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패럴림픽 2관왕 명사수 박진호

고난 딛고 금빛 총성 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박진호가 2024 파리패럴림픽서 두 번째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2관왕에 올랐다. 도쿄패럴림픽 당시 복사에서 단 0.1점 차이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으나 이번에 그 아쉬움을 아주 말끔히 씻어냈다. 박진호는 체대생 시절 당한 불의의 사고에도 좌절하지 않고 체육인의 꿈을 이뤄내 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 장애인 사격 대표팀 박진호 선수가 2024 파리패럴림픽서 두 번째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2관왕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서 다관왕은 박진호가 처음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선수로 거듭났다. 패럴림픽 개막에 앞서 박진호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며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굳은 다짐
맺은 결실

박진호는 지난 3일,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서 열린 2024 파리패럴림픽 사격 R7 남자 50m 소총 3자세(스포츠등급 SH1) 결선서 454.6점(슬사 150.0점, 복사 154.4점, 입사 150.2점)을 쏴 중국의 둥차오(451.8점)를 제치고 또 한번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번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박진호는 “내 이름이 호명되는 걸 듣고 나니까 ‘정말 2관왕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첫 금메달이 나왔을 때 리셋하려고 노력했다” “들떠 있었다면 오늘 이런 결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럴림픽 신기록도 하루에 2개나 작성하며 새 역사를 썼다. 박진호는 결선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서 세르비아 라슬로 슈란지가 세웠던 기존 패럴림픽 결선 기록(453.7점)을 갈아치웠고, 본선에선 1200점 만점에 1179점(슬사 392점, 복사 394점, 입사 393점)을 쏴 도쿄 대회서 주성철이 세운 패럴림픽 본선 기록(1173점)을 깼다. 


박진호는 “첫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정신이 없다”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제가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 날씨가 시원해 편안하게 쏴서 패럴림픽 신기록까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패럴림픽에 한이 많이 남아 있었다”며 “다시 다음 경기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메달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50m 소총 3자세는 무릎쏴(슬사), 엎드려쏴(복사), 서서쏴(입사) 순으로 사격해 우승자를 가린다. 첫 종목으로 8명이 오른 결선 슬사에서 박진호는 150점을 기록하며 6위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이어진 복사 종목에서는 154.4점을 쏴 3위로 올라섰다. 마지막 입사 종목서 박진호는 복사까지 1위를 달린 마렉 도브라우스키(폴란드)를 제치고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 10발째까지 100.2점을 추가해 1위를 유지했고 최종 5발에서는 둥차오의 추격을 뿌리치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결선 경기는 각 15발씩 총 45발을 쏴 승부를 가린다. 

40발 이후 7, 8위가 탈락하고 이후 한 발을 쏠 때마다 한 명씩 떨어진다. 마지막 45발째에선 1위를 다투는 두 선수만 사대에 남기 때문에 박진호와 둥차오가 끝까지 승부를 겨뤘다. 초반에는 너무 힘을 빼지 않고 차분하게 순위를 유지하다가 가장 자신 있는 입사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앞서 박진호는 지난달 31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서 열린 사격 R1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결선서도 249.4점을 쏴 예르킨 가바소프(카자흐스탄·247.7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날 한국 선수단 두 번째 금메달을 따내며, 박진호는 3년 전 도쿄패럴림픽서 0.1점 차로 금메달을 놓친 한을 풀었다. 


하루 만에 신기록 2개 작성
도쿄서 놓친 금메달 한 풀어

메달을 확보한 박진호는 21번째 발에서 10.6점을 쏴 마침내 선두로 올라섰다. 22번째 발도 10.5점에 적중하면서 선두를 지켰다. 2위 가바소프와는 0.7점 차. 박진호는 23번째 발에서 10.8점을 쏴 1.1점 차로 달아난 후 마지막 발을 10.6점에 적중시켜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이날 선수 소개서 장내 아나운서는 그를 ‘월드 챔피언’이라고 소개했는데, 마침내 사격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셈이다. 

