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버스비 인상론 막전막후

여긴 올리고 저긴 공짜로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젠 ‘서민의 발’마저 무거워지는 것일까. 물가가 계속 올라가면서 대중교통 요금 인상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 사이 ‘불협화음’이 수차례 관측된다. 이들은 인상 시기와 정부 지원 여부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인다. 이 가운데 세종시는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 계획을 꺼내 들었다. 300원 인상 방침을 고수하던 서울시와는 정반대 행보라 눈길을 끈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을 꺼내 들었다가 사회 각계의 반발에 직면했다.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강행 돌파 의지를 내비쳤던 서울시는 결국 계획을 하반기로 미뤘다.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서울시는 이달 들어 “오는 4월 말을 목표로 서울 대중교통 요금을 300원 인상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8년 만에
추진하다…

계획대로라면 8년 만에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지하철과 간·지선 버스 300~400원 ▲순환차등버스 400~500원 ▲광역버스 700원 ▲심야버스 350원 ▲마을버스 300원이다.

서울시가 내건 명분은 ‘적자 심화’다. 누적적자가 심화되면서 대중교통 안전 서비스 제공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지난 7년간 물가와 인건비가 꾸준히 상승하는 동안에도 요금을 동결한 데다, 코로나 유행까지 겹치며 적자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

이와 관련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8일 “8년 동안 요금을 올리지 못해 적자 폭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며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서울시의 지하철 적자 규모는 연간 1조원 남짓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시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의 누적적자는 2021년 기준 17조원을 넘어섰다. 준공영제로 운영 중인 서울시 시내버스도 누적 부채가 같은 시점 86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까지 서울시는 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요금 인상 계획을 유보해왔다.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적자를 줄일 구상이었지만, 끝내 좌절됐다. 

기획재정부는 국회의 2023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 지원 예산 반영 등을 반대했다. 특정 지자체에 한정돼 운영되는 만큼,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들어 마지막 수단인 요금 인상안을 꺼내들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요금을 300원 인상하면 평균 적자 규모가 지하철 3162억원·버스 2481억원, 400원 인상하면 지하철 4217억원·버스 3308억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 같은 서울시 사정에도 정부, 시민단체 등은 계속해서 요금 인상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주된 논리는 ‘서민 부담 가중’이다. 특히 문제 당사자인 시민의 반대가 거세다.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 추진하다 일단 연기
서민 부담 가중 VS 적자 해결 불가 ‘진퇴양난’

지난 10일, 서울시는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 및 재정난 해소방안 논의를 위한 시민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때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기습시위를 감행하면서 공청회는 개최 무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공청회 내에서도 서울시 결정을 겨냥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김상철 공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대중교통 요금의 원가 보전율을 높이기 위해 요금 인상이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자를 늘려야 한다”며 “서울시가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으로 (인해)부담을 왜 시민들이 져야 하는 것인가”라고 발언했다.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상임위원장은 “소비자는 (요금인상안에 대해)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대중교통 요금의 인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정부와 서울시, 버스 운송업체가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큰 부담을 느낀다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는 지난 15일, 대학생과 직장인 등 자사 회원 1335명을 대상으로 ‘대중교통 기본요금 부담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폭이 현 물가 대비 적절한지 묻자, 응답자의 95.3%가 ‘많이 올랐다’고 답변했다. 서울시 인상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요금이 단번에 기존 대비 25%가량 상승한다. 

또 이들 중 81.3%는 추가 질문에서 ‘그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부담되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이를 감수해야 하는 이가 대다수인 셈이다.

중앙정부도 서울시 말리기에 나섰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물가가 급등할 조짐이 보이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자체에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 동결을 수차례 당부해왔다. 지난 7일에도 ‘지방공공요금 안정관리 점검회의’를 열어 각 지자체에 대중교통 요금 인상 시기를 늦추고 인상폭을 최소화할 것을 요청했다.

