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3 03:01
<일요시사>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반영한 ‘김무성의, 김무성에 의한, 김무성을 위한’ 상향식 공천은 김 대표의 대권가도를 위한 전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김무성식의 상향식 공천을 실시할 경우 김 대표의 텃밭인 영남은 현 상황이 유지되지만 야권 지지세가 강한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의 유력 인사들이 본선은 고사하고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 사유로 역선택의 함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지적했고, 안대희 전 대법관을 실례로 들었었다. 안 전 대법관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다면 당내 경선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하 당협위원장)에게 무참하게 패할 것이라 했다. 이제 필자의 일관된 주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 살펴본다. 최근 모 언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중에서 영남과 안 전 대법관에 대해 실시한 두 건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새누리당의 아성인 영남, 즉 대구 동갑 조사 결과다. 류성걸 현 의원이 41.6%,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19.9%, 그리고 손종익 예비후보 역시 19.9%를
일전에 ‘안철수의 분탕질, 참으로 역겹다’라는 제하로 안철수의 지난 행동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접했던 한 사람이 인터넷 다음의 아고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황천우라는 극우·수구 보수 색채의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가 극렬히 안철수를 비판하는 칼럼을 올렸더군요. 가끔 문재인 지지자들이나 야권 지지자들 중에서 안철수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새누리당(극우·수구 보수 세력)은 안철수 죽이기에 목숨을 걸까요?…(이하 생략)’ 필자가 극우·수구인지 보수인지는 차치하고 새누리당이 안철수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섰다는 이야기,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안철수를 살려서 더불어 민주당과 당당하게 세를 겨루도록 해야 할 입장인데...... 최근 우연히 모 종편 방송을 시청하는 중에 이와 유사한 경우를 목격했다. 패널 중 한 사람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상향식 공천 실현에 정치적 운명을 내걸고 있는 사유를 김무성의 경험에서 풀어내고 있었다. 2008년 실시된 18대 총선 당시 친박계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고, 또 201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로부터 “반기문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대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반 총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주십시오”라는 질문을 받자 “국제사회에서 여러 나라 지도자를 만나도 반 총장이 성실하게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지 저는 모르고, 그것은 국민께 여론조사를 해서 ‘왜 찬성하십니까’ 물어봐야 그게 제일 정확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반 총장에 대한 언급을 살피면 구체적인 평가 내용은 밝히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새누리당 내에 소위 친박 의원들도 암암리에 ‘반기문 대망론’을 띄우고 있다. 그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반 총장을 대통령으로 세워 외교를 담당하도록 하고 새누리당 친박 세력이 내치를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이와 관련해 친박 핵심으로 지칭되는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충청도 출신인 반
나는 서울 토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든 나의 제2의 고향은 호남이라 강변한다. 호남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대한 아련한 추억, 그리고 친구들이 있어 지금도 수시로 문상 등의 사유로 찾는다. 나와 호남과의 인연은 군 복무 시절부터 시작된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근 31개월에 달하는 기간 동안 호남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복무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그 과정에 과분할 정도의 인정을 실감하게 된다. 인정뿐만 아니라 그 원인 역시 발견하게 된다. 가도 가도 끝이 닿지 않는 드넓고 기름진 땅, 그리고 사시사철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풍요한 바다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즉 풍요로운 환경이 호남의 인정을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이 대목에서 우스갯소리 한번 하자. 강진에 유배되어 16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보냈던 정약용에 대해서다. 만약 그가 호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그 기간 유배생활을 했다면 생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천만에다. 우리 역사를 살피면 호남이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쉽사리 알게 된다. 여하튼 난 제대 후 복학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정당사무처 조직 파트에 배치되자 호남 출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하여 호남 지역을 담당한다. 이후 수시로
지난 2013년 민주통합당(이하 새정치민주연합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민주당으로 칭함) 5.4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당시의 일이다. 김상현 전 의원이 모 방송에 출연하여 차기 당 대표로 누가 선출되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개인적 차원임을 전제로 김한길 후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사유를 묻자 “김 후보가 소설가 출신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없고 아울러 곤경에 처한 민주당의 단합을 도모하여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답변했다. 당시 필자 역시 김 전 의원의 혜안에 조용히 찬사를 보냈었다. 소설가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그러기에 여하한 경우라도 불가능이 있을 수 없다는 필자의 지론과 괘를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설가, 소설가라는 미명하에 글 장난하는 글쟁이가 아닌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을 겸비하고 있어야 하는 문학인으로서 소설가는 세상에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지저분하게 세상 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필자도 김 후보가 제1야당의 대표가 되어 낙후된 이 나라의 정치를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를 고대했다. 그런데 민주당 대표로 당선된 김한길 의원이 의외의
