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는 무료영화권, 왜?

‘요리조리 쏙쏙∼’ 세상에 공짜 없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보통 공짜에 실망할 때 많이 내뱉는 말이다. 대가 없이 무언가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공짜 상품에 현혹된다. 그런데 공짜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부른다면 어떨까. 백화점, 레스토랑 등이 고객감사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무료영화관람권’이 오히려 고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공짜로 주고도 욕먹는 이유를 알아봤다.

 
일반 대중들의 문화생활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극장 영화관람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즐겨본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1000만 관객은 이례적인 흥행이 아니다. 이처럼 영화 수요가 높아지면서 극장가는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무료영화관람권을 미끼로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15만원 이상 구입 시 영화관람권 증정’ ‘○○세트 주문 시 영화관람권 증정’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 무료영화관람권을 두고 말이 많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예매 절차 때문이다. 

주고도 욕먹어
 
직장인 엄모(27)씨는 최근 쇼핑을 하기 위해 서울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 주 목적은 셔츠 구입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셔츠를 고른 엄씨는 계산을 한 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런데 머리 위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15만원 이상 구입 시 무료영화관람권 2매 증정(1만8000원 상당)’이라는 문구를 본 것이다. 엄씨는 문득 이대로 집에 가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료영화관람권을 받기 위해 셔츠 외에 다른 상품들을 추가로 충동구매해 15만원을 채웠다.
 
엄씨는 이내 고객 안내데스크에 15만원어치의 영수증을 제시하고 무료영화관람권 2매를 받았다. 영화관람권 2매면 남는 장사라고 판단했다. 스스로 충동구매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워낙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씨는 무료영화관람권을 개봉해 안내에 따라 예매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까다로운 절차가 그의 기분을 망쳤다.
 
우선 무료영화관람권은 주말예매 및 관람이 불가능했다. 주말에 쇼핑을 한 엄씨는 허탈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지만 ‘공짜니까…’ 참았다. 어쩔 수 없이 평일에 보기로 마음 먹고 이윽고 다시 예매를 시도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회원가입이 필수였다. 이름, 휴대폰 번호, 가입인증코드, 비밀번호 등 요구사항이 많아 다소 귀찮았지만 원하는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엄씨는 회원가입 후 백화점에서 받은 무료영화관람권에 기재된 쿠폰번호를 입력했다. 인증번호를 받고나서 원하는 영화를 고르고 상영관과 시간대를 선택했다. 그런데 좌석을 선택하는 단계가 없었다. 알고 보니 랜덤좌석이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기고 예매를 완료했음에도 불구 난관은 또 있었다. 예매확인 문자를 받아야 제대로 처리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문자는 오지 않았다.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뇌리 속에 스쳐지나갔다.
 
백화점·레스토랑 고객감사 차원서 제공
공짜라서 받았더니…예매길 ‘첩첩산중’
 
대학생 이모(22·여)씨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얼마 전 한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레스토랑을 찾았다. 당초 계획했던 메뉴를 먹고 영화를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특정 메뉴를 주문하면 무료영화관람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종업원을 통해 알게 됐다. 머릿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본 한씨는 특정 메뉴를 주문하고 무료영화관람권을 받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한씨는 무료영화관람권을 받았고 식사 뒤 곧바로 극장으로 향했지만 영화관람을 위해서는 예매가 필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공짜니까 그러려니 했다. 이후 한씨는 예매를 위해 예매 홈페이지에 들어갔지만, 복잡한 절차와 더불어 ‘당일 예매 불가능’ ‘주말 예매 불가능’이라는 안내를 확인하고는 ‘낚시’라는 생각에 무료영화관람권을 찢어버렸다.
 
<일요시사>는 이 같은 무료영화관람권의 불편함을 알아보고자 직접 무료영화관람권으로 영화예매를 시도했다. 우선 무료영화관람권에 기재된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기업들의 배너였다. 자신이 갖고 있는 무료영화관람권의 출처에 따라 예매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A백화점 예매 바로가기’ ‘B아울렛 예매 바로가기’ 등이었다. 해당 배너를 클릭하면 쿠폰번호 입력란이 나온다. 안내에 따라 쿠폰번호를 입력하고 회원가입 절차를 마치고나면 상영관과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좌석 선택은 불가능 했다. C영화예매업체는 ‘좌석은 극장 측에서 임의로 자동 부여해주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랜덤좌석을 인지하고 예매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예매를 완료하긴 했지만 ‘예매번호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C영화예매업체의 안내에 따르면 접수 당일 오후 5시 이후부터 최대 영화관람 2∼3시간 전까지 문자를 전송한다.
 

그러나 오후 5시 이전에 예매를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오지 않았다. C영화예매업체 관계자는 “곧바로 해결해드리겠다”는 짧은 대답만 했다. 문제는 다음 날까지도 문자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문의하니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C영화예매업체 사이트에 접속하니 ‘금일 예매 폭주로 예매서비스 조기 마감’이라는 황당한 배너가 떴다. 이 배너가 등장함과 동시에 C영화예매업체 관계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
 
가까스로 다른 관계자에게 연락해 조기 마감 이유에 대해 묻었으나, 뚜렷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황당한 건 이 관계자와 통화 후 ‘금일 예매 폭주로 예매서비스 조기 마감’이라는 배너가 바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앞서의 관계자와 통화가 됐고, 결국 예매확인문자를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결코 적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실감될 정도였다.
 
무료영화관람권은 기업들의 매출 증대를 목표로 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료영화관람권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 구입한 뒤 고객들의 무분별한 소비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료영화관람권을 두고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공짜로 주고도 욕먹는 현실이다.  
 
무료영화관람권은 비매품으로 개인 간 양도 및 판매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고사이트를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갖은 마찰이 빚어진다고 전해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무료촬영권’ 알고 보니…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아기성장앨범 관련 불만 건수는 총 698건으로, 지난 2011년 174건에서 2012년 208건, 2013년 316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2012년보다 51.9% 증가했다. 지난해 접수된 소비자 불만 316건을 분석한 결과, ‘계약해제 및 해지’ 관련 피해가 244건(77.2%)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만삭 사진부터 아기 출생 후 50일까지 공짜로 촬영해 준다며 무료촬영권을 제공하고 아기성장앨범 계약을 유도한 뒤 막상 계약해지를 요구하면 계약금 반환을 거절하거나 촬영 비용을 이유로 과다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계약해제·해지 시점이 확인 가능한 198건 중 ‘무료촬영권(산모 만삭부터 아이 출생 50일까지) 사용 후’ 계약해지를 요구한 경우가 74건(37.4%)이나 됐는데 모두 무료촬영권을 사용한 뒤였다.

박람회에서 아기 성장앨범을 계약한 경우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4일 이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계약했거나 청약철회기간이 경과했더라도 해당 법률과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라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신중한 판단으로 충동적 계약을 지양하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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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