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어물쩍 앉은 강병규 신임 안전행정부 장관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지만…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 대통령이 강병규(59)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했다. 박 대통령은 유정복 전임 장관이 인천시장에 출마함에 따라 그 빈자리에 안전행정부 제2차관 출신인 강 장관을 후임으로 선임했다. 강 장관은 임명 과정에서 중대한 인사 기준상의 흠결이 밝혀져 여야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는 과연 건전한 지방자치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까.

지난 2일 강병규 신임 안전행정부 장관이 취임했다. 강 장관은 취임식에서 “국정운영의 중추부처로서 안전행정부는 그 어느 부처보다 각종 국정과제들을 보다 활력 있게 추진해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성과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과 현장 속으로 더 가까이 더 철저하게 다가가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다음날인 3일 강 장관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고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강 장관은 안전행정부가 추진해야 할 역점사안으로 공정한 6·4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리, 국민안전과 재난·재해 예방 강화, 정부3.0 확산과 성과 창출, 건전한 지방자치 발전 토대 마련을 언급했다.

속전속결 인선
법 위반? 쉿!

박근혜 대통령은 새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강병규 전 행정안전부 제2차관을 앉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7일 브리핑에서 6·4 지방선거 인천시장 출마를 위해 지난달 5일 사임한 유정복 전 장관의 후임으로 강 전 제2차관이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인선을 위해 장고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 후임 인선은 불과 이틀만에 신속히 이뤄졌다. 민 대변인은 “강 내정자는 안행부 업무 전반에 걸쳐 풍부한 식견과 경험이 있으며 부처와 국회 등 대외기관과 협조가 원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수평적 리더십과 조직관리 능력을 갖췄고, 조직 내 신망이 두텁다는 점이 발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달 24일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 위장전입 및 농지법 위반 등을 두고 야당이 강 장관에 대한 자질문제를 지적하면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바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국회에 인사청문을 요청한 이후 인사청문회법에 규정된 20일 내에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음에 따라 지난 1일 보고서 채택을 재요청한 뒤 강 장관을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강 장관은 위장전입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위장전입은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사안이기는 하지만, 안전행정부가 주민등록법을 관장하는 주무부처라는 점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더욱 거셌다. 강 후보자는 자녀 교육문제와 연관된 위장전입으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시종 머리를 숙였다. 강 장관의 배우자와 장남은 1997년과 2000년에 각각 이촌동과 후암동에 있는 지인의 집으로 전입했다. 강 장관은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어차피 이사할 것이니 미리 전입신고를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고 말했다. 또 2000년 두 번째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꼭 학군의 이점 때문에 특정 학교를 가야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 사정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그 학교 주변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도 강 장관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87년 2월 구입한 과천 주택에 대해서도 양도세 면제기간을 채우기 위해 발령지인 부산으로의 전입신고를 미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1986년 4월 과천에서 부산으로 발령나 이사했음에도 이듬해 4월에야 부산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한 것 때문이다. 아파트 양도세를 면제받기 위해 주민등록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유학 후 돌아와서 2개월 만에 부산으로 발령나 2개월밖에 살지 못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투기나 세금면탈 목적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예외 없이 위장전입 문제를 파고들었고, 강 후보자는 그때마다 연거푸 사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은 “다른 부모들이 교육문제로 위장전입을 한다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처벌할 수 있겠느냐”면서 “국민이 그런 처벌에 수긍하겠느냐”고 따졌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은 “주무부처 장관이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청와대는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면서 “이래놓고 어떻게 비정상의 정상화, 법과 원칙을 얘기할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은 강 장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달 25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강병규 안행부 장관 후보자의 전문성 도덕성에 대해 검증이 이뤄졌다”면서 “주민등록법 위반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불법선거운동 근절에 대한 확고한 약속이 있어 무리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여당은 후보자가 일부 흠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장관을 임명한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청와대의 의지라며 엄호했다.

행정가 임명 이유
선거 중립 표방

하지만 야당 일부 의원들은 강 후보자에 대해 행정 전문가로서의 업무 역량을 인정하면서도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해명을 요구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됐는데 그때 시점으로 봐서는 불가피했을지 모르나 지금 눈으로 보면 잘못이니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강 장관의 각종 도덕성 논란과 관련해 “청와대 인사 담당 참모들은 뭐하는 양반들이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안전행정부 장관할 사람이 법 위반한 사람 말고는 없느냐”며 “군대 안 다녀온 사람, 농지법 위반한 사람은 공직에 앉아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무부처 장관의 위법 사실을 두고 여러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청문회서 위장전입·농지법 위반 뭇매
보고서 채택 무산…박 대통령 임명 강행

일부 의원들은 강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변명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는 “제 불찰이고 죄송하다”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고 위장전입을 수차례 사과했다. 그러나 사퇴 요구에는 “후보자로서 진퇴 문제를 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위장전입 문제로 홍역을 치른 역대 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강 장관 외에도 2010년 취임한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있다. 당시 맹 전 장관은 언론사 기자 시절 배우자와 딸이 실제 거주지인 서울 방배동이 아닌 인천 주안동에 주민등록을 이전했다 복귀한 기록이 드러나 주민등록 주무 장관으로서 부적합하다는 야당의 공세에 부딪혔다. 당시 특파원 출국을 앞두고 딸이 호적에 아들로 잘못 기재돼 있어 이를 정정하기 위해 사무처리가 빠른 인천으로 일시적으로 주민등록을 옮긴 것이라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강 장관은 위장전입과 함께 농지관리법을 위반한 기록도 갖고 있었다. 강 장관의 배우자인 김모씨는 2012년 8월 부친으로부터 논밭을 증여받은 후, 실제 경영을 하지도 않으면서 농업 경영계획서를 제출했다.

