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30년 가수로 살아온 최유나

“아파하는 사람들 위해 노래합니다”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가수 최유나의 음악은 기다림이다. 이 가수의 노래는 고약하다. 그의 목소리는 울부짖는 듯 절제됐다. 성인가요와 발라드의 경계선에 서 있는 최유나의 음악은 독보적이다. 그의 노래는 과거를 회상하게 하면서도 망각하게 만든다. 망각은 아픔을 치유해준다.

7일 뜨거운 오후, 파주에 있는 라이브카페 ‘흔적’을 찾았다. ‘흔적’은 가수 최유나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이 카페 분위기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깥 여름 날씨와는 상관없다는 듯 나 홀로 가을이었다. 이곳에서 최유나를 만나 가수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녀의 흔적

하얀 정장을 입고 커다란 귀걸이를 한 최유나는 화려한 듯 담백했고, 호탕한 듯 조용했다. 최유나는 자신의 음악을 닮아 있었다. 그는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로 대부분의 행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북, 순천 등 지방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났다.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합니다. 지방 공연을 다니면서 사회를 들여다보게 돼요. 지역 곳곳에서 우리 농민들, 의료원, 소방관 등을 만나거든요.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분들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아요. 제 노래가 열심히 사시는 분들에게 작으나마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유나는 올해로 데뷔한 지 31년차다. 84년 KBS <신인탄생>을 통해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신인탄생>은 지금으로 따지면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음악프로그램이다. <신인탄생>에서 40분 특집을 마련했을 정도로 최유나는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88년에는 드라마 주제곡 ‘애정의 조건’으로 주목받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 풀렸다. 승승장구할 날들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공백기는 길어졌다. 4년 후에서야 최유나는 ‘흔적’이라는 곡을 만났다. 그렇게 최유나의 진짜 음악 인생은 ‘흔적’부터 시작됐다.

기억할 수 있는 음악…흔적 남기고파
“노래는 3분 예술, 그안에 감동 줘야”

사실상 그는 ‘흔적’이 마지막 노래라고 생각했다. ‘흔적’을 부르고 나면 가요계를 떠나자고 마음먹었다. 가사 속 마지막 부분 ‘상처뿐인 흔적을’이라는 문구가 최유나는 두려웠다. 정말 상처만 남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최유나가 성인가요계에서 입지를 다지게 만든 결정적인 곡이 되었다. 그래서 ‘흔적’은 최유나에게 중요한 노래다.
 

“많은 분들이 ‘애정의 조건’을 사랑해주셨지만 ‘흔적’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곡입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흔적이라는 곡을 마지막으로 부르고 가요계를 떠나려고 했어요. 이 곡으로 마지막 평가를 받고, 안 되면 전공을 살려 다시 의상디자인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게다가 당시 서태지의 음악이 시작됐던 때였거든요. 모두가 말렸어요. 이런 성인가요를 누가 듣겠냐고. 저조차도 확신이 없었고요. 그런데 이 흔적이라는 노래는 저를 진짜 가수로 만들어줬습니다.”

최유나는 깨끗하고 절제된 성인음악을 추구한다. 도입부는 허스키한 중저음으로 부르고 고음에서는 비음을 쓴다. 성인가요라고 해서 무조건 꺾지 않는다. 최유나는 절제와 정확한 가사전달에 신경 쓴다. 앨범 녹음실에서도 쉽게 가지 못한다. 그래서 최유나의 노래는 모창이 어렵다.

“일단 무대에 오르면 편하게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편해야 관객도 편하니까요. 다만 가사 전달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노래는 3분 예술입니다. 가수는 그 3분 예술의 주인공이고요. 절대로 아무 생각 없이 불러서는 안돼요. 가사에 어떤 음을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굉장히 달라져요.”

그는 직접 노래를 불러 예시를 보였다. 자신의 곡을 표현하려다 자살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7집에 수록돼 있는 '반지' 가사 속 ‘강물에 반지를 던지면서 내 사전에 사랑이란 말은 없죠’. 이 부분을 표현하려고 새벽2시에 마포대교까지 갔다. 한강에 반지를 던지며 가사를 곱씹었다. 그때 지나가던 택시기사가 자살 시도로 오해하고 그를 말렸다고 한다.


그만큼 최유나는 남모르게 피나는 연습을 한다. 오랫동안 성인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최유나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시도했다. 최유나의 각각 앨범 속에는 그 나이대의 감성이 녹아 있다.

20대 최유나는 희망
30대 최유나는 간절
40대 최유나는 체념

‘첫정’과 ‘애정의 조건’을 불렀던 20대 최유나의 목소리는 간절하고 맑았다. 붙잡을까 기다릴까 수줍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30대에 불렀던 ‘흔적’이 기다리는 마음이었다면 40대 이후의 ‘초대’ ‘미워도 미워도’ 등에는 체념하는 마음을 담았다. 다가갈까 기다릴까 고민하지 않고 지켜보는 마음이다. 그만큼 성숙해지고 더 깊어졌다.

특히 그의 11집에는 MBC 음악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합류했던 편곡자가 참여했다. 미디엄 템포 곡으로 듣기 편하고 세련된 곡들이 담겼다. 발라드 형식의 성인가요로 기존의 트로트 음악 틀을 깨기 위한 시도였다. 
 

“곡을 선정할 때 저는 제일 먼저 멜로디를 먼저 들어봐요. 멜로디는 음악의 뼈대가 되니까요. 그 다음에 가사를 붙여봅니다.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편곡에 들어가는데, 상황에 따라 편곡과 가사 순서가 바뀔 때도 있어요. 성인가요는 세월이 지나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는 음악이라서 섬세하게 작업합니다.”

“그런데 최근 성인가요들은 어느새 너무 행사 위주로 가고 있어요. 돈벌이용, 행사위주로 나온 트로트음악은 성인가요를 퇴보시킵니다. 순간적인 즐거움만 주려다보니 단순한 음악이 나오는 거죠. 어떤 때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에요. 그런 음악들로 인해 성인가요가 ‘반짝’이라도 주목받는 것은 반갑지만 가벼운 음악으로 인식되는 것은 참 아쉬워요.”

기다림을 노래하는 최유나는 정작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제가 불같은 사랑을 했을 것 같다고들 하세요. 그런데 저는 사실 연애 자체에는 무심했어요. 다만 생각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우울하고 슬픈 음악에 끌렸나 봐요.”

시간을 노래한다

그녀는 과거를 노래하지만 미래를 향해 달려온 사람이었다. 열심히 달려왔기에 그의 과거는 더 소중했다. 시간의 의미를 알기에 과거를 잘 표현하는 가수가 됐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오랫동안 노래하며 살고 싶어요. 평생을 가수로 살아오신 패티김 선배님의 인생을 존경합니다. 먼 훗날 사람들에게 최유나라는 가수는 열심히 노래했던 사람. 따뜻했던 사람. 음악인으로서 자존심을 지켰던 사람. 그런 기억,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dklo216@ilyosisa.co.kr>

 


[최유나는?]

▲1984 KBS 신인탄생 데뷔
▲1985 1집 앨범 <첫정>
▲1988 KBS 드라마 주제가 <애정의 조건>
▲1992 <흔적>
▲1993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2001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수상
▲2012 11집 <미워도 미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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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