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환자 덮친 70대 노의사 ‘막장스토리’

성폭행 하고선 “이게 바로 섹스치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강남의 한 정신과의원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70대 원장인 가해자는 면담을 빌미로 30대 환자를 불러내 몹쓸 짓을 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는 ‘섹스치료’라며 성폭행을 부인하고 있다. 서로 좋아서 했다는 것. 진실을 알기 위해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난 3월18일, 서울 강남의 ㅇ정신과의원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해당 의원 원장 A씨. 피해자 B씨는 이 의원에서 조울증과 분노장애로 치료 중이던 입원 환자 B씨였다. 이날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정신과의원 1층 원장진료실 뒤 당직실에서 B씨를 겁탈했다. 현장에서 B씨는 공포심에 떨며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더 큰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B씨는 A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병실로 올라가 환자복 바지만 갈아입고 화장실로 향한 뒤 작은 목소리로 117 폭력피해자 긴급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성폭행한 뒤…
“서로 좋아서 했다”
 
성폭력 신고를 받은 폭력피해자 긴급지원센터 관계자는 B씨에게 의원 인근 마트로 나와달라고 했다. 마트 앞에 대기하던 그녀는 도착한 경찰차를 타고 경찰병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B씨는 피해 상담을 통해 “A씨가 환자복을 벗긴 후 성기를 삽입한 뒤 소문내지 말라고 엄포를 줬다”고 말했다. 또한 사정은 하지 않았지만 바지에 음모가 있어서 챙겨왔다고도 했다. 이후 이 사건은 수서경찰서로 이첩됐고 A씨는 B씨의 신고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A씨의 소환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 사건의 시초는 원장과 환자 간의 면담으로부터 비롯됐다. 정신질환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던 B씨는 아침마다 A씨와 면담을 했다. 그런데 유독 B씨의 면담은 항상 일렀다. 간호사들이 출근하지 않은 9시 이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순서도 첫 번째였다. 또 B씨의 면담시간은 다른 환자와 달리 유난히 길었다.
 

그리고 A씨는 아침마다 헤어드라이를 요구했다. 과거 미용사로 일했던 B씨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으면 자신이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환자들에게 헤어드라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렇게 B씨는 면담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정상진료시간이 아닌 시간에 이루어지는 면담이 너무 싫었다. 다른 환자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주변 환자들조차 B씨의 비정상적인 면담에 의아해 했다. A씨가 B씨에게 사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이때부터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지난 3월14일, B씨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A씨가 갑자기 “생리 전 용돈 줄까?”라며 100만원을 건넸기 때문. 스트레스를 풀고 외박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 B씨는 그날 저녁 A씨에게 7시30분쯤 들어갈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A씨는 “생리 전 섹스를 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며 “1층에 불을 켜놓을 테니 들어와라”고 했다. A씨는 B씨의 생리 전 감정 기복을 꿰뚫고 있었다. B씨가 ㅇ의원에 1년 동안 입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B씨는 들어오라는 A씨의 말을 듣지 않고 찜질방에서 외박을 했다. 그러나 약이 부족했다. B씨는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있는 시간에 미리 연락을 취하고 의원을 찾아가 약을 받은 뒤 또 다시 밖으로 나왔다. A씨를 마주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조울증·분노장애 치료받던 환자 
강남 병원 입원 중 원장에 당해
 
18일 B씨는 병실로 복귀했다. 4층 폐쇄병동으로 올라가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치도중 보호사가 빨리 내려가라고 지시했다. 이에 B씨는 “아직 양치도, 세수도 안했는데 왜 벌써 내려가라고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B씨는 A씨가 있는 1층 원장진료실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고 결국 이날 성폭행을 당했다.
 

