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세월에 묻힌 도시풍경 '천태만상'

급변하는 시대…사람냄새가 지워진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시대가 변하면서 생활 속 풍경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구시대 유물로 느껴졌던 것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진화하면서 ‘신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라질 것 같았지만,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다시 재탄생한 우리 주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결혼정보회사의 시초는 결혼상담소였다. 1970년대부터 성행한 중매결혼은 대부분 결혼상담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결혼상담소 간판을 내건 초기에는 “오죽 못났으면 스스로 결혼 상대자를 구하지 못하고 결혼상담소에 의뢰하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서서히 인식이 바뀌어 결혼상담소를 찾는 발길이 급격히 잦아졌다.

[결혼상담소-결혼정보회사]
 
결혼상담소 신청자들의 남녀비율은 약 1대2 정도로 여자가 많은 편이었다. 상담소에 따라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4배나 많아 남자기근 현상을 빚기도 했다. 지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신청자들의 연령은 여자 22세부터 55세, 남자 25세부터 60세까지로 폭이 넓은 편이었지만, 여자 23세부터 26세, 남자 27세부터 33세까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결혼상담소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미혼이었다. 초기에는 본인보다는 부모가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혼상담소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후 ‘보따리 중매장’이란 묘한 직업이 생겼고, 이들은 유수 기업체의 젊은 엘리트 사원의 명단이 든 두툼한 수첩보따리를 들고 다방을 누비며 10명 정도씩 그룹을 지어 수시로 각종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매장이들이 몰려다니는 풍경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과거 성행했던 결혼상담소와 지금의 결혼정보회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성행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또한 중매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결혼정보회사는 1990년 중반, PC통신의 발달로 본격 등장했다. 2000년 8월부터는 결혼정보업이 자유업으로 바뀌어 사업자등록증만 제시하면 즉시 영업이 가능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만남을 주선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결혼정보업체는 500여 곳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듀오, 선우, 에코러스, 피어리, 듀비스 등 몇몇 업체는 수천에서 수만명씩의 회원을 거느리고 ‘중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시장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처럼 결혼정보업체가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변화다. 경쟁주의 속 개인주의 심화는 친분적 소개 문화의 쇠퇴를 불렀고, 결국 그 부분의 역할을 결혼정보 업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는 일종의 진입장벽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등급에 따라 자신의 점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 시 성격, 외모, 학벌, 직업,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도 중요하지만, 결혼 전 충분한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탁소-무인세탁소]
 
세탁소의 트렌드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세탁소 간판을 걸고 있지만 직원 자체가 없는 ‘무인세탁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셀프빨래방과 세탁편의점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무인세탁소는 고객들이 무인 락커에 세탁할 옷을 맡기면 전문 세탁 업소에서 이를 수거해 말끔히 세탁한 후 다시 락커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이런 무인세탁소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일반 세탁소는 영업시간이 한정돼 있어 맞벌이 가정에서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 때가 있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들이 무인세탁소를 자주 애용한다.   

[전당포-인터넷캐싱]
 
흔히 전당포는 급전이 필요할 때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귀중품을 담보로 손쉽게 금전을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애용해왔다. 사실 전당포는 사채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캐싱’이라는 용어를 상호에 쓰기도 한다. 전당포의 시초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전당포 형태의 사채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후 모방과 조합의 형태로 전당포가 곳곳에 생겨났고 서민들 사이에서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전당포는 일본과 달리 부동산도 담보로 취급했다. 1970년대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인기였고 80년대에는 비디오플레이어, 컴퓨터 등이 주요 품목이었다. 귀금속 등은 여전히 인기 품목으로 분류되며 최근에는 명품 패션이 주종을 이룬다. 
 

전당포는 현재도 진화 중이다. 쇠창살과 골방, 음침한 복도는 이제 더 이상 전당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요즘 전당포는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깔끔한 편이다.
 
최신식 인테리어로 이용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카페처럼 음료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전당포의 기본인 보안시스템도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고, 다루는 품목도 진화했다. 요즘엔 명품 전당포가 대세지만 각종 IT 기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도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엔 전당포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도심 한복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신촌, 강남, 압구정, 건대입구 등 서울 도심 주요 상권엔 최소 1∼2개씩 현대식 전당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가맹점 형태로 지점을 늘리며 기업화하는 현상도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저신용자용 전당포는 전국에 1000여개로 10년 전 대비 80% 가량 줄었다. 대신 명품 전당포나 IT 전당포와 같은 현대식 전당포는 전국적으로 3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전당포에 들어오는 물건은 달라지고 있지만 전당포의 개념 자체는 변함이 없다.
 
헌책방, 미니콘서트장으로…전당포는 인터넷 거래
이발소, 카페 미용실로…세탁소, 무인빨래방 변신

[꽃집-데이트카페]
 
꽃집도 시대 변화에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꽃카페’인데, 요즘 꽃집은 꽃을 판매하며 더불어 커피, 건강음료, 칵테일 등을 내놓고 있다. 꽃을 사러 온 고객들은 꽃을 사러 온 건지, 커피를 마시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궁합마케팅’ 덕분에 꽃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어 특히 커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헌책방-카페방]
 
헌책을 사고파는 헌책방은 1960∼7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몇 달 일하면 일 년 정도 쉬어도 될 정도로 당시엔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헌책방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변신을 꾀해 새로운 전략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헌책방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헌책방들은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헌책방을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판매 방식을 바꾸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한다고 전해진다. 또한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게 아닌,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헌책방도 있다.
 
