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여야 신임 원내대표 이완구·박영선

첫 충청·첫 여성…‘궁합’ 잘 맞을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대 국회 후반기 첫 1년간 원내 활동을 지휘할 여야 신임 원내대표가 선임됐다. 새누리당은 충청 출신의 이완구(64·충남 부여·청양) 의원을, 새정치민주연합은 경남 출신의 박영선(54·서울 구로을) 의원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새로운 원내대표 체제로 각각 재편성됨에 따라 향후 세월호 참사 수습과 선거정국에 충돌이 예상된다. 여야 원내 사령탑의 궁합이 어떨지 지켜봐야겠다.
 

 
새누리당 이완구(충남 부여·청양)·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서울 구로을) 의원이 지난 8일 여야 원내사령탑이 됐다. 이들은 19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협상 등을 주도하게 된다. 

새 원내대표
동시 선출

여야 신임 원내대표는 이른 시일 내에 협상력과 정치력을 평가 받을 것으로 보인다. 두 원내대표는 임기 초반부터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여야는 참사의 원인과 당국의 책임을 밝히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시기와 방식에 대해선 견해 차이를 보인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미루고 우선 수습에 주력하자고 나오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명확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두 원내대표는 전임 원내대표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6월 국정감사와 국회선진화법 개정 문제도 풀어야 하는 입장이어서 이런 문제들이 새 원내대표들의 협상력과 리더십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19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문제에 관해서는 둘 다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장단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 소지가 없어 보이지만, 새누리당 일각이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 관련 업무를 별도 상임위로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 전반기와 달라진 정당별 의석분포를 이유로 여야 어느 한 쪽에서 상임위 정수조정을 요구할 경우 여야 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선다는 점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에 친박계 3선인 이완구(충남 부여·청양) 의원이 지난 8일 선출됐다. 앞으로 이 의원은 19대 국회 후반기 첫 1년간 새누리당의 원내 활동을 지휘하게 된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는 비박계인 3선의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이 당선됐다. 이완구·주호영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 총회에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 후보로 단독 출마해 표결 없이 박수로 만장일치 합의 추대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선 뒤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건강한 당·정·청 긴장관계가 필요하다”면서 “엄중한 시기에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중역을 맡아 정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군림하는 느낌의 대표가 아닌 당의 심부름꾼인 총무가 돼서 당의 의견을 정부와 대통령과 언론에 잘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께 어려운 고언의 말씀을 드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과를 보면 지역적으로는 충청권과 텃밭 TK의 구성이고, 계파로 보면 친박과 비박 인사의 조합이다. 비교적 무난한 모양새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영남권이 지역 기반인 새누리당에서 충청 지역 출신 의원이 원내 사령탑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충남 청양이 고향인 이 신임 원내대표는 충남지사를 역임한 여권의 대표적인 충청권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경제 분야 관료 출신이지만 충북·충남경찰청장을 지낸 평범하지 않은 이력으로 정치권의 문을 두드려 15·16대 의원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충남지사에 당선됐지만, 2009년 당시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면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했다. 

‘합의 추대’이
‘여성 최초’박
 
주 신임 정책위의장은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내는 등 판사 출신으로 친이계의 핵심 인사였지만, 합리적인 성품 덕에 계파를 뛰어넘어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원내대표와 주 정책위의장은 당선 직후 원내 수석부대표와 정책위 수석부의장으로 재선의 김재원 의원과 나성린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추대로 원내대표에 선출된 이 원내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험난한 정국을 헤쳐가야 할 전망이다.
 
이 원내대표는 시작부터 정치력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야당이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과 관련해 특별검사와 국정조사, 국정감사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정부·여당의 책임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의 특검·국조·국감 요구에 대해서 “희생자의 49재가 있고 아직 35명 정도의 실종자가 남아있기에 이런 문제를 제쳐놓고 특검·국조·국감을 한다면 현장에 있는 해경 요원이나 해군 관계자가 다 국회로 와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신중하게 야당과 협의하고 언론의 양해와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새로운 체제 재편 ‘강대강’ 불가피
세월호 참사 수습과 선거정국 대충돌 예상
 
이처럼 새누리당이 국정조사 수용 입장을 정한 것을 두고,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 후폭풍에서 벗어나려는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참사 수습 후 국정조사 실시’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원내대표는 야당의 특검 요구와 관련해선 “특검은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수사 결과가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고 판단될 경우 실시하면 될 일”이라며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국가 대개조 문제는 대통령도 말했지만 여야와 이념, 정파 문제가 아니다”라며 “야당의 쓴소리도 들어야겠다. 야당의 협력도 받아내야겠다. 진정한 집권당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이 문제 해결에 접근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원내대표는 1974년 행정고시(15기) 합격 후 재정경제원에서 경제개발계획에 참여했다. 그는 홍성경찰서장을 거치며 치안직으로 자리를 옮겼고 충북·충남 경찰청장을 역임한 뒤 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97년 대선을 치른 뒤 정권교체가 되자 여당행을 선택해 충청 지역정당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그는 당 대변인과 원내총무 등 주요 당직을 두루 맡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겨서 철새 정치인으로 비난받았다. 그 후 2003년 한나라당 소속 의원 11명이 ‘스카우트비’ 등의 명목으로 당 재정국이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 중 2억원 이상씩을 전달받았다는 ‘이적료 파문’에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미국으로 떠나 UCLA 교환교수로 1년여를 지낸 뒤 2006년 귀국해 한나라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지사직을 내려놓은 2009년에는 다발성골수종(혈액암) 때문에 치료에 전념했다. 건강 악화로 2012년 총선 출마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서 77.40%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화려하게 여의도 재입성에 성공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충남도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친박계 의원들이 주축으로 만든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 명예대표로 참여했다. 이 포럼에 함께 참여한 주호영 신임 정책위의장과 이때부터 러닝메이트로 원내대표 경선 참여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국회는…
고지전 준비 중?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원내대표에 3선의 박영선 의원이 선출됐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에 오르는 신기원을 열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원내대표 경선은 지난 8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3선 노영민(충북 청주흥덕을)·최재성(경기 남양주갑)·박영선(서울 구로을), 4선의 이종걸(경기 안양만안) 의원 간의 4파전으로 치러졌다.
 
