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화'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전말

7인의 10대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88년 일본 열도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한국에서도 발생했다. 가출한 여고생이 청소년들에게 납치돼 갖은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숨진 것이다. 가해자들은 숨진 여고생 시신 위에 시멘트를 반죽해 붓는 잔혹함을 보였다. 7명의 무리들이 이처럼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남성들과 일부 여중생들이 가출한 여고생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몸에 끓는 물을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와 시멘트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암매장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창원지검은 올해 5월 초 김해지역 고교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훼손해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A(15·중3)양, B(15·중3)양, C(14·중학 중퇴)양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 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들과 함께 범행한 이모(25)씨와 또 다른 이모(24)씨, 허모(24)씨, 또 다른 D(15·중학 중퇴)양 등은 다른 범죄로 대전지검에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극악무도 만행
시신훼손 수법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3월15일께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윤양이 김씨를 따라 가출해 부산의 한 여관에서 함께 지냈다. 김씨는 ‘조건 만남’ 대상을 물색해 윤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성매매를 강요해서 챙긴 화대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던 중 그달 29일 윤양의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한 사실을 알게 돼 집으로 돌려보냈다. 피고인들은 윤양을 순순히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고민에 빠졌다. 윤양이 강제로 성매매 한 사실을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에 빠진 피고인들은 이튿날 윤양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윤양이 나오기만을 기다린 끝에 윤양을 발견했다. 이들은 윤양의 팔을 붙잡고 강제로 울산의 한 모텔로 끌고 갔고 또 다시 성매매를 강요했다. 또한 윤양이 모텔 내 컴퓨터로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위치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윤양을 마구 구타하기도 했다. 피고인 7명은 이때부터 윤양을 감금하고 조를 짜서 감시와 학대를 이어갔다. 
 

여중생들이 모텔로 납치한 뒤 성매매 강요
화대로 생활…‘집에 간다’하자 고문 시작
 
이씨 등 남성들은 윤양과 여학생들을 돌아가며 싸움을 시키고는 이를 관람했다. 7명 모두 폭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윤양에게 선풍기와 에프킬라 등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수법은 매우 잔인했다.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윤양에게 마시게 하도록 한 후 윤양이 토해내면 그것을 다시 핥아먹도록 시켰다.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던 윤양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좀 뿌려달라”고 부탁하자 한 명은 윤양의 팔에 팔팔 끓는 물을 붓는 엽기적인 짓을 했다. 윤양의 몸은 화상으로 인해 온 몸 곳곳에 물집이 생겨 피부의 껍질이 벗겨졌다. 윤양의 몸은 날이 갈수록 만신창이가 됐고, 물도 삼키기 힘들었던 윤양이 힘을 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면 학대의 크기는 배가 됐다. ‘앉았다 일어서기’ 100회를 시키거나 ‘구구단 외우기’ 등을 시키며 학대를 즐겼다. 괴롭히다가 지치면 돌아가면서 폭력을 퍼부었다.
 
이들 중 한 남성이 윤양에게 “죽으면 누구를 데려갈 것이냐”고 물어보고 윤양이 답을 하면 지목된 여학생들이 보폭폭행을 했다. 이 중 한 여학생은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려치기도 했다.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윤양은 결국 4월10일 오전 0시30분, 대구의 한 모텔 인근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서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을 거뒀다. 쓰러져 있는 윤양을 발견한 피고인들은 범죄를 숨기기 위해 윤양의 시신을 산에 묻기로 결심했다.
 
끓는 물 붓고 무차별 폭행
얼굴에 기름 붓고 불 붙여
 

다음 날 11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과수원으로 향했다. 이들 중 남성 일행 3명은 완전범죄를 강조하면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죽은 윤양의 얼굴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3일 후, 범행 발각을 걱정하는 남성 3명과 여학생 2명이 경남 창녕의 한 야산에 모여 시멘트를 반죽해 윤양의 시신 위에 붓고 돌멩이와 흙으로 암매장했다.
 