작금에 정치판, 한마디로 난장(亂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논란을 포함하여 여야 가리지 않고 밥그릇 싸움, 총선에서의 공천 지분 확보와 관련하여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면서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혹여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약속한 게 아닌가 하는, 즉 곤궁하기 이를 데 없는 현 상황에 국민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못하도록 일부러 저들이 난장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여하튼 이 난장 중에 필자의 시각으로 보아 돋보이는 인간은 당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최근 김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 출마 사수를 주장하면서 유사시 대권후보군으로 등장할 수 있는 인사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표방하는 대의정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험지로 출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의 강권에 따라 부산 해운대 출마를 희망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김 대표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였고 종로에 출마 결심을 굳혔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일정 부분 양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김 대표가 주장하는 험지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새누리당 약세지역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유명세를 바
지난 가을 모처럼 아내와 함께 지인이 운영하는 야외 카페를 찾았었다. 한참 단풍에 취하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중에 옆이 소란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참으로 기막힌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어림잡아 네댓 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장난감 총을 들고 어미와 아비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며 ‘탕탕’ 소리를 내자 그 어미, 아비 되어 보이는 인간들은 그에 따라 그야말로 리얼하게 죽는 시늉을 연발하고 있었다. 일이 그 선에서 마무리되었으면 좋으련만 이 겁 대가리 상실한 녀석이 우리 테이블까지 와서 나와 아내에게 그 짓거리를 해댔다. 이거 저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육두문자가 튀어 나갔고, 결국 모처럼의 데이트를 망친 적이 있었다. 너무 비약이라 평할지 모르나 정치판에 등장한 이후 안철수란 인간을 바라보면 장난감 총을 들고 설쳐대던 그 아이가 연상된다. 그렇게 자란 그 아이에게 온 세상은 저의 놀이터고 다른 사람들은 저의 놀이에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인 안철수의 행동이 이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러니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지지를 발표하고 제 멋대로 놀다가 투표 당일 미국으로 날아 가버렸고, 무소속으
최근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의 전직 비서관인 박모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월급 가운데 120만원을 13개월에 걸쳐 상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월급을 내놓으라고 강압한 적이 없고 사실이 왜곡되거나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해명이 나오는 순간 또 다른 전직 비서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 역시 “8개월 동안 월급 가운데 120만원씩을 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돈에 대해선 “박 의원이 몰랐고 자진해서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던 새누리당이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박 의원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지만 수시로 불거지는 새누리당의 급여 착취 행태와 그에 대한 당의 대처를 살피면 의외의 반응이 아닐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령 박 의원 전 비서진들의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김무성 대표가 있는 새누리당이 박 의원을 단죄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발생한다. 지난 시절 필자와 한나라당에서 이름만 바뀐 새누리당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여보, 내년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 안 돼!” 곁에서 TV를 시청하던 아내로부터 느닷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저 사람 얼굴 보기 싫어서 그래.” 아내가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선을 주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안한 혁신 전당대회 개최 요구를 거부한 문재인 대표에게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잠시 그 장면을 주시하다 그냥 웃어넘겼다. “왜 그래. 당신도 저 사람 탐탁지 않게 생각하잖아.” “물론 그랬었지. 그런데 내가 잘못 본 듯해.” “무슨 소리야?” “저 사람은 인간적으로 문제 있다기보다도 정치와는 전혀 연결 지을 수 없는 사람이야.” 안철수란 인간이 처음 정치판에 등장하면서 ‘새 정치’니 ‘큰 정치’니 하는 것들을 외쳐댔다. 정말 가소롭게 보였다.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인간이 새 정치, 큰 정치를 외쳐댔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 연유로 그냥 시큰둥하게 바라보았
기독교를 믿는 딸 아이가 은근하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빠는 왜 기독교, 아니 종교를 믿지 않는 거야?” “왜 믿어야 하는데?” “교회 다니면 천당도 가고 영생도 얻을 수 있잖아.” “그래서 아빠는 종교, 특히 기독교를 믿지 않는 거야.” 아이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일이 축복이겠니 아니면 저주겠니?” 아이가 역시 이해하기 힘든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빠는 그냥 한바탕 재미나게 살다가 때가 되면 미소 지으며 죽을 거야. 아니 죽음이 아니지. 영원한 자유지.” 아이의 눈에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비춰질 지 모르지만, 나는 아내와 아이가 종교, 특히 정통 불교나 기독교를 신앙으로 가지는 일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더해서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왜냐,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내가 인지하고 있는 불교나 기독교는 공히 지고지순한 무조건적인 사랑,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그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그를 아가페라
