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인도 모르는 불법 동물화장터 실태

그린벨트서 불타는 강아지 사체 '헉~'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어느덧 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에 따라 애완동물 시장이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애완동물이 하나의 가족으로 인식되면서 동물장묘업도 성행 중이다. 현재 동물화장터는 전국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몇몇 화장터가 정식허가를 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은밀하게 영업을 이어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물화장터를 둘러싼 문제점을 짚어봤다.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는 ‘펫팸(Pet과 Family의 합성어)족’이 늘면서 자연스레 관련 업계가 춤추고 있다. 펫팸족은 애완동물 장례까지 치른다. 애완동물을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수시로 들러 애완동물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가 된 것이다. 

24시간 가동
불법 화장터
 
그런데 동물보호법에 위반되는 불법 동물화장터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래서 <일요시사>는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 A동물화장터를 찾았다. 불법으로 알려진 A동물화장터는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주변엔 온통 인쇄공장뿐이었다. 주변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색 간판을 내걸고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A동물화장터 사무실은 가정집과 비슷한 구조였다. 넓은 거실에 있던 한 직원이 물어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동물화장에 대한 상담을 요청하자 이 직원은 가장 먼저 애완동물의 몸무게를 물어봤다. 그는 “아이(애완동물)가 5kg 이하면 15만원”이라며 “1kg 초과 시 1만원이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이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추모실에 도착했다. 내부는 엄숙했다. 숨진 애완동물을 눕힐 관과 함께 여러 동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직원은 “이곳에서 엄숙하게 추모식이 진행된다”며 “주인의 종교에 따라 예식은 조금씩 다르다”며 보통 10분에서 15분 정도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추모실을 나와 화장터로 이동했다. 화장터는 그리 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직원에 따르면 화장은 10분 내로 끝난다. 즉 애완동물 장례식은 방문과 동시에 20∼30분 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A동물화장터 직원은 “365일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면 바로 연락을 달라”며 “픽업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A동물화장터 직원의 설명을 들은 뒤 시내로 향했다. 시민들은 A동물화장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동물화장터의 존재 자체에 놀란 표정을 짓는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아직은 생소한 애완동물서비스인 것이다. 그런데 A동물화장터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고자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들어가 동물장묘업으로 정식 등록된 업체를 확인한 결과 A동물화장터는 정식으로 등록이 되지 않은 업체였다. 정식 등록 업체는 (주)동물사랑 대구러브펫(대구시 달서구), (주)위디안(경기도 김포시), 페트나라(경기도 김포시), 월드펫(경기도 김포시), 굿바이펫(충북 제천시), 에이지펫(충남 천안시), 예산 위드엔젤(충남 예산군), 러브펫(경기도 광주시), 아롱이천국(경기도 광주) 등이었다.

위반사항 적발
영업 막진 못해
 
그러나 이 자료만으로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는 건 무리였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9개의 장묘업체 외에 다른 동물장묘업체의 불법성은 해당 지자체에 문의해야 한다”고 했다. 사이트에는 등록이 누락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해당 지자체인 고양시청 관계자에게 A동물화장터 불법성 여부를 문의한 결과 불법이 맞았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A동물화장터는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업체가 맞다”며 “동물보호법 위반사항이 있어 경찰과 합동 단속을 벌인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 관련 민원이 빗발쳐 경찰과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A동물화장터는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불법이 맞지만 영업행위 자체를 막을 순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B동물화장터도 불법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흥시 관계자는 “거모동에 있는 애견화장터 건물은 그린벨트 지역에 지어졌기 때문에 불법이 맞다”며 민원을 받아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고발 외에 추가적인 조치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B동물화장터는 불법으로 고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애완동물도 가족…동물장묘업 성행
무허가 화장터 전국 곳곳서 운영중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C동물화장터도 마찬가지였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식으로 허가를 받기 위해 등록을 진행하던 중 문제가 발생해 반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로 밤에 몰래 영업을 했었다”며 “동물보호법위반으로 고발된 상태”라고 했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D동물화장터도 사정은 비슷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동물전용 장례식장, 화장장, 납골시설 등 동물장묘업체 또한 등록신청서에 시설과 인력면세 등을 첨부해 관할 시·군·구에 등록해야 영업을 할 수 있다. 또한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사항도 법으로 정해져 있다. 동물장묘업 등록제는 2008년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나날이 증가하는 애완동물의 시체를 인도적·위생적으로 처리해 환경오염 및 공중위생상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현재 전국에는 270여개의 동물장묘업체가 있다. 이들 업체는 보통 사체 크기에 따라 최소 15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요금을 받고 장례절차를 대행해준다. 모든 절차는 사람의 장례식과 똑같이 진행된다. 사체 운구부터 입관식, 매장 혹은 화장까지가 그렇다. 추가 비용을 지불할 경우 장례전용 리무진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많은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수많은 업체 중 정식으로 인허가를 받은 업체는 매우 적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물장묘업체로 정식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도시계획, 주거지역, 상수원, 장사법률, 건축법 등 다양한 인허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정식 업체로 동물장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애완동물시장 확대에 따라 이러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동시에 혐오하기도 한다. 일종의 님비(NIMBY: 지역 이기주의)현상이라는 지적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동물화장터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자기 집 주변에 화장터가 들어오는 걸 좋아할 주민은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애완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한다. 아무 데나 묻으면 벌금형에 처해진다. 동물병원에서 사망할 경우엔 1kg당 1만원을 내면 의료폐기물로 분류해 소각해준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물장묘서비스를 택한다. 그러나 동물장묘업 시장은 기반이 약하다. 아직 체계를 잡지 못한 것이다. 