또한 20대 피고인 중 일부는 윤양을 매장한 후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들은 조건만남을 빙자해 40대 남성을 모텔로 유인한 후 조건만남을 미끼로 돈을 뜯으려다 이 남성이 자신들을 ‘꽃뱀’이라 의심하며 반항하자 둔기로 내려쳐 살해했다. 현재 가해 여중생에 대한 1심 재판은 창원지법에서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행수법이 잔혹해 이들에 대해 법정최고형을 구형하는 등 엄벌에 처할 방침”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가해 여학생 변호인 측은 “여학생 가운데 일부도 지난해 11∼12월 가해 남성 중 2명에 붙들려 조건만남을 강요받았다”면서 “가해 여학생 2명이 당한 범죄수법은 숨진 윤양이 당한 수법과 유사하다”고 주장해 재판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 짜서 감금하고
감시 학대 이어가
 
지난 5일 피해자 윤양의 아버지 윤모(49)씨는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익명으로 출연해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윤씨에 따르면 3월15일 가출한 윤양은 3월29일 집에 잠시 돌아왔다. 가해자들이 윤양에게 집에 돌아가 안심시키고 다시 나오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이날 윤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딸은 이미 가해자들에게 끌려간 뒤였다. 3월30일 오전 11시10분쯤 본 딸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윤씨는 “딸이 집에 왔다 가고 나서 마음이 더 불안했다. 경찰에 찾아 달라고 많이 매달렸지만 경찰도 수사 패턴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는 “제가 들은 바로는 단순 가출로 수사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실정으로 그런 상황은 단순 가출로밖에 수사를 안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사만 제대로 됐으면 우리 딸을 좀 일찍 찾지 않았을까 한다. 경찰을 많이 원망했다”고 전했다. 윤씨는 피고인 20대 3명에 대해 “전과가 25범으로 화려하고 악랄한 놈들”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윤씨는 잔혹하게 살해돼 생을 마감한 딸을 그리워하며 피고인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호소하고 있다.
 
같은 날 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간은 특정 권위를 가진 사람이 지속해서 가혹행위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면 행위가 사망에 이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따라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표 소장은 이를 뒷받침하고자 1960년대 심리학자 밀그램의 일반인을 상대로 진행한 권위와 복종에 관한 실험을 언급했다.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도록 지시하면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며 업무가 끝나면 4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최고 450볼트까지 고압 전기충격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도 몰라보게 매장전
얼굴에 시멘트까지 뿌려 
 
표 소장은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의 가해 여학생들에 관해 “훨씬 나이가 많고 사회경험이 많은 20대 남성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집단생활을 했다”며 “이번 가해자 중 20대 중반의 남성 3명을 제외한 15살 여중생 4명의 경우 피해자이면서, 또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중단도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폭행에 가담한 가해자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표 소장은 “살인죄 적용 자체는 성년, 미성년 구분이 없다”면서 “소년법에서 미성년자는 정상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 중 20대 남성과 10대 여학생들의 형량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1988년 일본에서 발생한 ‘콘크리트 여고생 살인사건’과 수법 및 잔혹성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더 충격을 준다. 당시 미야노 히로시(당시·18), 오구라 유즈루(당시·17), 미나토 노부하루(당시·16), 와타나베 야스시(당시·17)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여고생 후루타 준코(당시·16)를 감금하고 납치해 미나토 노부하루의 자택 2층 거실서 40여일간 감금했다.

2014 한국판
콘크리트 살인
 
이들은 이 기간 동안 강간과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고 결국 후루타 준코는 사망했다. 이후 89년 1월5일 사망을 눈치 채고 시체 처리를 고민하던 끝에 가해자들은 사체를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의 한 매립지에 유기했다. 시신을 은폐한 뒤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매립지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같은해 3월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한 강간·절도 등의 혐의로 소년감호소에 보내진 가해자의 진술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공개돼 열도를 충격에 빠트렸다. 
 

가해자 중 주범 네 명은 형사 처분의 근거가 상당해 가정재판소에서 검찰청으로 송치돼 형사 재판에 회부됐다. 도쿄 고등재판소는 이 중 리더 격인 미야노 히로시에게 징역 20년, 오구라 유즈루, 미나토 노부하루, 와타나베 야스시에게 각각 징역 5년이상 10년 이하, 징역 5년 이상 9년 이하, 징역 5년 이상 7년 이하에 처했다. 이후 200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 <17세, 악의 이력서>가 출판됐고, 다음 해인 2004년 영화 <콘크리트>가 개봉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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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