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공동주택단지 교통사고 딜레마

사고 내도 괜찮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로 단지 내 교통사고가 주목받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아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행자 보호 의무가 모든 도로에 적용됐지만 제재할 수단은 없다. 매년 늘어나는 단지 내 교통사고를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는 개학 시즌을 맞아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들을 소개했다.

특례법 허점

이날 한문철 변호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차량 사고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후진하던 차량이 갑작스레 좌회전으로 돌진해 지나가던 초등학생을 덮친 사고 장면이 담겼다.

이 사고로 피해 학생은 성장판 손상까지 염려되는 전치 10주 진단을 받았지만 사망 등의 중상해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 사고는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아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면했다.

구 도로교통법상 도로에는 도로법에 의한 도로, 유로도로법에 의한 도로, 그 밖의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이 포함된다. 여기서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은 현실적으로 불특정의 사람이나 차량의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서 교통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교통경찰권이 미치는 공공성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다만 특정인들 또는 그들과 관련된 특정한 용건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고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장소는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아파트 구내, 대학교 구내, 주차구획선 내의 주차 구역, 대형건물 부설 주차장 등이 도로에 포함되지 않아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것이다.

도로교통법이 지난 2010년 도로 외의 곳에서도 예외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개정됐다. 구체적으로 ▲음주운전과 음주측정 거부 ▲약물운전 ▲사고 후 미조치 ▲주정차 차량 손괴 후 인적사항 미제공이다.

2022년에도 보행자 보호 의무와 관련해 도로를 불문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형사처벌 대상이 되진 않았다. 단지 보행자가 다치는 경우 과실 유무 판단의 기준이 되도록 개정됐다. 여전히 사고 예방을 위한 경찰 활동이나 단속, 범칙금이나 벌금 부과를 할 수 없는 셈이다, 

공동주택단지 내 교통사고는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공동주택단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각각 2728건, 2861건이었으며 사상자는 7101명에 달했다. 하지만 단지 내에서 운전을 하다 12대 중과실사고를 내도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20년 2728건·21년 2861건
도로교통법상 도로서 제외

12대 중과실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에 규정돼있는 것으로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 속도보다 20km 초과해 과속 ▲앞지르기 방법, 금지 시기, 금지 장소 또는 끼어들기 금지 위반 ▲철길건널목 통과 방법 위반 ▲횡단보도서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 침범 ▲승객 추락 방지 의무 위반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운전의무 위반 ▲자동차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운전 등이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르면 12대 중과실 사고 위반에 대한 처벌은 5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악덕 운전자들은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예로 아파트 정문 쪽에서 직진 중인 차량과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하는 차량과 충돌이 일어났지만 경찰은 단지 내에서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범칙금이나 벌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2021년 서울 노원구 노원구 소재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서 음주운전에 단속돼 면허 취소처분을 받은 입주민 A씨는 “음주운전 장소는 단지 내 주차장으로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면허취소처분은 위법하다”며 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끝에 A씨의 운전면허취소처분은 취소됐다. 현행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은 곳이라도 음주운전은 처벌 대상이지만 이에 대한 행정처분은 불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에는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 곳에서는 무면허 운전을 해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운전 연습을 하던 입주민 B씨가 보행자에게 중상을 입히고 차량 3대를 파손시킨 사건도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단지 내 도로서 사고는 중과실 적용 대상서 제외돼있는데 이로 인해 처벌이 약해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아파트 단지 도로는 일반도로보다도 보호 필요성이 더 큰 곳이지만 도로가 아닌 곳으로 분류되다 보니 단속이나 과실에 의한 사고가 났을 때 제재 조항이 미비한 상태”라면서 “도로가 아닌 곳에서도 경찰이 단속이나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아파트 단지 내 사고도 12대 중과실에 포함해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대 중과실 사고도 아냐
보행자 보호 의무만 있어

공동주택 내 도로에서의 안전을 위한 법적 보완도 이뤄져 왔다. 지난 2022년 11월 개정된 교통안전법령에 따르면,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에게는 자동차의 안전 운전과 보행자 안전을 위해 자동차 통행 방법을 정하고 안전시설물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됐다.

이에 많은 아파트들이 ▲10㎞/h 속도 준수 ▲보행자 안전거리 유지 ▲보행자 우선통행 등이 적힌 표지나 현수막을 단지 내에 게시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내에서 그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보행자와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제재할 수단은 미비한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단지 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12월29일 지방자치단체장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 단지 내 도로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관할 경찰서장에게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된 교통안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지 내에서 중상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는 이 같은 사실을 지자체장에게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가 통보한 내용만으로 정확한 사고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해당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관할경찰서장에게 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또 개정안에는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가 지자체장에게 단지내 도로 관련 실태점검 실시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조항도 마련됐다. 현재는 지자체장이 실태 조사 범위에 포함되거나 중상 이상의 사고가 단지 내 도로서 발생할 경우에 해당 공무원에게 실태점검을 실시하도록 하는 권한이 있다.


대표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번 개정안이 공동주택 단지 내 도로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무법지대?

또 국회에서는 단지 내 교통사고에 대해 운전자가 중과실을 범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하게 하려는 법 개정도 시도 중이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에 계류 중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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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