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11살 때부터 기술 배운 시계수리 장인 김동선

“50년간 시계골목 지켰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시계는 태엽구동으로 이뤄지는 오토매틱에 비해 오차가 적고 저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시계로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다. 배터리 하나에 시계의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반면 오토매틱 시계는 관리만 잘해주면 백년도 멀쩡하다. 시계 잘 고치기로 소문난 장인 김동선씨에게 시계 이야기를 들어봤다.

 
1960년대 청계천변 상인들이 종로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종로 ‘시계골목’은 70∼80년대 전성기를 맞았지만, 90대 무선호출기와 휴대전화의 등장과 함께 명품예물시계 상권이 백화점으로 옮기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 시계골목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대상이 되면서 시계수리장이들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49년 경력 달인
 
시계골목의 전성기는 지났지만 수십 년 노하우가 쌓인 장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빛나고 있다. 종로에서 소문난 경민사 시계수리장이 김동선(60)씨가 대표적이다. 그의 주특기는 ‘분해수리’ 흔히 ‘오버홀’이라고 부른다. 오토매틱 시계 무브먼트 전체를 분해한 뒤 작은 조각 하나하나를 청소하고 뻑뻑한 부분에 오일을 칠한다. 마모된 부분은 새 부품으로 교체해 원래 상태로 되돌린다. 이렇게 멈춘 무브먼트는 그의 손을 거쳐 다시 되살아난다. 3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기적이다.
 
김씨는 11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대구 대신동에서 수년간 시계수리기술을 연마한 뒤 종로에 터를 잡았다. 12월17일이면 시계수리경력 49년째다. 청춘을 시계에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업실은 3평 남짓한 아담한 규모지만 그 의미는 공간을 초월한다. 인생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선배들이 대못 하나 던져주곤 부품도 만들고 수리도 하라고 했어요. 지금보다 힘들었죠. 그래도 어디 가서 ‘시계기술자’라고 하면 알아줬어요. 동경의 대상이었죠. 먹고 살기 어려울 때라 장점이 많았어요.”
 

김씨는 생계를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지만 후회는 없다. 시계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실력은 작업량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루에 20∼30개의 시계가 수리를 기다린다. 굳이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아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입소문을 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평 남짓한 공간서 닦고 조이고
입소문 타고 하루 20∼30개 뚝딱
 
“인터넷은 할 줄도 몰라요. 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 거 안 해도 올 손님은 다 찾아와요. 전화기만 있으면 충분하죠. 제주도에서 시계를 보내는 손님도 있고, 심지어 호주에서도 시계를 보내요. 요즘에는 택배가 잘 돼 있으니까요.”
 
사실 오버홀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명품시계의 경우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만 A/S가 가능하다. 오버홀 한 번에 수십만원은 기본이다. 그러나 시계를 좀 아는 사람은 굳이 명품매장을 찾지 않는다. 진짜 장인들이 있는 종로 시계골목으로 향한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갑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버홀에 특정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그때그때 다른 견적비용을 제시한다.
 
“A/S는 사후관리를 뜻하는데 너무 큰 금액을 요구하면 안 되죠. 오버홀 가격에 기준은 없어요. 받고 싶은 대로 받는 거죠. 명품시계 구분 없이 5만원 받을 때도 있고, 10만원 받을 때도 있고, 손님에 따라서는 안 받을 때도 있어요.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네요.” 
 
김씨의 작업량 자체만 보면 수입이 꽤 될 것 같지만 조금 손봐서 될 정도면 수리를 해주고도 돈을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 고수입은 먼 이야기란다. 김씨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시계의 생명이다. 아픈 시계를 치료할 때 진정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시계에도 심장이 있어요. 인체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말은 못하지만 어디가 아픈지 금방 알 수 있고요. 뜯지 않고 만져만 봐도 증상이 느껴져요. 의사가 사람생명 살리듯, 시계기술자는 시계의 생명을 살려요. 돈보다 중요한 게 생명이잖아요. 그저 시계를 고치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에요.”

소문난 수리공
 
인터뷰 내내 숨죽이며 명품시계 오버홀 작업에 매진하던 김씨는 작업을 완료한 뒤 시계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그런데 끝난 게 아니었다. ‘따다닥 따다닥’ 규칙적으로 끊기는 기계음이 퍼지는 한 기계에 시계를 올려놓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시계 초음파라고 보면 되요. 오버홀이 제대로 됐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거죠. 이걸 거쳐야 시계수리작업이 끝나요.”
 
그런데 한국 시계기술자 맥이 끊기게 생겼다. 김씨는 “시계기술자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다”며 시계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금 김씨에게 시계를 맡기는 건 어쩌면 영광일지도 모른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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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