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말년에 체면 구긴 박희태 전 국회의장

만지긴 만졌는데 성희롱은 아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 장본인이자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골프장 캐디 A씨의 신체 부위를 수차례 만진 게 알려지면서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박 전 의장은 “손녀 같아서 귀엽단 표시는 했지만 정도를 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불렀다.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말년에 먹구름이 제대로 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께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캐디 A씨의 신체를 함부로 만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다음날인 12일 해당 골프장 측은 “전날 오전 8시30분 박 전 국회의장을 포함한 남자 2명과 여자 2명이 라운딩을 시작했고 9번째 홀에서 라운딩을 함께하던 A씨가 캐디 마스터에게 교체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골프장 측은 9번째 홀에서 A씨를 다른 캐디로 교체했다. 골프장 측은 “교체 요청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데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며 “자문변호사를 통해 A씨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가슴 한번 
툭 찔렀을 뿐“
 
김 전 의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A씨의 동료들도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개하는 상황이다. A씨의 동료 B씨는 “어제 ‘동료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골프장 전체에 퍼졌다”며 “제대로 된 경찰 조사가 이뤄져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년 전에 내가 모시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행실이 과히 좋지 않았다”며 “캐디 동료들 사이에서 기피 고객으로 소문이 났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장은 사건 당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날 밤 A씨를 다시 만나는 등 적극적으로 수습을 시도했지만, 이룬 것이 없었다고 전해졌다.
 

A씨는 성추행을 당한 다음날인 12일 오후 3시30분께 원주경찰서를 찾아 자신이 당한 피해신고를 접수했고, 피해자 진술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피해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박 전 의장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박 전 의장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경찰 관게자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는 상관없다. 혐의를 입증할 만한 상당한 정황과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
 
수사를 맡은 강원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16일 박 전 의장을 피혐의자(피내사자) 신분으로 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박 전 의장은 10일 이내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박 전 의장이 출석요구에 응할 때 까지 2차, 3차 출석 요구서를 추가로 발송할 계획이다. 경찰은 골프장 측 등 참고인 조사까지 완료한 상태다.
 
또 경찰은 박 전 의장의 소환조사 이후 정식 입건할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6월부터 성범죄 친고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해도 수사기관이 인지해 처벌에 나설 수 있게 된 점도 입건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골프장 캐디 추태 일파만파
궁색한 해명에 비난의 화살 
 
지난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는 성명을 통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사고와 국회 파행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의 상임고문은 골프나 치고, 성추행 사건까지 일으키고 있다. 집권여당의 정국 상황 인식 수준에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다음날 정의당 김제남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번 일이 수없이 반복돼온 새누리당 관련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4대악을 척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성추문 파문이 연이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뻔뻔한 해명
 
17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을 통해 “박희태는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 ‘등허리나 팔뚝을 만진 것은 큰 문제가 없지 않나 싶다’고 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때 한 번만 싫은 표정을 지었으면 그랬겠냐. 전혀 그럼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나타낸 일이 없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박 전 의장을 비판했다.
 
또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그간 정치인은 자신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친밀감의 표시였다’고 발뺌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또한 사건 처리과정에서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그 결과 유야무야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19일 새정치민주연합은 허영일 부대변인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한다’며 논평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우발적 행동보다 골프 치면서 홀마다 성추행을 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님의 죄질이 더 무겁다”면서 “박희태 전 의장의 행적과 언행에는 증거인멸의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에 경찰은 박 의장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해야,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대해 법의 원칙적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경찰의 과잉의지와 정권 눈치보기에 일일이 대응하기에도 지친다”며 “개미지옥을 파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개미귀신을 보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건 발생일부터 현재까지 박 전 의장의 성희롱 고소 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박 전 의장 캐디 성추행 논란은 부끄럽게도 외신을 탔다. 미국의 국제적인 골프뉴스 사이트 <골프뉴스넷>이 지난 14일 ‘한국 유명 정치인 여성 캐디 성추행 혐의’라는 제목으로 박 전 의장의 얼굴과 함께 성추행 소식을 올렸다고 외신전문사이트 <뉴스프로>가 18일 전했다. <골프뉴스넷>은 인터넷 뉴스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미국에 2600만명, 해외에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에게 서비스하는 사이트다. <골프뉴스넷>은 박 전 의장이 2012년 당권다툼에서 동료 당원들을 매수한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도 덧붙였다.
 
