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없는 ‘SNS 푸어족’ 실태

스스로 ‘SNS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피트니스푸어’ 등 빈곤한 사회현상을 ‘푸어’로 풀이하는 요즘, 새로운 푸어족이 떠오르고 있다. 바로 ‘SNS푸어’다. 이들의 특징은 카카오톡·페이스북 등 소셜네티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 그래서 인위적으로 SNS친구를 만들어 소통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카카오톡·페이스북 친구 구해요.” SNS를 하면 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실태를 집중 조명한다.
 
날이 갈수록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양극화 현상은 경제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에도 뚜렷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소통의 장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이른바 ‘SNS푸어족’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이들은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과 관계 맺길 원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인위적인 관계 맺기에 집착하고 결국 ‘SNS전용’ 친구를 만들고 있다.

“카친·페친 구합니다”
 
검색 포털에 ‘카카오톡 친구 구하기’ ‘페이스북 친구 구하기’ 등을 입력하면 여러 개의 SNS친구 맺기 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게시판은 보통 10대·20대·30대 등 연령별로 나뉘어 있다. 게시글 대부분은 ‘카친(카카오톡 친구)·페친(페이스북 친구) 구합니다’ 등으로 SNS친구를 찾는 목소리 일색이다.
 
이 사이트에서 자신의 사진을 첨부하는 게 필수는 아니지만, 사진을 올린 글에는 폭발적인 댓글이 달리기 때문에 회원들은 너도 나도 셀카(셀프카메라)를 올린다.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자기를 소개하고 카톡 아이디와 페이스북 주소를 남기는 방식으로 SNS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외모에 따라 ‘오늘의 뉴페이스’로 선정돼 인기회원이 되기도 한다.
 

SNS 친구 맺기 사이트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하루종일 카톡을 주고받는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던지면서 스마트폰을 울린다. 그러다 대화 소재가 고갈되거나 질리면 관계를 끊기도 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 단톡(단체 카카오톡)을 이어간다. 단톡방에는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별한 대화주제는 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주고받는다. 쉬지 않고 울리는 ‘카톡’은 SNS푸어족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직장인 최모(27)씨에게 스마트폰은 시계에 불과했다. 그에게 카톡과 페이스북은 장식에 불과했던 것. 불현듯 최씨는 자괴감에 빠졌고, 외로움을 달래고자 방법을 찾던 도중 SNS 친구 맺기 사이트를 발견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카톡 친구를 구한다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에 카톡이 울렸다. 이후 최씨는 SNS 친구 맺기에 맛 들려 지속적으로 친구를 늘려갔다. 최씨의 스마트폰은 24시간 쉴 새 없이 울렸다.
 
이후 최씨는 SNS 친구 맺기 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페이스북 친구까지 맺으면서 서로의 일상을 좀 더 가까이 지켜봤다. 마치 약속한 듯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했다. 자신의 글에 대한 사람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미소가 지어졌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였다. SNS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던 최씨는 문득 공허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처지가 앙꼬 없는 찐방과 같이 느껴졌던 것. 회의감에 빠진 최씨는 SNS와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우울감을 호소했다. 최씨는 “SNS에 집중하는 동안 진정한 나를 잃은 느낌”이었다며 SNS 중독을 경계했다.
 
대화 상대 없어 고민…외로움 더해
인위적인 인맥 쌓기도 “스트레스”
 
대학생 신모(22·여)씨도 SNS 친구 찾기에 혈안이 된 적이 있다. 단체카톡이 여러 개 있고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높은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 신씨는 인위적으로 만든 SNS 친구들과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게시물에 대한 높은 반응과 끊임없는 카톡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신씨는 SNS상에서는 많은 인맥을 과시할 수 있었지만, 정작 동네에서 맥주 한 잔 할 친구는 없었다. 신씨는 “그 누구보다 SNS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지금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며 현실을 한탄했다.
 
이처럼 SNS 푸어족이 느끼는 감정은 SNS 과잉 몰입이 불러온 결과로 해석된다. 문제는 SNS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는 것. 일각에서는 소통의 SNS가 오히려 고독을 잉태한다고 지적한다. SNS가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면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도구로서 효율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반대로 높은 의존도로 SNS의 노예가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사회성 결여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지난해 스마트폰 보급률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날로 증가해 80%를 넘어섰다. 이제 피처폰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눈 뜨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다.
 
지난 2일 KT경제경영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인의 스마트라이프·스마트폰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 중 66.38%(중복응답)가 모바일 메신저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어 통화, 게임, 문자 등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89.6%로 모바일 메신저를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소통의 방법이 크게 변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이 1만7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1년 8.4%였던 인터넷 중독 위험군이 지난해 11.8%로 증가했다. 이 중 중독 증세가 심한 고위험군의 비중도 1.3%나 됐다.

SNS 양극화의 단면
 
한편, 세계최대 SNS 업체인 페이스북이 70만여명의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감정조작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페이스북 관계자 등이 2012년에 가입 회원들 몰래 SNS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실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리적 타당성 논쟁이 이어졌다. 페이스북이 뉴스피드를 통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메시지를 조작해 회원들의 감정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이에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공식 사과를 표명했지만 미국 전자프라이버시센터(EPIC)는 연방무역위원회(FTC)에 진정서를 제출해 긴급조사를 요구했다. 영국 정보보호위원회(ICO)도 페이스북의 데이터보호법 위반 여부 조사에 나섰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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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