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우리의 대배우 이순재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5.12.01 11:22:17
  • 호수 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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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남을 ‘국민 아버지’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이 아침이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이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시고 ‘다들 수고했다. 오늘 좋았어’라고 해주실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5시3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국민 배우’ 고 이순재 영결식에서 배우 김영철이 목멘 소리로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배우 이순재. 그의 생은 단지 배우로서의 삶만은 아니었다. 후학을 가르치는 스승으로도, 정치인으로도 존재했다. 수십년간 문화 예술계에 그가 쌓은 헌신과 노고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 이순재, 그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 연극과 방송,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빛나는 별이다.

대한민국
연기 역사

지난달 25일 새벽, 91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순재는 70년 가까이 연기 인생을 이어오며 현역 최고령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출연 중이던 연극을 취소한 뒤 조용히 휴식을 취하다가 작고했다.

고인의 영결식에서는 배우 정보석이 사회를 맡고, 김영철과 하지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발인은 같은 날 오전 6시20분에 치러졌으며, 장지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에덴낙원이었다.

영결식에서 사회자 정보석은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고, 선생님은 항상 제일 앞에서 큰 우상으로서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며 그는 이순재를 ‘연기의 역사’라고 칭했다.

‘평생 연기했는데 팬클럽이 없다’는 말에 팬클럽 회장을 자처했던 배우 하지원은 추도사에서 생전 고인과 연기에 관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시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려운가요? 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나도 지금까지 어렵다’고 하셨다”며 “그 한마디는 저의 큰 위로이자 오랜 시간 마음 깊이 새긴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하지원은 “저는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이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며 가수 겸 배우 이승기, 배우 최수종·하희라 부부, 송승헌, 김성환, 이한위, 손숙, 박상원, 김희애, 장용, 최지우, 가수 이용, 바다, MC 유재석, 박경림 등이 조문했다.

tvN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를 같이 했던 원로배우 백일섭, 박근형, 신구, 김용건도 빈소를 찾았다. 백일섭은 “먹먹해서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된다”며 “(이순재와) 거의 50년을 가깝게 지냈다. 가끔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았다”고 전하면서 “형이 95살까지 하면 나도 95살까지 연기할 거라고 했었는데, 약속 못 지키고 가시나”라고 애도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유족에게 대한민국 정부 포상의 최고 훈격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영전에 함께 놓였다. 최 장관은 “연극, 영화, 방송을 아우르며 칠십년의 세월 동안 늘 우리 국민과 함께하며 울고 웃으셨다”며 “선생님이 남기신 발자취는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선생님, 우리 모두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고 고인을 기렸다.

91세 나이로 별세…후배들 배웅 속 영면
<햄릿> 보고 배우의 길…70년 연기 인생

고인은 지난 1월 <개소리>로 KBS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고령 수상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이순재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여러분, 정말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나 4세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이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해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데뷔해 연극 <지평선 너머>를 시작으로, 총 70년 가까이 연기 인생을 이어왔다.

무대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활약하며 ‘국민 아버지’로 대중들에게 친숙히 다가왔다. 그는 KBS와 MBC 등을 넘나들며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1991년 방영된 MBC 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고집스러우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이병호’ 역을 맡았다. 그는 1990년대 당시 전형적인 아버지 상을 연기하며 엄격하고 목소리가 큰 성격의 가장을 보여줬다.

특히 아들인 이대발 역의 최민수를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대발아”라고 부르는 대사가 전국적으로 유행어가 될 만큼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발이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작품은 역대 한국 드라마에서 손꼽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9년 드라마 <허준>에서 이순재는 주인공 허준의 스승인 명의 ‘유의태’ 역을 맡았다. 유의태는 뛰어난 의술과 강한 성격을 지닌 조선 최고의 한의사로, 젊은 허준에게 의술과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든든한 멘토이자 조력자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이순재는 <허준>에서 탁월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주인공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지혜와 용기로 돕는 장면들이 크게 사랑받았다.

