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경성에 푹 빠진 도미 마사노리 객원교수

서울서 ‘모던경성’ 흔적 찾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김사량 단편 <천마>(1940) 속 주인공 현룡은 아침에 유곽에서 일어나 혼마치(本町) 방향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온다. 유곽은 현재 동국대∼그랜드앰배서더 호텔 사이에 있었고 혼마치는 명동 일대다. 혼마치에서 동료들을 만나 논쟁하다가 소설 말미엔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에 앉아서 존다. 도미 마사노리(67) 한양대 건축과 객원교수는 소설을 보고 현장을 찾아 “김사량이 여기서 그랬구나”라며 ‘모던경성’의 거리 모습을 복원해왔다.     

“명동 예술극장(1936년 메이지좌로 설립)이 상징적 의미가 큰 공간이다. 맞은편에 카바레가 있었고, 뒤엔 주식거래소가 있었다. 여기에 전 세계 정보가 다 모였다. 주식해서 돈 벌면 카바레 가서 펑펑 쓰고 잘 안되면 ‘오늘은 한 잔 하자’ 하고 또 카바레로 갔다. 예술극장 주변엔 예술가가 다 모였다. 지금은 명동8길이 지가가 가장 높지만 당시엔 남대문로와 태평로가 가장 비쌌다.”

1983년 한국으로

도미 교수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지적도와 전화번호부를 구해 등재된 상호와 주소를 지적도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경성거리를 복원해나갔다. 1년6개월이 걸려 종로(일민미술관∼동대문), 명동(신세계 본점∼동국대) 구간 전체 4.8㎞를 입체적으로 재현해 냈다.

혼마치 83곳, 메이지마치 74곳, 종로 102곳의 카페 상호와 주소를 알아냈다. 그의 작업을 통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김사량의 <천마>에 나오는 거리 풍경을 가늠해낼 수 있다. 건물은 다 바뀌었지만 당시의 대로와 필지는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지난 2011년 ‘이방인의 순간 포착, 경성 1930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석 달간 전시하면서 첫 두 달엔 관람자가 뜸했다. 마지막 한 달엔 입소문이 나면서 도시연구자는 물론 사회사, 패션사, 젠더 연구자가 몰렸다. 그는 틈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같은 전시를 동경과 요코하마에서 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서 나고 자란 일본인과 가족이 전시장을 찾았다.


80∼90대 노인들이 “여기 빵가게에서 빵 먹었잖아”라며 미소 지었다. 현재는 없는 고향을 찾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명동에 일본 초등학교가 2개 있었는데 동문회에서 많이 왔다고. 두 나라의 전시 분위기는 그렇게 달랐다.

도미 교수가 한국에 온 것은 1983년, 35세 때다. 주남철 고려대 교수의 논문 <한국의 전통적 주거>를 읽고 한옥의 매력이 한눈에 들어왔다. 배낭을 둘러메고 양동마을, 하회마을, 부여,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는 “내가 연구하고 싶은 앞마당이 한국에 있더라. 깊은 문화에 생활이 보이는 환경이 맘에 들었다”며 “식사도 맛있고 문화수준도 아주 높았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한국문화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지금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다 아팠다”며 웃었다.

그는 또 “일본은 가볍고 인공적인 건축인데 비해 한국은 무겁고 자연친화적인 건축”이라며 “석굴암과 부석사를 좋아한다. 부석사는 돌이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무거운 것이 떠 있는 것, 그것이 한국건축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도미 교수는 한옥 연구를 시작으로 대만, 만주, 한국, 일본의 근대가옥과 그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나라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일본식 주택에 해당국가 사람이 거주하면서 어떻게 리노베이션 해왔는지가 주제다.

그는 “각 나라의 국민성과 지역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건 문화 이야기다. 그 시대에 건축을 문화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좋아 혹은 싫어, 그런 얘기가 아니다. 모르고 비판하면 안 된다. 그런 시대가 앞으로 올 거 같아서 천천히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명동의 일본식 2층 목조주택, 문래동 방적공장 터, 인천 차이나타운, 군산·목포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한국서 제일 인상 깊었던 일본주택을 꼽아달라고 하자, 군산 이영춘 가옥과 인천 부평구 산곡동 미쓰비시(三菱) 줄사택 단지를 꼽았다. 군산의 대농장주 구마모토 리헤이는 2만명의 한국인 소작농을 거느렸다. 이들은 노역에 시달리며 자주 아팠다. 구마모토는 의사 이영춘을 고용해 이들을 돌보게 했다.


