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화'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전말

7인의 10대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88년 일본 열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가출한 여고생이 청소년들에게 납치돼 갖은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숨진 것이다. 가해자들은 숨진 여고생 시신 위에 시멘트를 반죽해 붓는 잔혹함을 보였다. 7명의 무리들이 이처럼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남성들과 일부 여중생들이 가출한 여고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몸에 끓는 물을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와 시멘트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창원지검은 올해 5월 초 김해지역 고교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해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A(15·중3)양, B(15·중3)양, C(14·중학 중퇴)양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 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과 함께 범행한 이모(25)씨와 또 다른 이모(24)씨, 허모(24)씨, 또 다른 D(15·중학 중퇴)양 등은 다른 범죄로 대전지검에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극악무도 만행
시신훼손 수법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3월15일께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윤양이 김씨를 따라 가출해 부산의 한 여관에서 함께 지냈다. 김씨는 ‘조건 만남’ 대상을 물색해 윤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성매매를 강요해서 챙긴 화대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던 중 그달 29일 윤양의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한 사실을 알게 돼 집으로 돌려보냈다. 피고인들은 윤양을 순순히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고민에 빠졌다. 윤양이 강제로 성매매 한 사실을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에 빠진 피고인들은 이튿날 윤양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윤양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끝에 윤양을 발견했다. 이들은 윤양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울산의 한 모텔로 끌고 갔고 또 다시 성매매를 강요했다. 또한 윤양이 모텔 내 컴퓨터로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위치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윤양을 마구 구타하기도 했다. 피고인 7명은 이때부터 윤양을 감금하고 조를 짜서 감시와 학대를 이어갔다. 
 

여중생들이 모텔로 납치한 뒤 성매매 강요
화대로 생활…‘집에 간다’하자 고문 시작
 
이씨 등 남성들은 윤양과 여학생들을 돌아가며 싸움을 시키고는 이를 관람했다. 7명 모두 폭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윤양에게 선풍기와 에프킬라 등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수법은 매우 잔인했다.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윤양에게 마시게 하도록 한 후 윤양이 토해내면 그것을 다시 핥아먹도록 시켰다.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던 윤양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좀 뿌려달라”고 부탁하자 한 명은 윤양의 팔에 팔팔 끓는 물을 붓는 엽기적인 짓을 했다. 윤양의 몸은 화상으로 인해 온 몸 곳곳에 물집이 생겨 피부의 껍질이 벗겨졌다. 윤양의 몸은 날이 갈수록 만신창이가 됐고, 물도 삼키기 힘들었던 윤양이 힘을 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면 학대의 크기는 배가 됐다. ‘앉았다 일어서기’ 100회를 시키거나 ‘구구단 외우기’ 등을 시키며 학대를 즐겼다. 괴롭히다가 지치면 돌아가면서 폭력을 퍼부었다.
 
이들 중 한 남성이 윤양에게 “죽으면 누구를 데려갈 것이냐”고 물어보고 윤양이 답을 하면 지목된 여학생들이 보폭폭행을 했다. 이 중 한 여학생은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려치기도 했다.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윤양은 결국 4월10일 오전 0시30분, 대구의 한 모텔 인근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서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을 거뒀다. 쓰러져 있는 윤양을 발견한 피고인들은 범죄를 숨기기 위해 윤양의 시신을 산에 묻기로 결심했다.
 
끓는 물 붓고 무차별 폭행
얼굴에 기름 붓고 불 붙여
 

다음 날 11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과수원으로 향했다. 이들 중 남성 일행 3명은 완전범죄를 강조하면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죽은 윤양의 얼굴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3일 후, 범행 발각을 걱정하는 남성 3명과 여학생 2명이 경남 창녕의 한 야산에 모여 시멘트를 반죽해 윤양의 시신 위에 붓고 돌멩이와 흙으로 암매장했다.
 
