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믿고 보는 '국민배우' 최민식

12척 배로…한국 영화사 다시 썼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한국영화 최초로 영화 <명량>이 개봉 18일 만에 관객 수 1500만을 돌파하면서 과거 1362만명을 기록해 5년간 역대 흥행 1위 자리를 수성했던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를 누르고 한국영화사에 새 역사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간 <명량>의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대중들이 이토록 명장 이순신에 열광한 것은 리더십이 부재한 작금의 현실이 한몫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흥행 뒤엔 배우 최민식(52)의 열연이 주요했다.

 
1597년 임진왜란 6년,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명량대첩’을 그린 영화 <명량>이 개봉 18일 만에 관객 수 1500만을 돌파하면서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난 2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명량>의 누적 관객 수는 1528만9623명으로 나타났다.

거침없는
무적 거북선
 
<명량> 1000만 돌파 이후 김한민 감독은 “지금 시대에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몸소 찾아주시는 걸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감독으로서 큰 떨림과 큰 감사함이 앞선다”며 “다시 한 번 노고를 마다하지 않아준 스태프와 배우들, 그리고 이 영화를 사랑해주신 관객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배우 최민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용기와 신념, 그리고 그 분께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공감해주신 관객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1500만을 돌파하자 최민식은 “너무 과분하다. 정말 실감이 안 난다.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다”며 “딱 한 가지, 내가 하는 일로서 물론 영화에 대한 호불호와 평가는 나뉘지만 <명량>이 남긴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긍정적 기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대중들이 내가 볼 수 있는 영화가 극장에 상영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것 같다. 세대를 아우르는, 과거 역사 속 승리의 한 순간을 우리가 그래도 지금 곱씹어 보면서 쾌감을 느끼고 반성하고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영화의 긍정적 기운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명량>의 신기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0대 주도에서 20∼30대 젊은 층의 호응까지 끌어내며 기록에 기록을 거듭하며 일각에서는 <명량>이 관객 수 1500만을 넘어 2000만까지 갈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는다. 이처럼 한 순간에 꿈의 영화가 돼버린 영화의 흥행엔 최민식의 역할이 주요했다.
 
그는 이순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난중일기>를 꺼내들어 작품에 몰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 역할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심을 잃지 않고 이순신역을 지탱했다. 노력이 곧 영화 흥행과 이어졌고, 결국 생에 최초 ‘1000만 배우’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리더십 부재 현실에 민심 흔든 영웅 연기
관객 수 1500만 돌파…끝나지 않은 신기록
 
지난 20일엔 최민식의 할리우드 데뷔작 <루시>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됐다. 이날 뤽 베송 감독은 최민식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재능이다. 존경했던 배우고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다. 거절했더라면 내가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배우를 선택했을 것이다”라는 살벌한 농담과 함께 그를 칭찬했다. 그러자 최민식은 “이 작품을, 살기 위해 출연했다”고 응수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또 “섭외를 받고 ‘한길을 꾸준히 가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출연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하며 할리우드 진출 소감을 전했다.
 
언어적 장벽에 대한 질문에 최민식은 “언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위협적인 감정으로 대사를 했을 때 상대 배우가 잘 받아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말은 안 통해도 교감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짜릿했다”고 답했다. 최민식은 100% 한국어로 악역을 소화했다. 최민식은 뤽 베송 감독과 작업을 진행하면서 영화 현장과 영화인은 똑같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전했다.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프로페셔널한 건 비슷했다는 것이었다. 
 
최민식의 할리우드 데뷔작 <루시>는 평범한 삶을 살던 주인공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가 어느 날 우연히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두뇌와 육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최민식은 이순신을 벗고 다시 악당 미스터장 역을 소화했다. <명량>의 상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루시>가 바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루시>는 이미 북미 박스오피스 1위와 더불어 극장 수입 1억 달러를 돌파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북미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최민식은 <루시>를 올 추석 한국에서 선보인다. <명량>에 이어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할리우드 진출
노력의 결실
 
이날 최민식은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아이스버킷챌린지(루게릭병 환자 돕기 캠페인)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에 “준수야 루시 홍보하다가 좋은 일에 동참한다! 고맙다! 루게릭 환자 돕기 챌린지! 다음 지목은 김한민 감독, 조진웅, 류승룡, 정재야 경구야 동참해라”란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 최민식은 욕실에서 얼음물을 뒤집어 쓰고 있다.
 
최민식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상업영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출연한 작품은 <신세계>(2013) <범죄와의 전쟁>(2012)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악마를 보았다>(2010)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9) <주먹이 운다>(2005) <친절한 금자씨>(2005) <꽃피는 봄이 오면>(2004) <올드보이>(2003) <취화선>(2002) <파이란>(2001) <해피엔드>(1999) <쉬리>(1999) <조용한 가족>(1998) <넘버3>(1997) 등이다. 최민식은 박찬욱 감독 영화에 자주 출연해왔다. 그러다 <악마를 보았다>를 시작으로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명량> 등 상업영화를 선택했다.
 
