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제4의 성’ 무성애자 세계

“남녀 모두 사랑해도 섹스는 싫다”

[일요시사=사회팀]이성애·동성애·양성애 외에도 제4의 성이 존재한다. 바로 ‘무성애’다. 무성애자들은 타인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구도 없다. 이들은 남녀의 몸이 뒤섞이는 섹스보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원한다고 외친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무성애자의 정체성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도대체 무성애는 무엇일까.

동성애, 양성애 등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지만 성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과거와 비해 이들의 목소리가 뚜렷해진 것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동성애, 양성애 외에도 또 다른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성, 동성 어떤 상대에게도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가 그것이다. 보통 이들을 ‘에이섹슈얼’이라고 부른다. 의아하지만 성관계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섹스가 싫어요”
플라토닉 러브?

우리 사회에는 이성애자가 주류다. 그리고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성소수자로 분류한다. 무성애자는 성적인 욕구가 삶에 있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소수자 중에서도 극소수인 경우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성애자도 사랑을 한다.

단지 그 감정이 성관계로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성욕을 억지로 누르지 않는다. 애초부터 성적 충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을 먹는 걸 성관계보다 더 좋아할 뿐이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성관계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무성애자의 상징은 케이크 위에 깃발을 꽂은 모양이다.

무성애자의 구체적인 유형은 일곱 가지로 분류된다. 무성애자(Asexual)는 성적 끌림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일반적인 무성애자다. 반무성애자(Demisexual)는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 사람과는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성욕을 느낀다.

회색무성애자(Grey Asexual)는 성욕을 느끼지만 필요성을 못 느낀다. 페티쉬 무성애자(Asexual Fetishist)는 무생물에 대한 페티시즘을 가진 무성애자다. 낭만적 무성애자(Romantic Asexual)는 사랑을 느끼지만 성적인 것은 거부한다. 무낭만적 무성애자(Aromantic Asexual)는 사랑도 성욕도 없다. 자기성애자(Selfsexual)은 자기 자신에게서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넓게 보면 ‘초식남’과 ‘건어물녀’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성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연애보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성애자들은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독신주의자들이 늘어나면서 무성애자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솔솔 들린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음지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위치에 있고 아직 생소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무성애자들의 대표적인 안식처로 알려진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수치상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무성애자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곳 여성회원인 A씨는 성적인 끌림을 경험하지 않은 무성애자다. 어려서부터 이성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성을 좋아한 것도 아니다. 자연히 짝사랑, 첫사랑과 같은 감정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특별히 문제 삼지도 않았다. ‘언젠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겠지’. 단지 이 마음뿐이었다.

사춘기도 평범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낭만의 캠퍼스에 입성했지만, 자신의 낭만과 타인의 낭만은 달랐다. 쏟아지는 미팅과 CC(캠퍼스커플) 소식에 주변은 들썩였지만 A씨는 시큰둥했다. 남들 연애사에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독서가 더 즐거웠다. 자신을 위한 여유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에 제4의 성으로 알려진 ‘무성애’에 대해 알게 됐다.

‘딱 나다’ 싶었다. 그래서 무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고 이것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성애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다.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살아가는 삶을 걷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평화로운 무성애
남성보다 여성 많아

남성회원인 B씨는 조금 다른 경우다. 무성애자라는 공통점은 갖고 있지만 이성과 동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남성과 여성 모두 사랑할 수 있다. 연애감정을 느끼는 양성애적 무성애자였다. 그러나 설렘을 느낄 수 있지만 성적충동은 없다. B씨는 지금까지 남성도 만나보고 여성도 만나봤다. 성관계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적욕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만나던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성관계를 요구하는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키스나 성관계가 더럽게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물론 자위행위도 그랬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평범한 이성과 동성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무성애자를 만나기 위해 무성애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위안이 됐다.

선천적으로 성적욕구 없는 사람들
육체접촉 거부…일반 감정만 느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적 욕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도서 <무성애를 말하다>의 저자 앤서니 보개트의 설문조사(2004)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를 보면 영국인의 1.05%는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성적인 이끌림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제 성의학계에서도 하나의 섹슈얼리티로 자리 잡는 중이다.
 

앤서니 보개트는 책을 통해 “남성이나 여성, 혹은 양성 모두에 대해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무성애다. 모호하지만 무성애라고 해서 로맨스가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험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무성애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무성애를 결정하는 것은 성행위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결핍이다”고 설명한다.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 조사에서도 ‘성인의 1%가 성적 욕구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무성애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성애와 동성애와 달리 무성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뇌세포의 형성 과정과 성적 취향이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회적 원인이 있을 거라 보고 있다. 독신주의자가 늘어나는 이유도 사람들이 무성애자로 변모해 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환경에 따라 자발적 독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성애자들은 후천적 요인에 따라 성적 욕망을 잃은 경우는 무성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라거나 성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무성애를 말하는 것이 못 마땅하는 것이다.
아직 무성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반발의 목소리가 약한 편이지만 일각에서는 무성애를 맹비난하기도 한다. 이들이 무성애를 비난하는 이유는 동성애와 비슷하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무성애자들이 양성적으로 증가하면 그만큼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결혼과 출산률의 감소가 자칫 국가의 경제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다.

