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재난 컨트롤타워 맡은 박인용

군인에 국민 안전을?…믿고 맡겨도 될까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조직을 바꿨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난안전 체계 강화를 위해 ‘국민안전처’를 신설했다. 앞으로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게 될 이 조직의 수장으로는 박인용 전 합참차장이 내정됐다. 흩어져 있는 조직을 한 데 뭉치기 위한 리더십 발휘가 시급해 보인다. 새 간판이 새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따른 재난안전체계 강화와 공직개혁 등을 위해 이번에 신설한 장관급 국민안전처 장관에 박인용 전 합참차장을 내정했다. 이날 인사발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직후 이루어졌다. 범정부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에 해상·합동작전 전문가인 군인 출신이 투입된 것이다.

해상작전 전문가
“폭넓은 식견 보유”
 
민병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인용 신임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 배경에 대해 “일선 지휘관 및 인사와 전략, 교육 등 다양한 직책을 경험하며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고 폭넓은 식견을 보유하고 있어 범정부적인 재난 관리 컨트롤타워로 발족하는 국민안전처를 이끌 적임자로 기대돼 발탁했다”고 말했다.
 
19일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조직 정비와 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간판 아래 여러 조직이 합쳐지는 만큼 화학적 통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안전처는 여전히 어수선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이 부처는 정부서울청사 일부(1·5·8·11·13·19층)와 인근 이마빌딩을 업무 공간으로 확보하고 있다. 해양경비안전본부 조직은 인천 옛 해양경찰청 청사에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홍익태 해양경비안전본부장 등 일부 간부 사무실이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됐다. 재난 현장 대응이 강조되다 보니 국민안전처 조직 역시 전국에 점점이 퍼져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업무 통합 미비로 연결될 여지가 많아 박 내정자의 통합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마빌딩에는 안전정책실과 특수재난실이 입주해 있다. 이날 오전에도 국민안전처 공무원들이 분주히 광화문광장을 가로지르면서 신설부처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국민안전처는 옛 안전행정부 안전관리본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등이 통합돼 만들어졌으며 1만375명 19국 62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중앙부처 중 인적 규모 면에서 경찰청, 미래창조과학부, 법무부, 국세청 다음으로 큰 규모다.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를 두고 안전관리와 방재 기능을 각각 이어받은 안전정책실, 항공·에너지·화학·가스·통신 등 특수 재난에 대응하는 특수재난실 등으로 구성됐다.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의 본부장은 각각 소방총감과 치안총감이 차관급 본부장을 맡아 인사와 예산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또한 정부는 현장대응능력을 강화히기 위해 육상의 ‘119수도권지대’를 ‘수도권119특수구조대’로 확대개편하고 ‘영남119특수구조대’를 신설했다. 충청과 강원·호남 지역의 경우 2015년 이후 동일조직이 생길 예정이다. 해상의 경우도 남해해양특수구조단을 중앙해양특수구조단으로 확대개편하고 2015년부터 동해특수구조대를 신설한다. 이 밖에 현재 해경의 수사·정보기능은 경찰청으로 이관되고 해상사건의 수사·정보기능은 해양경비안전본부에 남는다. 대규모 재난 때는 국무총리가 중앙대책본부장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민안전처의 경우 분산돼 있던 조직이 합쳐진 만큼 하루빨리 조직원 간 화학적 통합을 이루고 지휘 체계를 확고히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내정자는 해군 예비역 장군으로 현장점검을 최우선시하는 현장형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해군 작전사령관 재임시 “참모들은 말로만 하지 말고 계획과 지시사항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현장에서 늘 점검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알려진다. 어떤 일이든 철저히 계획한 뒤 실행에 옮기는 신중한 성격이란 평가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신망이 두터운 덕장 스타일로 전해진다. 
 
4성 해군 제독 출신 “점검 또 점검”

작은 부분도…신중한 현장형 지휘관
 
특히 박 내정자는 임관 이후 매일 108배를 올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지휘관으로 새 조직을 맡으면 3개월 안에 상황을 장악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도보정진에 나서 지금까지 2000km를 걷기도 했다. 청와대는 박 내정자가 2008년 3월 전역 이후에도 철저히 자기관리를 해 온 사실까지 검증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측근들은 “전역 이후 방산업체에서 여러차례 영업 제의를 받았지만 ‘내가 왜 그런 자리에 가느냐’며 고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큰 틀뿐만 아니라 작은 부분도 간과하지 않는 치밀함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예편한 뒤 동해대학교 군사학과와 충남대학교에서 강의를 해온 그는 평소 학생들에게 “벼룩의 간을 분석한다는 심정으로 학업에 임하라”는 충고를 자주했다고 한다. 그만큼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 내정자는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재난을 예방하고 관리해야 하는 국민안전처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직 장악과 관리에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특히 박 후보자의 오랜 해상작전 수행능력이 국민안전처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대안전처?
죄다 군 출신
 
