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3대째 가업 잇는 만리동 이발사 이남열

이건희 회장 불쑥 찾아와 “다듬어주세요”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서울역 뒤편 만리동 시장 골목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이발소가 있다. 하얀 글씨의 ‘성우이용원’ 간판은 오랜 세월을 버텨내고 있다. 그 안에서 이발사 이남열(65)씨가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사각사각 사각 사각’

성우이용원 안에서 들려오는 날렵한 가위 날이 스치는 소리. 이남열 이발사가 가위를 쓰는 소리는 경쾌했다.

무딘 삶을 깎는다

“왜 이발 일을 하게 됐냐고? 먹고 살기 바빴지 선택하고 그런 게 어딨어. 그리고 해본 일 중에 이발이 가장 정직한 기술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때는….”

이씨가 전통이발사의 길을 택한 이유는 생존 때문이었다. 성우이용원은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처음 문을 연 후 이씨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87년째 이씨의 외할아버지부터 아버지를 거쳐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우이용원의 이발요금은 수년 째 변하지 않았다. 이발소 안에 걸린 요금표에는 ‘조발(컷트) 1만원. 면도 9000원. 세발 3000원. 드라이 5000원. 중고생 컷트 8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손님은 하루에 10명만 받는다.

방금 들어온 손님의 머리에 이씨는 감자 가루를 발라 얼마만큼,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가늠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손에 익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다. 이씨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목수가 대패 날을 갈고, 주방장이 칼을 쓰고, 양복쟁이가 가위를 다루듯, 이발사는 가위와 칼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그게 이발사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씨의 손을 떠나지 않은 연장은 그의 손에만 달라붙는다. 이씨가 사용하는 빗은 30년이 넘었다. 자신이 정복한 4∼5종류의 가위로 이씨는 손님의 머리카락을 다룬다. 이씨는 “지금 쓰는 가위도 20년 정도 내 손가락에 맞췄다”며 “아무리 비싼 가위를 써도 기술 없는 사람이 쓰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가위의 날은 얇고 날렵했다. 가위 날을 제대로 가는 법을 알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날을 단순히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자를 수 있게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씨는 연장을 갈지 않았다. 좋은 기운을 받는 날 연장을 갈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연장을 갈려면 내공에 기가 빠지면 안된다”며 “그 정도로 내가 예민하다”고 웃었다.

이발이 끝나자 이씨는 손님의 뒷목과 구레나룻에 거품을 칠했다. 이씨는 “(거품을 내는 데 쓰는 솔은) 말꼬리로 만들어진 스위스산”이라며 “이게 오래됐어도 거품이 잘 나고 바를 때 부드러운 데 반해 요즘 나오는 솔들은 이렇게 빳빳하다”고 설명했다.

감각 익히는 데 35년 걸려
“아직 후계자 없어 걱정”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면서 첨단미용기계가 넘쳐나지만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삶을 추구한다. 휴대폰이 없는 그는 자신의 ‘아날로그 기술’ 철학에 대해 털어놨다.

“정전이 되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해. 다들 기계에 의지하니까. 그런데 나는 상관이 없어. 비가 오고, 전기 나가도 나는 손님이 오면 이발할 수 있거든.”

장인이발사가 생각하는 잘된 이발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머리다. 이씨는 “3개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머리가 잘 깎은 것”이라며 “그걸 깎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전통이발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거 성공하는 데 35년 걸렸다”며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 깎을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씁쓸해했다.

기본을 추구하는 전통 이발만이 가능한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이씨는 왼손의 힘을 강조했다. 오른손의 가위질을 받쳐주는 왼손 힘 조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왼손은 가위를 잡는 오른손보다 자주 아프고 고되다.

그는 경지에 오른 자신의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관리에도 철저하다. 이씨는 “35년 동안 담배 피우고, 고기도 먹었지만 이제 모두 끊었다”며 “지방질을 먹으면 손이 떨리는 걸 스스로 느낀다”고 말했다.

이발 기술에 대한 집념으로 인생을 쏟아 부은 이씨에게는 아직 후계자가 없다. “배울 놈에게만 가르칠 거다. 여기 들어오면 정신부터 가다듬어야 한다”고 그는 엄포를 놓았다.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청년들에게 이씨는 따끔한 충고를 날렸다. 그는 “서울대? 카이스트? 아무리 좋은 대학교 나오면 뭐하냐”며 “남의 종노릇을 하거나 남들 머리 짓밟고 올라서려고 그렇게 공부들을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작은 가게를 하더라도 사장이 낫다”며 “단돈 100만원을 벌어도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장인을 대우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이씨는 거듭 강조했다.

대기업에서 영입과 체인점을 열자는 제의도 들어왔지만 이씨는 모두 거절했다. 그는 “체인점을 하면 돈 있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고 해도 자본주의 논리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때 이발을 마친 손님이 일어섰다. “아이고 개운하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서울 약수동에서 왔다는 그는 5년째 단골손님이다. 그는 “다른 데서는 머리를 빨리 깎아줘도 한 달만 되면 금방 달라지는데 여기서 깎으면 한 달이 지나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자리를 떴다.

정재계 거물들 단골손님
“누구든 오는 순서대로”

전통이발을 그리워하는 정재계 인사들도 성우이용원을 다녀갔다. 거물급 인사들도 이씨에게서 이발을 받으려면 세면대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지난 2011년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씨의 이발소를 찾았다. 이씨는 “그 양반(이건희 회장) 밤에 조용히 이발하러 온 적이 있다”며 “한 신문에 나온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면서 ‘덕분에 오랜만에 전통 이발을 하고 가오’라는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노회찬 전 의원 또한 이씨의 오랜 단골손님이다.

그러나 성우이용원에서는 유명 인사들도 이씨에게는 머리카락을 자르러 온 손님일 뿐이다.

이씨는 “기업 회장이든 국회의원이든 교수든지 간에 여기 오면 모두 순서대로 이발 한다”며 “누가오든 머리스타일만 본다”고 말했다. 

이어 머리를 다듬기 위해 새벽열차를 타고 거제도에서 올라왔다는 한 중년남성이 순서를 기다렸다. 성우이용원에는 서울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머리를 깎기 위해 찾아온다.

왼손의 경지

이발소 거울 한쪽에는 시인이라는 한 단골손님이 쓴 시가 걸려 있었다.


‘만리동 언덕길 / 세월의 더께로 / 메마른 몸을 비튼 성우이용원…빛바랜 추억 사이로/ 세월이 흐른다.’

정지된 시간이 흐르는 이곳, 성우이용원에서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남열씨가 손님의 머리카락을 깎는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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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