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철의 두 남자’ 대장간 형제 이야기

벌써 50년…눈만 뜨면 메질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열두 살 나이에 대장장이 하는 일이 신기해 그에게서 쇠 다루는 법을 배웠다. 대장장이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먹고 살기 바빠 다른 길은 보지 못했다. 그렇게 길 없는 길을 50년 걸었다. 문득 뒤돌아보니 거기에 새 길이 나 있었다.

가야는 철의 왕국이었다. 신라시대 이후 철의 전성기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서울 은평구 수색역 앞 ‘형제대장간’의 류상준(64), 상남(56) 형제다. 형인 상준씨가 쇠를 달구고 두드려 천년의 기술을 뚝딱 재현해냈다. 김훈 작가 소설 <현의 노래> 속 대장장이 ‘야로’를 현 시대에서 보는 듯했다.

쇠도 근본이 있다

“안 들려. 크게 말해줘. 대장간 일이 원래 이렇게 시끄러워”

말 걸기가 미안할 정도로 대장간은 바빴다. 이날 동생 상남씨는 다리가 아파서 못 나왔다고 했다. 형 상준씨가 화덕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꺼내 모루 위에 올렸다. 상준씨는 그의 제자와 함께 쇳덩이를 해머로 ‘쿵쾅쿵쾅’ 메질했다.

“그렇게 두들기면 안 돼. (방향을) 틀어봐”


그리고 쇳덩이를 물 속에 넣어 식혔다. 담금질을 거듭하면서 쇠는 더욱 강해졌다. 뜨거운 화덕 앞에서 상준씨는 쉴 새 없이 메질을 했다. 그는 두들기고 다져 벌겋게 달군 쇳덩이를 새로운 도구로 만들어냈다. 밀려드는 주문과 쇠를 자르고 두드리는 소리에 인터뷰는 자주 끊겼다. 대장간 안을 둘러봤다. 10평 남짓한 공간 안에 낫, 호미, 갈고리, 집게 등 철로 만든 각종 도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주문한 작업 한 건이 끝나자 식어가는 화로를 보며 그가 말했다.

“쇠에도 근본이 있지. 칼 될 놈, 호미 될 놈, 숟가락 될 놈…다 태생이 있어. 이 중에서도 칼이 제일 까다로워. 쇠 자체가 늘어나지도 않는 강쇠니까. 지금이야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칼을 벼리는 게 무척이나 어려웠어”

달구고 두드려 천년의 기술 ‘뚝딱’
담금질 거듭할수록 쇠는 더 강해져

그 옛날엔 대장간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장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기계로 찍어낸 중국산 도구가 활개를 치면서 대장장이는 사라졌다. 중국산 싸구려들 틈새에서 형제대장간이 버틸 수 있던 것은 상준씨의 장인정신 덕분이었다.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닌데, 진짜 좋은 도구는 주물로 만드는 중국제가 아니라 이렇게 망치로 두드려 만든거야. 기계는 호미모양 따라서 그저 호미처럼만 만드니까. 같은 호미라도 밭에 잘 들어가는 게 있고, 안 들어가는 게 있는데 기계로 만드는 것과 두드려 만드는 것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 기계는 호미모양 따라서 그저 호미처럼만 만드니까. 중국 제품이 워낙 많이 들어와서 우리나라 전통 대장간 많이 사라졌지. 대장장이 일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아마 대장간은 앞으로 없어질거야”

그래도 올해 상준씨에게 제자가 생겼다. 옆에서 도와주던 이가 그의 제자라고 했다.

“가르치는 데 힘드냐고? 아니야. 기특해. 중학교 때 여기 직접 찾아와서 일 가르쳐달라고 하더라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오라고 했는데 진짜 왔어. 눈썰미도 있고 손재주도 있어서 잘할 거야. 사람들은 힘들다고만 생각하는데 대장장이가 남자들 하기에 괜찮아.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정직한 직업이라고 생각해. 일한 만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지.”


하기 싫을 때도 많았다. 먹고 살아야 했기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대장간에서 나온 돈으로 집을 사고 두 딸도 키웠다.

“예전엔 농사를 많이 지었으니까 주로 농기구를 많이 다뤘는데, 요즘은 온갖 주문이 들어와. 건축자재도 많이 만들고, 사극에 나오는 기구들은 거의 우리 집에서 만든 거야. 며칠 전 SBS 사극드라마에 나온 한지 자르는 기구랑 횃불에 횃대도 여기서 만들었어.”

인기드라마 <대장금>, <주몽>, <태왕사신기>, <서동요> 등에서 봤던 소품 도구도 모두 형제대장간에서 만들었다. 지금은 농기구 대신 공사장이나 건축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북한 개성공단 건설에 필요한 도구를 주문받기도 했다. 상준씨가 대장장이로서 보람을 느낀 때는 스승의 칼을 다뤘던 경험이다.

“예전에 어떤 손님 한 분이 칼을 고쳐달라고 가져왔어. 그런데 그게 우리 모래내 영감님(상준씨의 스승)이 만든 칼이더라고. 딱 보면 알아. 누가 만들었는지. 더군다나 우리 선생님이 만든 건데 내가 못 알아보겠어? 내가 스승님한테 쇠 만지는 거 배웠어도 추구하는 모양은 달랐어. 칼끝이 올라가 있더라고. 50년 전 선생님이 만든 칼이야. 그걸 내가 고쳤지. 묘했어.”
 

스승이 만든 칼을 세월이 흘러 제자가 고친 것이다. 상남씨의 스승은 모래내 대장간 주인이었던 박용신씨다. 박씨는 2004년 여든 두 해에 생을 마감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대장장이 일을 배웠어. 그때 모래내(대장간) 영감이 내 스승인데, 쇠붙이 만드는 게 재밌어 보이더라고. 불 속에 쇠를 넣고 호미, 낫 등 못 만드는 게 없는거야. 그게 그렇게 신기했지. 풀무질(쇠를 달구어 무르게 하고, 무른쇠를 두드려서 단단한 연장을 만드는 과정) 죽도록 했어. 배울 때 불길 못 맞춘다고 엄청 혼났지. 힘들었어. 불은 뜨거운데 고무신이 흘러 내려서 새끼줄로 발목을 칭칭 동여매고 일했을 정도였으니까.”

눈만 뜨면 쇠망치를 잡았다. 이제는 쇠를 다룬 지도 50년이 다됐다. 도구에 작은 흠이라도 눈에 보이면 내동댕이쳤다.

도심 속 대장간

그래서 형제는 다툴 때도 많았다. 상준씨의 완벽주의 때문이다.

“자주 싸웠지. 형제니까. 그래도 주로 일 때문에 싸우는 거라서 또 금방 풀어져.”

상준씨의 꼼꼼함은 한 번 찾은 손님을 단골손님을 만들었다. 그는 50년 가까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도심 속에서 대장간을 지켜왔다. 호미 한 자루가 쓰임을 다하고 다시 불길 속으로 되돌려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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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