까다로운 절차
인허가 딜레마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3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동물보호법 대상인 개의 숫자는 약 127마리다. 이 중에서 약 43만마리가 등록된 상태이며 해마다 12∼13만마리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다른 동물을 더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동물관리사, 장례지도사 등 애완동물 관련 직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 동물 케어서비스 업체가 고양시 동물보호축제에 참여한 시민 1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4.7%가 동물 장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등록된 동물장묘업체는 턱 없이 부족하다. 의료폐기물로 처리되는 극히 일부 동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동물들이 가정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져 버려지거나 인근 뒷산에 암매장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려동물의 숫자와 매년 폐사되는 적지 않은 수의 반려동물을 고려하면 반려동물 사체처리 문제는 공공위생뿐만 아니라 동물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그럼에도 현재와 같은 반려동물 사체처리 제도는 현실과 많은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가 애완동물을 위한 공공장묘시설을 설치·운동하고 국가가 필요한 경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도 나온다.
 
고발해도 버젓이 배짱영업
“인허가 받기 어렵다” 호소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공설 동물장묘업체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기존의 민간시설과 영역이 겹치고 기득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결국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기득권 침해가 문제가 된다면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해 사설장례장과 공공장례장의 업무 범위를 구분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국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특히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유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애완동물 수는 2003년부터 2013년 사이 90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며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집계된 중국의 애완동물 수는 1억5000만마리다. 애완동물을 기르려면 국가에 등록해야 하지만 등록 없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경우도 있어 중국의 애완동물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판매액은 900억위안으로 한화 14조6979억원에 달한다.
 
중국의 애완동물 장례 서비스 가격은 100위안에서 1500위안까지 다양하다. 지난 2008년 1월1일 죽은 애완동물의 사체를 함부로 처리하지 못하며, 관련 사항 위반 시 법적 조치를 내리는 동물방역법이 실시됐지만 베이징 창핑, 따싱 등 교외지역에 애완동물 전용 묘지가 생기고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중국에서 매년 처리해야 하는 애완동물 사체는 약 1000만 마리 이상이다. 환경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중국 정부는 해외의 애완동물 사체 처리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현실 고려한
제도 보완 필요
 
프랑스의 경우,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민 60%는 정원에 묻거나 직접 장례를 치루지만 나머지 40%는 정부가 계약을 맺은 동물화장터에서 처리해 여기에 쓰이는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했다. 처음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한 해 수백만 마리를 화장하는 데 프랑스 정부는 부담을 느꼈다. 결국 지난 2005년, 프랑스 정부는 법을 개정해 반려동물 화장에 20만원가량을 부담하도록 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사설장례장을 이용하고 일반 시민들은 낮은 가격의 공공장례장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반려동물 사체를 ‘생활폐기물’로 처리할 경우 일본처럼 반려동물을 사체에 일정 수수료를 징수하고 동물사체소각로에서 별도로 소각하는 방안도 있다. 애완동물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환경보호와 동물복지 차원에서 반려동물장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해 보인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전용 채널 ‘도그TV’ 등장 
 
인터넷TV(IPTV)와 케이블TV에 개들이 볼 수 있는 ‘도그TV’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존 케이블 TV들에 이어 통신 3사들도 다음달까지 모두 IPTV를 통해 도그TV 서비스를 시작한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말 도그TV 서비스를 시작해 20일 만에 가입자 2400명을 넘어섰다. KT는 다음달 1일, LG유플러스도 다음달 말에 각각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케이블TV는 올 2월부터 일찍 뛰어들었다. CJ헬로비전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4월에 태광 티브로드, 7월 울산중앙방송, 지난달 현대 HCN과 대구 푸른방송이 각각 도그TV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제주방송도 시험방송 중이다. 이처럼 UT업체들과 케이블TV업체들이 도그TV를 서비스하는 이유는 부가 수익 때문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애완견을 키우는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가 늘면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견주가 집을 비울 때 혼자 남는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틀어주는 용도로 많이 이용된다”고 말했다.
 
한편, 도그TV는 개의 심리상태를 치료할 목적으로 지난 2009년 이스라엘 PTV미디어가 과학자와 동물 행동 심리학자, 애견전문가 등과 함께 만든 프로그램이다. 본격적인 TV방송은 2012년 2월 미국에서 처음 시작돼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