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제4의 성’ 무성애자 세계

“남녀 모두 사랑해도 섹스는 싫다”

[일요시사=사회팀]이성애·동성애·양성애 외에도 제4의 성이 존재한다. 바로 ‘무성애’다. 무성애자들은 타인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도 없다. 이들은 남녀의 몸이 뒤섞이는 섹스보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원한다고 외친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무성애자의 정체성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도대체 무성애는 무엇일까.

동성애, 양성애 등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지만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과거와 비해 이들의 목소리가 뚜렷해진 것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동성애, 양성애 외에도 또 다른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성, 동성 어떤 상대에게도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가 그것이다. 보통 이들을 ‘에이섹슈얼’이라고 부른다. 의아하지만 성관계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섹스가 싫어요”
플라토닉 러브?

우리 사회에는 이성애자가 주류다. 그리고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성소수자로 분류한다. 무성애자는 성적인 욕구가 삶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소수자 중에서도 극소수인 경우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성애자도 사랑을 한다.

단지 그 감정이 성관계로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성욕을 억지로 누르지 않는다. 애초부터 성적 충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먹는 걸 성관계보다 더 좋아할 뿐이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성관계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무성애자의 상징은 케이크 위에 깃발을 꽂은 모양이다.

무성애자의 구체적인 유형은 일곱 가지로 분류된다. 무성애자(Asexual)는 성적 끌림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일반적인 무성애자다. 반무성애자(Demisexual)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 사람과는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성욕을 느낀다.

회색무성애자(Grey Asexual)는 성욕을 느끼지만 필요성을 못 느낀다. 페티쉬 무성애자(Asexual Fetishist)는 무생물에 대한 페티시즘을 가진 무성애자다. 낭만적 무성애자(Romantic Asexual)는 사랑을 느끼지만 성적인 것은 거부한다. 무낭만적 무성애자(Aromantic Asexual)는 사랑도 성욕도 없다. 자기성애자(Selfsexual)은 자기 자신에게서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넓게 보면 ‘초식남’과 ‘건어물녀’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성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연애보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성애자들은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성애자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솔솔 들린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음지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위치에 있고 아직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무성애자들의 대표적인 안식처로 알려진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수치상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무성애자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곳 여성회원인 A씨는 성적인 끌림을 경험하지 않은 무성애자다. 어려서부터 이성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성을 좋아한 것도 아니다. 자연히 짝사랑, 첫사랑과 같은 감정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특별히 문제 삼지도 않았다. ‘언젠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단지 이 마음뿐이었다.

사춘기도 평범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낭만의 캠퍼스에 입성했지만, 자신의 낭만과 타인의 낭만은 달랐다. 쏟아지는 미팅과 CC(캠퍼스커플) 소식에 주변은 들썩였지만 A씨는 시큰둥했다. 남들 연애사에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독서가 더 즐거웠다. 자신을 위한 여유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에 제4의 성으로 알려진 ‘무성애’에 대해 알게 됐다.

‘딱 나다’ 싶었다. 그래서 무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 이것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성애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다.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살아가는 삶을 걷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평화로운 무성애
남성보다 여성 많아

남성회원인 B씨는 조금 다른 경우다. 무성애자라는 공통점은 갖고 있지만 이성과 동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남성과 여성 모두 사랑할 수 있다. 연애감정을 느끼는 양성애적 무성애자였다. 그러나 설렘을 느낄 수 있지만 성적충동은 없다. B씨는 지금까지 남성도 만나보고 여성도 만나봤다. 성관계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적욕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만나던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키스나 성관계가 더럽게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물론 자위행위도 그랬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평범한 이성과 동성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무성애자를 만나기 위해 무성애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위안이 됐다.

선천적으로 성적욕구 없는 사람들
육체접촉 거부…일반 감정만 느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적 욕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도서 <무성애를 말하다>의 저자 앤서니 보개트의 설문조사(2004)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를 보면 영국인의 1.05%는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성적인 이끌림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제 성의학계에서도 하나의 섹슈얼리티로 자리 잡는 중이다.
 

