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류계 떠도는 ‘에이즈 괴담’ 추적

사라진 에이즈녀 “6년간 레지로 일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그동안 풍문으로 떠돌던 ‘에이즈 괴담’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자신의 에이즈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여성과 동거하며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의 충격적인 행태가 밝혀졌다. 사라진 에이즈녀의 미스터리한 6년간 행적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일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12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했던 20대 남성이 교도소 출소 후 또다시 장애여성을 성폭행해 구속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조사부는 지적장애 3급 여성 ㄱ씨를 유인해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에이즈예방법 위반)로 이모(26)씨를 구속기소했다.

감염 사실
알고도 ‘쉿’
 
검찰에 따르면 에이즈에 감염된 이씨는 지난 2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고 지내던 ㄱ씨와 만나 “집에 가지 말고 같이 놀자”며 ㄱ씨를 인천시 남동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씨의 동거녀 박모씨는 ㄱ씨에게 청소와 집안일을 시키며 욕하고 때렸다고 전해진다. 이씨는 박씨가 잠든 사이 ㄱ씨를 강간했고, 박씨의 동네 후배인 최모씨와 손모씨도 이씨의 집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ㄱ씨를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감금돼 있던 ㄱ씨는 간신히 할머니와 연락이 닿아 경찰에 신고해 이들에게서 벗어났다. ㄱ씨는 현재 임신한 상태다. 보통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경우 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지만 수술시기를 놓쳤다. ㄱ씨의 변호인은 ㄱ씨가 에이즈 검사 결과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잠복기가 있어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씨의 동거녀 박씨의 동네 후배 최씨와 손씨는 현재 각각 특수절도 등 다른 범죄로 붙잡혀 각각 교도소와 소년원에 수감 중이며 그곳에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다. 동거녀 박씨는 관할 검찰청으로 이송됐다. 검찰은 최씨 등과 동거녀 박씨의 에이즈 감염 여부에 대해서는 “개인 정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씨는 군 입대 후 훈련 중 에이즈 감염 사실이 드러나 퇴소 조치된 바 있다. 이씨는 2010년 7월 경남 창원에서 초등학생(당시 12세)을 성폭행했다. 당시 그는 1심 창원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2심 부산고법은 징역 2년으로 감형해줬다. “성적 욕구를 억제하며 지내다가 피해자가 자신을 잘 따르며 좋아하자 성적 욕구를 이기지 못했다”는 사유였다.
 
이씨 본인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지른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후 인터넷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런데 이씨는 2012년 8월에 출소해 전자발찌를 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ㄱ씨를 성폭행했다. 에이즈 감염자로 성범죄 전과까지 있는 이씨의 재범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통합관리 할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에이즈 감염자는 총 8362명(2013년 기준)이다. 지난해에만 1114명이 새로 감염돼 하루 3명씩 감염되고 있어 새로운 관리체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상 에이즈 예방과 관리 대책은 부실한 형편이다. 에이즈 감염자에 대해 의료기관은 일정기간 간단한 진료만 하고, 관할 보건소는 주거 사실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감염자들이 주소지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더라도 관할 보건소가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다.
 
앞서 지난 4월에는 6년간 행방불명이었던 여성 에이즈 환자 A(37·여)씨가 보건 당국의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지내다가 경기도 가평군에서 에이즈 합병증인 폐렴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A씨는 21세였던 1998년,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사실이 확인돼 거주지인 관할 안동시보건소에서 관리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A씨에 대해서는 3개월에 한 번 꼴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식으로 추적 관리가 이뤄졌다. 그러던 중, 2008년 A씨와 연락이 두절됐고, 행방불명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의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이후 A씨는 10년간 보건당국의 관리 밖에서 무방비 상태로 지내다 에이즈 합병증인 폐렴으로 숨졌다.
 