경기 후 박진호는 금메달을 들어보이며 “무겁다”고 웃은 후 “초반에 긴장을 많이 했다” “사격이 첫날부터 (결과가)잘 풀려서 더 마음 편하게 쏠 수 있었고,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항상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며 “2014년부터 이 종목 세계신기록(본선)을 나 혼자 바꿔와서 제 기록이 깨진 적이 없는데 패럴림픽서 금메달이 없었다” “약간 비어 있던 게 꽉 찬 느낌이고 희열이 느껴졌다” “‘아, 내가 패럴림픽서 애국가를 울리는구나’란 생각에 뭉클해져 눈물이 날 뻔했다”고 설명했다. 

가족도 떠올렸다. “부모님을 연초 명절에 뵙고 아직 못뵀다”며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울고 있을 텐데, (양)연주야, 오빠 금메달 따서 간다, 사랑해”라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속팀 강릉시청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자신을 물심양면 도운 강주영 강릉시청 감독에게는 “제일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강 감독님”이라며 “강릉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마시는)물을 가리는 것을 아셔서 이곳에 생수까지 공수해 주셨다”고 인사했다. 

이어 “시장님께선 중증장애인 선수들의 장시간 비행 피로를 덜기 위해 비즈니스석에 탈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셨다”고 감사해했다.

박진호는 지난 2014년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대회서 4관왕에 오르는 등 ‘장애인 사격의 진종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지난 4월 창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5관왕에 오르며 패럴림픽을 앞두고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아시아 패러게임에서는 통산 금메달 5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 등 총 10개의 메달을 획득했지만, 패럴림픽 금메달과는 유독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연이은 우승
금메달 쾌거

첫 패럴림픽 무대였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는 빈손으로 돌아왔고 지난 2021년 도쿄 대회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했던 박진호는 이번 파리 대회서 금메달 2개를 따내면서 그동안의 한을 풀었다.


박진호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즐겼다. 운동신경이 좋아 각종 운동을 섭렵했다. 취미로 하던 운동이 어느새 특기로 발전되면서 그는 수원대학교 체육학과를 진학해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박진호는 낙상 사고로 안타깝게 휠체어에 앉게 됐다. 척수 손상으로 하지가 마비됐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다. 체대에 진학해 운동선수의 길을 걷던 그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건강한 몸을 잃은 박진호는 이 일로 ‘체육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까도 생각했지만, 고심 끝에 다시 운동선수의 길을 택했다. 무기력했던 박진호를 깨운 것은 큰누나 박영미씨였다.

그는 “장애인도 운동할 수 있다”며 “선수가 돼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동생을 설득했다. 휠체어를 탄 채로 할 수 있는 종목들을 알아봤고 그중엔 사격이 있었다.

박진호는 “남자다운 운동을 하고 싶다”면서 사격을 선택했다. 큰누나의 지극정성 도움을 받아 마침내 총을 들게 된 것이다.

박진호는 서울 정립회관서 차근히 사격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장애인 사격선수가 됐지만, 빠르게 입지를 굳혀 나갔다.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은 덕분에 성장이 가팔랐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대회를 휩쓸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청주시청 장애인 사격부에 입단했다.


순탄한 길만 걸을 것 같았던 박진호는 시합 도중 입은 부상으로 수술대를 올라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 욕창이 생겨 제대로 3년간 훈련조차 할 수 없어 성적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진호는 그렇게 심리적 압박이 커져만 갔다.

이후 병세가 호전되자 그는 ‘처음 사격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총 드는 방법 등 기본기부터 다식 익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만큼 기술적으로도, 정신력도 한층 더 단단해졌다. 박진호가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다.

박진호의 아내인 양연주도 장애인 사격선수다. 두 사람은 같은 병원서 함께 재활하다가 사랑을 키워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남편 권유로 아내도 총을 들면서 사격선수 부부가 됐다.

이번 대회에는 함께 출전하지 못했지만 지난 2022년 창원 세계장애인선수권 때는 부부가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12일 폐막한 2024 파리올림픽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사격의 메달 기세는 2024 파리패럴림픽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 패럴림픽서 사격은 개막 이틀 째인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서 금·은·동을 쏟아내며 화제가 됐다. 