앤서니 보개트는 책을 통해 “남성이나 여성, 혹은 양성 모두에 대해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무성애다. 모호하지만 무성애라고 해서 로맨스가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험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무성애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무성애를 결정하는 것은 성행위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결핍이다”고 설명한다.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 조사에서도 ‘성인의 1%가 성적 욕구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무성애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성애와 동성애와 달리 무성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뇌세포의 형성 과정과 성적 취향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회적 원인이 있을 거라 보고 있다. 독신주의자가 늘어나는 이유도 사람들이 무성애자로 변모해 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환경에 따라 자발적 독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후천적 요인에 따라 성적 욕망을 잃은 경우는 무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라거나 성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무성애를 말하는 것이 못 마땅하는 것이다.
아직 무성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반발의 목소리가 약한 편이지만 일각에서는 무성애를 맹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이 무성애를 비난하는 이유는 동성애와 비슷하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무성애자들이 양성적으로 증가하면 그만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결혼과 출산률의 감소가 자칫 국가의 경제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다.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과(소수자연구) 교수는 “무성애자를 두고 사회재생산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국가주의적인 발상이다”며 “기본적으로 무성애자도 개인의 ‘성’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들 사이에도 개인 간 차이가 있으며, ‘저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하는 잣대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동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무성애자도 연애를 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상대방과 성관계 속에서 성적 쾌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관계하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정신적인 흥분과 신체적인 변화가 일치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경우 커밍아웃이나 집단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무성애자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커밍아웃을 하는 사례도 적다. 동성애의 경우 사회적 관념과 충돌해 마찰이 생기기도 하지만 무성애는 그렇지 않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존의 관습에 충돌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AVEN’(The 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은 전 세계적으로 6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무성애자 커뮤니티다. 2001년 설립된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가장 유명한 무성애자인 미국인 데이비드 제이는 “우리가 고장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많이 토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에이븐을 통해 “자신을 발견했다”는 무성애자도 늘고 있다. 데이비드 제이는 성적 소수자로서 무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한다. 무성애가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편람>에서 ‘과소 성욕 장애’로 규정됐을 때 AVEN 일부 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무성애는 ‘LGBTAI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sexual, Intersexual, Queer) 표기 가운데 끼어든 알파벳 하나일 뿐이다. 현재 위치가 그렇다. 무성애에 대한 논란은 이곳저곳에서 미미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생산적인 논쟁으로 마무리 짓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의 고충을 해소하는 일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기능 문제없지만…성관계 ‘NO’
전 세계 인구 1% 못 느끼는 인류

이들은 사회 속에서 지옥을 겪고 있기도 하다. ‘너 혹시 고자?’에서부터 ‘애인 언제 사귀냐’ 등 집안 어른들의 재촉과 친구들의 음담패설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어서다. 점점 성적으로 개방되어가는 사회가 야속할 뿐이다. 그래서 간혹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연애를 하거나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건 무성애자 중 대략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여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낮아서 자위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타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빈도도 낮다. 또 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남성의 발기는 명확한 반면, 여성의 질의 반응은 미묘하다. 이 차이에서 할 수 있듯이 남성이 성애에서 목표 지향적인 데 비해 여성의 욕망은 모호한 것도 관계가 있다.

무성애는 곤란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무성애 남성은 이성애 남성보다 덜 남성적인가, 혹은 무성애 여성은 이성애 여성보다 덜 여성적인가 따위의 질문이다. 대다수 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지만, 대략 13%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성애가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전해지지만, 자신들의 정당한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무성애 운동이 점차 확산될 조짐이라고 한다.

무성애자 목소리
이제 걸음마 단계

무성애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무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과학적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양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숫양들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2년 동안 실험한 결과 양들의 무성애가 확인됐다.

양연구소 연구자들은 숫양과 발정기의 암양 두 마리, 숫양 두 마리를 일정 시간 함께 있도록 한 뒤 숫양 584마리의 ‘성적 취향을 확인했다. 56% 숫양만이 암양과 교미했다. 놀라운 결과였다. 실험 양들 가운데 9%는 숫양에게 반응을 보였고 12%는 어떤 성적인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이성을 대상으로 한 성욕이 자연계의 절대 법칙은 아님을 확인한 것이기에 유의미한 실험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무성애의 원인을 따지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녀 신체적 특징 가진
‘인터섹슈얼’의 세계

‘inter(사이·중간·교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섹슈얼(intersexual)’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흔히 ‘IS’라고 불리는 인터섹슈얼은 여러 형태로 분류된다. 성기를 가지고 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형태가 있거나 안쪽에 숨어 있지만 제 기능을 하는 경우 등 생식기의 ‘형태’와 ‘기능’에 따라 분류한다.

쉽게 말해, IS는 남성의 페니스와 여성의 난소와 질을 모두 갖고 있다. IS는 태아 단계에서 중절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고, 어릴 때 수술을 해서 자신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때 수술을 하면 성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성정체성이 확립되는 성인이 된 이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진다.

독일에서는 매년 2000명 정도의 신생아가 IS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출생신고서에 남성, 여성 그리고 제3의 성을 기록할 수 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에도 IS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를 두고 성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IS로 밝혀졌다. 그녀는 여전히 여자 육상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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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