박 “싫은 표정 아니었다” 
캐디 “홀마다 더듬었다”
 
박 전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살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당시 전당대회 직전 김효재 전 정무수석 등을 통해 같은 당 고승덕 전 의원실에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박 전 의장은 이명박 정부 말기 특별사면을 받았다.
 
박 전 의장이 돈봉투를 뿌린 사실이 알려지게 된 건 고승덕 전 의원이 <서울경제>에 ‘로터리 칼럼’을 쓰면서부터였다. 그는 칼럼에서 “한번은 전당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 필자에게 봉투가 배달됐다. 어느 후보가 보낸 것이었다. 상당한 돈이 담겨 있었다. 필자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소신에 따라 봉투를 돌려보냈다. 필자는 어차피 그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 후보에게 투표했다.
 
문제는 그 후 벌어졌다. 당선된 후보가 필자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싸늘했다. 이상했다. 지지했는데 왜 그렇게 대할까. 정치 선배에게 물어보니 돈을 돌려보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며 “지금까지도 그 선배의 냉대는 계속되고 있다. 필자에게 죄가 있다면 당내선거에서 돈을 말없이 돌려주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몰랐던 점”이라며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문제점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고 전 의원의 말은 여의도 정가에서는 대부분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다.


한나라당 간판 바꾼
돈봉투 사건의 주범
 
박 전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2008년 친이계는 실제로 자신들을 대표할 인물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가 박 전 의원을 공식후보로 추대했고, 그해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의 지지를 받은 박 전 의장이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됐다. 300만원 돈봉투를 전달한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박 전 의장이 당 대표가 되자,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박 전 의장 돈봉투 사건은 당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혁신 작업에 매진하던 새누리당에게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다. 박 전 의장은 국회의장 신분으로 무당적 신분이었지만 새누리당에서 6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대표까지 역임했다. 이를 두고 ‘친이계(친이명박) 죽이기’라는 당내 논란까지 겹치며 해묵은 친이-친박 계파갈등이 임계점으로 치달았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즉각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등 박 전 의장의 ‘결자해지’를 바랐지만 통하지 않았다. 당시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전 의장은 “문제가 된 이 사건은 4년 전의 일이다.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 제기됐던 ‘국회의장 사퇴 요구’도 일축했다. 그저 총선불출마 입장만 밝혔던 것이다.
 
6선 의원에 국회의장

돈봉투 파문으로 망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국회문제이므로 여야 원내대표들이 조속히 현명하게 처리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새누리당이 약속했던 정치쇄신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 만에 새누리당은 박 전 의장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면서 당의 ‘어른’으로 모셨다. 정치쇄신 역행의 꼭지점을 찍었던 것. 이는 지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개정한 당헌·당규나 윤리강령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새누리당 당원규정 7조는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로 당원자격심사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정경선 의무를 명시한 윤리강령 13조에는 “당직 또는 공직후보자 경선에 출마하는 자는 공정한 경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며”라며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행위 첫 머리로 올려놨다.
 
박 전 의장은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3회 고등고시 법학과에 합격해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그는 1988년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에 영입돼 고향 남해군이 포함된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해 제13대 국회에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초선 때인 88년 12월부터는 당 대변인을 맡아 4년3개월간 직을 수행했다. 대변인 시절에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의 정치 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으나, 이중국적을 가진 딸이 이화여대에 특례입학 혜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돼 장관 취임 10일 만에 사퇴했다.
 
같은 해 말부터 94년 초 사이에는 당시 민주당 김원웅 의원이 여야의원 137명의 서명을 받아 반민법의 취지를 이어받은 ‘민족정통성회복특별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강력한 저항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김 전 의장이 완강히 심의를 거부해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치 9단이…
순식간에 몰락
 
14, 15, 16, 17대 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국회 내 입지를 굳혀간 그는 17대 시절에는 국회부의장직도 수행했다. 5선을 기록한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중진의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7월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을 제치고, 한나라당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경남 양산 재출마를 선언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2009년 10월28일 양산 재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내세운 친노 후보 송인배에게 쫓기며 고전하다 3000여표 차(3만801표(38.1%), 송인배 2만7502표(34.1))로 가까스로 당선되면서 6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당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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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