사격 침체기
황금기 시작 

먼저 R2 여자 10m 공기소총 입사(스포츠등급 SH1) 결선서 이윤리가 은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선수단 첫 메달 소식을 알렸다. 이어 조정두는 P1 남자 10m 공기권총(SH1)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사격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서훈태가 R4 혼성 10m 입사(SH2)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사격선수단의 메달 사냥은 계속 이어졌다. P3 혼성 25m 권총(SH1)의 김정남이 지난 2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사격은 꽤 오랜 시간 패럴림픽 무대 중심에 서지 못했다. 지난 2012년 런던패럴림픽 때 강주영이 R4 혼성 10m 공기소총(SH2)서 총 3개의 금메달을 따냈지만, 이후 2016년 리우올림픽, 2021년 도쿄 대회서 2연속 노골드에 그쳤다. 

그러나 한국 장애인사격이 침체기를 깨고 패럴림픽서 다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와 대한장애인사격연맹, 그리고 배동현 BDH재단 이사장의 지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2021년 취임 후 장애인체육계 다방면에 걸쳐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파리 현지서 만난 정 회장은 “탁구와 보치아, 사격, 배드민턴, 태권도 등 패럴림픽 전략 종목을 선정해 스포츠의과학 및 전력 분석 등을 지원한 결실이 나오고 있다”며 “사격서 더 많은 메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사격연맹도 지난 2022년 세계장애인사격연맹(WSPS)와 협의를 통해 4년간 사격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22년부터 3년째 열린 ‘창원장애인사격월드컵’은 자연스럽게 한국 장애인사격의 국제적인 위상과 경쟁력을 키우는 산실이 됐다. 

파리패럴림픽 선수단장인 배동현 이사장 역시 지난해 4월 세종시 연고로 한 BDH파라스 실업팀 창단과 파격적인 지원을 통해 소속 선수들의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워내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지난해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장애인 사격의 진종오로 불려

이 같은 지원에 DBH파라스 소속 조정두가 지난달 30일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을 명중하며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배 이사장은 “조정두의 금메달 획득에 정말 감격했다”면서 “사격 덕분에 다른 종목 선수들의 사기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격을 필두로 여러 종목서 더 많은 메달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과 효과적인 정책 덕분에 지난 12년간 침체기였던 패럴림픽 사격은 다시금 효자종목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었다. 

한편, 한국 대표팀은 지난 5일 기준으로 금메달 4개, 은메달 7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순위 17위에 올랐다. 3개의 금메달은 사격서 나왔고, 나머지 1개의 금메달은 보치아서 나왔다.

한국 보치아는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세계랭킹 1위 정호원은 지난 2일 프랑스 파리 사우스 아레나1서 열린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등급 BC3) 결승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을 4엔드 합산 점수 5-2(3-0, 1-0, 0-2, 1-0)로 꺾고 우승했다. 

한국은 1988 서울대회 때부터 이번 대회까지 보치아서 10회 연속 금자탑을 쌓는 데 성공했다. 이번 대회 정호원의 금메달을 포함해 4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패럴림픽 효자 종목으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까지 한국 보치아가 패럴림픽서 획득한 금메달은 총 11개로, 은메달 8개, 동메달 8개까지 더해 전 세계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낙상 사고로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된 정호원은 지난 1998년 보치아를 시작해 2008년 베이징,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에 이어 네 번째 패럴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파리패럴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은 17개 종목 177명(선수 83명, 임원 94명)이 파견됐으며, 선수단은 1988 서울대회부터 2008 베이징대회까지 6회 연속 패럴림픽서 두 자릿수 금메달을 획득했다. 

승전보 소식
목표치 이상

하지만 2012 런던대회 9개, 2016 리우데자네이루대회서 7개의 금메달을 딴 뒤 직전 대회인 2020 도쿄대회에선 금메달 2개에 그쳤다. 도쿄대회 이후 유망주 발굴에 전념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번 대회서 금메달 5개 이상을 획득해 종합 순위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잡았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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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