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큰 저항은 하지 못했다. 여기서 충격적인 사실은 A씨가 B씨를 성폭행한 뒤 헤어드라이도 요구했다는 것이다. B씨는 치가 떨렸지만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A씨의 돌발행동이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 잠그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해줬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A씨는 평소 ‘섹스치료법’과 ‘허그치료법’이 있다며 여성 환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운 치료법이 정신과의원에서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협회와 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들은 ‘섹스치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입원 환자를 
성노리개로
 
사건이 불거지자 A씨는 B씨의 측근이자 대리인 역할을 해온 C씨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C씨에게 500만원을 건네며 선처를 호소했다. 사리분별이 어려운 B씨를 누군가가 꼬드겨 신고한 것 같으니,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C씨는 500만원을 거부하고 신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자 A씨는 녹음테이프를 꺼내며 성폭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인 대 성인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정행각’이었다는 A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70대 노인과 30대 간의 관계라는 것부터가 의심스럽고, A씨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의료기관 내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정타는 성폭행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A씨가 갖고 온 녹음테이프였다. 자신을 감싸기 위해 준비했던 녹음테이프가 오히려 자승자박이 됐다. 성폭행 당시 A씨는 ‘애정행각’ 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성폭행 전에 미리 녹음기를 켰다. 계획된 성폭행이었다는 것. 문제는 이 녹취록의 내용이 A씨에게 전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A씨가 직접 녹음한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확인해보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녹취록에서 A씨는 B씨에게 “너 생리 언제 끝나냐? 생리할 시기지 이제 지금, 예민한 단계지?”라며 신체 변화를 물었다. 그리고 “너 그러면 확 하면 내가 기분 좋게 할 수 있는데 말이야”라면서 B씨를 눕혔다. 그는 성폭행 중 “오르가즘 오면 소리는 지르지마”라며 자극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성폭행 후에는 “생리 전이라 재미있게 한 거야. 그것 때문에 힘들게 안 했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B씨에게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날카로워진다고 설명하면서 형사를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B씨에게 뽀뽀하며 “이제 온전히 내 사람이다”고 협박했다. 성폭행 후 A씨는 B씨에게 애인 사이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옆 건물에 미용실과 마사지실을 하면서 평생 동고동락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A씨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후 수세에 몰린 A씨는 B씨와 C씨에게 끊임없이 회유문자를 보냈다. 사실상 협박이었다. A씨는 B씨에게 ‘사랑하는 예쁜 OO아’로 시작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칫 잘못하면 한 방에 날아갈 수도 있다…원장님 주변에는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친구, 친척이 대한민국 요소요소에서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네가 자꾸 병원 돌아다니면서 말썽 부리다가는 어느 나쁜 놈 손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라며 주변에 막강한 변호사들과 박근혜정부실세 중 최고의 자리에 있는 친구도 있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 풀어줄게”

당직실로 불러내 겁탈
 
A씨는 “의사는 설령 어떤 허물이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흔들면 안 된다. 네가 아파도 의사를 찾게 되고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서도 의사를 찾게 되는 것인데 네 행동이 이래서야 쓰겠냐? 나를 괴롭히면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웃으면서 만나자”고 협박하기도 했다. B씨는 A씨의 이런 문자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소용없었다.
 
구차한 문자는 C씨에게도 향했다. A씨는 C씨에게 “동생이 차기 또는 차차기 경제장관 감으로 거의 확실하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그는 B씨를 다시 입원시켜야 한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B씨의 나쁜 습관이 발동했다며 오히려 치료의 적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관계 이용해
계획적 접근
 
지난달 1일 기자는 성폭행 가해자인 A씨를 만나기 위해 강남에 위치한 ㅇ정신과의원을 찾았다. 의원 내부와 외부는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건물 자체가 허름한 탓이기도 했다. A씨를 만나고자 1층 데스크로 향했다. 데스크 앞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A씨를 만나기 위해 간호사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A씨와 접촉할 수 없었다. 그는 진료 때문에 바쁘다며 오후에 통화하자고 말했다. 이에 그가 말한 시간에 전화를 수차례 걸어봤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일보 후퇴한 뒤, 새로이 접근을 시도했다. ‘진료’로 접근한 것. 정식으로 진료신청서를 작성한 뒤 무작정 기다렸다. 대기하던 환자들의 진료가 끝난 후, 원장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장은 기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성폭행 건 관련 질문을 던지자 그는 바로 녹음기를 켰다. “기사를 쓰려고 온 거야? 녹음 좀 할게.”
 
