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모여사는' 수도권 차이나타운 지도

툭하면 칼부림 “낮 길도 무섭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장기 없는 토막시신 살인사건’ 피의자가 중국동포 박춘봉으로 밝혀지면서 중국동포(조선족)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지역 주민들은 추가 범죄를 우려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분위기에 중국동포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서로 눈치를 보며 불편한 공존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불과 2년 전, 잔혹한 살인을 저질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원춘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일지역에서 끔찍한 사건이 재발해 지역주민들의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번 ‘장기 없는 토막시신 살인사건’ 피의자는 오원춘과 마찬가지로 중국동포였다. ‘제노포비아(xeno phobia:외국인혐오증)’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또 중국동포 짓?
불신 넘어 혐오
 
최근 들어 중국동포에 의한 강력범죄가 증가하면서 중국동포 밀집지역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는 형국이다. 조선족은 동포가 아니라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도 난무하고 있다. 강력범죄 발생 시 자동적으로 조선족을 떠올리는 것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때문에 애꿏은 중국동포들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동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 있는 중국동포들은 대부분 서울 가리봉동과 대림동, 경기 수원과 안산 등에서 집단거주하고 있다.
 
중국동포들의 대표적인 안식처인 가리봉은 서울 최대의 차이나타운으로 꼽힌다. 음식부터 놀이까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가리봉 연변거리는 마치 섬과 같다. 인근 가산동만 해도 각종 쇼핑몰과 고층 건물이 빽빽하지만 가리봉동은 오래된 3∼4층 건물들만 즐비하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주로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일명 ‘벌집촌’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외벽 일부가 허물어진 건 기본, 우중충한 동네 분위기는 수십 년 째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동포가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타 지역보다 월등히 싼 임대료 때문이다. 보통 월 15만∼20만원 선으로 서울에서 생활이 가능하다.
 
중국동포들의 문화거리인 연변거리에는 노래방이 즐비하다.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에서 연변거리 끝까지 들어선 노래방만 총 25곳에 달한다. 중국어 간판이 내걸린 PC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중국동포들은 PC방에서 인터넷전화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리봉동에 중국동포들이 몰리기 시작한 시점은 80년대 후반이다. 당시 산업구조조정으로 인해 구로공단 내 많은 업체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가리봉동에 남아 있던 벌집 등에 극빈층이 유입됐다. 이후 90년대 말부터 조선족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면서 조선족 밀집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원인은 지금과 같은 낮은 임대료였다. 기존에 형성되었던 건설관련 일용직 인력시장과 교통 요건도 한몫했다.

70만 중국동포
“당혹스럽다”
 
‘가리봉’ 명칭의 유래는 주위의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마을이 되었다는 설, 어원이 ‘고을’과 같은 의미인 ‘갈’ 또는 ‘가리’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가리’는 갈라졌다는 뜻으로 구로구의 전체적인 땅 모양이 바지가랑이처럼 갈라진 것과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가리봉동은 조선 말기까지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가리산리였다. 이후 가리봉리로 바뀌었고 63년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가리봉동의 ‘가’와 독산동의 ‘산’을 따서 가산동이 됐다. 75년 가산동은 다시 가리봉동과 독산동으로 나뉘었고, 80년 구로구 신설로 편입됐다. 가리봉동의 북쪽과 동쪽은 구로동과 접해 있고, 서쪽과 남쪽은 남부순환로를 경계로 금천구 가산동과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
 

가리봉동은 ‘한강의 기적’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60만평 규모로 조성된 구로공단은 국내 공업단지 제1호였다. 70∼80년대까지는 그랬다. 이후 값싼 노동력을 발판으로 섬유나 봉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제품을 주로 생산하다 보니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가리가 빠졌다. 결국 구로공단은 해체됐고 원주민들은 하나둘 가리봉을 떠났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선족들이 들어오면서 ‘연변타운’을 형성했다. 
 
오원춘·박춘봉 잇단 잔혹살인 공포
중국동포 두려움 확산…불편한 공존
 
그리고 2002년, 정부는 자진 신고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6개월∼1년의 출국준비 기간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조선족들은 본격적으로 가리봉동에 몰리기 시작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것이다. 늘어난 조선족 때문에 원주민과의 마찰도 이따금씩 일어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서울시는 가리봉동 일대에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10년 넘게 방치된 가리봉동을 다문화 동네로 만든다는 것이다. 가리봉동 주민의 1/3 정도는 조선족이다. 재생사업은 가리봉동을 5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중국동포시장과 연변거리는 시설 현대화를 통해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가리봉동이 과거 구로공단과 함께 세월을 겪은 전통 차이나타운이라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일자리를 잃은 조선족이 새롭게 모여드는 신흥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한국계 중국인과 중국인의 숫자는 영등포구가 3만7106명으로 구로구 2만9132명보다 약 1만명가량 더 많다. 이에 따라 중국은행인 ‘중국공상은행’이 서울 중구의 본점 외에 대림지점을 따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대림동 연변거리 주거지역 역시 벌집촌이 형성돼 있다. 다만 교통이 더 편리해 임대료는 좀 더 비싼 편이다. 직접계약이 일반적인 가리봉과 달리 대림동은 임대차 계약도 중개업소를 통해 이뤄진다. 대림동 연변거리는 ‘만남의 광장’으로 통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5만명 이상의 중국동포가 모여들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중국동포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안정적인 생활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류 연장과 영주권 획득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거리에는 출입국 해결사를 강조하는 문구를 내건 여행사만 50여곳에 달한다.
가리봉과 대림동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수원역 인근과 고등동, 매교동, 교동 일대 등도 차이나타운으로 통한다.
 