특히 임진왜란 중 허준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의서 편찬을 지원하며 허준이 궁궐 내에서 인정받게 만드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돋보였다. 유의태의 엄격하지만 인간적인 모습과 불같은 성격, 그리고 허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어우러진 장면들이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64.8%를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고, 이순재의 일품 연기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평가받았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사극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높은 완성도로 아직까지 사극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고인이 “단순한 국민 배우를 넘어 한의철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해 준 귀중한 분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의학 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길이 기억하겠다”고 전하며 추모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순재는 한의학의 뿌리와 철학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전달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그를 ‘명예 한의사’로 위촉했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도 ‘한의학 명예 학사’ 학위를 수여한 바 있다.

전설의
발자취

2006년 방영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가족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본명 그대로 ‘순재’라는 인물로 등장해 한방병원 원장으로서 까칠하고 권위적인 가부장 역할을 했다. 아내 ‘문희’와 자식들에게 엄격하고 때로는 가족들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을 위한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순재’는 작품에서 아들과 손자들 몰래 인터넷 야동(야한 동영상)을 본다는 설정으로 ‘야동 순재’라는 전무후무한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노년 남성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9년 방영된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은 ‘하이킥’ 시리즈 형태로 시청자 앞에 재등장했다. 이순재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여기서도 ‘순재’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지만, 한의사에서 자수성가한 식품회사 사장으로 변신해 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그는 다혈질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자상하고 매너 있는 역할을 맡았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6년 만에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 ‘순재’는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를 다시 한번 매료시켰다.

특히 새로운 사랑인 ‘자옥’과의 러브라인과 사위인 정보석 등 가족 간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은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트콤은 이순재에게 또 다른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확고히 한 작품으로 남았다. 특히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출연진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2007년 MBC 사극 드라마 <이산>에서 조선 왕 영조 역을 맡아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왕의 모습을 연기해 같은 해 MBC 연기대상에서 사극 부문 황금연기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영조의 권위와 냉철함을 표현하며 아들 이산(정조)을 향한 복잡한 감정, 권력과 왕권 유지를 위한 결단을 연기하는 면모로 돋보였다.

이순재는 이 밖에도 <베토벤 바이러스> <선덕여왕> <대물> <욕망의 불꽃> 등 굴지의 인기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8년 MBC 미니시리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악단 대표 ‘김갑용’ 역할로, 음악과 인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캐릭터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김갑용의 치매 증상이 점차 심해지면서 발생하는 주변인들과의 관계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 큰 호평을 받았다. 이순재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2008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0년 SBS 드라마 <대물>에서는 ‘백성민’ 대통령 역을 맡아 권력자의 위엄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소화했다. 그는 권력의 무게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대통령 역을 소화했는데, 특히 ‘조배호’ 역의 배우 박근형과 정치적 갈등을 이루며 긴장감을 높였다.

2015년에는 KBS2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근 작품은 지난해 KBS 드라마 <개소리>로, 주연으로 출연한 미스터리 코미디 드라마다. 이 작품은 이순재가 드라마 촬영 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갑질 배우’라는 오명을 쓰고 충격에 빠져 거제도로 도피성 휴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평생 연극
깊은 애정

그곳에서 은퇴한 경찰견 ‘소피’와 만나 강아지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듣게 되면서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이후 거제도 동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피와 함께 조사하며, 인간관계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는 이야기로,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노년 성장기를 담아냈다.

이순재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열어가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배우 김용건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돕는 동거 관계도 주요 웃음 포인트로 등장했다. 그에게 이 작품은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케 한 생애 마지막 수상작이기도 했다.

이순재는 연극에 대해 평생 깊은 애정을 가진 배우였다. 그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하고 싶다.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말하며 무대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과 열정을 드러냈다.

