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특집 사건결산> 2014 최악의 살인사건10

사람 맞아? 인간의 탈 쓰고 짐승 짓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14년 한 해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잔혹범죄의 경우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치를 떨게 만들었던 살인사건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살인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울산 전기톱 살인사건’. 지난 1월, 울산 남구에서 20대 남성이 전기톱으로 사촌동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이모(24)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울산 전기톱 살인]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9일 오후 9시쯤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종사촌 동생인 김모(23)씨를 전기톱을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난 뒤, 숨진 사촌동생의 사체와 함께 밤을 보내고 20일 낮 12시50분쯤 119로 전화를 걸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은 119소방대와 경찰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해 이씨의 집 안방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당시 안방에는 사촌동생 김씨의 사체와 길이 50cm 가량인 전기톱이 있었다. 경찰은 “발견 당시 피해자의 목과 상반신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 사촌동생이 나를 무시하는 말을 계속해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숨진 김씨는 이씨의 전화를 받고 이씨의 집을 찾았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김씨는 평소 이씨와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며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이씨는 범행을 위해 인근 약국에서 수면유도제 10정을 구입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기톱을 구매했다. 이어 함께 통닭을 먹자며 김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수면유도제가 든 콜라를 마시게 한 뒤 피해자가 잠들자 살해했다. 이씨는 2010년 3월 군에 입대했지만 대인관계의 어려움, 불안, 우울 등의 증세를 호소해 국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다 그해 9월 현역복무 부적합 처분을 받고 전역했다.
 
범행 이후 이뤄진 법무부 치료감호소의 정신감정에서도 이씨는 피해망상, 환청, 현실 판단력의 장애 증상을 보여 망상형 조현병(정신분열)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법정에서 “자신 속의 악마가 살인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하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8월12일 울산지법 제3형사부는 살인죄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친모 죽이고 놀이공원행]
 
지난 4월,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뒤 놀이공원에 간 20대 딸의 사연이 공개돼 충격을 안겨줬다. 최모(20·여)씨는 어머니 백모(48)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했다. 최씨는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갈아서 백씨가 마실 물컵에 털어 섞었다. 이내 백씨는 잠들었고 최씨는 안방 침대 매트리스에 불을 붙인 뒤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최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백씨의 휴대폰을 챙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휴대폰으로 외삼촌에게 ‘그동안 미안했다. 우리 딸 좀 잘 부탁할게’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 튤립축제가 한창이던 용인의 한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최씨가 공원을 돌아다니는 사이 어머니 백씨는 불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최씨는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결국 모든 혐의가 드러났다. 남들이 보기에 최씨는 명문대 미대를 졸업한 미모의 어머니와 명문대 교수인 아버지를 둔 좋은 집안의 딸이었다. 하지만 최씨는 부모의 갑작스런 이혼과 입시 실패로 인해 내적 갈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월24일, 수원지법 형사11부는 존속살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9명의 배심원들은 전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0∼15년의 실형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냈다.

[윤 일병 구타 사건]
 
지난 4월, 경기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에서 일병을 가혹하게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선임병들의 구타로 인해 싸늘한 주검이 된 윤모(23) 일병은 지난해 2013년 12월 입대해 지난 2월, 28사단 포병연대 본부 포대 의무병으로 배치받았다.
 
선임병들은 윤 인병의 행동이 느리고 말투가 어눌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면서 기마자세를 시킨 뒤 잠을 재우지 않는가 하면, 치약 한 통을 먹이거나 드러누운 얼굴에 물을 들이부었다. 뿐만 아니라 게 흉내를 내게 하며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바닥에 가래침을 뱉어 핥아 먹게 강요하기도 했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의 몸에 남아 있는 구타흔적을 지우기 위해 연고제인 안티푸라민을 바르면서 윤 일병의 성기까지 주물러 성적 수치심을 불렀다.
 
