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환자 덮친 70대 노의사 ‘막장스토리’

성폭행 하고선 “이게 바로 섹스치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강남의 한 정신과의원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70대 원장인 가해자는 면담을 빌미로 30대 환자를 불러내 몹쓸 짓을 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는 ‘섹스치료’라며 성폭행을 부인하고 있다. 서로 좋아서 했다는 것. 진실을 알기 위해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난 3월18일, 서울 강남의 ㅇ정신과의원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해당 의원 원장 A씨. 피해자 B씨는 이 의원에서 조울증과 분노장애로 치료 중이던 입원 환자 B씨였다. 이날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정신과의원 1층 원장진료실 뒤 당직실에서 B씨를 겁탈했다. 현장에서 B씨는 공포심에 떨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더 큰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B씨는 A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병실로 올라가 환자복 바지만 갈아입고 화장실로 향한 뒤 작은 목소리로 117 폭력피해자 긴급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성폭행한 뒤…
“서로 좋아서 했다”
 
성폭력 신고를 받은 폭력피해자 긴급지원센터 관계자는 B씨에게 의원 인근 마트로 나와달라고 했다. 마트 앞에 대기하던 그녀는 도착한 경찰차를 타고 경찰병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B씨는 피해 상담을 통해 “A씨가 환자복을 벗긴 후 성기를 삽입한 뒤 소문내지 말라고 엄포를 줬다”고 말했다. 또한 사정은 하지 않았지만 바지에 음모가 있어서 챙겨왔다고도 했다. 이후 이 사건은 수서경찰서로 이첩됐고 A씨는 B씨의 신고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A씨의 소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 사건의 시초는 원장과 환자 간의 면담으로부터 비롯됐다. 정신질환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던 B씨는 아침마다 A씨와 면담을 했다. 그런데 유독 B씨의 면담은 항상 일렀다. 간호사들이 출근하지 않은 9시 이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순서도 첫 번째였다. 또 B씨의 면담시간은 다른 환자와 달리 유난히 길었다.
 

그리고 A씨는 아침마다 헤어드라이를 요구했다. 과거 미용사로 일했던 B씨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으면 자신이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환자들에게 헤어드라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렇게 B씨는 면담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정상진료시간이 아닌 시간에 이루어지는 면담이 너무 싫었다. 다른 환자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주변 환자들조차 B씨의 비정상적인 면담에 의아해 했다. A씨가 B씨에게 사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이때부터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지난 3월14일, B씨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A씨가 갑자기 “생리 전 용돈 줄까?”라며 100만원을 건넸기 때문. 스트레스를 풀고 외박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 B씨는 그날 저녁 A씨에게 7시30분쯤 들어갈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A씨는 “생리 전 섹스를 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며 “1층에 불을 켜놓을 테니 들어와라”고 했다. A씨는 B씨의 생리 전 감정 기복을 꿰뚫고 있었다. B씨가 ㅇ의원에 1년 동안 입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B씨는 들어오라는 A씨의 말을 듣지 않고 찜질방에서 외박을 했다. 그러나 약이 부족했다. B씨는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있는 시간에 미리 연락을 취하고 의원을 찾아가 약을 받은 뒤 또 다시 밖으로 나왔다. A씨를 마주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조울증·분노장애 치료받던 환자 
강남 병원 입원 중 원장에 당해
 
18일 B씨는 병실로 복귀했다. 4층 폐쇄병동으로 올라가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치도중 보호사가 빨리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이에 B씨는 “아직 양치도, 세수도 안했는데 왜 벌써 내려가라고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B씨는 A씨가 있는 1층 원장진료실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고 결국 이날 성폭행을 당했다.
 

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큰 저항은 하지 못했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A씨가 B씨를 성폭행한 뒤 헤어드라이도 요구했다는 것이다. B씨는 치가 떨렸지만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A씨의 돌발행동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 잠그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해줬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A씨는 평소 ‘섹스치료법’과 ‘허그치료법’이 있다며 여성 환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치료법이 정신과의원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협회와 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들은 ‘섹스치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입원 환자를 
성노리개로
 
사건이 불거지자 A씨는 B씨의 측근이자 대리인 역할을 해온 C씨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C씨에게 500만원을 건네며 선처를 호소했다. 사리분별이 어려운 B씨를 누군가가 꼬드겨 신고한 것 같으니,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C씨는 500만원을 거부하고 신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자 A씨는 녹음테이프를 꺼내며 성폭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인 대 성인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정행각’이었다는 A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70대 노인과 30대 간의 관계라는 것부터가 의심스럽고, A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의료기관 내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정타는 성폭행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A씨가 갖고 온 녹음테이프였다. 자신을 감싸기 위해 준비했던 녹음테이프가 오히려 자승자박이 됐다. 성폭행 당시 A씨는 ‘애정행각’ 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성폭행 전에 미리 녹음기를 켰다. 계획된 성폭행이었다는 것. 문제는 이 녹취록의 내용이 A씨에게 전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A씨가 직접 녹음한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녹취록에서 A씨는 B씨에게 “너 생리 언제 끝나냐? 생리할 시기지 이제 지금, 예민한 단계지?”라며 신체 변화를 물었다. 그리고 “너 그러면 확 하면 내가 기분 좋게 할 수 있는데 말이야”라면서 B씨를 눕혔다. 그는 성폭행 중 “오르가즘 오면 소리는 지르지마”라며 자극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성폭행 후에는 “생리 전이라 재미있게 한 거야. 그것 때문에 힘들게 안 했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B씨에게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날카로워진다고 설명하면서 형사를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B씨에게 뽀뽀하며 “이제 온전히 내 사람이다”고 협박했다. 성폭행 후 A씨는 B씨에게 애인 사이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옆 건물에 미용실과 마사지실을 하면서 평생 동고동락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A씨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후 수세에 몰린 A씨는 B씨와 C씨에게 끊임없이 회유문자를 보냈다. 사실상 협박이었다. A씨는 B씨에게 ‘사랑하는 예쁜 OO아’로 시작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칫 잘못하면 한 방에 날아갈 수도 있다…원장님 주변에는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친구, 친척이 대한민국 요소요소에서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네가 자꾸 병원 돌아다니면서 말썽 부리다가는 어느 나쁜 놈 손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라며 주변에 막강한 변호사들과 박근혜정부실세 중 최고의 자리에 있는 친구도 있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 풀어줄게”