우리 시대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자 고인을 회고하며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쏟아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세운 인물’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신념의 지도자’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 평가가 이어지지만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회고하는 부분은 ‘민주화를 위해서 온 몸을 던졌던 대통령’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의 공과를 떠나 이 부분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외의 찬사가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위대한 개혁 업적을 만드신 불세출의 영웅이셨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다. 고인 가시는 길을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상기에서 살펴지듯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두 가지 의미심장한 발언을 토해냈다. 김 전 대통령은 불세출의 영웅이고, 자신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부분이다
1980년도 후반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창립되었을 때 참으로 신선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 교육계 실정은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패했고 거기에 더하여 그들이 들고 나온 ‘참 교육’은 한편 혁명적 발상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하여 비록 몸은 동참하지 못할망정 정신적으로는 아낌없는 지지를 실어주었다. 그런데 출범 초기에 지녔던 장밋빛 환상은 서서히 빛이 바래갔다. 먼저 그들이 들고 나온 요구사항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장했던 사항 중에 학생이 아닌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무게 중심을 싣는 모습에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 그들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갔다. 아니 전교조가 처음 출범했을 때 표방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급격히 거짓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그들의 투쟁방식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들의 투쟁방식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학생들의 수업시간임은 차치하고 거리로 나선 그들의 손에 각목과 쇠파이프가 들린 모습을 보았을 때 참으로 아연하게 생각했다. 참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구였다. 아울러 그 쇠파이프와 각목을 어떻
그동안 <일요시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 기록들이 여러 부분에서 잘못되었고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어처구니없는 시각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모두를 압도하는,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왕의 직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해서다. 연산군은 엄연히 임금으로서 11년 간 보위에 앉았었고 광해군은 무려 15년 간 임금이었다. 두 사람은 반정에 의해, 연산 임금은 중종반정으로 광해 임금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군으로 강등되었고 지금도 대군(大君)도 아닌 군(君)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왕의 자리에 올라보지도 못한 인물들이 왕의 시호를 받은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을 필두로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 정조의 양부인 진종, 정조의 친아버지인 사도세자 즉 장조 그리고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이 그들이다. 한편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임금 자리에는 앉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왕의 시호를 보유하고 있건만 보위에 앉아 일순간을 풍미했던 두 사람을 지금도 군으로 기록하는 일은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지 역사에서 사례를
한국사 국정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6월 국사편찬위원회와 신라사학회가 개최한 ‘삼국통일의 현재적 의의’ 학술회의에서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이다. “우리 국민이 단일민족으로서 한 정부를 최초로 이룩한 신라 통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그런 그가 국정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이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라의 통일 문제를 크게 부각시켜보려 한다”고 일성을 터트렸다. 그의 지난 해 발언 그리고 최근 발언을 살피면 불현듯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떠오른다. 아울러 일전에도 김부식의 그릇된 역사관에 대해 짧게 지적했듯이 심한 우려가 일어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김부식처럼 상당히 편협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언급한 단일민족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신라의 통일 문제를 부각시키겠다고 한 부분이다. 먼저 당시 사회가 단일민족이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우리 집, 즉 황(黃)씨의 족보 속 내용을 들여다보자. 『황씨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의 한학사(漢學士) 황락(黃洛)의 후손들이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맞추어 산 이야기 한번 해보자.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있는 북한산의 명칭에 대해서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산이라는 명칭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거부 반응을 나타낸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런지 북한산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자. 북한산이 문헌상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삼국 시대 초기다. 삼국사기 본기 온조왕에 관한 기록이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마려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상기의 기록을 살피면 한산이란 지명과 부아악이 등장한다. 한산은 지금의 서울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정복한 이후 한강 이북을 ‘북한산주’라 명하였고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한강 이남, 당시 경기도 광주 지역을 ‘남한산주’로 표기했었다. 