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거함 새누리호 키 잡은 김무성 대표

그가 누른 건 서청원이 아닌 박근혜였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양강구도였던 새누리당 당권경쟁에서 비주류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5선의 김무성(63) 의원이 압도적인 표차로 서청원 후보를 꺾고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됐다.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고 공언했다. ‘새누리호’ 선장이 된 김 대표가 앞으로 어떤 항해를 보일지 주목된다.

 
지난 14일 새누리당 신임 대표에 당내 비주류 대표격인 5선의 김무성 의원이 선출됐다. 김 대표와 함께 서청원 의원, 김태호 의원, 이인제 의원 순으로 득표해 새누리당 차기 지도부를 구성하게 됐다. 여성 최고위원 몫으로는 김을동 의원이 지도부에 입성했다. 

압도적 승리
당 혁신 강조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제3차 전당대회를 열고 대표 최고위원을 비롯해 5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임기 2년의 이번 지도부는 2016년 7월까지 집권당을 이끌면서 위태로운 박근혜정부 후반기를 뒷받침하게 된다. 또한 정부와 함께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국가혁신 작업을 추진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김 대표는 일반·책임당원, 대의원, 청년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투표(70%)와 여론조사(30%) 결과를 합산한 결과 총 12만4757표의 유효표 가운데 5만2706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대표 자리를 놓고 김 대표와 치열하게 경쟁해 온 서청원 의원은 3만8293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태호 의원이 2만 5330표로 3위, 이인제 의원이 2만 782표로 4위를 각각 차지했다. 
 
김을동 의원은 득표에서는 1만4590표로 6위에 그쳤지만 5위 득표자 가운데 여성이 없을 경우 남성 5위 후보 대신 여성후보자 중 최다득표자를 최고위원으로 선출하는 여성 배려 조항에 따라 홍문종 의원 (1만6629표) 대신 선출직 최고위원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었다.
 
홍 의원을 비롯해 김상민 의원(3535표), 박창달 전 의원(3293표), 김영우 의원(3067표)은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직전 황우여 대표 체제의 새누리당 지도부가 친박계 일색의 ‘박근혜 대통령 친정체제’였던 데 반해 이날 선출된 지도부에서는 대표를 비롯해 김태호 의원 등 당 외각에 머물던 비주류의 약진이 두드러져 향후 새로운 당청관계의 수립이 시도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청원 의원과 함께 출마한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마저 탈락해 친박 주류로서는 서 의원 홀로 지도부에 포진한 셈이 됐다. 선출직 최고위원과 함께 지도부를 구성하는 이완구 원내대표도 지난 5월 친박 주류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지만 친박 핵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이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인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친이계 출신이다. 지역별로는 김무성 대표와 김태호 의원이 PK출신이고, 서청원·김을동 의원은 수도권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이인제 의원은 충청권 대표주자다.

정치 30년
드디어 대장
 
김 대표는 이날 수락연설에서 “오늘의 영광을 무거운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약속대로 제 온몸을 던지겠다”며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저의 온 몸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강한 새누리당과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그렇게 해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존경하는 서청원 선배님을 포함해 이번 전대에 나오신 모든 후보님들이 힘을 모아 주셔야 가능한 일”이라고 호소했다. 김 대표는 취임 첫날 “친박·비박은 없다”고 선언했다. 스스로 머슴이라 칭하며 몸도 한껏 낮췄다. 김 대표는 16일 취임 후 국회에서 당 회의를 처음 주재하면서 소통을 강조하며 여야지도부와 자주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혁신’을 위해 여당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출신인 김 대표는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김 대표는 1976년 동해제강 상무가 되었다가 전무로, 82년에는 삼동산업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김영삼의 측근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했다. 그는 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인됐고 86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로도 재직했다.
 
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문제를 연구한 고 임종국의 유지를 기리는 민족문제연구소와는 다른 곳이다. 후자는 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후에 같은 이름으로 개명했다. 김 대표는 85년 통일민주당 창당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친박→탈박→복박→비박’정치역정 주목
‘위풍당당’여의도 정가 핵심인물로 부상
 
87년 통일민주당 13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이 되었으나 후보단일화 실패로 인해 김영삼은 2위로 낙선했다. 그 밖의 경력으로는 87년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당 기획조정실 차장, 89년 국회행정실장 등을 지냈고 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 김덕룡 등을 따라 민주자유당으로 건너와 민자당 의사국장, 의원국장 등을 지냈다.
 
92년에는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통령후보 추대대책위원회 총괄국장을 맡아 김영삼 경선후보의 옆을 지켰다. 이후 9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내고 94년 제48대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이렇게 김영삼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김 대표는 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으로 출사표를 던져 부산 남구을에서 당선됐다. 15대 국회 당시 그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당내 직위로는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총무와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다.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에 재선되고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했다. 2004년에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그리고 그해 17대 국회의원에 재선됐다. 200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이 되었다가 후일 민추협동지회 회장으로도 추대됐다. 같은 해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2004년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에 발탁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김 대표는 2007년 17대 대선 경선 당시 박 대통령을 도왔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당내에서 ‘친박 좌장’으로 통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정치인생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김 대표는 친박계 핵심으로 낙인찍혀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친박 돌풍’을 일으키며 4선에 성공한 뒤 복당했다.