이렇게 가혹행위를 당하던 윤 일병은 냉동식품을 먹던 도중 선임병들에게 가슴, 정수리 등을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안타깝게도 뇌 손상으로 사망했다. 사건 직후 피의자들은 구속기소됐다.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10월30일 이모(25) 병장에게 징역 45년, 하모(23) 병장 등 3명에게는 징역 25∼30년형을 선고했다. 또 폭행을 방조한 의무반 유모(23) 하사에게는 징역 15년형을, 이모(21) 일병에게는 징역 3월에 집행유예 6월을 선고했다. 현재 군 검찰과 가해자 전원이 1심 판결 직후 항소를 하면서 재판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의문의 고무통 열어보니 10년 된 남자 사체
여고생 끓는 물 붓고 보도블록으로 내리쳐
 
[채팅남 토막 살인]
 
지난 5월, 인천 남동공단에서 50대 남성의 토막시신이 담긴 가방이 발견됐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성인사이트를 통해 만난 조모(50)씨를 토막살인하고 유기한 고모(36·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26일 오후 8시쯤 성인사이트에서 만난 조씨와 모텔에 들어가기 전 핸드백에 미리 흉기를 챙겼다. 고씨는 30cm 길이의 흉기로 조씨의 목과 가슴 등 30여 곳을 찔러 모텔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이후 고씨는 모텔을 나와 인근 상점에서 전기톱·비닐·세제 등을 구입, 욕실에서 조씨의 두 다리를 절단한 뒤 세제 등으로 모텔 내부를 깔끔하게 청소했다. 그리고 자신의 외제차에 시신을 실었다. 잘린 두 다리는 비닐봉지에 싸 파주시 농수로에, 몸통 부분은 여행용 가방에 담아 인천 남동공단의 도로변에 유기했다. 경찰 조사결과 고씨는 조씨를 살해한 뒤 조씨의 신용카드로 3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해 여고생 암매장]
 
지난 5월, 경남 김해에서 20대 남성들과 일부 여중생들이 가출한 여고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끓는 물을 몸에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와 시멘트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창원지검은 지난 4월10일 김해지역 고교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해 사체를 유기한 A(15·중3)양, B(15·중3)양, C(14·중학 중퇴)양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윤양과 1대1 싸움를 하거나 냉면 그릇에 소주를 부어 강제로 마시게 한 뒤 구토를 하면 토사물을 핥아 먹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끓는 물을 몸에 붓거나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리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잔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11일 창원지법 제4형사부는 구속기소 된 A양에게 징역 장기 9년 단기 6년, B, C양에게는 징역 장기 8년 단기 6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성매매를 목적으로 미성년자인 이들을 유인해 구속기소된 김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포천 고무통 시신유기]
 
지난 7월, 경기 포천의 한 빌라 내 고무통 속에서 심하게 부패한 남자 시신 2구가 발견돼 충격을 줬다. 당시 이 장소에서는 8살 아이가 울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어야 할 나이였지만 아이는 시체와 함께 방치돼 있었다. 경찰이 들어가 본 빌라 내부는 쓰레기장과 다름없을 정도로 온갖 살림살이가 널브러진 상태였다. 특히 고무통 안에서 썩은 시신 냄새가 진동했다.
 
부패한 시신이 담긴 고무통과 함께 지낸 8살 아이의 엄마이자 이 사건의 피의자 이모(49)씨는 남편 박모(51)씨와 내연남이자 직장동료인 A(49)씨를 살해하고 8살 아들을 두 달간 방치해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8월27일, 의정부지검 형사3부는 이씨가 2004년 가을쯤 남편에게 수면제와 고혈압 치료제를 먹여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이씨는 지난해 5∼7월 무렵 내연남에게 수면제를 감기약이라 속인 뒤 복용시켜 스카프 등으로 양손을 묶고 목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살해 사체와 성관계]
 
지난 8월, 20대 남성이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하고 사체와 성관계를 맺은 충격적인 사건이 밝혀졌다.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한 이모(25)씨는 지난 7월30일 새벽에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4층 건물 1층 화장실에서 노래방 여주인 A(73)씨를 목 졸라 살해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노래방 건물 옥상에서 노숙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A씨가 “왜 건물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노래방에서 음료수를 훔쳐가느냐”고 따지면서 다툼이 벌어졌고 이에 흥분한 이씨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A씨를 살해한 직후 시신을 2층 노래방 주방에 유기한 뒤 자신은 노래방 내부 안쪽 방 안에 숨어있었지만, 경찰의 출동으로 결국 덜미를 잡혔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씨의 팔에서 A씨가 긁은 상처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이씨가 A씨를 살해한 뒤 성관계를 맺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건설업자 청부살인]
 
