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공공기관의 영업시간이 조정되고 출근이 늦춰진다. 경찰 인력이 대거 동원된다. 특정 시간엔 소음마저 사라진다. 1년에 딱 하루, 수능날의 풍경이다. 50만명 수험생을 위해 전 국민의 일상이 변하는 날. 수능을 꼭 열흘 앞두고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오는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실시된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 따르면 올해 전체 수능 응시자 수는 50만4588명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반수생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반수생은 대학에 다니다가 수능을 다시 보기 위해 2학기에 휴학을 하고 입시에 재도전하는 수험생을 가리킨다.
사교육 잡고
종로학원 등에 따르면 올해 수능서 반수생은 8만9642명으로 추산된다. 수능에 접수한 재수생, 삼수생 등 N수생 가운데 6월 모의평가에 응시한 인원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추정한 수치다. 추정치로 따지면 N수생(17만7942명) 가운데 절반, 전체 응시자 가운데 약 20%가 반수생인 셈이다.
학원가는 정부의 ‘킬러(초고난도) 문항’ 배제 방침과 의대 광풍 등을 반수생 증가 현상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킬러 문항이 줄어들면서 최상위권 변별력이 약해졌고 상위권 학생이 수능을 통해 의대에 재도전하는 비율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또 반수생은 입시에 실패하더라도 기존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보험’이 확실한 편이다.
지난 6월 학원가에 대형 폭탄이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과 관련해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공교육 교육 과정 밖에서 여러 차례 꼬아 출제되는 문항을 풀기 위해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윤석열정부가 기조로 삼고 있는 ‘카르텔 부수기’의 일환으로 킬러 문항이 지목되면서 학원가도 술렁였다.
교육부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에 달한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으로 집계됐다.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8.3%로, 이 가운데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85.2%로 특히 높게 나타났다.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과정서 수능의 비율은 조정되고 있다. 내신을 중심으로 한 수시를 통해 입시를 뚫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의대 등 최상위권 학과에 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높은 점수의 수능 성적이 필요하다. 수능은 문제의 변별력에 따라 ‘불수능’ ‘물수능’ 등의 말이 나온다.
현재까지 킬러 문항은 최상위권을 가려내기 위한 이른바 변별력 각도기 역할을 해왔다. 윤정부는 이 킬러 문항 몇 문제를 풀기 위해 학생이 사교육 현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고 공교육 과정서만 수능 문제를 제출하면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카르텔에 입시비리까지
잔뜩 벼르고 있는 교육부
실제 이른바 ‘1타강사’로 불리는 사교육계 대표 강사가 윤정부의 정책 방향에 반발했다. 수능 수학영역 강사인 현우진씨는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 이후 “애들만 불쌍하다”고 적었다. 그는 “비판적인 사고는 중요하지만 적어도 시험에서는 모든 것이 나올 수 있다는 비(非) 비판적인 사고로 마음을 여시길”이라고 적었다.
역사 강의를 맡고 있는 이다지씨도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게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개설되지 않은 과목도 있는데 ‘학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수능을 칠 수 있게 하라’는 메시지라…”라며 “9월 모의평가가 어떨지 수능이 어떨지 더욱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씨와 이씨의 지적은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사교육 시장의 성장으로 매년 수십억~수백억원을 번 1타강사가 정부가 내놓은 공교육 중심의 교육정책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책의 옳고 그름에 앞서 사교육계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이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과시한 점도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현씨와 이씨 등은 SNS를 통해 자신의 부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발언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윤정부는 입시 카르텔 전반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이 과정서 입시학원과 현직 교사 간에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은 지난달 18일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79건에 대해 수사했다고 밝혔다. 이 중 6건은 전·현직 교사와 사교육 업체가 예상 출제 문항을 돈을 주고 거래한 사교육 카르텔 사건으로 분류됐다. 검찰에 송치된 피의자는 모두 35명으로 전·현직 교사 25명, 강사 3명, 학원 관계자 7명 등이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혐의 등을 적용했다.
킬러 문항 배제 나비효과
스타강사·대형학원 정조준
앞서 교육부는 수능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교사 24명이 유명 학원 등에 문제를 판매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고 22명(2명 중복)을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이들로부터 문제를 사들인 사교육 업체와 강사 또한 같은 혐의로 수사 의뢰된 상태다.
국세청도 가세했다. 국세청은 지난해부터 대형 입시학원과 스타강사 등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 결과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그 결과 입시학원과 결탁해 문제를 판매하는 과정서 소득세를 탈세한 현직 교사만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대형학원과 스타강사가 법인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수입금액을 축소하는 등의 탈세 행위도 잇따라 적발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고가의 미술품·명품 의류 등 개인 사치품을 법인 비용으로 처리 ▲학원 내 소규모 그룹 과외를 진행하면서 과외비를 자녀 계좌로 받아 소득세 탈루 ▲직원에게 소득을 과다로 지급한 뒤 현금을 다시 돌려받아 자금 편취 ▲학원 브랜드 사용료를 개인 계좌로 받고 신고 누락 ▲킬러 문항을 학원에 판매한 대가를 사업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신고해 소득세 축소 등과 같은 사례가 적발됐다.
일각에서는 수능 이후가 ‘진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가 사교육 카르텔에 이어 입시 비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기존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및 입시 비리 신고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오는 30일까지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중·고교뿐만 아니라 대학이나 대학원 입학 과정의 입시 비리를 집중 겨냥했다. 그러면서 교육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징계시효를 10년으로 연장했다. 이전까지 징계시효는 3년이었다. 입시 전반을 살피면서 그 범위까지 넓히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공교육 세울까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입시 카르텔 근절에 대한 국민적 열망에 부응하는 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신고된 사안을 철저히 조사함과 동시에 제도 개선을 병행해 입시 비리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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