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특집 사건결산> 2014 최악의 살인사건10

사람 맞아? 인간의 탈 쓰고 짐승 짓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14년 한 해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잔혹범죄의 경우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치를 떨게 만들었던 살인사건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살인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울산 전기톱 살인사건’. 지난 1월, 울산 남구에서 20대 남성이 전기톱으로 사촌동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이모(24)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울산 전기톱 살인]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9일 오후 9시쯤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종사촌 동생인 김모(23)씨를 전기톱을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난 뒤, 숨진 사촌동생의 사체와 함께 밤을 보내고 20일 낮 12시50분쯤 119로 전화를 걸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은 119소방대와 경찰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해 이씨의 집 안방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당시 안방에는 사촌동생 김씨의 사체와 길이 50cm 가량인 전기톱이 있었다. 경찰은 “발견 당시 피해자의 목과 상반신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사촌동생이 나를 무시하는 말을 계속해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숨진 김씨는 이씨의 전화를 받고 이씨의 집을 찾았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김씨는 평소 이씨와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며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이씨는 범행을 위해 인근 약국에서 수면유도제 10정을 구입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기톱을 구매했다. 이어 함께 통닭을 먹자며 김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유도제가 든 콜라를 마시게 한 뒤 피해자가 잠들자 살해했다. 이씨는 2010년 3월 군에 입대했지만 대인관계의 어려움, 불안, 우울 등의 증세를 호소해 국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다 그해 9월 현역복무 부적합 처분을 받고 전역했다.
 
범행 이후 이뤄진 법무부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에서도 이씨는 피해망상, 환청, 현실 판단력의 장애 증상을 보여 망상형 조현병(정신분열)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법정에서 “자신 속의 악마가 살인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하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8월12일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살인죄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친모 죽이고 놀이공원행]
 
지난 4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뒤 놀이공원에 간 20대 딸의 사연이 공개돼 충격을 안겨줬다. 최모(20·여)씨는 어머니 백모(48)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최씨는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갈아서 백씨가 마실 물컵에 털어 섞었다. 이내 백씨는 잠들었고 최씨는 안방 침대 매트리스에 불을 붙인 뒤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최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백씨의 휴대폰을 챙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휴대폰으로 외삼촌에게 ‘그동안 미안했다. 우리 딸 좀 잘 부탁할게’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 튤립축제가 한창이던 용인의 한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최씨가 공원을 돌아다니는 사이 어머니 백씨는 불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최씨는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결국 모든 혐의가 드러났다. 남들이 보기에 최씨는 명문대 미대를 졸업한 미모의 어머니와 명문대 교수인 아버지를 둔 좋은 집안의 딸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부모의 갑작스런 이혼과 입시 실패로 인해 내적 갈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월24일, 수원지법 형사11부는 존속살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9명의 배심원들은 전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15년의 실형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다.

[윤 일병 구타 사건]
 
지난 4월, 경기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에서 일병을 가혹하게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선임병들의 구타로 인해 싸늘한 주검이 된 윤모(23) 일병은 지난해 2013년 12월 입대해 지난 2월,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받았다.
 
선임병들은 윤 인병의 행동이 느리고 말투가 어눌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면서 기마자세를 시킨 뒤 잠을 재우지 않는가 하면, 치약 한 통을 먹이거나 드러누운 얼굴에 물을 들이부었다. 뿐만 아니라 게 흉내를 내게 하며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바닥에 가래침을 뱉어 핥아 먹게 강요하기도 했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의 몸에 남아 있는 구타흔적을 지우기 위해 연고제인 안티푸라민을 바르면서 윤 일병의 성기까지 주물러 성적 수치심을 불렀다.
 