‘최민식’ 하면 자동적으로 영화 <올드보이>가 연상된다. 2002년 개봉한 <올드보이>는 기존 스릴러들과는 달리 충격적인 반전으로 당시 파란을 일으켰다. ‘군만두’로 관객 수 330만명을 동원했다. 이후 <친절한 금자씨>는 311만명, <신세계>는 468만명, <범죄와의 전쟁>은 472만명을 기록했다.
 
‘명불허전’ 이제는 할리우드 스타
최민식 신드롬 어디까지 이어지나
 
최민식은 한때 연출에 뜻을 뒀으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그는 뛰어난 연기력을 보이며 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최민식의 연기생활은 단역을 맛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젊은 배우들이 자신의 재능을 한껏 살리는 작품으로 유명했던 연극 <에쿠우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 박종원 감독의 데뷔작 <구로 아리랑>(1989)에 단역으로 출연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연극계에 뛰어들어 연극배우 생활을 했다. 영화나 TV에서는 낯선 얼굴이었지만 연극계에서는 잔뼈가 굵었다.
 
이후 1989년 KBS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휘향의 아들(극중 별명 ‘꾸숑’) 역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에서 보인 거친 이미지는 한동안 최민식의 상징이 될 것이라 여겨졌으나 이후 변신을 시도해 ‘거칠기는 한데 덜 떨어진 동네 날건달 아저씨’로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폐인스러운 몰골까지도 넘나들면서 점차 사람들의 머릿속에 반항적인 ‘꾸숑’의 모습을 서서히 지우는 데 성공했다.
 
 
94년 MBC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는 상경해 해맑게 생활하는 순박한 시골총각 박춘섭 역할을 맡아 김홍식(한석규)과 함께 2류를 꿈꾸는 3류 인생 연기를 펼쳤다. 이때 찍은 전설적인 광고가 바로 운지천이다. 그리고 다음해인 95년에 MBC에서 방영한 <제4공화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역할을 연기했다. 96년엔 드라마 <그들의 포옹> 촬영 중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연기를 쉬기도 했다. 당시 부상 후유증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모든 캐릭터
소화 가능
 

이후 97년 영화 <넘버 3>를 통해 스크린에 정식 데뷔해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3류 검사 마동팔 역으로 다시 돌아와 그 다음해인 1998년,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에서 그의 특기인 어수룩한 삼촌 역을 맡았다. 그리고 <서울의 달>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한석규와 함께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 최종보스인 북한 특수 8군단 박무영 소좌 역할로 등장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서울의 달>에서 맡은 순박하고 부지런한 청년의 느낌이었던 최민식은 이 영화로 그동안 주목을 받아온 주연 한석규를 넘어 큰 관심을 받게 됐다. 그는 조연급 캐릭터에서 순식간에 주연을 넘어, 그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95년 <태백산맥>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김갑수에 이은 두 번째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개봉한 <해피엔드>에서 무력한 중년남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2001년 <파이란>에선 지방 삼류 건달 똘마니인 이강재 역을 맡아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최민식은 그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2002년 <취화선>에선 오원 장승업 역을 맡아 혼란스런 자아를 갖고 있는 화가로 등장해 “야! 이 개자식들아!”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최민식의 사진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져 ‘짤방(사진)’이라는 신조어로 강림하기도 했다.
 
2003년 <올드보이>에서는 오대수 역을 맡아 복수에 굶주린 짐승 같은 연기를 펼치며 남우주연상으로 그랜드 슬램에 올랐다. 당시 군만두를 보면 최민식이 떠오를 정도로 <올드보이>의 파급력이 대단했다. 이후 2010년 <악마를 보았다>에선 잔인무도한 연쇄살인범 역을 맡아 소름돋는 연기를 펼쳐 감독들이 수여하는 디렉터스 컷 어줘즈 시상식에서 남자주연상을 받았다.

영화계 이끈
천의 얼굴
 

사실 <명량> 이전까지 최민식에게 1000만 영화는 없었다. 그러나 매 작품마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하며 폭풍 연기력을 선보였다. <신세계>의 베테랑 형사 강과장, <범죄와의 전쟁>의 반달(민간인도 건달도 아닌)  최익현,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까지 다양한 작품 속에서 늘 강렬한 캐릭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금의 한국영화계를 이끈 주역 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때 최민식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옥관 문화훈장을 반납하며 항의의 뜻을 보여 주목을 받았었다. 또한 최민식은 영화계 인사들과의 친분 관계가 좋은 편으로 알려진다. 
 
 
<khlee@ilyosisa.co.kr>
 

[최민식 대표작]
 
<넘버 3>(1997)
<조용한 가족>(1998)
<쉬리>(1999)
<해피엔드>(1999)
<파이란>(2001)
<취화선>(2002)
<올드보이>(2003)
<꽃피는 봄이 오면>(2004)
<친절한 금자씨>(2005)
<주먹이 운다>(2005)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9)
<악마를 보았다>(2010)
<범죄와의 전쟁>(2011)
<신세계>(2012)
<명량>(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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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