박경태 성공회대 사회학과(소수자연구) 교수는 “무성애자를 두고 사회재생산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국가주의적인 발상이다”며 “기본적으로 무성애자도 개인의 ‘성’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들 사이에도 개인 간 차이가 있으며, ‘저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하는 잣대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동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무성애자도 연애를 하고 로맨틱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상대방과 성관계 속에서 성적 쾌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관계하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정신적인 흥분과 신체적인 변화가 일치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경우 커밍아웃이나 집단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무성애자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커밍아웃을 하는 사례도 적다. 동성애의 경우 사회적 관념과 충돌해 마찰이 생기기도 하지만 무성애는 그렇지 않다.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존의 관습에 충돌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AVEN’(The 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은 전 세계적으로 6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무성애자 커뮤니티다. 2001년 설립된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가장 유명한 무성애자인 미국인 데이비드 제이는 “우리가 고장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많이 토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에이븐을 통해 “자신을 발견했다”는 무성애자도 늘고 있다. 데이비드 제이는 성적 소수자로서 무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요구와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한다. 무성애가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편람>에서 ‘과소 성욕 장애’로 규정됐을 때 AVEN 일부 회원들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무성애는 ‘LGBTAI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sexual, Intersexual, Queer) 표기 가운데 끼어든 알파벳 하나일 뿐이다. 현재 위치가 그렇다. 무성애에 대한 논란은 이곳저곳에서 미미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생산적인 논쟁으로 마무리 짓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의 고충을 해소하는 일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기능 문제없지만…성관계 ‘NO’
전 세계 인구 1% 못 느끼는 인류

이들은 사회 속에서 지옥을 겪고 있기도 하다. ‘너 혹시 고자?’에서부터 ‘애인 언제 사귀냐’ 등 집안 어른들의 재촉과 친구들의 음담패설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어서다. 점점 성적으로 개방되어가는 사회가 야속할 뿐이다. 그래서 간혹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연애를 하거나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해진다.


흥미로운 건 무성애자 중 대략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여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낮아서 자위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타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빈도도 낮다. 또 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남성의 발기는 명확한 반면, 여성의 질의 반응은 미묘하다. 이 차이에서 할 수 있듯이 남성이 성애에서 목표 지향적인 데 비해 여성의 욕망은 모호한 것도 관계가 있다.

무성애는 곤란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무성애 남성은 이성애 남성보다 덜 남성적인가, 혹은 무성애 여성은 이성애 여성보다 덜 여성적인가 따위의 질문이다. 대다수 무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규정하지만, 대략 13%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예 성애가 관심 밖의 일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전해지지만, 자신들의 정당한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무성애 운동이 점차 확산될 조짐이라고 한다.

무성애자 목소리
이제 걸음마 단계

무성애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무성애가 선천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과학적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 양연구소의 연구자들이 숫양들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2년 동안 실험한 결과 양들의 무성애가 확인됐다.

양연구소 연구자들은 숫양과 발정기의 암양 두 마리, 숫양 두 마리를 일정 시간 함께 있도록 한 뒤 숫양 584마리의 ‘성적 취향을 확인했다. 56% 숫양만이 암양과 교미했다. 놀라운 결과였다. 실험 양들 가운데 9%는 숫양에게 반응을 보였고 12%는 어떤 성적인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이성을 대상으로 한 성욕이 자연계의 절대 법칙은 아님을 확인한 것이기에 유의미한 실험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무성애의 원인을 따지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녀 신체적 특징 가진
‘인터섹슈얼’의 세계

‘inter(사이·중간·교차)’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섹슈얼(intersexual)’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흔히 ‘IS’라고 불리는 인터섹슈얼은 여러 형태로 분류된다. 성기를 가지고 있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형태가 있거나 안쪽에 숨어 있지만 제 기능을 하는 경우 등 생식기의 ‘형태’와 ‘기능’에 따라 분류한다.

쉽게 말해, IS는 남성의 페니스와 여성의 난소와 질을 모두 갖고 있다. IS는 태아 단계에서 중절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고, 어릴 때 수술을 해서 자신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어릴 때 수술을 하면 성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성정체성이 확립되는 성인이 된 이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진다.

독일에서는 매년 2000명 정도의 신생아가 IS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출생신고서에 남성, 여성 그리고 제3의 성을 기록할 수 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에도 IS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를 두고 성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IS로 밝혀졌다. 그녀는 여전히 여자 육상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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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