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축구화 수선 50년 외길 김 철

“차범근 280, 안정환 260…” 태극전사 발사이즈 ‘줄줄’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서울 동대문운동장 뒤편 골목에는 축구화를 수선하는 가게가 있다. ‘금성축구화’간판 아래 3평 남짓한 가게는 축구화로 빼곡했다. 이곳 주인은 김철(68)사장. 그는 50년 동안 이 작은 골방 안에 자신을 가둬 축구화만 손봤다.


처음 금성축구화를 찾아갔을 때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말없이 축구화 밑창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OB전(은퇴한 축구선수들의 경기)을 앞두고 선수들이 맡겨놓은 축구화가 많다며 바쁘다고 다음에 오라고 했다.

뛰는 스타일 꿰뚫어

다시 찾아가 김철 사장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앉아있는 곳 주변은 축구화 더미로 가득했다. 켜켜이 쌓여있는 축구화를 보며 그가 말했다.

“차범근 280, 황보관 265, 안정환 260, 정환이 축구화는 뽕(스터드: 축구화 밑창 뾰족한 부분)이 잘 빠져서 믹스 작업(메꾸는 작업)을 자주 했어. 홍명보 축구화는 작아서 4켤레 봐줬고, (이)근호랑 지금 영국 가있는 (김)보경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맡겼지. 옛날 축구하던 양반들은 다 여기에 맡겼어.”

그의 입에서 태극전사들의 발사이즈가 줄줄 쏟아져 나왔다. 축구화는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다. 유니폼과 양말 등은 대표팀 후원 업체가 제공한 것을 똑같이 입어야 하지만 축구화는 선수별로 각 브랜드를 따로 계약한다. 축구화에만 유독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은 선수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드리블과 패스, 슈팅 등 선수들의 모든 플레이는 공과 직접 맞닿는 축구화를 통해 시작된다. 많은 선수들의 축구화가 그의 손에서 마무리됐다.


그는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에 금성축구화를 연다. 자정이 다 돼서야 일과를 끝낸다.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주중에 일하는 직장인, 학생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쉬지 않고 일하지만 축구화는 일주일에 한 다스(40개)만 받는다. 하루 8켤레 정도를 손보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당일 수선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 이상은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축구화는 당일 수선이 없어. 무조건 접수하고 맡겨야 해. 신발 하나에 작업과정만 40가지야. 다들 10문7(과거 성인남자들이 ‘발에 딱 맞다’고 표현한 말)이면 좋겠지만 사람마다 발모양이 다르잖아. 어떤 사람은 발볼이 넓고, 어떤 사람은 발가락이 튀어나오고, 어떤 사람은 왕발이야. 돈 벌자고 하면 하루에 수십 개도 더 할 수 있어. 하루에 많이 못 봐도 제대로 해야지”

축구선수 꿈꾸다 접고
16세 때부터 뚝딱뚝딱

축구화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브랜드에서 대량생산된다. 대부분 치수는 5단위로 규격화돼 있다. 선수들은 자신의 발사이즈와 대강 맞는 사이즈의 축구화를 골라 맞춰 신는다. 마지막 단계는 김 사장에게 맡긴다. 김 사장은 축구화만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축구화만 봐도 발 모양이 나와. 아 이 사람은 축구화 신는 내내 발볼이 작아서 아팠겠구나. 이 사람은 신발이 헐거워서 불편했겠다. 선수들도 어떤 스타일로 플레이하는지 알 수 있어. 자주 뛰는 선수는 신발 앞창이 금방 닳아. 발뒤꿈치를 들고 뛰어다니니까. 오른발잡이인지 왼발잡이인지도 신발에 다 써 있어. 사람들은 주로 선수들이 쓰는 쪽 신발이 망가질 꺼라고 생각하는데, 반대편 신발이 더 망가져."

"예를 들어서 오른발로 공을 차면 왼발은 땅을 짚고 있으니까. 그런데 왼발이 너무 많이 닳으면 그것도 디딤발이 잘못된 거야. 자꾸 땅에 끌려서 닳는 거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고 말해줘. 딛는 연습 많이 하라고.”

각종 스포츠브랜드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선수들 축구화만 수선하는 방식으로 계약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선수들 축구화만 수선하면 편하겠지. 선수들 축구화는 협찬 받아서 거의 새 거야. 깨끗해서 고치기도 편해.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그런 목적으로 수선하게 되면 기업에 종속이 돼버린다. 내 이름만 걸었을 뿐 내 맘대로 못 고쳐."

"기업에서 원하는 대로만 고쳐 줘야 해. 여태 축구화 수선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것도 다 못하게 할 테니까. 이런 건 축구화 발전에 도움이 안 돼. 그냥 이름만 따겠다는 거잖아. 무엇보다 나는 선수 말고 일반인들 축구화 고쳐주는 게 좋아. 군인들, 학생들, 직장인 동호회 사람들이 가져온 축구화 고쳐주는 데 보람을 느껴. 망가지고 더러워진 축구화를 깨끗하게 고쳐서 돌려보낼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스포츠 브랜드서 일하자 제의 거절
동대문운동장 뒷골목 3평 가게 주인장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부령군이다. 그는 한때 축구선수를 꿈꿨다. 그러나 그에게 축구는 사치였다.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국전쟁 끝에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는 작은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필이면 집 앞에 스포츠신발공장이 있었다.

“작은 어머니가 '공부할래, 기술 배울래?' 묻더라고. 그땐 배고프니까 기술 배운다고 했지. 신발 공장에서 역도화, 레슬링화 온갖 스포츠신발을 겪었어.”

포인트는 중심잡기

그에겐 길이 없었다. 열여섯 나이에 그는 신발 고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길 없는 길을 50년 홀로 걸었다. 오랜 세월 축구화만 봤다. 문득 돌아보니 장인이 되어 있었다. 이루지 못한 꿈은 다르게 이뤄졌다.

“축구화는 중심이야. 뽕(스터드)하나만 떨어져도 뒤뚱거려서 못 뛰지. 중심 못 잡으면 불량품이야. 사는 거랑 똑같아. 다 중심잡기지”

 

<dklo216@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