감염 사실 알면서도 동거생활

불특정 다수 여성들도 성폭행
 
과거 A씨를 추적 관리했던 안동보건소 관계자는 “본인(A씨)이 주민번호를 말소 시키고 번호를 바꿨기 때문에 찾을 방법이 없었다”며 “당시 직원들이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고 말했다. 안동보건소 측은 과거 A씨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2008년 들어 통화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관계자는 “당시 에이즈 환자의 과도한 관리규제와 인권침해 요소가 지적되면서 2008년부터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 개정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전부터 에이즈 환자들의 불만이 컸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2008년 이전에는 감염인이 입·퇴원할 때와 거주지를 옮길 경우 보건소장에게 신고하도록 했다”며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 개정된 이후에는 이런 의무가 전면 삭제돼 감염인을 추적관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감염인 사체 검안 및 사망자에 대한 신고의무만 있다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A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가평군의 ‘아는 언니’가 있는 한 다방에서 지냈다는 점이다. 이 다방 업주는 A씨가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하지는 않았고, 다방에서 일하는 언니를 만나러 왔다가 머물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1998년 9월, HIV 감염 사실을 확인했다. 성관계에 의한 감염이었다. 그녀의 최종상담 기록은 2007년 10월19일이다. 가평보건소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분명 가족과 함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방에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한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뒤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그녀는 거주지인 관할 안동보건소에서 꾸준히 관리를 받으면서 약물도 복용했다. 그녀는 나이 21세 때의 일이다. A씨는 2007년까지 안동에 머무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제활동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방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20∼30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가평군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다방에서 일을 하지 않았다. 단지 아는 언니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있다고 알려진 그녀가 꾸준히 다방을 출입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녀는 과거 취업 준비 시 필요했던 건강검진진단표를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에이즈 감염 사실이 사측에 알려지면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녀가 자연스레 화류계로 빠졌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감염자들 동선
제대로 관리되나
 
A씨가 생전에 다방을 출입했다는 소식에 화류계 한 관계자는 “보통 다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과거 화류계에 몸담았던 여성”이라며 “특히 ‘아는 언니’를 통해 출입을 했다는 건 누군가를 매개로 연결돼 함께 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다방은 왕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화류계 여성들의 최종 목적지와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화류계에 유입되는 여성 중에는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미성년일 때 성폭행을 당했거나, 학창시절 때 심한 따돌림을 당했거나, 혹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다. A씨의 경우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37세에 다방을 들락날락 한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부 다방에서는 단순히 커피만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다방에서는 ‘2차 연애’ 가 이루어진다. 특히나 지방에 있는 다방은 2차가 필수옵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커피 값과 별도로 추가비용을 지불하면 다방 여성과 유사성행위가 가능한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다방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A씨는 30대 후반으로 다방 내에서는 나름대로 젊은 편에 속했기 때문에 그 인기가 상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A씨의 과거 행방을 찾기 위해 가평에 위치한 몇몇 다방을 취재했지만 다방 종업원들은 A씨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다방 관계자들에 따르면 가평에 있는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주 연령대는 40∼50대다. 30대는 흔히 ‘영계’에 속한다.
 

다방에서 20∼30대는 황금라인으로 매출 일등 공신으로 알려진다. 아무래도 A씨는 남들보다 2배 3배 더 뛰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골 다방에서는 숙식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A씨는 숙식을 제공받으며 ‘아는 언니’들과 함께 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시골 다방의 경우 커피만 팔아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는 형태다. 화류계 한 관계자는 “다방 미시들은 100% 2차를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인의 수입을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남자들을 유혹해 모텔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방을 흔히 ‘티켓다방’이라고 부른다. 출장성매매의 원조격이다. 보통 티켓을 끊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곧 외출증이다. 외부에서 자유롭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장소도 다양하다. 식당이나 호프집, 노래방 등 아무데서나 아가씨를 부를 수 있다. 티켓 2차는 다방 수입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다방 일하다 숨진 여성 알고보니 보균자
남자들과 잠자리? 그동안 행적 미스터리
 
