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야구역사 새로 쓴 ‘안타 제조기’ 서건창

없는 길 걷다 뒤보니 길이 나 있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넥센 히어로즈에 진짜 영웅이 나타났다. 내야수 서건창이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달성하면서 이종범·이병규·이승엽을 넘어 ‘안타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넥센 입단 3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절실하게 매달렸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의 성공 신화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간승리’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안타 제조기’ 서건창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신기록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서건창은 최근 역대 단일 시즌 최다안타 2위에 오르더니 1994년 이종범(전 해태 타이거즈)이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기록을 넘어섰다. 이승엽과 이병규까지 뛰어 넘으면서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신고 선수 
전설 넘다
 
서건창의 나이는 25세다. 비교적 어린 나이지만 미래 넥센의 주장감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늘 솔선수범하며 리더가 될 만한 성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서건창은 2012년 넥센에서 신인왕에 오르고 중심타자가 될 때까지 긴 무명 시절을 이겨냈다.
 
서건창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자신을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다해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꽉 물고 절박한 마음으로 야구를 했다. 서건창의 눈빛은 언제나 빛났다.
 

이러한 그의 열정이 주변에 전달됐고 당시 넥센 2군 코치였던 박흥식 코치(현 롯데 타격코치)의 눈에 띄어 신고선수 테스트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신고선수 입단, 1년 만의 방출, 경찰야구단 불합격, 현역 군입대, 다시 신고선수 입단 등 고통의 시간이 지속됐다. 그러나 서건창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더욱 더 단단하게 단련시켰다. 결국 2012년 신인왕을 받았고 ‘독기’를 인정받았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건창은 2년생 징크스를 겪기도 했다. 오른 발가락 부상도 있었지만 핑계 대지 않고, 오직 야구에 몰입해 캠프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타격이 나올까 끊임없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독득한 타격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서건창은 왜소한 체격에도 870g 배트를 사용했는데 2015시즌부터는 이 무게를 890g까지 올릴 계획이다. 890g의 배트는 4번타자 박병호가 쓰는 배트의 중량과 똑같다.
 
서건창 이전에 이전에 광주일고 최대 안타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고교 선배 이종범이었다. 기록은 기아전에서 만들어졌는데 상대팀 기아 선동열 감독과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 역시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서건창에게 안타를 얻어맞은 상대투수 김병현 또한 광주일고가 낳은 스타 출신이며 기록이 만들어진 구장은 그의 고향의 홈구장이다. 광주일고와의 묘한 인연이 있다. 올 시즌 서건창과 시즌 최우수 선수(MVP) 타이틀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 강정호까지도 광주일고 출신이다.
 
광주일고는 전통적인 야구 명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일본 무대로 진출한 투수 선동열과 타자 이종범을 비롯해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등을 줄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시켰다. 서건창이 선배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무명의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종범은 프로에 입단할 때부터 거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평가를 증명하듯 그는 신인시절부터 펄펄 날며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시킴과 동시에 MVP까지 받았다. 타율-장타력-도루 능력 등을 고루 갖춘 전천후 유격수였기에 ‘천재’라는 공식 별명을 사용한 유일한 인물이다.
 
쳤다 하면 진루…시즌 최다안타 대기록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뛰어 넘은 ‘뚝심’
 

반면 서건창은 2008년 LG 신고선수로 들어가 한 번 타석에 서서 삼진을 당한 것이 1군 경력의 전부였다. 고교 선배 이종범과는 또 다른 과정을 거치며 전설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서건창이 정규리그 MVP까지 받게 된다면 이종범 이후 키스톤 포지션(유격수-2루수)에서 최우수선수에 등극하는 두 번째 선수가 된다. 역대 정규리그 MVP의 경우 타자들은 이종범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포형 선수들이 가져갔다. 이종범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올려놓을 경우, 또 다른 전설을 쓰게 된다.
 
