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④천태만상 유학시대 '앞과 뒤'

비행기 탄 아이들이 되돌아 온다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어 교육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당시 돈 좀 있는 집안은 어린자녀를 앞다퉈 해외로 보냈다. 조기유학이 큰 폭으로 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열풍 15년이 넘은 이 시점, 유학에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두드러지면서 유학열풍이 한풀 꺾인 모양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학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2000년 이후 조기유학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떠났다. 개중에는 유수의 명문대에 진학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학생이 있는 반면 학업에 흥미를 잃어 탈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학지에서 방황하는 학생 대부분은 ‘치맛바람’에 억지로 떠밀려 타지에 홀로 남겨진 상태였고 이들 중 다수는 조기유학에 실패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조기유학의 문제점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채
각종 위험 노출
 
A씨는 부모의 권유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나이에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 하는 게 여간 어려웠다. 언어의 장벽과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은 A씨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A씨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언어도 학위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마냥 빈손은 아니었다.
 
A씨는 유학생활 중 외로움을 달래고자 접했던 마약을 끊지 못해 미국인 친구를 통해 국제택배로 마약을 제공 받아 서울 강남, 홍대 클럽가에서 흡연하고 주변에 유통시킨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마약에 관대한 문화에 익숙한 탓에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A씨의 부모는 대학교수로 알려져 충격이 더했다. 유학생활 중 마약을 배우고 국내에 마약을 밀반입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마 종자를 밀반입해 직접 재배하고 거래까지 한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유학지의 환경도 한 몫 한다. 필리핀에 조기유학을 간 10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억지로 술을 먹이는가 하면 성추행까지 저지른 기숙사 운영자에게 징역 6개월이 선고되는 일이 지난해 3월 벌어졌다. 당시 법원 등에 따르면 2007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 유학생 기숙사를 운영해온 최모(38)씨는 2011∼2012년 A(18)군을 수차례 손찌검하고 각목,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허벅지 등을 때렸다. A군이 농구 경기 중 실수를 했다거나 다른 학생을 빨리 불러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2012년 10월에는 기숙사 인근 식당에서 A군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거부하자 최씨는 “어른이 주는데 안 먹어?”라고 위협했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맥주 40여병을 구입해 구토를 할 때까지 계속 마시게 했다. 또한 최씨는 2012년 1월 B(16)군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 B군의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하기도 했다. 최씨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가서 부모님에게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한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영국 <데일리메일>은 외국 이민자 및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흉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십대 청소년 갱단이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소년 갱단은 UCLAN(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형 학교 기숙사 건물에 수시로 침입해 테러행위를 했다.
 
기숙사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며 유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등 여학생이 혼자 머무는 방을 밖에서 파괴하려 시도하는 등 공공기물 파손 및 주거 침입과 같은 악질적 범죄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청소년 갱단의 각종 방해 행위 때문에 유학생들은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학교도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다.

고스펙 인재 넘쳐
유학 실패 증가
 
일련의 사건들은 조기유학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6년 교육부는 ‘조기유학 제대로 알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 바 있으나 이후 해외 조기유학이나 해당 기숙사들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조기유학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기유학을 비판하는 이들은 조기유학의 문제점을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찾는다. 한국 학교와 달리 외국 학교는 자유시간이 많다. 외국 학교의 경우 오후 3시는 전후로 수업이 끝난다. 이후 시간은 학생 각자에게 맡겨져 있다. 한국처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아이는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지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적지 않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혼자 유학하는 경우에는 통제가 힘들어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어렵다.
 
그럼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담배와 마약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유학생 출신 청소년 갱단원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탈은 정체성혼란에서 나온다. 낯선 곳에서 타인종과 어울려 생활한다는 자체가 곤욕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성인도 힘들어 하는 영어 공부를 매일 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한다. 종합해보면 조기유학생들은 유학지에서 문화차이, 언어문제, 보호자 부재, 외로움 등으로 힘들어 한다.
 
돈 좀 있는 집안 어린자녀들 앞다퉈 해외행
각종 부작용 드러나면서 유턴…그럼 어디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0년 발표한 SERI 경제포커스 제310호 ‘국제 유학시장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명 중 1명이 유학을 떠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KB daily 지식 비타민 <한국의 유학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유학 연수비용은 2000∼2011년 중 367% 증가해 동기간 도시가계지출 증가율을 큰 폭으로 상회했다.
 
한국의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2011년 기준 44.7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다가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감소세로 전환됐으나 2010년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2011년 기준 한국인 해외 유학생 수는 28만9000명이며, 이 중 57%는 학위를 위해, 37%는 어학연수를 위해 유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일본은 학위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은 반면, 중국, 영국, 호주 등은 어학연수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았다.
 