2023년에도 “내 소망은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다. 그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발언으로 연극에 대한 애착과 그가 생각하는 배우의 삶을 진솔하게 밝혔다.

이순재는 “배우가 자기 연기를 구체화해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은 연극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였다. 그는 연극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세일즈맨의 죽음> <리어왕> 등을 통해 더욱 가까이서 관객과 마주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2018년 시작해 2021년에는 서울 공연과 지방 투어를 통해 전국적으로 선보여졌다. 흥행 면에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꾸준한 관객 호응을 받았다. 특히 현실적인 세대 갈등과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으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었다.

티켓 오픈 시마다 빠른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성공을 거뒀고,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그는 <장수상회>와 같은 후속작의 성공에도 기여하며, 세대 공감을 자아내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 이 연극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겼다.

이순재는 2020년부터 3년 동안 연극 <장수상회>에서 ‘김성칠’ 역을 연기했다. 까칠하고 융통성 없는 노신사 성칠이 오랜 시간 지켜온 장수마트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원로배우 신구, 손숙 등 베테랑 배우들이 선사하는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무엇보다 가족 간 갈등과 화해,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연극을 관람한 관객들은 “내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연극 보면서 오열한 건 처음”이라는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대발이 아버지’부터
‘야동 순재’까지 소화

이순재는 연극 <리어왕>으로 정점을 찍었다. 87세의 나이에도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과 방대한 대사를 소화하며 ‘노장 배우’의 상징으로 불렸다. 2024년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에서 <리어왕> 연기를 재연하기도 했다.

배우 박근형은 이순재의 장례식장에서 2021년 방영됐던 골프 예능 <그랜파>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순재가 “취침 시간에도 계속 연극 <리어왕> 대사를 외웠다”며, 이순재에게 “‘일을 좀 적게 하시는 건 어떻냐’고 했는데 ‘아니야, 이건 내가 꼭 해야 돼. 하고 싶었던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순재는 구순(90세)이었던 지난해 건강 이상으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연기를 펼쳤다.

이순재는 나영석 PD가 연출한 대표 예능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 출연하며 그와 큰 인연을 맺었다. <꽃보다 할배>는 나영석이 tvN으로 이적한 후 처음 만든 작품이다. 2013년 첫 방영을 시작으로 시즌 4까지 제작된 여행 버라이어티로 이순재, 신구, 백일섭 등 원로 배우들과 여행 예능을 펼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배우 이서진은 젊은 짐꾼 역할로 출연하며 할아버지 세대와 호흡을 맞췄다. 나영석은 이순재의 별세 소식에 깊은 충격과 애도를 표하며 방송 중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고했고, 이서진과 함께 빈소를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순재 할배’는 귀엽고 순박한 매력으로, 때로는 직진하는 엉뚱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동시에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외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모습이 담겨 찬사를 받았다.

또 파리, 스페인 등 해외여행에서 보여준 모습들도 화제가 됐다. 이순재는 나영석과 멤버들 사이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특유의 유머와 인간미로 화면을 빛냈다. 나영석이 인터뷰에서 “이순재는 ‘꽃할배’ 그 자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방송계도 추모를 이어갔다. KBS 2TV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추모특선 국민배우 이순재 개소리 1~4회 몰아보기>와 <추모특선 국민배우 이순재 십분간, 당신의 사소한>을 방영했다.

KBS는 “반세기 넘게 한국 방송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예술적 업적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했다”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 고인의 추모 공간을 마련했으며,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이 잇따랐다.

끝까지
무대서

이순재는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나는 완성을 향해 끊임 없이 도전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이 같은 심상으로 도전했던 드라마가 310편, 영화가 130편, 연극이 60편이었다.

연기를 향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미하는 자세와 철학은 그가 평생 현역으로 연기활동을 이어온 이유이자,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이유였다. 이제 그는 평생을 예술에 바친 진정한 장인으로 편안한 영면에 들었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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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