현행 농지법상 농지는 자신이 농업 경영에 이용하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다. 해당 논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의 논 4필지와 밭 1필지 등 총 5필지(7246㎡)로, 공시지가로 4억490여만원에 달한다.

강 장관은 “장인으로부터 30년간 위탁경작한 분의 권리를 지켜달라는 부탁이 있었다”며 “법에 저촉된 부분이 없게 했어야 하는데 법무사에게 일임하다보니 챙기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토지 처분 여부에 대해 “아직 용인 백안면으로부터 해당 농지를 처분하라는 공문은 받지 못했으나 민간 매각이나 농어촌공사에 위탁매매 의뢰, 혹은 위탁 경장을 의뢰하는 등 위반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강 장관의 이러한 불법·탈법 사실을 미리 알고서도 내정한 것으로 드러나 뒷말이 무성하다. 강 장관은 청와대의 사전 질문서에 ‘위장전입 여부’ ‘농지 불법 취득 여부’ ‘자녀 이중국적 취득 여부’ 등을 물었고 여기에 모두 ‘그렇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민기 의원은 청문회에서 “청와대가 사전에 검증하기 위해 사전 질문서를 주는 것인데, 사실상 액세서리 아니냐”며 “사전질문서에 후보자가 거짓으로 썼으면 몰라도, 제대로 썼는데도 이렇다면 제대로 인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중앙·지방 잇는
내무행정전문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강 장관이 한국지방세연구원장 재직 시절에 업무추진비를 개인적 용도로 지출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에 따르면 강 장관은 지방세연구원장으로 재직한 2011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경조사비 용도로 업무추진비 3230만원(321건)을 지출했다.

이는 강 장관이 지난 3년간 쓴 전체 업무추진비 내역 694건 1억5700만원과 비교할 때 집행 횟수 기준으로 46.1%, 집행 금액 기준 30%에 해당한다. 강 장관은 재직기간 경조사비에 연평균 107건 100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집행했다. 과도한 경조사비 지출을 두고 개인적 용도로 업무추진비를 집행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진 의원실은 지방세연구원에 경조사비가 지출된 대상에 관한 상세 자료를 요구했으나 지방세연구원은 이에 불응했다.

강 장관의 재산은 17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9월24일 공직자 퇴직 재산신고에서 강 내정자는 본인 소유의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 7억2000만원 상당과 제주도의 과수원 3306㎡ 2324만원 상당을 신고했다.
 

강 내정자는 또 본인 소유의 2003년식 SM5 743만원 상당과 배우자 소유의 2004년식 뉴EF소나타 932만원 상당 등 자동차 2대를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퇴직 당시 강 내정자 예금은 외환은행 3614만원, 국민은행 2631만원, 배우자 예금은 삼성생명 3577만원 등이다. 강 내정자의 재산은 퇴직 때 그 전년 말 기준 재산신고액과 비교할 때 1401만원 늘어났었다.


청와대 인사시스템은 그동안 공직후보자를 내정할 때마다 논란을 샀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이러한 부분을 묵인하는 경향이 짙다는 평가다. 현 정권의 인사 철학과 청와대 인사 시스템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말에도 청와대는 부실한 인사시스템이 드러나면서 거센 비난을 산 바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는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일자 “검증할 때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즉 기존 공직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 때는 ‘불법’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강 후보자의 경우, 사전에 해당 탈법에 대해 알고서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어서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 사람이 그렇게 없나”
‘먹통’청와대 인사시스템 또 도마

강 장관은 내무부 시절부터 잔뼈가 굵은 행정 전문가로 알려진다. 1977년 행정고시 21회 합격 이후 78년 5월 사무관 시보로 임용됐다. 이어 79년 6월 이등병으로 입대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다 81년 9월28일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그는 제대와 동시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수행비서로 발령받았다. 공직에 입문한 강 장관은 91년 내무부 행정관리담당관을 시작으로 장관 비서관, 행정자치부 감사관, 정책홍보관리실장, 지방행정본부장,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장을 거쳐 2009년부터 1년간 제2차관을 역임했다. 차관 재직 시절 지방자치단체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돌리는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를 신설했다.

구사일생 일화
독특한 이력도


그는 부산시를 거쳐 경산시 부시장, 대구시 행정부시장을 지내는 등 현장 지방행정 경험도 풍부하다. 5공과 김대중정부 등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때 ‘아웅산 테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넘긴 일화도 있다. 대통령비서실장실에서 일하던 83년 10월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때 북한의 폭탄테러가 일어난 아웅산 묘지 현장에서 수행 중이었으나 화를 면했다. 당시 사고로 강 내정자의 상관이던 함병춘 비서실장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명박정부 시절 행정안전부 2차관을 지낸 뒤에는 한국지방세연구원 초대 원장에 취임, 신생 조직의 초석을 다지는 중이었다. 경북 의성 출신에 고려대를 졸업, 대표적인 TK 행정관료로 분류되지만 경기중·고를 거치는 등 학창시절부터 주로 서울에서 생활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에 평소 격이 없고 소탈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김수미씨와 두 아들을 뒀다. 첫째 아들은 2010년 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고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입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강병규 장관은?]

▲경북 의성 출생
▲경기고 졸업
▲고려대 법학과 학사,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
▲행정고시 21회
▲내무부
▲경산시 부시장
▲행정안전부 감사관
▲행정안전부 자치행정국 국장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행정안전부 제2차관
▲한국지방세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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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