전체 130명 중 128명이 투표한 1차 투표 결과, 노영민 의원이 28표, 최재성 의원이 27표, 박영선 의원이 52표, 이종걸 의원이 21표를 얻었다. 무효·기권표는 없었다. 아무도 과반 투표를 얻지 못하면서 관련 규정에 따라 노영민·박영선 의원 간 결선투표가 곧바로 진행됐다. 전체 130명 중 128명이 투표한 결선투표에서 박영선 의원은 69표를 얻어 59표를 얻은 노영민 의원을 10표 차로 앞섰다.
 
박 원내대표 당선에는 이른바 강경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의 지지가 바탕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의 지지로 1차에서 압도적으로 앞선 후, 2차 투표에서 3, 4위에 그친 최재성, 이종걸 후보를 지지했던 의원들의 표를 노영민 후보와 나눠가지면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특히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등 지도부 측에선 친노·민평련의 지지를 받고 있던 노영민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지도부와 원내대표 간의 갈등을 제어하기 힘들다고 보고, 2차 투표에선 박영선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도 강경 성향이기는 하지만 계파색이 없기 때문에 협력관계를 맺기 쉽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박 원내대표의 정견발표가 당선에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 원내대표는 정견발표에서 진도 팽목항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절함을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 장내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강한 대여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 제1야당의 원내수장으로 뽑힌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문제와 함께 6·4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원내 지원도 지휘하게 된다.
 
[이] “대통령에 고언할 것”
[박] “대통령과 맞설 것”
 
박 원내대표는 당선 뒤 “올바른 대한민국, 새로운 야당, 새로운 정치를 여는 힘을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제가 해야 할 첫 일은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일”이라며 5월 국회 소집을 위한 여야 원내대표 협상을 조속히 시작하자고도 제안했다.
 
무엇보다 박 원내대표는 ‘존재감 있는 야당’을 강조했다. 그는 당선소감에서 “국민 앞에 우뚝 서는 새로운 새정치연합을 보여드리겠다”라며 “국민들에게 당당한 야당으로, 존재감 있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원내대표는 2004년 초 MBC 선배인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에 의해 당 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방송 기자와 앵커 경력으로 다진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당의 입’으로 맹활약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확보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돼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기획재정위원으로 활동하며 금산분리법 통과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특히 금산분리법을 소급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2007년 대선 때는 정동영계의 핵심 측근으로 대선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며 ‘BBK의혹’을 주도적으로 파헤쳐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듬해 총선에서 야당의 수도권 참패 분위기 속에서도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18대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보위원회 간사로 활약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전제하는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했다. 천성관 검찰총장,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사법개혁특위 검찰소위 위원장을 맡아 검찰 개혁에 팔을 걷어붙였다. 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으로 기용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데도 앞장섰다.

정국 순항
‘시계제로’
 
2011년 5월 여성으로는 처음 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돼 이른바 ‘3+1(무상 급식·의료·보육+반값 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설계했다. 같은 해 치러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천정배 추미애 신계륜 의원 등 쟁쟁한 경쟁자를 모두 제치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돼 주가를 높였다.
 
비록 무소속 시민사회 후보로 나선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의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패해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무조건 양보’로 박 시장의 당선을 도와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후 당과 국회에서 잇따라 ‘여성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2012년 1·15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에 뽑혀 한명숙 대표와 함께 민주당에서는 최초로 여성 선출직으로 지도부에 입성했고, 19대 총선에서 구로을에 출마해 3선에 성공한 뒤 첫 여성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올랐다.
 
이후 국회 본회의의 관문인 법사위를 맡아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반대하고, 검찰 개혁법안인 상설특검법과 특별감찰관법을 관철하는 등 제1야당의 선명성을 강조했다. 법안 처리와 관련해 새누리당으로부터 ‘월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법사위 내에서는 여야 협의에 따라 원만한 운영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hlee@ilyosisa.co.kr>
 

[이완구 원내대표는?]
 
▲충남 청양 출생
▲양정고 졸업
▲성균관대 행정학 학사
▲미국 미시건주립대 석사  
▲단국대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15회)·경제기획원
▲홍성경찰서장
▲LA총영사관 영사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
▲15·16대 국회의원
▲UCLA 교환교수
▲2006∼2009 충남도지사
▲2010 새누리당 충남도당 명예선대위원장
 
 
[박영선 원내대표는?]
 
▲경남 창녕 출생
▲수도여고 졸업
▲경희대 지리학 학사
▲서강대 언론대학원 석사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MBC 보도국 기자, LA 특파원
▲MBC 보도국 경제부장
▲17·18·19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대변인
▲국회 정보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
▲민주당 정책위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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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