아울러 지금의 북한산은 ‘부아악’으로 등장한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필자에게 간혹 지인들이 질문하고는 한다. 우리 역사 최고 인물은 누구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내가 박 전 대통령을 우리 역사 최고의 인물로 평가하는 사유는 단순하다. 나, 즉 일개 백성에 지나지 않는 나도 당당하게 인간군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데에 따른다. 우리 역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경영하기 전까지, 아니 내가 어린 시절 이 땅에 백성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무늬만 인간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박정희란 인물의 등장으로 이 땅의 백성들도 맹자의 지론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발현 된다’는 맛을 보게 된다. 그런 연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많은 과실이 있지만, 그에 앞서 이 대목을 우선순위에 두고 응답한다. 각설하고,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일을 맞이하여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다. 다수의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미워했다는, 심지어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자세히, 아니 그냥 대충 살펴도 천만에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을 좋아했다고 봄이 타당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1457년) 6월22일 기록이다. 『노산군(단종)이 영월로 떠나가니, 임금이 환관 안노에게 명하여 화양정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노산군이 안노에게 이르기를, “성삼문의 역모를 나도 알고 있었으나 아뢰지 못하였다. 이것이 나의 죄이다” 하였다.』 다음은 세조 3년(1457년) 10월21일 기록이다. 『명하여 송현수는 교형에 처하고….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단종이 영월로 귀양 가면서 일개 환관에게 자신의 죄를 토로했다는 부분도 그렇지만 장인인 송현수 등이 죽임을 당하자 슬픔에 겨워 자살했고 이어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냈다는 부분을 살피면 그저 쓴 웃음만 나온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상기의 기록은 물론 정설로 알려진 내용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점이다. 먼저 실록 기록과 관련하여 귀양 가는 시점을 살펴본다. 실록에 따르면 단종이 한여름인 음력 6월22일(양력으로 치면 7월 말경)에 한양을 떠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단종이 귀양지인 영월에서 남긴 작품을 살피면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유배지인 영월의 자규루에 올라 지은 글 중 일부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조선 중기 형조판서·우의정 등을 역임했던 김구(金構)의 졸기에 관한 두 개의 기록을 살펴보자. 먼저 숙종 30년(1704년) 12월18일 기록이다. 『김구는 관찰사 김징(金澄)의 아들로 젊을 때부터 문한(文翰, 문필)이 넉넉하고 민첩하였으며,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청환(淸宦:학식이나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홍문관·선전 관청 등의 벼슬)과 현직(顯職:실무를 보는 문무관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자질과 성품이 명철하고, 재지(才旨)가 더욱 뛰어나 누차 바쁘고 번거로운 직임을 맡았으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지체함이 없었으며, 임관(任官)이 직무에 적합함이 많았다. 또 말주변이 능숙하여 임금과 면대해 아뢸 때에는 간곡하고 자상하니, 임금이 경청하였다. 정승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어 모친상을 당해서는 상을 감당하지 못하였는데, 임금이 병세의 위독함을 듣고 심지어 내시를 보내어 육식을 권했으니, 융숭한 총애가 이와 같았다. 졸할 때 56세요, 뒤에 충헌(忠憲)이란 시호를 내렸다.』 다음은 숙종실록보궐정오 29년(1703) 12월13일 기록이다. 『김구는 명민하고도 정력이 있으며, 사람 사귐에 유
김무성 씨가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지금까지 보인 행적을 살피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딴에는 뭔가 거창한 일, 본인이 부르짖는 혁신을 하겠다는 듯 말하지만 필자의 시선에는 그저 제 욕심 차리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그가 주장한 ‘다가오는 제 20대 총선은 새누리당 주도로 치르겠다’는 발언에 대해 살펴보자. 물론 그의 발상은 옳고 당연히 그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현실에서 과연 그렇게 일이 이루어질까. 천만에다. 즉 상기의 사고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경상도식 발상에 불과하다. 경상도 지역이야 새누리당의 철옹성으로 당 공천 획득 과정이 곧 본선이니 당 주도로 선거를 치른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그러나 경상도를 제외한 지역 특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도 당 주도로 선거를 치룰 수 있을까. 필자의 짧지 않은 경험으로 살필 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다. 총선에서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청와대 즉 정권의 성패에 달려 있다. 물론 소속 정당과 인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비중에 있어서 정권의 성패가 압도적이라는 이야기다. 굳이 그 사유를 나열
어린 시절 시험에 자주 출제 되었던 문제들이 기억난다. ‘대한민국 국보 1호는 무엇인가?’와 ‘대한민국 보물 1호는 무엇인가?’다. 물론 각각의 답은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이다. 이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거쳤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조선 건국 당시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건설하면서 세운 4대문 중 하나에 불과했던 숭례문과 흥인문이 과연 대한민국 국보와 보물을 대표하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아울러 이와 관련하여 각계에서 국보 1호를 변경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국보의 지정번호가 서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변경을 묵살하고 있다. 물론 문화재위원회의 ‘철밥통’식 사고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 많은 국보와 보물을 상대로 중요도를 측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또한 말 많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예견되는 그 반대급부의 지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1호의 경우는 상기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전혀 다른 의미를 주고 있다. 즉 1호는 국보와 보물 중에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