또한 20대 피고인 중 일부는 윤양을 매장한 후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들은 조건만남을 빙자해 40대 남성을 모텔로 유인한 후 조건만남을 미끼로 돈을 뜯으려다 이 남성이 자신들을 ‘꽃뱀’이라 의심하며 반항하자 둔기로 내려쳐 살해했다. 현재 가해 여중생에 대한 1심 재판은 창원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행수법이 잔혹해 이들에 대해 법정최고형을 구형하는 등 엄벌에 처할 방침”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가해 여학생 변호인 측은 “여학생 가운데 일부도 지난해 11∼12월 가해 남성 중 2명에 붙들려 조건만남을 강요받았다”면서 “가해 여학생 2명이 당한 범죄수법은 숨진 윤양이 당한 수법과 유사하다”고 주장해 재판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 짜서 감금하고
감시 학대 이어가
 
지난 5일 피해자 윤양의 아버지 윤모(49)씨는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익명으로 출연해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윤씨에 따르면 3월15일 가출한 윤양은 3월29일 집에 잠시 돌아왔다. 가해자들이 윤양에게 집에 돌아가 안심시키고 다시 나오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이날 윤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딸은 이미 가해자들에게 끌려간 뒤였다. 3월30일 오전 11시10분쯤 본 딸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윤씨는 “딸이 집에 왔다 가고 나서 마음이 더 불안했다. 경찰에 찾아 달라고 많이 매달렸지만 경찰도 수사 패턴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제가 들은 바로는 단순 가출로 수사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실정으로 그런 상황은 단순 가출로밖에 수사를 안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사만 제대로 됐으면 우리 딸을 좀 일찍 찾지 않았을까 한다. 경찰을 많이 원망했다”고 전했다. 윤씨는 피고인 20대 3명에 대해 “전과가 25범으로 화려하고 악랄한 놈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윤씨는 잔혹하게 살해돼 생을 마감한 딸을 그리워하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고 있다.
 
같은 날 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간은 특정 권위를 가진 사람이 지속해서 가혹행위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면 행위가 사망에 이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따라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표 소장은 이를 뒷받침하고자 1960년대 심리학자 밀그램의 일반인을 상대로 진행한 권위와 복종에 관한 실험을 언급했다.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지시하면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며 업무가 끝나면 4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최고 450볼트까지 고압 전기충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도 몰라보게 매장전
얼굴에 시멘트까지 뿌려 
 
표 소장은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가해 여학생들에 관해 “훨씬 나이가 많고 사회경험이 많은 20대 남성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집단생활을 했다”며 “이번 가해자 중 20대 중반의 남성 3명을 제외한 15살 여중생 4명의 경우 피해자이면서, 또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중단도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폭행에 가담한 가해자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표 소장은 “살인죄 적용 자체는 성년, 미성년 구분이 없다”면서 “소년법에서 미성년자는 정상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 중 20대 남성과 10대 여학생들의 형량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1988년 일본에서 발생한 ‘콘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과 수법 및 잔혹성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더 충격을 준다. 당시 미야노 히로시(당시·18), 오구라 유즈루(당시·17), 미나토 노부하루(당시·16), 와타나베 야스시(당시·17)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여고생 후루타 준코(당시·16)를 감금하고 납치해 미나토 노부하루의 자택 2층 거실서 40여일간 감금했다.

2014 한국판
콘크리트 살인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강간과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고 결국 후루타 준코는 사망했다. 이후 89년 1월5일 사망을 눈치 채고 시체 처리를 고민하던 끝에 가해자들은 사체를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의 한 매립지에 유기했다. 시신을 은폐한 뒤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매립지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같은해 3월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한 강간·절도 등의 혐의로 소년감호소에 보내진 가해자의 진술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공개돼 열도를 충격에 빠트렸다. 
 

가해자 중 주범 네 명은 형사 처분의 근거가 상당해 가정재판소에서 검찰청으로 송치돼 형사 재판에 회부됐다. 도쿄 고등재판소는 이 중 리더 격인 미야노 히로시에게 징역 20년, 오구라 유즈루, 미나토 노부하루, 와타나베 야스시에게 각각 징역 5년이상 10년 이하, 징역 5년 이상 9년 이하, 징역 5년 이상 7년 이하에 처했다. 이후 200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 <17세, 악의 이력서>가 출판됐고, 다음 해인 2004년 영화 <콘크리트>가 개봉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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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