“지자체에서 근대가옥 복원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영춘 가옥은 한지붕 밑에 리빙룸, 다다미, 온돌방까지 3개가 다 있어 굉장히 재밌다. 여름엔 다다미, 겨울엔 온돌을 쓴 거다. 지금은 전시장으로 만들어 보존 중인데 건물은 생활이 보이는 방식이 좋다. 전시장은 옆에 만들고 건물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 좋을 것 같다. 부평동은 일제강점기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건축가가 720채에 달하는 대규모 사택을 설계한 거다. 지금은 대우공장이 있다.” 

전통한옥 매력에 빠져 현해탄 건너
조선총독부 지적도로 경성거리 복원

도미 교수는 보통 건축사학자들과 달리 교육과 건축설계도 병행한다. 그는 지난 8일, 한양대 내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학생들과 새 집 천정에 들어갈 한지 조명을 작업 중이었다. 도미 교수는 “학생들이 어렵고 까다로운 연구실에 와서 고생한다”며 취재진에게 옥수수수염차를 거듭 권했다.

2014년 인천 관동갤러리 작업 당시 학생들과 섞여 지붕 위에서 일했다. 망치질도 하고 톱질도 했다. 건축사들이 설계를 마치면 현장에 잘 가지 않는 것에 비해 도미 교수는 일주일에 2회씩 현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인부들이 “진짜 교수냐”고 물을 정도다.

현재 그는 용인 동천동 마을 건립 프로젝트의 막바지 작업 중이다. 건축사 6명과 공동설계자로 참여했다. 경사지를 그대로 살려 마을을 만드는 레퍼런스를 찾아 건축주와 함께 오사카, 도쿄에도 다녀왔다. 교사와 학부모가 공동설립한 협동조합이 건축주가 돼 주택 15채와 마을회관, 어린이집까지 마을 하나를 완성하는 큰 프로젝트다. 도미 교수는 이 중 주택 5채를 설계했다.

그는 “보통은 건축에 소통을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하는데 처음부터 커뮤니티가 있는 사람들이 땅을 공동으로 사서 하나하나 만든 것”이라며 “어떤 멋있는 마을을 만들어줄까 고민했다”고.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13년이 됐다. 그 때부터 제자들에게 ‘단독주택 설계시대’가 올 거라며 어떻게 좋은 설계를 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국도 일본도 내 집을 장만하는 데 돈을 쏟아 붓고 나면 여유자금이 없다. 그렇게 구입한 집들은 자녀들이 출가하고 생애주기가 바뀌면 빈 방이 생긴다. 자기 집을 마련하고 나면 결혼한 자녀들 집을 또 걱정한다. 도미 교수는 그런 부분에 건축가들이 주목하고 서포트해야 한다고 했다. 

앞마당 연구

“짓고 싶은 집은 역시 목조주택이다. 다른 재료보다 싸다. 돈이 없어도 잘 생활할 수 있는 주택을 설계하고 싶다. 주택엔 일상생활 뿐 아니라 생산적 프로그램도 병행하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뜰리에를 만들 수도 있고 비즈니스 매매를 해도 좋고 레스토랑 공간을 만들어 줘도 된다. 결혼한 딸과 함께 사는 2∼3세대 주택도 짓고 싶다. 단독주택은 별채, 반지하, 다락방 같은 재밌는 공간이 많이 나온다. 그런 걸 연구하면 주택난이 해결될 거다.”


<shin@ilyosisa.co.kr>

 

[도미 교수는?]

▲1948년 도쿄 생
▲가나가와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72)
▲가나가와대학교 재직(1973~2008)
▲서울대학교 재외 연구원(1987~1988)
▲동경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1996)
▲동경대학교 생산기술연구소 연구원(1997~현재)
▲한양대학교 건축대학 전임교수(2008~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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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