초·중·고 유학생 수는 2006년을 정점으로 이후 3년간 지속적으로 감소세였으나 2010년에는 18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2010년 기준 초·중·고 유학생 중 초등학생이 87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학생 5870명, 고등학생 4077명 순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5.1%, 2.6%, 1.3% 증가했다. 2010년 기준 학생 1만명당 유학생 수는 중학생이 29.7명, 초등학생이 26.7명, 고등학생이 20.8명으로 특히 중학생이 유학을 많이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을 떠난 국가별로 살펴보면 초·중·고 유학생은 미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대학 유학생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유학했다. 전체적으로 유럽보다는 북미와 아시아권에 유학생이 집중돼 있었다. 고등학생은 49.5%가 미국에 집중돼 있었다. 이는 2008년 대비 5.9% 증가한 수치다. 대학 유학생은 초·중·고 유학생에 비해 미국 및 동남아 비중이 낮은 반면, 중국, 일본, 호주, 영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다 다양한 나라에 유학 중이다.

유학 성공해도
취업난 사슬에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14서울교육통계 분석자료집>을 보면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의 유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학생, 고등학생 유학 비율은 감소세다. 2003년과 2013년 유학생 수를 비교한 결과 초등학생은 13.8% 증가한 반면 중학생은 -21.4%, 고등학생은 -20.5% 감소했다. 유학 실패사례 등 각종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기홍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으로의 조기유학 청소년의 적응과 열망’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조기유학은 성공의 가능성보다 훨씬 큰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드러난 비용에 더해 숨은 비용을 고려하면 그 대가가 막대하게 크다는 것이다.
 
 
또 조기유학생들의 경우 발달과정에 있으며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업 성취의 문제뿐 아니라 언어소통조차 불편한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기유학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조기유학생들은 같은 또래의 이민자 자녀들에 비해 우울증의 평균 수치는 23%가 높았으며 자살 관념의 평균 수치는 90%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학교중퇴, 청소년범죄, 폭력조직 구성, 마약, 음주 등 탈선은 물론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공식적인 통계 수치로 확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유학생의 절반 정도는 학업을 포기하고 중도에 귀국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 교수는 청소년을 조기유학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사회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학에 성공했다고 해서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인재시장에서 나타난다. 헤드헌팅업체 탑앤스카우트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서 해외대 출신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등한 학위를 갖고 있다면 취업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피성은 대부분 실패…중도 포기 많아
국내대 출신이나 해외대 출신이나 비슷
 

헤드헌팅업체 써치앤컴퍼니 관계자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지만 100위권 대학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라면서 “요즘에는 고스펙 인재가 많아서 50위권, 30위권 대학을 나와야 인재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급인재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지만 해외대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유명 해외대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있어야 고급인재로 인정받는다고 전해진다. 업계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 이상 사실상 국내대 출신과 해외대 출신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해외 유학이 예전과 같지 않자 적은 비용으로 해외대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유학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송도가 국내 유학지로 부상하고 있다. 인천 송도의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대학생 50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강의동과 도서관, 기숙사, 게스트하우스, 교수아파트, 복합문화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2단계로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해 10개 대학의 1만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한국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미국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벨기에 겐트대 등 4대 대학이 자리를 잡았다. 4개 대학 정원은 3876명이다. 현재 학부·대학원 등 재학생은 606명, 외국인 학생은 66명이다. 앞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컨서바토리(피아노·관현악·성악·합창지휘과)와 미국 네바다주립대(호텔경영학), 러시아 불쇼이국립발레아카데미(지도자·무용수·안무가 과정) 등도 입주할 예정이다.
 
인천글로벌캠퍼스 내 대학은 한국 대학처럼 수능으로 학생들을 뽑지 않는다. 고등학교 공식 성적 증명서와 영어 능력 증명서가 평가 기준이 된다. 영어는 토플 IBT 80점 이상, LELTS(영국·호주 영어테스트 시험) 6.5이상, SAT Critical Reading 450점 이상, ACT-English(미국 대학입학학력고사) 20점 이상의 기준 가운데 한 가지를 충족하면 입학에 도전할 수 있다. 

조폭, 마약 등 
만만찮은 부작용
 
현실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에서 글로벌캠퍼스에 입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목고와 국제고나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제도권 밖 교육이 인기다. 문제는 진입장벽이다.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글로벌캠퍼스는 고사하고 그 길목이 되는 학교에도 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리잡은 대안교육 '허와 실'
 
대안학교는 서구 교육계의 ‘얼터너티브 스쿨(alternative school)’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학교를 말한다.
 
대안학교는 특성을 살려 건학 이념에 따라 생태농업, 건축, 대중매체이해 등 다양한 특성화 과목을 가르친다. 이외에도 종교·환경·시민단체에서 주말이나 방학에 자연답사, 체험활동, 방과 후 학습활동 등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상설 대안학교 등이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대안학교 특별전형으로 대안학교 출신을 선발하기도 한다.
 
대안교육의 교육적 가치는 훌륭하나 사회성 발달이 뒤쳐진다는 단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학교와 달리 자유로운 학풍 때문에 대안학교 안에서는 적응을 잘 하지만 밖에서는 사회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나 자급자족과 같이 스스로 생활하는 방식을 중시하는 대안학교의 특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칫 사회와 동떨어진 주변인으로 남게 될 우려가 적지 않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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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