불협화음
계속 엇박자

행안부는 전기·가스를 비롯한 공공요금의 인상폭이 전년 동기 대비 30%에 육박하고, 최근 택시요금까지 오르는 등 서민 부담이 단기간에 가중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인상 계획 중 일부였던 ‘시내버스 거리 비례제’ 도입을 철회했을 뿐, 주된 인상 계획은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내버스 거리 비례제 도입을 철회한 것은 행안부 요청을 고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부가 제도 도입 철회를 넘어서는, 인상안 보류·인상 폭 조정 등의 조치는 어렵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가운데 오 시장이 최근 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중앙정부 지원을 다시 건의한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14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행안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오 시장이 지난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대통령께 건의했다”며 “대중교통 요금을 400원 올릴 수밖에 없는데 기획재정부가 도와주면 200원만 올릴 수 있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오 시장은 지난 10일, 윤 대통령이 전북 전주에서 주재한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했다. 이 도지사가 밝힌 대화는 시기상 이 자리에서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다만 윤 대통령은 오 시장 건의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울시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며칠간 난항을 겪은 서울시는 요금 인상을 올해 하반기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결국엔
미뤘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시는 “지속되는 고물가로 인해 가중되는 서민 가계부담을 완화하고, 정부의 공공요금 상반기 동결 기조에 호응해 대중교통 요금 인상 시기를 올해 하반기로 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시는 시의회 의견청취 등 요금 인상을 위한 행정절차를 당초 계획대로 추진해나간다.

하반기 들어 곧바로 요금 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인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하반기 일정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 내년까지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반기에는 (반드시)인상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서울시가 뜻을 접은 배경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강조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민의 대중교통 이용 부담을 완화할 각종 대책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중 “도로·철도·우편 등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요금은 최대한 상반기 동결 기조로 운영하겠다”며 “지방정부도 민생 안정의 한 축으로서 지방 공공요금 안정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서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안팎을 기록해 정점을 찍고, 다음 달부터는 서서히 내림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버스·택시 등 지자체 공공요금 인상이 안정세에 접어들 물가를 밀어 올리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정부는 서민 교통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알뜰교통카드 지원을 늘릴 방침이다. 알뜰교통카드는 대중교통 이용 때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에 비례해 최대 20% 마일리지를 지급하는 교통카드다. 여기에 카드사가 10% 내외의 추가 할인을 제공한다. 

말린 정부, 교통비 완화 정책
세종시는 ‘전면 무료화’ 선언

지금은 마일리지를 월 44회까지 쌓을 수 있는데, 정부가 나서 한도를 60회까지 늘려주겠다는 것. 저소득층 한정으로 적립단가를 건당 200원 올리는 조치도 더해졌다.

아울러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폭도 넓힌다. 공제율을 올해 내내 40%에서 80%로 올려 적용한다. 당초 올해 상반기까지만 적용 예정이었던 게 하반기까지 늘어난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심사소위원회는 올해 대중교통 소득공제율을 80%로 늘리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잠정 의결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세종시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요금 인상을 추진하는 서울시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세종시는 지난 13일 “시내버스 요금 무료화를 위해 추진한 ‘대중교통 효율화를 위한 연구 용역’을 이달 말 마무리한다”고 밝혔다.

세종시 시내버스 요금 무료화는 지난해 당선된 최민호 시장의 핵심 공약이다. 유세 당시 최 시장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해 시내버스 무료화를 추진할 것”이라며 “다른 예산을 절감해 시내버스 운영에 투입하면 요금 무료화가 가능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시내버스 무료화 정책을 펴는 건 세종시가 처음이다. 충남과 대구 등 일부 광역지자체가 어린이와 노인 등을 대상으로 요금 무료 정책을 시행하는 선례는 있다.

세종시는 이번에 마무리되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6월까지 요금 무료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대중교통 기본조례 개정도 하반기 중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종시가 예상하는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시점은 2025년 1월로 알려졌다.

관건은
적자 보충

관건은 재원 확보다. 현재 세종시 시내버스 요금은 1400원(현금 1500원)이다. 무료화가 시행되면 매년 500억∼1000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추산된다. 세종시가 막대한 적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세종시 관계자는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 적자를 어떻게 보충할지는 연구용역과 재정 여건을 고려해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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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