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야구역사 새로 쓴 ‘안타 제조기’ 서건창

없는 길 걷다 뒤보니 길이 나 있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넥센 히어로즈에 진짜 영웅이 나타났다. 내야수 서건창이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달성하면서 이종범·이병규·이승엽을 넘어 ‘안타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넥센 입단 3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절실하게 매달렸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의 성공 신화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간승리’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안타 제조기’ 서건창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신기록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서건창은 최근 역대 단일 시즌 최다안타 2위에 오르더니 1994년 이종범(전 해태 타이거즈)이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기록을 넘어섰다. 이승엽과 이병규까지 뛰어 넘으면서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신고 선수 
전설 넘다
 
서건창의 나이는 25세다. 비교적 어린 나이지만 미래 넥센의 주장감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늘 솔선수범하며 리더가 될 만한 성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서건창은 2012년 넥센에서 신인왕에 오르고 중심타자가 될 때까지 긴 무명 시절을 이겨냈다.
 
서건창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자신을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다해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꽉 물고 절박한 마음으로 야구를 했다. 서건창의 눈빛은 언제나 빛났다.
 

이러한 그의 열정이 주변에 전달됐고 당시 넥센 2군 코치였던 박흥식 코치(현 롯데 타격코치)의 눈에 띄어 신고선수 테스트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신고선수 입단, 1년 만의 방출, 경찰야구단 불합격, 현역 군입대, 다시 신고선수 입단 등 고통의 시간이 지속됐다. 그러나 서건창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더욱 더 단단하게 단련시켰다. 결국 2012년 신인왕을 받았고 ‘독기’를 인정받았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건창은 2년생 징크스를 겪기도 했다. 오른 발가락 부상도 있었지만 핑계 대지 않고, 오직 야구에 몰입해 캠프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타격이 나올까 끊임없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독득한 타격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서건창은 왜소한 체격에도 870g 배트를 사용했는데 2015시즌부터는 이 무게를 890g까지 올릴 계획이다. 890g의 배트는 4번타자 박병호가 쓰는 배트의 중량과 똑같다.
 
서건창 이전에 이전에 광주일고 최대 안타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고교 선배 이종범이었다. 기록은 기아전에서 만들어졌는데 상대팀 기아 선동열 감독과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 역시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서건창에게 안타를 얻어맞은 상대투수 김병현 또한 광주일고가 낳은 스타 출신이며 기록이 만들어진 구장은 그의 고향의 홈구장이다. 광주일고와의 묘한 인연이 있다. 올 시즌 서건창과 시즌 최우수 선수(MVP) 타이틀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 강정호까지도 광주일고 출신이다.
 
광주일고는 전통적인 야구 명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일본 무대로 진출한 투수 선동열과 타자 이종범을 비롯해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등을 줄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시켰다. 서건창이 선배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무명의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종범은 프로에 입단할 때부터 거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평가를 증명하듯 그는 신인시절부터 펄펄 날며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시킴과 동시에 MVP까지 받았다. 타율-장타력-도루 능력 등을 고루 갖춘 전천후 유격수였기에 ‘천재’라는 공식 별명을 사용한 유일한 인물이다.
 
쳤다 하면 진루…시즌 최다안타 대기록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뛰어 넘은 ‘뚝심’
 

반면 서건창은 2008년 LG 신고선수로 들어가 한 번 타석에 서서 삼진을 당한 것이 1군 경력의 전부였다. 고교 선배 이종범과는 또 다른 과정을 거치며 전설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서건창이 정규리그 MVP까지 받게 된다면 이종범 이후 키스톤 포지션(유격수-2루수)에서 최우수선수에 등극하는 두 번째 선수가 된다. 역대 정규리그 MVP의 경우 타자들은 이종범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포형 선수들이 가져갔다. 이종범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올려놓을 경우, 또 다른 전설을 쓰게 된다.
 
