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소록도 천사’ 마가렛 피사렉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10 14:16:28
  • 호수 1448호
  • 댓글 0개

조건 없는 39년 헌신의 삶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1935년 6월9일, 폴란드서 태어난 ‘작은 할매’이자 ‘할매 천사’로 불린 마가렛 피사렉. “한국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는 건강상 이유로 한국에 떠난 뒤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봉사하며 사는 삶. 한국은 할매 천사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와 마리안느 스퇴거 간호사가 보인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전남 고흥군에 있는 작은 땅 소록도. 섬 모양이 작은 사슴과 닮아 소록도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평범한 섬이라고 불리지만 한국 근현대사 속에 큰 아픔을 품고 있는 섬이다.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의 수용소가 있었다. 한센병은 나병이라고도 불렸는데 피부, 말초, 상기도의 점막을 침범해 조직을 변형시키는 감염병이다. 

파란 눈의
두 간호사

일제강점기 때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를 모아 가두는 고립의 장소였다. 소록도에 있는 국립소록도병원은 1917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수용했다. 한센병 환자는 ‘문둥이’라고 버스에 타지도 못하고 일주일을 넘게 걸어서 국립소록도병원에 갔다. 

이곳에서 한센병 환자는 거주 이전의 자유와 이동권을 박탈당했다. 툭 하면 감금, 감식, 체벌의 징벌을 받기도 했다. 이런 소록도에는 5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 옆에는 안내판이 있는데, 여기에는 ‘마리안느, 마가렛 수녀님’이라는 제목에 사진 네 장과 함께 설명문이 남겨있다. 

바로 이 설명문 건너편에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 간호사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 간호사가 머물렀던 관사가 있다. 넓지 않지만 정갈한 집이다.


좁은 마루 한구석에 호롱불이 놓여 있고 방에는 무, 하심, 사랑, 애덕,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라’와 같은 글씨가 성모상과 묵주와 함께 걸려 있다. 한쪽 변엔 오래된 카페트 테이프가 반듯이 꽂혀 있다. 헝가리 광시곡과 아베마리아, 스크린 뮤직과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다.

이처럼 끔찍한 역사를 지닌 소록도에 두 명의 파란 눈 천사가 자리 잡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1960년대는 한센인의 인권이 전무하다 싶을 때다. 당시 조창원 원장은 5‧16 군사혁명 이후 병원장으로 육군 대령의 계급이었다. 조 병원장은 한센인들에게 “당신들도 사람이다. 자식을 낳아라”는 말을 했다. 강제 낙태가 당연하던 시기에 혁명적인 발언이었다.

문제는 한센인이 자식을 낳아도 키워줄 사람이 없었다. 전염의 공포 때문이었는데, 외국 간호사가 필요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이 미국인으로, 병원장이 헨리 대주교에게 한센인 자녀를 키울 간호사를 요청했고, 헨리 대주교는 유럽을 가는 길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방문해 교구장에게 소록도서 한센인 자녀를 키울 간호사를 부탁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두 간호사가 소록도에 온 것이다.

이들은 각각 1962년과 1966년에 가톨릭교회의 재속회인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시녀회 회원으로 소록도 땅을 밟았다. 이때 마가렛 간호사의 나이가 28세였다. 그때부터 시작해 가톨릭교회의 공식 파견 기간이 끝난 뒤에는 자진해서 간호사 자원봉사자로 남아 39년 동안 조건 없이 한센병 환자와 환자의 자녀를 보살폈다.

그 후 마가렛 간호사는 지난달 29일, 향년 88세로 오스트리아서 심장마비로 선종했다. 최근 치매로 인스브룩시 시립양로원에 머물던 중 넘어져서 대퇴부가 골절돼 수술받던 중이었다.

대한간호협회는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마가렛 간호사의 추모식을 진행하며 “세상 모든 아픈 이를 비추는 따뜻한 별이 된 마가렛 간호사를 대한민국 50만 간호사 모두가 기억하겠다. 마가렛 간호사의 희생정신에 깊이 공감하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추모한다”고 밝혔다.