이렇게 가혹행위를 당하던 윤 일병은 냉동식품을 먹던 도중 선임병들에게 가슴, 정수리 등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뇌 손상으로 사망했다. 사건 직후 피의자들은 구속기소됐다.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10월30일 이모(25) 병장에게 징역 45년, 하모(23) 병장 등 3명에게는 징역 25∼30년형을 선고했다. 또 폭행을 방조한 의무반 유모(23) 하사에게는 징역 15년형을, 이모(21) 일병에게는 징역 3월에 집행유예 6월을 선고했다. 현재 군 검찰과 가해자 전원이 1심 판결 직후 항소를 하면서 재판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의문의 고무통 열어보니 10년 된 남자 사체
여고생 끓는 물 붓고 보도블록으로 내리쳐
 
[채팅남 토막 살인]
 
지난 5월, 인천 남동공단에서 50대 남성의 토막시신이 담긴 가방이 발견됐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성인사이트를 통해 만난 조모(50)씨를 토막살인하고 유기한 고모(36·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26일 오후 8시쯤 성인사이트에서 만난 조씨와 모텔에 들어가기 전 핸드백에 미리 흉기를 챙겼다. 고씨는 30cm 길이의 흉기로 조씨의 목과 가슴 등 30여 곳을 찔러 모텔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이후 고씨는 모텔을 나와 인근 상점에서 전기톱·비닐·세제 등을 구입, 욕실에서 조씨의 두 다리를 절단한 뒤 세제 등으로 모텔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자신의 외제차에 시신을 실었다. 잘린 두 다리는 비닐봉지에 싸 파주시 농수로에, 몸통 부분은 여행용 가방에 담아 인천 남동공단의 도로변에 유기했다. 경찰 조사결과 고씨는 조씨를 살해한 뒤 조씨의 신용카드로 3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해 여고생 암매장]
 
지난 5월, 경남 김해에서 20대 남성들과 일부 여중생들이 가출한 여고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끓는 물을 몸에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와 시멘트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창원지검은 지난 4월10일 김해지역 고교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해 사체를 유기한 A(15·중3)양, B(15·중3)양, C(14·중학 중퇴)양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윤양과 1대1 싸움를 하거나 냉면 그릇에 소주를 부어 강제로 마시게 한 뒤 구토를 하면 토사물을 핥아 먹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끓는 물을 몸에 붓거나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리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잔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11일 창원지법 제4형사부는 구속기소 된 A양에게 징역 장기 9년 단기 6년, B, C양에게는 징역 장기 8년 단기 6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성매매를 목적으로 미성년자인 이들을 유인해 구속기소된 김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포천 고무통 시신유기]
 
지난 7월, 경기 포천의 한 빌라 내 고무통 속에서 심하게 부패한 남자 시신 2구가 발견돼 충격을 줬다. 당시 이 장소에서는 8살 아이가 울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어야 할 나이였지만 아이는 시체와 함께 방치돼 있었다. 경찰이 들어가 본 빌라 내부는 쓰레기장과 다름없을 정도로 온갖 살림살이가 널브러진 상태였다. 특히 고무통 안에서 썩은 시신 냄새가 진동했다.
 
부패한 시신이 담긴 고무통과 함께 지낸 8살 아이의 엄마이자 이 사건의 피의자 이모(49)씨는 남편 박모(51)씨와 내연남이자 직장동료인 A(49)씨를 살해하고 8살 아들을 두 달간 방치해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8월27일, 의정부지검 형사3부는 이씨가 2004년 가을쯤 남편에게 수면제와 고혈압 치료제를 먹여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이씨는 지난해 5∼7월 무렵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감기약이라 속인 뒤 복용시켜 스카프 등으로 양손을 묶고 목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살해 사체와 성관계]
 
지난 8월, 20대 남성이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하고 사체와 성관계를 맺은 충격적인 사건이 밝혀졌다.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한 이모(25)씨는 지난 7월30일 새벽에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4층 건물 1층 화장실에서 노래방 여주인 A(73)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노래방 건물 옥상에서 노숙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A씨가 “왜 건물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노래방에서 음료수를 훔쳐가느냐”고 따지면서 다툼이 벌어졌고 이에 흥분한 이씨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A씨를 살해한 직후 시신을 2층 노래방 주방에 유기한 뒤 자신은 노래방 내부 안쪽 방 안에 숨어있었지만, 경찰의 출동으로 결국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씨의 팔에서 A씨가 긁은 상처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이씨가 A씨를 살해한 뒤 성관계를 맺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건설업자 청부살인]
 