노력형 천재 서건창의 별칭은 안타와는 거리가 먼 ‘서교수’다. NC의 안경 쓴 내야수 노진혁이 ‘노검사’로 불리는 것과 달리 서건창의 외모는 딱히 교수답지 않음에도 서건창이 교수라 불리는 이유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 때문이다. 서건창은 2012시즌 신인왕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 부상과 함께 86경기만 뛰며 타율 2할6푼6리로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서건창의 별명은 ‘서멍창’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올 시즌 초 서건창이 좋은 타격을 보이기 시작하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서건창이 왜 이렇게 잘하냐’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한 이용자가 ‘서건창이 네 친구냐,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댓글은 이상하리만큼 큰 호응을 받았고, 다들 ‘선생님’이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서건창의 성적이 계속 상승하자 ‘선생님이 뭐냐, 교수님이라고 불러라’라는 식으로 별명이 승진을 거듭했다. 결국 서건창은 이렇게 ‘서교수’가 됐다. 서건창의 ‘서’를 따서 ‘프로페 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타왕이 된 이후엔 더욱 승승장구해 유럽축구 스티븐 제라드를 두고 ‘스티븐 더 풋볼 제라드’라고 하는 것처럼 최근에는 ‘서 더 베이스볼 건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별명이 승진한 것은 서건창만이 아니다. 박병호는 2012시즌 처음 홈런왕이 됐을 때만 해도 건장한 체구에다 영화 <어벤저스>의 영향으로 ‘헐크’라 불렸으나 3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자 최근에는 ‘신’으로 상승했다. ‘갓병호’라는 별명과 함께 ‘파괴의 신’으로 불린다.ㄹ
 
서건창은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구사한다. 일반적으로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우투좌타가 된 선수는 태생적으로 타구의 비거리가 나오기 힘든 편이다. 따라서 많은 우투좌타 타자들은 정교함을 앞세운 레벨스윙과 밀어치기 타법을 주로 가져가는 편이다.
 
그러나 서건창은 레벨스윙과 당겨치기 타법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변화구에는 상대적으로 대처하기 쉬우나 1, 2루 간을 좁히는 가르시아 쉬프트에는 취약한 편이다. 2012시즌에는 홈런을 1개만 기록했을 정도로 장타력은 좋지 않았지만, 파워히터인 가르시아처럼 타구가 거의 우익수 방면으로 치우쳐져 있고 1, 2루 땅볼 범타율이 상당히 높다.

거침없는 배트
물오른 타격감
 
과거 어깨부상의 여파로 강견은 아니지만,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좌우 수비폭과 수비전환능력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2시즌에는 정규타석을 채운 2루수 중 최소 실책(7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후 수비폭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 2012시즌에는 머리 위쪽으로 넘어가는 타구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강정호도 13시즌부터 리그 정상급 유격수 수비를 보여주고 있어서, 넥센 히어로즈의 키스톤 콤비만큼은 여러 구단 중 정평이 나 있다.
 
서건창은 넥센 히어로즈 입단 이후 염경엽 주루코치의 지도를 통해 주루실력을 향상시켰다. 또한 타구판단과 베이스를 돌 때의 가속이 좋은 편이라,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족한 장타력을 주루능력으로 커버하는 셈이다. 그래서 2012시즌에는 3루타 10개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2012∼2013 시즌에는 테이블세터의 강점을 보이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는 타격이 만개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기존에도 뛰어났던 도루는 물론,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1번타자가 이정도면 리그폭격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타격폼도 날이 갈수록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배트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장타가 늘어나고 있다. 서건창은 배트 위치를 귀에서 가슴으로 내림으로서 투수 공을 기다리는 시간에 불필요한 힘을 없애고 긴장감을 줄인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8월에는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이 서건창의 폼을 따라하며 생애 첫 만루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서건창의 도플갱어가 정수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독특한 서건창의 타격폼을 두고 염경엽 감독은 “국내에서 누구보다 공을 가까이에 놓고 치는 타자라고 보면 된다”라며 “완벽한 타격폼”이라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서건창은 올 시즌을 앞두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길러 달라진 타격폼을 들고 나왔다.
 