39년 동안 국내 한센병 환자·자녀 케어
결핵병원, 정신과 병동, 목욕탕 등 설립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고인의 고귀했던 헌신의 삶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하늘 나라서 편히 쉬기를 기원한다. 마가렛 간호사의 명복을 빌며 투병 중인 마리안느 간호사의 건강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공영민 고흥군수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에 마련된 소록도의 천사 마가렛 피사렉 분향소에 고흥군의회(의장 이재학) 의원, 간부 공무원 등 40여명과 함께 방문해 그의 선종을 애도하며 헌화 분향했다고 밝혔다.

분향을 마친 공 군수는 “평생을 사랑과 희망의 씨앗을 한센인에게 나눠준 작은 할매, 소록도의 천사 마가렛 피사렉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그녀의 숭고한 정신과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고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가렛 간호사가 소록도에 자리 잡고 한센병 환자를 보살핀 것만 39년이다. 그가 소록도를 떠난 2005년 11월23일 아침에도 평소처럼 환우들 곁에 가서 따뜻한 우유를 따라주고 아픈 데를 살피고는 홀연히 떠났다.

이후 편지가 배달됐다. 이들은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저에게 아주 어려웠습니다.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돼있어서 우리는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70살이 넘은 나이입니다. 소록도 국립병원 공무원들은 58~60세 나이에 퇴직합니다. 우리 나이가 보통 은퇴하는 나이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고 소록도서 오랜 시간 있었던 것을 언급했다.

아울러 “지금 한국은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돼있어 우리는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없어도 환자들을 잘 도와주는 간호사가 있어서 마음 놓고 갑니다. 이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저희의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을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항상 기도 안에서 만납시다”라고 덧붙였다. 

숭고한 정신
영원히 기억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소록도를 떠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록도를 떠나기로 한 것은 건강 때문이었다. 마리안느 간호사는 2003년부터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한국서 수술만 세 차례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았다. 마가렛 간호사도 일흔을 넘겨 건강에 자신이 없는 상태였다. 소록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던 두 사람은 제2의 고향인 소록도를 조용히 떠난 것이다.

당시를 회상하며 마리안느 간호사는 “그때는 아프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결정을 하는 게 마음이 아프고 어려웠다. 소록도를 떠나는 배에서 우리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돌아가서도 이곳 친구들이 그리웠다”고 전했다.


이토록 끊이지 않는 추모가 이어지는 것은, 자신의 선의로 한센병 환자를 돌본 것 자체도 엄청난 일이지만, 마가렛 피사렉이 소록도서 단순히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록도에 있는 한센병 환자가 출산을 하면, 한센병 환자인 부모는 아기를 5세까지만 키울 수 있다. 그 뒤로는 미감아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여기서 말하는 미감아란, 한센병 환자가 출산한 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를 말한다. 소록도에는 6000명의 한센인이 있었다.

한센병 환자의 자녀를 미감아 수용소에 보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한센병은 모태로부터 유전되지 않는 병이다. 두 간호사는 정부도 나서지 않는 한센병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고, 보육‧자활 사업을 정착시켰다. 

이뿐이 아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에 의약품과 경제적 지원을 요청해 소록도를 도왔다. 자국도 기피하는 한센병 환자를 보살폈던 것이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 교정수술을 하는가 하면, 물리치료기 등을 도입해 환자들의 재활을 도왔다. 

사랑과 희망
선한 영향력

소록도에 결핵병원, 정신과 병동, 목욕탕 등이 세워진 데도 이들의 도움이 컸다.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등을 통해 소록도에 필요한 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예산을 마련했다.


두 간호사의 헌신과 진심에 병원 직원도 변화됐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5월 조선총독부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하기 위해 자혜의원(현 소록도병원)을 만들었다. 당시 일본인은 소록도에 있는 환자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반말을 하고, 구타를 일삼았다. 임신한 여성에겐 낙태 수술을, 남성에겐 불임수술이 강제로 시행됐다.

해방 이후에도 이 같은 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환자들은 직원을 ‘선생님’으로 부르며 떠받들어야 했고, 환자에게 막말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마리안느 간호사와 마가렛 간호사는 환자들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존댓말을 썼다. 스스럼없이 한센인과 식사를 하고, 매일 새벽 5시부터 나이 든 환자의 병실에 따뜻한 우유를 배달했다. 본인의 집에 환자를 초대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환자 생일엔 직접 생일 케이크를 구워 선물했다.