노력형 천재 서건창의 별칭은 안타와는 거리가 먼 ‘서교수’다. NC의 안경 쓴 내야수 노진혁이 ‘노검사’로 불리는 것과 달리 서건창의 외모는 딱히 교수답지 않음에도 서건창이 교수라 불리는 이유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 때문이다. 서건창은 2012시즌 신인왕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 부상과 함께 86경기만 뛰며 타율 2할6푼6리로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서건창의 별명은 ‘서멍창’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올 시즌 초 서건창이 좋은 타격을 보이기 시작하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서건창이 왜 이렇게 잘하냐’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한 이용자가 ‘서건창이 네 친구냐,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댓글은 이상하리만큼 큰 호응을 받았고, 다들 ‘선생님’이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서건창의 성적이 계속 상승하자 ‘선생님이 뭐냐, 교수님이라고 불러라’라는 식으로 별명이 승진을 거듭했다. 결국 서건창은 이렇게 ‘서교수’가 됐다. 서건창의 ‘서’를 따서 ‘프로페 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타왕이 된 이후엔 더욱 승승장구해 유럽축구 스티븐 제라드를 두고 ‘스티븐 더 풋볼 제라드’라고 하는 것처럼 최근에는 ‘서 더 베이스볼 건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별명이 승진한 것은 서건창만이 아니다. 박병호는 2012시즌 처음 홈런왕이 됐을 때만 해도 건장한 체구에다 영화 <어벤저스>의 영향으로 ‘헐크’라 불렸으나 3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자 최근에는 ‘신’으로 상승했다. ‘갓병호’라는 별명과 함께 ‘파괴의 신’으로 불린다.ㄹ
 
서건창은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구사한다. 일반적으로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우투좌타가 된 선수는 태생적으로 타구의 비거리가 나오기 힘든 편이다. 따라서 많은 우투좌타 타자들은 정교함을 앞세운 레벨스윙과 밀어치기 타법을 주로 가져가는 편이다.
 
그러나 서건창은 레벨스윙과 당겨치기 타법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변화구에는 상대적으로 대처하기 쉬우나 1, 2루 간을 좁히는 가르시아 쉬프트에는 취약한 편이다. 2012시즌에는 홈런을 1개만 기록했을 정도로 장타력은 좋지 않았지만, 파워히터인 가르시아처럼 타구가 거의 우익수 방면으로 치우쳐져 있고 1, 2루 땅볼 범타율이 상당히 높다.

거침없는 배트
물오른 타격감
 
과거 어깨부상의 여파로 강견은 아니지만,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좌우 수비폭과 수비전환능력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2시즌에는 정규타석을 채운 2루수 중 최소 실책(7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후 수비폭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 2012시즌에는 머리 위쪽으로 넘어가는 타구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강정호도 13시즌부터 리그 정상급 유격수 수비를 보여주고 있어서, 넥센 히어로즈의 키스톤 콤비만큼은 여러 구단 중 정평이 나 있다.
 
서건창은 넥센 히어로즈 입단 이후 염경엽 주루코치의 지도를 통해 주루실력을 향상시켰다. 또한 타구판단과 베이스를 돌 때의 가속이 좋은 편이라,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족한 장타력을 주루능력으로 커버하는 셈이다. 그래서 2012시즌에는 3루타 10개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2012∼2013 시즌에는 테이블세터의 강점을 보이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는 타격이 만개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기존에도 뛰어났던 도루는 물론,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1번타자가 이정도면 리그폭격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타격폼도 날이 갈수록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배트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장타가 늘어나고 있다. 서건창은 배트 위치를 귀에서 가슴으로 내림으로서 투수 공을 기다리는 시간에 불필요한 힘을 없애고 긴장감을 줄인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8월에는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이 서건창의 폼을 따라하며 생애 첫 만루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서건창의 도플갱어가 정수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독특한 서건창의 타격폼을 두고 염경엽 감독은 “국내에서 누구보다 공을 가까이에 놓고 치는 타자라고 보면 된다”라며 “완벽한 타격폼”이라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서건창은 올 시즌을 앞두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길러 달라진 타격폼을 들고 나왔다.
 