서건창은 광주일고 시절에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유격수였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2루수로 전향했다. 1년 후배인 허경민에게 밀리기도 했다. 고교 시절의 평가는 공, 수, 주를 두루 갖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로 알려졌다. 1학년이던 2005년, 팀이 우승한 황금사자기에서 2번 타순에 출장하며 당시 1학년 타자 중에서 유일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이때 테이블세터를 맡기도 했다. 2학년 때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3학년 때는 주로 3번 타순에 출장했다. 이후 서건창은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지명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되면서 좌절을 맛봤다. 야구선수치고는 작은 신장과 부상이 있었던 몸 상태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전화위복’ 어려운 환경 속
방출생 오명 벗고 ‘우뚝’
내친김에 MVP까지 노린다
 

이후 서건창이 대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건창은 LG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애초부터 대학진학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이었던 양승호 감독이 스카우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서건창은 바로 프로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2008년 단 한 경기에 나온 후, 어깨 부상으로 방출당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프로선수로서의 생활에서 멀어졌다.
 
이후 경찰청야구단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2009년, 광주 31사단 일반병 현역으로 입대했다.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다. 2011년 9월, 광주일고 김선섭 감독의 추천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테스트에 응시했다. 당시 김선섭 감독은 서건창을 광주일고 타격코치로 영입하려고 했지만, 서건창은 프로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결국 김선섭 감독은 NC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응시할 생각을 했던 서건창을 넥센 히어로즈에 우선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서건창을 테스트해 발탁한 사람은 당시 2군 감독이었던 현 롯데코치 박흥식으로 그는 서건창에 대해 “아직 기량은 부족하나 절심함이 묻어 있다”고 평가하며 구단에 서건창의 영입을 추천했다. 당시 박흥식 2군 감독이 구단 프런트에 “딱 2000만 더 쓰자(신고선수의 연봉이 2000만원이니까)”고 하면서 신고선수로 그를 영입했다. 서건창은 훈련에서부터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연습경기에서 4할을 치면서 주목받더니 2012년 1월에 정식 선수로 등록됐다.
 
우여곡절 끝에 정식 선수로 등록됐지만, 넥센 히어로즈에는 주전 2루수인 김민성이 있었다. 그가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시즌 시작 전 김민성이 부상을 당하면서 서건창은 빠르게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12년 시험경기에서는 장기영을 대신해 1번 타순에 기용되기도 했다. 이후 빠른 발과 안정적인 작전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개막전에서부터 선발 라인업에 기용되면서 5월 이후부터는 수비 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넥센 히어로즈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이후로도 서건창은 꾸준히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도루 부문 2위(39도루)에 오르면서 2012년 신인상을 수상했다. 팬들이 유력후보로 꼽혔던 안치홍을 제치고 2루수 부분 골든글러브에 뽑히기도 했다. 1경기만 뛰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뻔했던 선수가 일약 넥센 히어로즈의 신데렐라가 되어 2012년 최고 스타가 된 것이다. 2013년에는 수비 도중 새끼발가락 부상으로 인해 86경기 출전에 그쳤다. 재활에 전념해 다시 복귀했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2014년 시즌 초반에는 다른 타자들이 폭발하는 와중에 홀로 저조하여 안 좋은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현재 서건창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 정근우의 2루수 시즌 최다안타,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 이종운의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경신했다. 1994년 이종범이 기록한 196안타 기록을 20년 만에 경신하기도 했다. 새로운 신화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기록·스토리
모두 다 ‘MVP’
 
서건창은 기존의 넓은 수비범위에 강습타구 처리능력을 향상해 리그 최고수준의 수비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장타력이 개선되면서도 주력이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리그 최고수준의 주자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최초 2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멀티 포지션 수비가 불가능하고 군필이라는 이유로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2루수 후보로 거론됐다가 탈락의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지금 서건창은 전설의 고지를 넘고 빠르게 비상 중이다.
 
<khlee@ilyosisa.co.kr>
 

[서건창은?]
 
▲광주 출생
▲광주일고 졸업
▲2008 LG트윈스
▲2012 넥센 히어로즈
▲수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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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