주가 오른
차기 대선주자
 
2009년에는 당 주류인 친이계가 ‘화합’을 내세우며 김 대표를 원내대표로 추대하려 했으나 당시 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반대했다. 이어 김 의원이 2009년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하면서 원안을 고수하던 박 대통령과 사실상 결별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김 의원을 향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릴 정도였다. 결국 김 의원은 친박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에서 탈박 인사로 몰려 낙천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전격적으로 ‘백의종군’을 택함으로써 낙천자들의 탈당 행렬을 막아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이를 기점으로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복원,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귀환했다. 당시에도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깔고 숙식을 해결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 행보로 대선 승리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2013년 4·24 재보궐 선거에서 부산 영도에 출마해 5선 의원으로 국회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김 대표는 유력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됐다. 같은 해 10·30 재보궐 선거를 통해 친박계 핵심인 서청원 의원이 복귀한 뒤 김 대표는 비박계 대표주자로 서 의원과 ‘친박 대 비박’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친박 몰락…뻔한 당청 불협화음
7·30 재보선 후 대탕평 예고
소외 받았던 인사들 기용 예상
 
치열한 경쟁 끝에 김 대표는 7·14 전당대회에서 서 의원을 압도적으로 꺾고 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당 안팎에서는 김 대표가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처럼 특유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당을 힘 있게 이끌 것이란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특히 김 대표가 ‘할 말을 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수평적 당청관계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새로운 지도자로 당선되며 여권 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김 대표의 집안 내력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선친에 이은 정치권 내 대표적인 부자 정치인인 데다 그의 가계는 정계 뿐 아니라 재계와 학계에까지 뻗어 있다.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는 전남방직그룹 창업자이자 회장으로 해방 직후 신한제분을 운영하고 대한해운공사 사장과 주 일본공사관 공사를 지냈다. 김 전 회장은 이승만 정권 시절 제5대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 전 회장은 민주당 원내총무(현재 원내대표)에까지 올랐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났다.
 
김 대표 역시 아버지처럼 2010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내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김 대표의 형은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으로,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전남방직 명예회장을 지냈다. 김 대표보다 20살 연상인 누나는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의 남편이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고 딸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현 회장이 김 대표의 외조카인 것이다.
 
김 대표의 자녀들도 유별나다. 김 대표는 부인 최양옥씨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김 대표의 딸 김현정씨는 최연소로 수원대 전임교수로 채용된 인물로, 최근 수원대 채용과정에 김 대표가 모종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당시 수원대는 사학비리 혐의를 받고 있어 총장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정감사를 한달 앞둔 작년 9월 수원대의 최연소 전임교수로 당시 만 30세였던 김씨가 임용됐다.

하청 정당 탈피
우선 과제 제시
 
이러한 점 때문에 수원대가 총장의 국정감사 증인채택을 막기 위해 김 대표의 딸을 특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에 김 대표는 딸이 정상적인 공모에 응모해 임용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원이 생기기도 전에 미리 교수를 채용하고 새롭게 채용한 교수와 기존의 교수가 1년 가까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지속됐다. 수원대 교수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9일 전당대회 출마선언에서 딸 특혜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딸이 영어 강의 능력이 있어 강사 생활을 충실히 했다. 채용은 학교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김 대표의 아들 김종민씨는 ‘고윤’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배우로 드라마 ‘아이리스2’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김 대표가 지난해 4·24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아들과 함께 선거유세를 하며 더욱 유명세를 탔다. 김 대표의 장인은 최치환 전 국회의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인 최 전 의원은 제5·6·7대 국회의원으로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 대한축구협회장 등을 지냈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 회사인 리얼미터가 지난 17일 밝힌 결과에 따르면 김 대표는 새누리당 내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4.5%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기록했다. 김 대표에 이어 2위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12.9%)가 차지했고 3위 정몽준 전 의원(8.7%), 4위 오세훈 전 서울시장(6.7%), 5위 남경필 경기도지사(6,1%)순이었다.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도 포함시킨 조사에서도 김 대표는 11.3%를 기록해 3위에 올랐다. 박원순 서울시장(18.5%),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11.5%)에 이은 것이다.
 
<khlee@ilyosisa.co.kr>
 

[김무성은?] 
 
▲부산 출생
▲서울 중동고 졸업
▲한양대 경제학과 학사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부경대 정치학 명예박사
▲동해제강 전무
▲삼동산업 대표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멤버(1984)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총무국장·기획조정실 부실장·국회행정실장
▲민주자유당 의사국장·의원국장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위 총괄국장(1992)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시서관·사정비서관
▲내무부 차관(1994)
▲제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제15∼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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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