타 지역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4000여명의 중국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경기 시흥과 안산의 경우 외국인 공단이 형성돼 있어 중국동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 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불법 체류자촌’까지 생겼을 정도다. 때문에 불법체류자 관련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십년 지킨
그들의 터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상 시흥과 안산의 경우 각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중되는 반면, 가리봉과 대림동, 수원 등은 오로지 중국동포들이 밀집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수원의 경우 저렴한 집값 때문에 중국동포들이 우선 이곳에서 정착한 이후 가리봉, 대림동 등 서울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알려진다. 
 
익히 알려진 중국동포 밀집지역 외에도 새로이 부상하는 지역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동포나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가리봉동이나 대림동 등에나 있을 법한 풍경들이 최근 들어 일부 대학 캠퍼스 주변에 스며든 것이다. 이는 ‘미니차이나타운’이라 불릴 정도로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 인근에는 ‘다중 자창차오차이(가정식 볶음요리)’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동포와 중국인을 위한 전문 밥집인 셈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대 인근에는 중국어 간판이 내걸린 노래방이 인기다. 일반 노래방에는 중국노래가 업데이트 돼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이곳에는 최신곡이 자주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많은 중국동포와 중국인 등 유학생들이 즐겨 찾는다는 것이다.
 
가리봉, 대림동, 신길동…
‘메카’ 우범지역 인식 확대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장기체류 외국인은 136만7135명으로 외국인 등록자는 108만7512명이고 국내 거소를 신고한 외국 국적 동포는 27만9623명이다. 이 가운데 중국 국적은 74만5640으로 집계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경찰청에서 입수한 ‘2014년도 국정감사자료(2008년 이후 외국인범죄 현황)’을 보면 2008년 7월을 기준으로 외국인 범죄는 총 16만1389건이었다. 연도별 범죄건수는 지난 2008년 2만623건에서 2012년 2만4379건, 지난해 2만663건, 올해 1만6922건(7월 기준)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외국인들의 강력범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7년간 발생한 지역별 범죄건수는 서울이 5만1832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5만1332건, 경남 9100건, 인천 8976건, 부산 6915건 등의 순이었다. 국적별로는 중국동포가 9만3503명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 1만2780명, 미국 1만226명, 태국 6179명, 필리핀 2771명 등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전체 범죄 중 5대 강력범죄(성폭력·살인·폭행·강도·절도) 비중이 꽤 높다는 점이다. 이 기간 국내 외국인의 5대 강력범죄 건수는 총 6만1512건으로 전체 범죄건수(16만6922건)에 견줘 38%나 차지했다. 특히 서울 구로와 영등포, 경기 안산단원, 시흥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은 이같은 외국인 범죄 쏠림현상이 심각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범죄는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잔혹한 수법의 외국인 범죄가 우리사회에 충격을 안겨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을 배척하는 태도는 지양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범죄 대기 기소율은 외국인과 내국인 간 별 차이가 없다. 체류외국인이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 범죄 건수는 늘었지만 오히려 지난해 범죄율은 오히려 지난해에 전년보다 0.2% 낮았다.

배척하는 태도
지양해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내국인 범죄율(전체 인구 대비 범죄건수)은 약 1.97%인 데 비해 외국인은 그보다 낮은 약 0.8%에 그친다. 또한 합법체류자는 1.88%, 불법체류자는 1.13%의 범죄율을 보였다. “불법체류자가 범죄를 일으킨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통계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보면 실제로 외국인 범죄의 심각성은 다소 과장돼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동포에 대한 편향적인 언론보도로 인해 굳어진 선입견이 혐오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동포들이 밀집한 지역에 가거가 그들을 만나보면 우리와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다문화 전문가들은 외국인 범죄로 인해 우리사회 전체로 퍼질 수 있는 ‘조선족 포비아(공포증)’나 혐오감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KKK단(미국의 인종차별주의 극우비밀조직)’이나 일본의 혐한단체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인난’ 비상 걸린 연변
“전부 한국으로 떠난다”
 
중국 내 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에서 한국 등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조선족들이 늘어나면서 서비스업계가 심각한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15일 현지 매체인 <연변일보>에 따르면 연변 주에서는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이나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대도시로 대거 진출한 데다 연변에 남은 이들도 힘든 직종을 꺼려 종업원을 구하지 못하는 업소가 늘어나고 있다.
 
연변 주 정부 소재지인 옌지시의 경우 당국이 올해 2014년 7∼9월 시내 인력 수급 상황을 조사한 결과 서비스업 구직자 수는 2273명이지만 구인수요는 37895명으로 1.5배가 많았다. 특히 음식점 종업원, 판매원, 청소원은 구직자 수가 구인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변 주에서는 중·장년층의 외지 유출로 조선족 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난뿐만 아니라 가족 해체와 젊은이들의 과소비, 사회 부적응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연변 주에서는 지난해 총 1만9500쌍이 혼인신고를 하고 7800쌍이 이혼수속을 마쳐 연간 이혼율이 40%나 됐다.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도 부부 한쪽이 오랜 외지생활을 하면서 생긴 불화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지 매체들은 외국에 나간 부모가 연변에 혼자 남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에 중국 대졸자 평균 초임보다 많은 매월 3000∼4000위안(54만∼72만원)을 보내다 보니 과소비와 취업 기피 풍조가 만연했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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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