크게 줄어드는 등 대북관련 업무가 홀대받았다.

국정원이 “2중 스파이여도 상관없다. 정보만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정보원들이 사례를 목적으로 부정확하고 설익은 첩보를 넘기는 일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렇게 국정원 측이 조선족이나 탈북자 정보원이 주는 첩보를 오판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국정원 내부에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가 적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집된 대북정보를 분석하고 대비하는 일도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리영길 처형 발표…노동당대회 등장
“1조원 예산이 아깝다” 흥신소 수준?

특히 이명박정권 들어 대북강경책 일로의 정책이 시행됐고 이에 따라 대북사업이 전면 중단된 영향도 크다. 믿을 만한 휴민트의 상당수는 그나마 북한을 드나들며 사업을 하는 기업인이나 상사원이었다. 소위 대북사업가들이 사업 협의 과정에서 북한 고위당국자를 만나 북한 내의 여러 소식을 청취했으나 대북 신규 사업이 모두 중지되면서 이러한 방식이 단절됐다. 이렇게 휴민트가 붕괴되면서 인공위성, 정찰기, 이지스함 등 첨단 장비를 통한 전자 정보 수집 체계인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그간 국정원이 내놓는 정보마다 ‘정국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것은 국정원이 오랫동안 본연의 임무는 제쳐두고 지나치게 정치화되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다는 지적과 무관치 않다. 국정원이 해외 정보수집엔 무능하고 정권의 안위 등 ‘정치공작’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덩치나 무제한의 권한에 비해 독자적인 해외정보 수집능력이 지극히 부족하다”며 “대북·해외·국내 정보수집을 독점하고, 기획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각급 정부부처와 기관들을 쥐락펴락하며, 대내 심리전을 빙자해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정치에 개입하는 등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을 통한 대선과 정치 개입 의혹에 휩싸였고 같은 해 6월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7월엔 이탈리아 해킹팀이 국정원 등 각국의 정보기관에 해킹프로그램을 대량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휴대전화 불법감청 및 해킹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수십 년간 민간인 사찰과 간첩 조작 의혹이 끊임없이 반복됐음에도 사이버테러방지법 법안 통과가 재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유우성씨 증거조작사건, 세월호 참사 개입, 어버이연합 게이트, 류경식당 집단 탈출 건 등 해외 정보 수집보다 국내정치에 집중해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정원을 개혁하기 위해선 수사 기능을 없애고 국내 파트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정치만 기웃?


익명을 원한 군 정보당국 전직 간부는 “정보기관 내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정보를 능숙하게 다루는 유능한 인사가 수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그동안 비 전문가인 정치인, 공무원, 정권실세의 측근이 수장으로 왔기 때문에 대북정보력이 점점 약화된 것이다. 국정원의 기관 출입도 철폐해야 한다. 선진국 중에 정보기관이 사회 각 기관에 출입하는 나라가 없다. 휴민트 강화와 대북·대외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바로세우고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