당직실로 불러내 겁탈
 
A씨는 “의사는 설령 어떤 허물이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흔들면 안 된다. 네가 아파도 의사를 찾게 되고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서도 의사를 찾게 되는 것인데 네 행동이 이래서야 쓰겠냐? 나를 괴롭히면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웃으면서 만나자”고 협박하기도 했다. B씨는 A씨의 이런 문자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구차한 문자는 C씨에게도 향했다. A씨는 C씨에게 “동생이 차기 또는 차차기 경제장관 감으로 거의 확실하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는 B씨를 다시 입원시켜야 한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B씨의 나쁜 습관이 발동했다며 오히려 치료의 적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관계 이용해
계획적 접근
 
지난달 1일 기자는 성폭행 가해자인 A씨를 만나기 위해 강남에 위치한 ㅇ정신과의원을 찾았다. 의원 내부와 외부는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건물 자체가 허름한 탓이기도 했다. A씨를 만나고자 1층 데스크로 향했다. 데스크 앞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A씨를 만나기 위해 간호사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A씨와 접촉할 수 없었다. 그는 진료 때문에 바쁘다며 오후에 통화하자고 말했다. 이에 그가 말한 시간에 전화를 수차례 걸어봤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일보 후퇴한 뒤, 새로이 접근을 시도했다. ‘진료’로 접근한 것. 정식으로 진료신청서를 작성한 뒤 무작정 기다렸다. 대기하던 환자들의 진료가 끝난 후, 원장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장은 기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성폭행 건 관련 질문을 던지자 그는 바로 녹음기를 켰다. “기사를 쓰려고 온 거야? 녹음 좀 할게.”
 
궁지 몰리자 치료 발뺌
취재 기자엔 ‘권총 협박’ 
 
취재를 시작하자 그는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지키라고 있는 건데, 뭐만 하면 의사들 물고 뜯고, 매스컴에서 떠들고 난리는 떠는데…”라며 중얼거렸다. 성폭행 사실 여부에 대해 묻자 그는 정색하면서 “성폭행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개XX소리다. 성폭행이 절대 아니다. 난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추측기사 쓰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다”라며 B씨의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난 합법적으로 권총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말이지, 자랑스러운 시민의 상도 탔고 권총도 있다”고 강조했다. 
 
 허그치료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섹스치료에 대해서는 “그거는 글쎄 누구한테서 들었어요?”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진료시간 외 면담에 대해서는 “입원 환자는 6시에도 7시에도 할 수 있는 거다”라며 “내 재량”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형이 총경에, 경찰집안”이라며 자신과 불리한 내용을 기사로 내보낼 시 “권총을 들고 OO씨(기자)한테 찾아갈 거다”라면서 협박했다.

B씨의 주변인들에 따르면 A씨는 B씨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1년 동안 함께 했기에, 그녀가 자라온 환경과 특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불순하게 접근했다.
  
또한 B씨는 과거에도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같은 층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었다. 당시 가해자는 B씨에게 10만원을 건네고 합의를 요구했다.
 
B씨는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병원 측은양측의 합의를 종용해 고소를 취하하게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B씨는 보호자도 없이 합의서 내용을 그대로 따라 적었다는 것이다.
 
당시 B씨는 병원 측에 강력하게 항의했었다. 그런데 되레 강제퇴원 조치를 당했던 것. 가해자는 여전히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병원 측은 B씨가 강제퇴원 조치한 사실이 없고, B씨가 제 발로 나갔다고 전했다. 

허술한 관리에
멍드는 환자들
 
의사가 되려면 선서를 해야 한다. 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배려한다. 나는 종교·국적·인종·정치적 입장·사회적 신분을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해 의무를 다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망각한 채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B씨는 15년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환자다. 7번의 자살기도를 한 흔적도 있다. 이러한 아픔이 있는 여성에게 정신과 의원은 치료와 고통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또 다른 피해자도 있었다는 의혹도 전해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신보호관제’ 도입…정신병원 감금 못한다
 
정신병원과 장애인시설같은 수용시설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수용됐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인신보호관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인신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인신보호관은 위법한 수용인지 피수용자가 구제청구를 받을 수 있는지 고지를 받았는지 등의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수용자에게 피수용자와의 면담, 관련 자료의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위법한 수용 등을 발견한 인신보호관은 피수용자가 구제청구를 원하거나 원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에게 구제청구를 신청하고, 검사는 그 신청이 이유 있다고 인정되면 관할 법원에 구제청구를 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법원의 수용해제 결정을 회피하기 위해 구제청구된 피수용자를 다른 수용시설로 이송하거나 수용해제 후 다른 수용시설에 바로 재수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피수용자를 다른 수용시설로 이송하려면 관할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개정안은 아울러 시설운영자로 하여금 ‘피수용자가 지정하는 배우자, 법정대리인, 직계혈족 등도 구제청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들 배우자 등에게 직접 알리도록 했다. 인신보호관의 수용시설 점검 및 관련 요구를 거부·방해하거나 법원 허가 없이 수용된 사람을 다른 시설로 이송한 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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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