‘건설업자 청부살인사건’. 지난 10월, 한 건설업자가 5년간 소송을 벌인 상대를 조선족을 시켜 청부살해했다. 영화 <황해>를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경찰은 조선족 김모(50)씨와 S건설업체 사장 이모(54)씨, 브로커 이모(58)씨 등 3명을 구속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조선족 김씨는 지난 3월20일 오후 7시20분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건물 1층 계단에서 K건설업체 사장인 A(59)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노래방 여주인 죽이고 사체오욕
꼬신 채팅남 다리 절단 뒤 유기
 
S건설업체 사장인 이씨는 브로커 이씨에게 A씨를 살해해 달라고 청탁했고, 브로커 이씨는 조선족 김씨에게 K건설업체 A씨를 살해하라고 사주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조선족을 이용한 ‘이중청부’ 형태로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더욱 놀라움을 줬다. 조선족 김씨가 브로커 이씨의 주선으로 사장 이씨에게 받은 대가는 3100만원이다. 
 
 
사장 이씨는 2006년 K건설업체와 경기 수원의 아파트 신축공사와 관련해 70억원 규모의 토지매입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매입을 다 하지 못해 결국 계약이 파기됐고, 재산상 손실을 입은 이씨는 A씨와 서로 보상을 요구하며 5년이나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이어오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됐다.

[울산 계모 학대]
 
‘울산계모 의붓딸 살해사건’. 지난 11월, 울산 중구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학대해 살인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어머니 김모(46)씨를 수사한 결과 입양아 A(25개월·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전모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청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0월25일 오후 11시쯤 울산 중구 자신의 집에서 A양이 콘센트 부분을젓가락으로 장난을 치자 철제 옷걸이 지지대로 A양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을 30분간 때렸다. 또 매운 고추를 탄 물을 강제로 마시게 하고,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얼굴과 온몸에 뿌렸다. A양은 김씨의 폭행을 피하려다가 문과 방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튿날 오전 3시쯤 A양에게서 열이 나자 김씨는 좌약을 넣은 채 방치했고, 7시간 뒤 A양의 몸이 차가워지고 호흡이 고르지 못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멍을 지우는 방법을 검색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양은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26일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박씨는 1심에서 상해치사죄를 적용,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부산고법은 항소심에서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장기 없는 시신]
 
지난 12월4일, 경기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비닐봉지에 든 장기 없는 토막시신이 발견돼 오원춘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용의자와 시신의 다른 부분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시신이 사준치가 지난 혈액형 A형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피해자의 신원 등 용의자를 추정할 만한 단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찰은 최초 토막시신 발견 지점의 인근 지역에서 추가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이후 부동산중개업자인 제보자가 등장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범인은 박춘봉(55·중국 국적)으로 밝혀졌다. 동거했던 김모(48·중국 국적)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11월26일 오후 1시30분쯤 모 마트에서 일하고 있던 김씨를 팔달구 매교동 전 주거지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시신을 훼손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 같은 날 오후 6시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 전 거주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지하방을 보증금 없이 선금 22만원에 가계약했다. 계약 당시 이름은 밝히지 않고 휴대폰 번호만 적었다.
 
닷새 후엔 휴대폰 마저 해지했다. 경찰은 박씨가 살해를 목적으로 반지하방을 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훼손한 시신 가운데 몸통은 팔달산 등산로 배수로 옆에, 머리 등 일부 신체 부위는 수원시 오목천동 야산에 버렸다. 경찰은 살인과 시신유기 등의 혐의로 박씨를 구속하고 이번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살인, 강도, 절도…’ 범죄 많은 도시는?
 
대검찰청 ‘2014년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살인, 폭행, 강도, 절도 등 5대 범죄에 대해 인구 10만명 당 범죄 발생 건수를 분석한 결과 제주는 절도, 살인, 성폭력에서 모두 상위 3위권에 포함됐다. 반면 용인, 광명, 파주, 남양주 등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은 이들 범죄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범죄 유형별 1위 도시를 보면 ▲성폭력=경산 ▲살인=논산 ▲강도=목포 ▲절도=제주 ▲폭행=원주 등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은 창원, 진해와 통합된 ‘마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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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