무려 51년 간 자리를 지켜온 한 서점은 분위기 있는 카페로 재탄생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추억의 책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독서를 만끽한다. 휴일에는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해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다. 이처럼 추억의 헌책방들이 신선한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도시 속 유물에서 도시 속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이발소-이색미용실]
 
이용원, 이발관, 이용소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발소는 많은 남성들이 머리를 짧게 깎기 위해 찾던 장소였다. 이발소가 남성 전용이라면 미용실은 여성전용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성들의 머리가 길어지면서 짧게 깎기보다는 긴 머리를 다듬게 되면서 남성들의 미용실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의 미용실은 남녀구분이 없어졌고, 미용실 이름도 여러 가지 브랜드 명칭으로 쓰고 있다. 전통적인 이발소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발소는 그 자체로 존재 의미가 컸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휴식이 필요할 땐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발할 때는 기계 보단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이발 가위를 썼다. 또한 이발소는 개운한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발소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대신 미용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콘셉의 미용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미용실 내부에 작은 카페를 마련한 곳, 와인바로 단골 손님을 끄는 곳, 다양한 음료 및 과자, 떡볶이 등의 간식을 제공하는 곳, 손님의 머리털로 그림을 그려주는 곳 등 이색적인 서비스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요즘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 손질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단골 확보에 애쓰고 있다.
 
신세대 입맛에 맞게 탈바꿈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재탄생
 

[사진관-포토존]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네 사진관. 이제는 가족 전문, 아기 전문, 취업 전문사진관 등으로 세분화 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사진관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잡지 화보 같은 가족사진, 흑백 필름만 사용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는 사진, 톡톡 튀는 팝 아트 초상화 등 진화된 사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자녀를 둔 30∼40대 부부들 중에서는 연예인 화보 같은 가족사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외 공간에서 가족끼리 서로 마주보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는다. 그리고 항공촬영(헬리캠)까지 아우르는 스튜디오도 등장했다. 또한 내부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꾸미고 실제로 카페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진관이 늘고 있다.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의 대기 시간까지 사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특색 있는 사진관은 일부다. 요즘 사진관들은 대부분 ‘디지털 인화’ ‘이미지 백화점’으로 진화해 생존하고 있다. 사진 촬영, 현상, 인화는 물론 액자, 캘린더, 디지털 카메라, 주변기기 등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취급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극적인 변화다. 

[복덕방-중개소]
 
집을 잘 골라야 ‘복’과 ‘덕’이 들어온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 ‘복덕방’은 1900년대 초 ‘가괘(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시초다.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상업이 성행하게 되자 주거지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풍수지리와 택일의 관습 때문에 이사를 할 때에는 가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초기 복덕방은 밑을 여러 갈래로 가른 누런 삼베를 간판으로 사용했다. 누런 삼베는 수수해서 복이 잘 붙고 감이 질겨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이며, 밑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은 것은 출입하기 편하다는 뜻에서 한 것이다. 복덕방은 대체로 노령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일로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거간노릇을 해주고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금액에 약간의 웃돈을 붙여 매매를 성립시킨 뒤 그 차액을 수수료로 얻었다.
 
 
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각종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다양한 용도의 택지와 주택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복덕방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점차 복덕방 간판은 ‘○○개발’ ‘○○개발공사’ 등 다양하게 바뀌기 시작했고, 중개 대상도 주택과 아파트뿐 아니라 전국의 상가·공장·빌딩·임야·레저시설 등으로 확대됐다.
 
이같은 복덕방의 확대·발전은 투기조장, 가격조작, 과다경쟁 및 불건전한 거래 유발과 선의의 피해자 발생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유발했고, 결국 규제의 필요성이 부각돼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됐다. 이후 복덕방이라는 말 대신 ‘○○부동산중개회사’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중개인영업소’ 등으로 표기하도록 규정됐다.
 
그리고 부동산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부동산업계는 법인화, 종합대형화 추세로 부동산거래정보망과 함께 전국적인 체인 형성이 나타났고,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중개·거래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복덕방은 부동산 중개를 주로 했지만, 현재의 공인중개사무소, 부동산 컨설팅업체는 중개뿐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분양, 관리, 개발, 신탁 등 전문적인 재산 상담 기능까지 하고 있다.

[당구장-이색레포츠]
 
볼링장, 당구장 등 마니아들의 스포츠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레포츠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볼링장에서 단순히 볼링만 치는 것에서 벗어나 맥주를 마시며 서로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볼링 실력을 떠나서 누구나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칙칙한 내부 인테리어를 벗고 야광으로 도배해 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곳도 늘어나고 있다. 신나는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돼 특히 커플들 사이에서 인기다.
 
당구장도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페식 당구장이 눈길을 끈다. 카페 같은 당구장에서 수제버거와 커피를 들고 당구를 즐기는 곳이 있어 반응이 좋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금연 당구장이 늘어나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미녀 직원을 당구장에 다수 고용해 젊은 남성 고객을 유치하는 업소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미인 당구장’ 등장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동종업종 간 극심한 경쟁 탓에 탈선할 개연성은 언제든 있는 것이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화한 사랑의 메신저
편지 → PC → 스마트폰 → 이모티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방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집 전화나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주 연애 방식이었지만, 통신이 발달되면서 PC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문화에 큰 혁명을 불러왔다.
 
이후 스마튼의 등장은 또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SNS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화 된 지 오래,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자’ 보단 ‘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하며 신속한 메시지 전달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만큼 스마트 세대의 연애법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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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