궁지 몰리자 치료 발뺌
취재 기자엔 ‘권총 협박’ 
 
취재를 시작하자 그는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지키라고 있는 건데, 뭐만 하면 의사들 물고 뜯고, 매스컴에서 떠들고 난리는 떠는데…”라며 중얼거렸다. 성폭행 사실 여부에 대해 묻자 그는 정색하면서 “성폭행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개XX소리다. 성폭행이 절대 아니다. 난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추측기사 쓰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다”라며 B씨의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난 합법적으로 권총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말이지, 자랑스러운 시민의 상도 탔고 권총도 있다”고 강조했다. 
 
 허그치료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섹스치료에 대해서는 “그거는 글쎄 누구한테서 들었어요?”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진료시간 외 면담에 대해서는 “입원 환자는 6시에도 7시에도 할 수 있는 거다”라며 “내 재량”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형이 총경에, 경찰집안”이라며 자신과 불리한 내용을 기사로 내보낼 시 “권총을 들고 OO씨(기자)한테 찾아갈 거다”라면서 협박했다.

B씨의 주변인들에 따르면 A씨는 B씨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1년 동안 함께 했기에, 그녀가 자라온 환경과 특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불순하게 접근했다.
  
또한 B씨는 과거에도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같은 층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었다. 당시 가해자는 B씨에게 10만원을 건네고 합의를 요구했다.
 
B씨는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병원 측은양측의 합의를 종용해 고소를 취하하게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B씨는 보호자도 없이 합의서 내용을 그대로 따라 적었다는 것이다.
 
당시 B씨는 병원 측에 강력하게 항의했었다. 그런데 되레 강제퇴원 조치를 당했던 것. 가해자는 여전히 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병원 측은 B씨가 강제퇴원 조치한 사실이 없고, B씨가 제 발로 나갔다고 전했다. 

허술한 관리에
멍드는 환자들
 
의사가 되려면 선서를 해야 한다. 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배려한다. 나는 종교·국적·인종·정치적 입장·사회적 신분을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해 의무를 다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망각한 채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B씨는 15년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환자다. 7번의 자살기도를 한 흔적도 있다. 이러한 아픔이 있는 여성에게 정신과 의원은 치료와 고통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또 다른 피해자도 있었다는 의혹도 전해진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신보호관제’ 도입…정신병원 감금 못한다
 
정신병원과 장애인시설같은 수용시설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수용됐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인신보호관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달 서울청사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인신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인신보호관은 위법한 수용인지 피수용자가 구제청구를 받을 수 있는지 고지를 받았는지 등의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수용자에게 피수용자와의 면담, 관련 자료의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위법한 수용 등을 발견한 인신보호관은 피수용자가 구제청구를 원하거나 원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에게 구제청구를 신청하고, 검사는 그 신청이 이유 있다고 인정되면 관할 법원에 구제청구를 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 법원의 수용해제 결정을 회피하기 위해 구제청구된 피수용자를 다른 수용시설로 이송하거나 수용해제 후 다른 수용시설에 바로 재수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피수용자를 다른 수용시설로 이송하려면 관할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개정안은 아울러 시설운영자로 하여금 ‘피수용자가 지정하는 배우자, 법정대리인, 직계혈족 등도 구제청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들 배우자 등에게 직접 알리도록 했다. 인신보호관의 수용시설 점검 및 관련 요구를 거부·방해하거나 법원 허가 없이 수용된 사람을 다른 시설로 이송한 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겼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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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