당시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전염을 우려해 진료를 한센병 환자를 진료할 때 꼭 장갑을 꼈던 것과 달리 두 사람은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고 약을 발라줬다. 병원 직원들의 편견과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한센인을 친구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자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잇따랐지만 두 사람은 한사코 거부했다. 정부나 단체가 주는 상도 마찬가지로 사양했다.

고국인 오스트리아 정부서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전해왔지만 거절해 오스트리아 한국대사가 직접 소록도를 찾아 전달했을 정도였다. 한국 정부가 준 국민포장(1972년)과 국민훈장 모란장(1996년)도 청와대 관계자가 소록도를 찾아와 수여했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돌봐
고국 오스트리아서 선종

2016년 6월20일,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한센인 단종‧낙태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소송이 국립소록도병원서 특별법정으로 꾸려졌다. 그 자리서 증인으로 나선 김인권 여수 애양병원장은 당시 마가렛 간호사와 마리안느 간호사가 소록도 내에서 자행되는 단종‧낙태에 관해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재판에 출석해 ‘그들이 단종·낙태에 어떤 입장이었는지’ 묻는 말에 “개인적으로 반대했을지는 몰라도 소록도 실정에 이게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체 관여도 안 하고 개인적인 의견을 병원 당국에 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마가렛 간호사와 마리안느 간호사를 재판정 증인으로 세우려고 했으나 이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외국서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이 국가 정책에 쓴소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이미 시간이 지나 그 이유를 캐묻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안느 간호사는 일생 첫 기자간담회서 그간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에 대해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다. 그저 예수님의 복음을 따랐을 뿐이고 환자를 돕는 게 좋았다. 진짜 특별한 일은 하나도 안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간호사는 한국을 떠난 뒤 오스트리아서 빈곤층이 받는 최저 수준의 국가연금으로 민가와 양로원서 생활했다. 이들이 속한 그리스도왕국시녀회가 일반인과 함께 속세에 머물며 생활하는 재속회 소속이라 돌아갈 수녀원이 없었다. 그런데도 한국 측에서 제안한 노후 보장과 금전적인 지원은 사양했다.

마가렛·마리안느 간호사는 2019년 유럽을 순방 중인 김영록 전남도지사를 만났다. 김 지사가 직접 오스트리아 티롤 주 인스브루크 요양원을 방문했던 것이다.

마리안느 간호사는 김 지사와의 면담서 “이곳까지 찾아와주고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 소록도서 환자들과 보냈던 생활이 그립다”고 말했다. 마가렛 간호사는 현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김 지사 일행과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찾아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두 간호사는 김 지사 일행과 함께한 자리서 “다시 태어난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나주 빛가람동 주임신부인 김연준 프란치스코 신부는 마가렛 간호사를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소록도 사람들의 엄마이자 누나, 언니였다.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섬겼던 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깥에선 수녀님이라고 불렀지만, 정작 마가렛은 스스로를 할매라고 불러주면 기뻐했다. 특혜나 권위를 버리고 소록도 모두와 하나가 돼 가족처럼 지냈던 사람이다. 마가렛의 이야기는 사람이 남을 도울 때 가장 행복한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편안하길”
추모 발길

김 신부는 “보통 봉사하면서 자기만족을 찾기 마련이지만 마가렛은 그런 뜻 없이 한센인을 평생 섬기기만 했다. 내 삶의 모델이었고, 10년 후 한센인을 돕기 위해 소록도 성당 주임신부를 자원해 가게 된 것도 마가렛의 영향이었다”며 “마가렛의 이야기는 사람이 남을 도울 때 가장 행복한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갈등이 증폭되는 시대에도 인간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추켜세웠다. 

아울러 “마가렛이 떠난 것은 슬프지만 한편으론 평생 변함없는 모습을 지킨 채 하느님 곁으로 갔다는 점에서 부럽기도 하다. 마가렛이 남긴 선한 영향력을 확장해나가는 게 남은 우리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