그는 해군 인사참모부장과 제3함대 사령관, 해군 교육사령관, 작전사령관 등 해군 작전·인사·교육·조직 등 주요 분야를 두루 거쳤다. 합동참모차장을 거쳐 지난 2008년 대장으로 예편했다. 하지만 박 내정자가 군 이외 조직을 이끌어온 경험이 없고 재임시 큰 사안이 발생하지 않아 실제 위기관리 능력을 점검받지 못했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번 인사개편을 두고 초대 장·차관이 모두 군 출신이 기용된 데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군의 장점인 일사분란함과 신속한 대응체계 구축에는 효율적이겠지만 다양한 형태의 재난 발생에 유연한 대응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여야는 뚜렷한 입장차이를 보였다. 여당은 ‘기대’ 야당은 ‘우려’를 드러냈다. 새누리당은 “실무형 인사” “인사혁신” 등의 표현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가안전 시스템 강화와 공직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전문성을 높인 실무형 인사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해상합동작전 전문가인 박인용 신임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과 아덴만 여명작전을 기획한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기용을 포함한 재난안전부서 인선은 제2의 세월호를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설된 인사혁신처장에 민간기업 출신을 발탁함으로써 공직인사의 경직성을 탈피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마인드를 접목시켜 강도 높은 인사 혁신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은 군 장성 일색의 인사개편에 대해 “상식 이하의 인사” “군대안전처”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수현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한 마디로 안보와 안전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식 이하의 인사”라고 혹평했다. 이어 “국민안전처를 군출신 인사로 포진시켰다. 국민안전처 장관에 내정된 박인용 전 합참 차장은 4성 해군 제독 출신이고, 차관에 내정된 이성호 안행부 2차관은 3성 장군 출신”이라며 “청와대를 군인 출신으로 지키는 것도 모자라 국가안전도 군인들에게 맡기겠다니 군인 일색으로 대한민국을 채울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군 외 조직 이끈 경험 전무

실제 위기관리 능력 ‘글쎄∼’
 
박 대변인은 “김영삼 정부 이후 군의 문민통제가 강화되어왔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군인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해양 경비를 맡을 해양경비안전본부장에 홍익태 경찰청 차장을 내정한 것은 해경 조직의 반발 및 조직 통솔의 어려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사혁신처장에 이근면 삼성광통신경영고문이 내정된 것과 관련해 “기업과 관료조직의 인사시스템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공직사회의 인사혁신에 적합한지는 역시 의문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방위사업청장에 임명된 장명진 국방과학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이 박 대통령의 대학 동기라는 점을 지적하며 “정실인사로 국민에게 호감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통령이 그간 여당의 무성의로 지지부진했던 방산비리 국정조사와 방위사업법 개정을 추진해야할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은 19일 <한수진의 SBS전망대>와의 전화인터뷰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장관은 별이 4개이고, 차관은 별 3개 출신인데 이른바 별 7개, 북두칠성이 국민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되고요. 특히 군 작전개념만으로 국민 안전을 다룰 수 있다는 그런 판단은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 역시 군인 출신의 국민안전처 인사에 대해 “국민안전처인지 군대안전처인지 알 수 없는 인사이고 국민 안전을 군대에 맡기는 격으로 매우 우려스럽다”며 “청와대가 군 출신 인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장관도, 차관도 군 출신”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한 불안한 조직에 편향적 인사가 더해진 격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박 내정자 인사청문회가 다음달 4일 진행된다고 밝혔다. 여야는 박 내정자의 자질문제를 철저하게 검증할 예정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재난상황 발생시 현장의 즉각적인 대응능력을 높일 수 있을지 여부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1일 국회에서 경실련 주최로 열린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토론회에서 “1990년대 이후 국내 주요 재난 소관부처를 분석한 결과 1차 소관부처가 대부분 광역·기초단체였다”면서 “재난대응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안전대책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의 안전 전문인력의 채용 규모도 중요한 부분이다. 국민안전처가 안전 전문가 집단이 되려면 민간의 안전전문가 채용은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가 어느 정도의 민간 전문가를 채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는 제복 일색으로 지휘부가 구성된 상태다.
 
일반 행정인사들과 해경·소방직 등 특수직의 조직 융화도 우선적으로 풀어야할 과제로 꼽힌다. 기존 조직의 문화에 상당부분 차이가 있어 안전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이들 간 융화는 필수적이다. 게다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문제도 아직 매듭을 짓지 못한 상태다. 

조직 다잡을
리더십 절실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단계적인 국가직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명시하지 않았다. 배재현 국회입법조사관 등이 경기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국가재난안전관리 체계의 재설계에 관한 탐색적 논의’라는 논문에서 국가안전처가 출범하면 7000∼8000명의 해경보다 전국의 3만5000여 명의 소방공무원이 더 큰 규모일 수밖에 없어 소방공무원의 국가공무원 전환요구가 매우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khlee@ilyosisa.co.kr>

 
[박인용은?]
 
▲경기 양주 출생
▲경희고 졸업
▲해군사관학교 28기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해군 인사참모부 부장
▲해군 제3함대 사령관
▲해군 교육사령관
▲해군 전투발전단 단장
▲해군 작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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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