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제4의 성’ 무성애자 세계

“남녀 모두 사랑해도 섹스는 싫다”

[일요시사=사회팀]이성애·동성애·양성애 외에도 제4의 성이 존재한다. 바로 ‘무성애’다. 무성애자들은 타인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도 없다. 이들은 남녀의 몸이 뒤섞이는 섹스보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원한다고 외친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무성애자의 정체성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도대체 무성애는 무엇일까.

동성애, 양성애 등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지만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과거와 비해 이들의 목소리가 뚜렷해진 것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동성애, 양성애 외에도 또 다른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성, 동성 어떤 상대에게도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가 그것이다. 보통 이들을 ‘에이섹슈얼’이라고 부른다. 의아하지만 성관계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섹스가 싫어요”
플라토닉 러브?

우리 사회에는 이성애자가 주류다. 그리고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성소수자로 분류한다. 무성애자는 성적인 욕구가 삶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소수자 중에서도 극소수인 경우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성애자도 사랑을 한다.

단지 그 감정이 성관계로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성욕을 억지로 누르지 않는다. 애초부터 성적 충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먹는 걸 성관계보다 더 좋아할 뿐이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성관계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무성애자의 상징은 케이크 위에 깃발을 꽂은 모양이다.

무성애자의 구체적인 유형은 일곱 가지로 분류된다. 무성애자(Asexual)는 성적 끌림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일반적인 무성애자다. 반무성애자(Demisexual)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 사람과는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성욕을 느낀다.

회색무성애자(Grey Asexual)는 성욕을 느끼지만 필요성을 못 느낀다. 페티쉬 무성애자(Asexual Fetishist)는 무생물에 대한 페티시즘을 가진 무성애자다. 낭만적 무성애자(Romantic Asexual)는 사랑을 느끼지만 성적인 것은 거부한다. 무낭만적 무성애자(Aromantic Asexual)는 사랑도 성욕도 없다. 자기성애자(Selfsexual)은 자기 자신에게서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넓게 보면 ‘초식남’과 ‘건어물녀’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성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연애보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성애자들은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성애자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솔솔 들린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음지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위치에 있고 아직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무성애자들의 대표적인 안식처로 알려진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수치상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무성애자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곳 여성회원인 A씨는 성적인 끌림을 경험하지 않은 무성애자다. 어려서부터 이성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성을 좋아한 것도 아니다. 자연히 짝사랑, 첫사랑과 같은 감정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특별히 문제 삼지도 않았다. ‘언젠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단지 이 마음뿐이었다.

사춘기도 평범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낭만의 캠퍼스에 입성했지만, 자신의 낭만과 타인의 낭만은 달랐다. 쏟아지는 미팅과 CC(캠퍼스커플) 소식에 주변은 들썩였지만 A씨는 시큰둥했다. 남들 연애사에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독서가 더 즐거웠다. 자신을 위한 여유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에 제4의 성으로 알려진 ‘무성애’에 대해 알게 됐다.

‘딱 나다’ 싶었다. 그래서 무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 이것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성애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다.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살아가는 삶을 걷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평화로운 무성애
남성보다 여성 많아

남성회원인 B씨는 조금 다른 경우다. 무성애자라는 공통점은 갖고 있지만 이성과 동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남성과 여성 모두 사랑할 수 있다. 연애감정을 느끼는 양성애적 무성애자였다. 그러나 설렘을 느낄 수 있지만 성적충동은 없다. B씨는 지금까지 남성도 만나보고 여성도 만나봤다. 성관계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적욕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만나던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키스나 성관계가 더럽게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물론 자위행위도 그랬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평범한 이성과 동성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무성애자를 만나기 위해 무성애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위안이 됐다.

선천적으로 성적욕구 없는 사람들
육체접촉 거부…일반 감정만 느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적 욕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도서 <무성애를 말하다>의 저자 앤서니 보개트의 설문조사(2004)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를 보면 영국인의 1.05%는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성적인 이끌림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제 성의학계에서도 하나의 섹슈얼리티로 자리 잡는 중이다.
 