서건창은 광주일고 시절에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유격수였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2루수로 전향했다. 1년 후배인 허경민에게 밀리기도 했다. 고교 시절의 평가는 공, 수, 주를 두루 갖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로 알려졌다. 1학년이던 2005년, 팀이 우승한 황금사자기에서 2번 타순에 출장하며 당시 1학년 타자 중에서 유일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이때 테이블세터를 맡기도 했다. 2학년 때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3학년 때는 주로 3번 타순에 출장했다. 이후 서건창은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지명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되면서 좌절을 맛봤다. 야구선수치고는 작은 신장과 부상이 있었던 몸 상태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전화위복’ 어려운 환경 속
방출생 오명 벗고 ‘우뚝’
내친김에 MVP까지 노린다
 

이후 서건창이 대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건창은 LG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애초부터 대학진학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이었던 양승호 감독이 스카우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서건창은 바로 프로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2008년 단 한 경기에 나온 후, 어깨 부상으로 방출당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프로선수로서의 생활에서 멀어졌다.
 
이후 경찰청야구단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2009년, 광주 31사단 일반병 현역으로 입대했다.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다. 2011년 9월, 광주일고 김선섭 감독의 추천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테스트에 응시했다. 당시 김선섭 감독은 서건창을 광주일고 타격코치로 영입하려고 했지만, 서건창은 프로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결국 김선섭 감독은 NC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응시할 생각을 했던 서건창을 넥센 히어로즈에 우선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서건창을 테스트해 발탁한 사람은 당시 2군 감독이었던 현 롯데코치 박흥식으로 그는 서건창에 대해 “아직 기량은 부족하나 절심함이 묻어 있다”고 평가하며 구단에 서건창의 영입을 추천했다. 당시 박흥식 2군 감독이 구단 프런트에 “딱 2000만 더 쓰자(신고선수의 연봉이 2000만원이니까)”고 하면서 신고선수로 그를 영입했다. 서건창은 훈련에서부터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연습경기에서 4할을 치면서 주목받더니 2012년 1월에 정식 선수로 등록됐다.
 
우여곡절 끝에 정식 선수로 등록됐지만, 넥센 히어로즈에는 주전 2루수인 김민성이 있었다. 그가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시즌 시작 전 김민성이 부상을 당하면서 서건창은 빠르게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12년 시험경기에서는 장기영을 대신해 1번 타순에 기용되기도 했다. 이후 빠른 발과 안정적인 작전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개막전에서부터 선발 라인업에 기용되면서 5월 이후부터는 수비 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넥센 히어로즈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이후로도 서건창은 꾸준히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도루 부문 2위(39도루)에 오르면서 2012년 신인상을 수상했다. 팬들이 유력후보로 꼽혔던 안치홍을 제치고 2루수 부분 골든글러브에 뽑히기도 했다. 1경기만 뛰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뻔했던 선수가 일약 넥센 히어로즈의 신데렐라가 되어 2012년 최고 스타가 된 것이다. 2013년에는 수비 도중 새끼발가락 부상으로 인해 86경기 출전에 그쳤다. 재활에 전념해 다시 복귀했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2014년 시즌 초반에는 다른 타자들이 폭발하는 와중에 홀로 저조하여 안 좋은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현재 서건창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 정근우의 2루수 시즌 최다안타,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 이종운의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경신했다. 1994년 이종범이 기록한 196안타 기록을 20년 만에 경신하기도 했다. 새로운 신화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기록·스토리
모두 다 ‘MVP’
 
서건창은 기존의 넓은 수비범위에 강습타구 처리능력을 향상해 리그 최고수준의 수비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장타력이 개선되면서도 주력이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리그 최고수준의 주자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최초 2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멀티 포지션 수비가 불가능하고 군필이라는 이유로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2루수 후보로 거론됐다가 탈락의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지금 서건창은 전설의 고지를 넘고 빠르게 비상 중이다.
 
<khlee@ilyosisa.co.kr>
 

[서건창은?]
 
▲광주 출생
▲광주일고 졸업
▲2008 LG트윈스
▲2012 넥센 히어로즈
▲수상(2012)
  팔도프로야구 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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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