‘건설업자 청부살인사건’. 지난 10월, 한 건설업자가 5년간 소송을 벌인 상대를 조선족을 시켜 청부살해했다. 영화 <황해>를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경찰은 조선족 김모(50)씨와 S건설업체 사장 이모(54)씨, 브로커 이모(58)씨 등 3명을 구속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조선족 김씨는 지난 3월20일 오후 7시20분쯤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건물 1층 계단에서 K건설업체 사장인 A(59)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노래방 여주인 죽이고 사체오욕
꼬신 채팅남 다리 절단 뒤 유기
 
S건설업체 사장인 이씨는 브로커 이씨에게 A씨를 살해해 달라고 청탁했고, 브로커 이씨는 조선족 김씨에게 K건설업체 A씨를 살해하라고 사주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조선족을 이용한 ‘이중청부’ 형태로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더욱 놀라움을 줬다. 조선족 김씨가 브로커 이씨의 주선으로 사장 이씨에게 받은 대가는 3100만원이다. 
 
 
사장 이씨는 2006년 K건설업체와 경기 수원의 아파트 신축공사와 관련해 70억원 규모의 토지매입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매입을 다 하지 못해 결국 계약이 파기됐고, 재산상 손실을 입은 이씨는 A씨와 서로 보상을 요구하며 5년이나 각종 민형사상 소송을 이어오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됐다.

[울산 계모 학대]
 
‘울산계모 의붓딸 살해사건’. 지난 11월, 울산 중구에서 계모가 의붓딸을 학대해 살인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어머니 김모(46)씨를 수사한 결과 입양아 A(25개월·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전모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청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0월25일 오후 11시쯤 울산 중구 자신의 집에서 A양이 콘센트 부분을젓가락으로 장난을 치자 철제 옷걸이 지지대로 A양의 머리와 팔 다리 등을 30분간 때렸다. 또 매운 고추를 탄 물을 강제로 마시게 하고,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얼굴과 온몸에 뿌렸다. A양은 김씨의 폭행을 피하려다가 문과 방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이튿날 오전 3시쯤 A양에게서 열이 나자 김씨는 좌약을 넣은 채 방치했고, 7시간 뒤 A양의 몸이 차가워지고 호흡이 고르지 못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멍을 지우는 방법을 검색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양은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26일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박씨는 1심에서 상해치사죄를 적용,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부산고법은 항소심에서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깨고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장기 없는 시신]
 
지난 12월4일, 경기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비닐봉지에 든 장기 없는 토막시신이 발견돼 오원춘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용의자와 시신의 다른 부분을 찾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시신이 사준치가 지난 혈액형 A형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피해자의 신원 등 용의자를 추정할 만한 단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찰은 최초 토막시신 발견 지점의 인근 지역에서 추가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이후 부동산중개업자인 제보자가 등장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범인은 박춘봉(55·중국 국적)으로 밝혀졌다. 동거했던 김모(48·중국 국적)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11월26일 오후 1시30분쯤 모 마트에서 일하고 있던 김씨를 팔달구 매교동 전 주거지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시신을 훼손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 같은 날 오후 6시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아 전 거주지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지하방을 보증금 없이 선금 22만원에 가계약했다. 계약 당시 이름은 밝히지 않고 휴대폰 번호만 적었다.
 
닷새 후엔 휴대폰 마저 해지했다. 경찰은 박씨가 살해를 목적으로 반지하방을 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훼손한 시신 가운데 몸통은 팔달산 등산로 배수로 옆에, 머리 등 일부 신체 부위는 수원시 오목천동 야산에 버렸다. 경찰은 살인과 시신유기 등의 혐의로 박씨를 구속하고 이번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살인, 강도, 절도…’ 범죄 많은 도시는?
 
대검찰청 ‘2014년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살인, 폭행, 강도, 절도 등 5대 범죄에 대해 인구 10만명 당 범죄 발생 건수를 분석한 결과 제주는 절도, 살인, 성폭력에서 모두 상위 3위권에 포함됐다. 반면 용인, 광명, 파주, 남양주 등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은 이들 범죄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범죄 유형별 1위 도시를 보면 ▲성폭력=경산 ▲살인=논산 ▲강도=목포 ▲절도=제주 ▲폭행=원주 등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은 창원, 진해와 통합된 ‘마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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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