앤서니 보개트는 책을 통해 “남성이나 여성, 혹은 양성 모두에 대해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무성애다. 모호하지만 무성애라고 해서 로맨스가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험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무성애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무성애를 결정하는 것은 성행위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결핍이다”고 설명한다.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 조사에서도 ‘성인의 1%가 성적 욕구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무성애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성애와 동성애와 달리 무성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뇌세포의 형성 과정과 성적 취향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회적 원인이 있을 거라 보고 있다. 독신주의자가 늘어나는 이유도 사람들이 무성애자로 변모해 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환경에 따라 자발적 독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후천적 요인에 따라 성적 욕망을 잃은 경우는 무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라거나 성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무성애를 말하는 것이 못 마땅하는 것이다.
아직 무성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반발의 목소리가 약한 편이지만 일각에서는 무성애를 맹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이 무성애를 비난하는 이유는 동성애와 비슷하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무성애자들이 양성적으로 증가하면 그만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결혼과 출산률의 감소가 자칫 국가의 경제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다.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과(소수자연구) 교수는 “무성애자를 두고 사회재생산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국가주의적인 발상이다”며 “기본적으로 무성애자도 개인의 ‘성’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들 사이에도 개인 간 차이가 있으며, ‘저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하는 잣대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동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무성애자도 연애를 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상대방과 성관계 속에서 성적 쾌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관계하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정신적인 흥분과 신체적인 변화가 일치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경우 커밍아웃이나 집단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무성애자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커밍아웃을 하는 사례도 적다. 동성애의 경우 사회적 관념과 충돌해 마찰이 생기기도 하지만 무성애는 그렇지 않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존의 관습에 충돌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AVEN’(The 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은 전 세계적으로 6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무성애자 커뮤니티다. 2001년 설립된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가장 유명한 무성애자인 미국인 데이비드 제이는 “우리가 고장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많이 토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에이븐을 통해 “자신을 발견했다”는 무성애자도 늘고 있다. 데이비드 제이는 성적 소수자로서 무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한다. 무성애가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편람>에서 ‘과소 성욕 장애’로 규정됐을 때 AVEN 일부 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무성애는 ‘LGBTAI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sexual, Intersexual, Queer) 표기 가운데 끼어든 알파벳 하나일 뿐이다. 현재 위치가 그렇다. 무성애에 대한 논란은 이곳저곳에서 미미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생산적인 논쟁으로 마무리 짓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의 고충을 해소하는 일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기능 문제없지만…성관계 ‘NO’
전 세계 인구 1% 못 느끼는 인류

이들은 사회 속에서 지옥을 겪고 있기도 하다. ‘너 혹시 고자?’에서부터 ‘애인 언제 사귀냐’ 등 집안 어른들의 재촉과 친구들의 음담패설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어서다. 점점 성적으로 개방되어가는 사회가 야속할 뿐이다. 그래서 간혹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연애를 하거나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건 무성애자 중 대략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여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낮아서 자위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타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빈도도 낮다. 또 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남성의 발기는 명확한 반면, 여성의 질의 반응은 미묘하다. 이 차이에서 할 수 있듯이 남성이 성애에서 목표 지향적인 데 비해 여성의 욕망은 모호한 것도 관계가 있다.

무성애는 곤란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무성애 남성은 이성애 남성보다 덜 남성적인가, 혹은 무성애 여성은 이성애 여성보다 덜 여성적인가 따위의 질문이다. 대다수 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지만, 대략 13%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성애가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전해지지만, 자신들의 정당한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무성애 운동이 점차 확산될 조짐이라고 한다.

무성애자 목소리
이제 걸음마 단계

무성애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무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과학적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양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숫양들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2년 동안 실험한 결과 양들의 무성애가 확인됐다.

양연구소 연구자들은 숫양과 발정기의 암양 두 마리, 숫양 두 마리를 일정 시간 함께 있도록 한 뒤 숫양 584마리의 ‘성적 취향을 확인했다. 56% 숫양만이 암양과 교미했다. 놀라운 결과였다. 실험 양들 가운데 9%는 숫양에게 반응을 보였고 12%는 어떤 성적인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이성을 대상으로 한 성욕이 자연계의 절대 법칙은 아님을 확인한 것이기에 유의미한 실험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무성애의 원인을 따지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녀 신체적 특징 가진
‘인터섹슈얼’의 세계

‘inter(사이·중간·교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섹슈얼(intersexual)’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흔히 ‘IS’라고 불리는 인터섹슈얼은 여러 형태로 분류된다. 성기를 가지고 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형태가 있거나 안쪽에 숨어 있지만 제 기능을 하는 경우 등 생식기의 ‘형태’와 ‘기능’에 따라 분류한다.

쉽게 말해, IS는 남성의 페니스와 여성의 난소와 질을 모두 갖고 있다. IS는 태아 단계에서 중절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고, 어릴 때 수술을 해서 자신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때 수술을 하면 성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성정체성이 확립되는 성인이 된 이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진다.

독일에서는 매년 2000명 정도의 신생아가 IS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출생신고서에 남성, 여성 그리고 제3의 성을 기록할 수 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에도 IS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를 두고 성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IS로 밝혀졌다. 그녀는 여전히 여자 육상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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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