티켓다방은 특히 지방일수록 기승을 부린다. 일부 모텔 객실 전화기에는 티켓다방 전화번호가 단축키로 지정돼 있을 정도다. 이처럼 티켓다방이 모텔을 끼고 영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속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막상 단속되더라도 혐의 입증이 어렵다. 증거가 남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매매 업소 단속을 위해서는 업소의 카드 사용 기록, 종업원의 휴대폰에 남아 있는 남성들의 전화번호 혹은 인터넷 예약기록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티켓다방에서는 모텔 유선전화를 사용해 티켓을 끊거나 현장에서 종업원과 성매매를 하기 때문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현행법상 다방 커피 배달은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불법이 아니다. 설사 성매매를 했더라도 “서로가 좋아서 한 일”이라고 하면 경찰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 티켓다방 업주 또한 “종업원이 나가서 뭘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할하면 그만이다. 모텔업주도 마찬가지다.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다른 술집 여성들과 달리 술을 마시지 않아 이 일을 선호한다고 전해진다. A씨가 일 하기에 수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A씨가 다방에서만 일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개중에는 조금 더 돈을 모으고 싶은 마음에 남성 손님들을 유혹해 개인적인 만남을 이어가며 금품 등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화대를 받지 않고 남성과 관계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A씨로 인한 2차 피해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의 전자발찌 성폭행범 이씨와의 연관성도 주목할 만하다.
 
A씨가 다방을 전전하다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시점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자신을 HIV 보균자라고 밝히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서 B씨는 20대 중반으로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어 HIV 보균자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복용하고 있는 약의 사진까지 올리면서 추가 피해자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HIV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했다. 너무 황당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약을 먹고 있는 지금은 구토증상과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자신이 HIV에 감염된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부모님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B씨는 “내가 이 HIV에 걸렸을 때 2달 동안 30번 정도 자살을 생각했다”며 “부모님에게 절대 얘기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 사정은 무엇일까. 그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성매매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B씨는 자신의 감염사실과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 등을 이야기하면서 “성관계 할 때는 반드시 콘돔을 착용하라”고 강조했다. B씨에 따르면 콘돔은 HIV 뿐만 아니라 HVC(C형간염), B형간염, A형간염, 헤르페스 등을 예방해준다. 곤지름은 예외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HIV 보균 검사는 꼭 한 번 받아보길 바란다”며 “검사는 익명으로 무료로 진행된다”고 전했다.
 
가평군 인근 부대에서 근무했던 C씨도 입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과거 부대원들이 휴가나 외박을 통해 다방 여성들과 접촉하는 일이 잦았다. 속칭 ‘여관바리’라 불리는 성매매를 했었다는 것이다. C씨는 “당시 여성들은 대부분 40대였다”면서 “30대는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했다. 당시 여관으로 들어오는 아가씨 중에는 투잡을 뛰는 다방 아가씨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설마, 혹시
그녀와?
 
2008년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 개정된 이후 현 법률체계는 감염자 보호라는 온정주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 보니 방역기관은 속수무책이다. 이것이 에이즈 감염자 증가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인권차원에서 에이즈 환자의 감시와 격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나친 행적 감시는 감염자 인권을 침해하고 정신적 피해를 줄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에이즈 환자 관리 책임은 1차적으로 보건당국에 있다. 국민들의 생명유지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연구진 개발
에이즈 잡는 신물질은?
 
최근 국내 연구진이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했다. 지난달 30일 유재훈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와 이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 공동 연구진은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았다고 밝혔다. 기존 치료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공격해, 내성 바이러스 치료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RNA에서 DNA가 만들어지는 역전사 과정과 이 DNA로부터 RNA를 만드는 전사 과정을 통해 복제된다. 기존 치료제는 RNA에서 DNA가 만들어지는 역전사 단계를 공격했다. 그런데 연구팀이 개발한 ‘펩타이드’는 DNA에서 RNA가 만들어지는 다음 단계를 공략한다. 펩타이드의 가장 큰 장점은 천연물질과 비슷해 인체 독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5년 이내에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앙케반테 케미> 최신호에 실렸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