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풀린 퇴폐이발소 여주인 살인사건 전말

유사성행위 파트너 맘에 안 들어…’‘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경기도 안산 원곡동의 한 퇴폐이발소 여주인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달아났던 피의자가 8년7개월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미제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사건은 뜻밖의 단서인 ‘담배꽁초’로 인해 실마리가 풀렸다. 당시 피의자가 태웠던 담배 한 개비가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죄 짓고 살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기막힌 이 사건의 전말을 풀어본다.

지난 2005년 12월 찬바람 불던 겨울, 김모(40)씨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거리로 나섰다. 외로움에 사무쳤던 그가 향한 곳은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있는 한 허름한 이발소. 겉모습은 여느 이발소의 모습과 다를 것 없었지만 실상은 유사성행위가 성행하는 퇴폐영업소였다. 이 이발소에서 가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물론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이발이 아닌 낯선 여성과의 진한 스킨십이었기 때문.

증거 없어 표류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린 채 퇴폐이발소에 입장한 김씨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내 이발소 여주인의 안내에 따라 어두운 조명 아래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웠다. 눈앞에 있는 세면대와 수건들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이발소 여주인 권모(43·여)씨가 들어왔다. 그리고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유사성행위를 위해 하나 둘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권씨로부터 유사성행위를 제공받던 김씨는 기분이 언짢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유사성행위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불쾌감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권씨가 내뱉은 말들에 깊은 내상을 입었다. 퇴폐이발소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긴커녕 오히려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결국 김씨는 불쾌감을 떨치지 못한 채 이발소를 나왔다.
 
서비스하던 업소녀 모욕에 격분해 살인

다른 혐의로 잡힌 범인 DNA 일치해 검거 
 
문제는 이발소에서의 불쾌감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됐다는 점이다. 김씨는 이발소를 나오는 순간부터 대략 한 달 동안 매일같이 권씨를 향한 분노에 휩싸였다. 화가 치민 김씨는 극단적인 결심까지 하게 됐다. 자신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권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2006년 1월22일, 김씨는 흉기를 챙기고 한 달 전쯤 찾았던 퇴폐이발소를 다시 찾았다.
 
결국 김씨는 한 달 전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던 이발소 주인 권씨를 다시 만났다. 분노에 찬 김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흉기를 꺼내 권씨를 무참히 살해하고 담배를 태운 뒤 달아났다. 권씨는 김씨의 흉기에 5차례 찔린 채 쓰러져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 이발소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그리고 이날 오전 3시20분께 권씨를 만나기 위해 이발소를 찾은 다른 손님에 의해 살해 현장이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잔인한 수법으로 미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추정하고 이발소 여주인 권씨의 통화내역을 낱낱이 뒤졌다. 의심이 가는 주변 인물들도 조사했다. 안산의 이태원이라 불리던 원곡동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이어갔지만 증거가 부족해 용의자를 특정하진 못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각고의 노력으로 수사를 계속 이어갔지만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이후 9년 가까이 흘러 미제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을 유리잔으로 때려 살해하려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9년이 지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경찰은 폭력행위 등의 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김씨를 다시 체포해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붙잡힌 김씨의 범행수법이 과거 이발소 여주인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김씨의 유전자(DNA)를 채취했다. 그리고 9년 전 이발소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나온 4개의 DNA 가운데 하나가 김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김씨가 9년 전 태웠던 담배가 미제사건의 열쇠가 된 셈이었다.

범인 잡은 꽁초
 
이 같은 DNA 검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오래전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했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김씨의 진술이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으로 나왔다. 김씨는 범행 일체를 시인한 뒤 “죄송하다”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수사의 방향을 정하거나 자백을 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난 22일, 경기도 의정부경찰서는 이발소여주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 등으로 김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번 사건처럼 의외의 단서로 인해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도 한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10년 만에 재수사…강화도 변사사건은?
 
지난달 14일 인천 강화경찰서는 채권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A(62)씨를 구속했다. A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2시 40분 사이 토지 매매대금 1억1200만원을 돌려준다며 30대 채권자를 자신의 강화군 집으로 부른 뒤 머리에 둔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시신을 강화군 선원면의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이번 살해건뿐만 아니라 2001∼2006년 강화군에서 발생했던 2건의 실종사건, 1건의 변사사건과 연루됐다고 보고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2001∼2006년까지 실종되거나 숨진 이들은 모두 A씨의 지인으로, 당시 경찰은 A씨를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조사를 벌였으나 범행 입증엔 실패한 바 있다.
 
2001년 12월 A씨의 동거녀 B(당시 40세)씨가 실종됐다. B씨의 실종은 다음해 3월 B씨 여동생이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가출 신고를 하면서 경찰에 인지됐다. 경찰은 같이 살던 B씨가 사라졌는데도 바로 신고하지 않았던 A씨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보고 A씨를 상대로 범행을 추궁했지만 심증 외에 딱히 확보된 증거가 없던 경찰은 A씨를 더는 추궁할 수 없었고, 사건은 13년간 미제로 남게 됐다.
 
2004년 9월엔 A씨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하던 C씨(당시 42세)가 실종됐다. A씨와 C씨는 바로 옆집에 살던 이웃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A씨는 매일 보던 C씨가 사라졌는데 이번에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2006년 8월엔 A씨 집 인근 펜션의 관리인이던 D(당시 54세) 씨가 펜션에서 약 70m 떨어진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D씨의 펜션 부지에 둘러싸인 A씨 소유 땅에 건축물을 짓는 문제로 이들이 갈등을 겪어 온 사실을 확인하고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영장이 기각돼 수사는 더 진척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데다 당시에도 증거 부족으로 A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A씨가 자백하지 않는 한 미제 사건에 대한 혐의 입증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씨는 구속된 지금도 살해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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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