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내부가 어수선하다. 차기 공수처장으로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해진 까닭이다. 직원들은 벌써 ‘눈치 게임’에 들어갔다. 그간 김 부위원장이 공수처의 수사 문제와 자신의 극단적 색채를 표출해온 게 한몫하고 있다. 공수처가 수사 중인 감사원·해병대 사건이 올스톱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정권 수호를 위한 괴물기관.”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를 두고 한 말이다. 김 부위원장은 여권이 밀고 있는 공수처장 유력 후보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공수처가 맡은 주요 사건들이 사장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저승사자
김 부위원장은 지난 6일,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3차 회의서 진행된 비공개 투표에서 8명 후보 중 가장 많은 찬성표를 얻었다. 후보추천위원 7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찬성해야 대통령에게 추천할 최종 후보(2명)로 선정된다. 김 부위원장은 찬성표 5표를 넘기진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에서는 김 부위원장이 대통령실과 여권이 밀고 있는 인사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판사 시절 김명수 대법원과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인권법연구회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했다.
공수처 출범에 대해서도 “이 기관(공수처)은 누가 견제하고 통제하느냐”며 “그 수사의 주된 대상이 고위직 경찰공무원, 검사, 법관이면 이 세 조직은 공수처의 태생과 더불어 그 신생 조직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법원에 사표를 낸 뒤에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 모임인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축소법’ 입법 시도를 지적하는 내용의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변호사 개업 이후 2021년 2월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는 책을 썼다. 이 책에는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며 “괴물기관인 공수처까지 만들었다”고 적었다. 그는 공수처를 “오랜 과오와 학문적 숙고를 거쳐 정비된 형사사법 절차 안에 난데없는 이질 분자”라고 평가한 뒤 “정치와 차단막이 거의 없어 정치권력이 제시하는 기준이 그대로 반영”되거나 “정권 수호를 위한 유리한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해서도 “좌익단체들이 총동원돼 대중을 선동하고 모아낸 에너지가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의미가 나름 큰 사변”이라며 “다툼이 첨예한 사건이 재판관 전체 만장일치로 판결 난 것도 진실과 공정성에 의심을 유발한다”고 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공수처를 대외적으로 비판해온 김 부위원장이 차기 공수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수처가 수사 중인 주요 사건 무마를 넘어 해체를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차기 공수처장 김태규 유력
비판 속 정치적 중립성 논란
한 공수처 관계자는 “공소부를 없애고 수사력 논란을 극복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산을 넘으면 더 큰 산이 있다. 국회의 비협조로 인해 인력난도 심한데 직원들의 회의감이 커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공수처는 지난 18일 기존 수사 1∼3부 외에 수사 4부를 신설하는 직제 일부 개정규칙을 공포했다. 기존 공소 유지 업무를 담당해온 공소부는 폐지했다. 수사4부 부장검사는 이대환(사법연수원 34기) 검사가 맡았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감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사건과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등 특별수사본부가 맡았던 수사는 모두 수사 4부가 그대로 이어받아 계속 진행한다. 공소부가 맡던 업무는 사건을 수사한 수사부들이 직접 맡게 된다.
공수처법은 공수처 검사와 공수처 수사관의 정원을 각각 25명, 4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공수처는 “수사 업무에 집중할 인력이 부족한 상황서 증가하는 주요 사건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앞으로 확대될 공소 유지 업무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조직 일부를 개편했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1월 SNS에 ‘신·구정권 인사가 뒤섞이며 조직이 어정쩡하다’며 전 전 위원장 사퇴를 사실상 압박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공수처가 직제까지 개편하면서 수사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김 부위원장이 공수처장이 되는 순간 사건이 사장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가 김진욱 공수처장의 임기 내 해당 사건을 마무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점도 무관치 않다.
공수처 관계자는 “유 사무총장의 소환 시점이 늦어져 임기 내 사건 종료는 물리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공수처는 지난 9일 사건 핵심 피의자인 유 사무총장을 소환한 뒤 현재까지 실무자 등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김 처장의 임기가 약 1달 뒤인 내달 20일 만료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때까지 표적 감사 의혹에 대한 결론을 내기는 물리적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장 가능성
앞서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에 대해 수차례 소환을 요구했지만, 일정 조율에 난항을 겪으며 조사가 미뤄졌다. 유 사무총장 측은 공수처가 일방적으로 소환을 통보하고 있어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 공수처에 출석한 유 사무총장은 조사 과정서 질문 상당수에 대해 추후 의견서로 갈음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공수처는 의견서를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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