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운의 농구스타 김영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2.06 12:16:02
  • 호수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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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가…비참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화장품의 장신 센터 김영희가 점보시리즈 개막 이래 최고의 스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5㎝에 98㎏의 거구 김영희는 점보 1차 시리즈서 센터답게 1게임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고 기록인 52점을 올렸으며 리바운드도 17개나 뽑아내 공수 양면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경향신문>, 공포의 최장신 김영희, 1983)

지난 1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KB와 부천 하나원큐 경기 시작에 앞서 추모하는 묵념을 15초간 진행했다. 추모의 대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 김영희다. 김영희는 지난달 31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희의 별세 소식에 농구계가 슬픔에 잠겼다.

대한민국
최장신

김영희는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여자농구선수다. 205㎝ 키로 한국 여성 중에서도 최장신으로 알려졌다. 김영희가 아기 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백일기도를 할 정도였다. 김영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165㎝ 정도로 크지 않았다.

장신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맨 뒤에 설 정도로 키가 작았지만, 5학년 때는 175㎝가 넘었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큰 키는 그 자체로 좋은 자질이 될 수 있지만,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에게는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 김영희는 “어려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장군감’이라고 말하던 동네 어른들을 피해 멀리 돌아다녔다.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 갔을 때 아이들이 집 앞에 몰려와 ‘거인 나와라’고 외쳐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키가 커서 운동을 시작한 것은 맞다. 중학생 때 감독님이 ‘너는 서서 그물망에 공만 집어넣으면 된다’고 말했다. 큰 키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러브콜을 많이 받기도 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학교에서는 김영희 때문에 배구팀을 만들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공부를 중단하고 서울로 상경해 1년 동안 실업 배구팀 생활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결핵으로 요양 중이었고,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했다. 가난한 집에서 밥 구경도 못하다 서울 실업 배구팀으로 간 후 키는 187㎝까지 컸다.

결국 그가 운동을 선택한 것도 돈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1년 간 국수만 먹은 적도 있었다.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어 시작한 운동이었다. 어린 나이에 제안받은 월급은 김영희에게 큰돈이었다.

김영희가 처음부터 농구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농구와 배구선수를 전전하던 그는 동주여자중학교 농구부 시절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키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축복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1981년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에 입단한 김영희는 대회 엠블럼에 코끼리 그림이 들어간 점보시리즈가 출범하면서 주목받았다. 1983년 12월11일 한국화장품 대 조흥은행 경기에서 최다인 52점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 5관왕을 차지했다. 득점상, 리바운드상, 야투투사율상, 최우수상, 인기상이었다. 

큰 키로 고등학교 때부터 러브콜
84년 올림픽 은메달 쾌거 주인공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의 쾌거를 이룬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 공로로 이후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 등을 받기도 했다.


언론은 김영희를 두고 “물찬 코끼리가 나르는 코끼리로 변했다”고 비유했다. 이때가 최전성기로 힘들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면도 존재했다. 김영희는 성적 지상주의로 인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다. 특별히 컸던 키는 뇌하수체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과잉 분비되면서 발현된 결과였다. ‘거인증’이라고도 불리는 말단비대증은 초기에는 증상이 없고, 증상도 점진적으로 진행돼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김영희는 고교 시절부터 병마에 시달렸다. 극심한 두통에 밤새 눈물을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감독에게 훈련 및 경기를 빼달라고 사정하면 어린 선수의 꾀병으로 받아들였다. 아프다고 말하면 사우나에 들어가 몇 시간씩 러닝을 해야 했다. 

통증은 진통제로 해소했다. 경기에 나서기 전에는 독한 진통제를 먹어야 했고, 경기에 뛸 때는 고통을 잊었지만, 밤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든 선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 스피드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3점슛 제도 도입으로 농구 전술이 바뀐 것도 악재였다. 김영희는 “경기에 지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벤치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체중이 120㎏까지 불어났다.

훈련받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워지자, 소속팀에선 체중감량을 요청해 물 한 방울조차 먹을 수 없었다.

1987년 11월 말단비대증 진단을 받았고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뼈 성장으로 손발과 얼굴 등은 물론 혀와 같은 연부 조직까지 커졌다. 저혈당 및 갑상선 질환, 장폐색 등 합병증도 김영희를 괴롭혔다. 

1987년 11월은 두통이 극심해졌다. 샤워할 때 머리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이때가 스물다섯살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뇌종양 판정을 받아 꿈을 접어야 했다.

거인병
뭐길래…

김영희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가려는데 간호사가 기쁜 소식이 왔다고 전했다. 신문에 ‘김영희, 점보시리즈 1000득점 돌파’라고 보도됐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농구공을 손에 놓지 않으며 재기 의지를 이어갔지만 끝내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렇다고 농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수술 직후 훈련을 시작했지만 다시 쓰러졌다. 병원에선 ‘생명이 위독하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김영희의 선수 생활이 막을 내렸다.

불행은 파도처럼 찾아왔다. 아버지가 방광암 판정을 받았고, 그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출혈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이어 2000년 세 차례의 암 수술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김영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개월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130㎏ 나가던 체중이 70㎏까지 빠졌다.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다. 남동생의 간곡한 설득 때문에 다시 살기로 했다”며 “말단비대증으로 매달 150만원 넘게 드는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나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하늘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고 회상했다.

김영희를 가장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은메달리스트로 체육 연금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돈으로 한 달을 연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부산의 8평 남짓한 아파트서 홀로 거주하며 계속되는 생활고를 겪었다. 어떤 때는 보름도 안 지났는데 7000원만 남은 적도 있었다. 

한 번 입원하면 2개월 넘게 했다.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불안증, 우울증이 심해져 3~4년간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난방을 틀지 않고 울기도 했다. 

2002년 KBS <추적 60분> 방송팀이 김영희를 찾아왔다. 국가대표였던 김영희의 어려운 삶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방송팀과 함께 병원에 간 김영희는 자신이 거인병에 걸렸단 사실을 몰랐다. 은퇴 당시까지도 뇌하수체 종양으로 몸이 불편한 줄만 알았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말은 김영희를 좌절시켰다.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지독한 병마
나눔의 시작


김영희는 “당시 국가대표 선수 연금으로 매달 받는 2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당연히 수술비도 없었고, 간병해줄 사람도 없었다. 너무 서러워서 주저앉아 울었다. 병원에선 3일 동안 수술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했다. 3일 뒤 그냥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다.

당시 그는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다 저를 피한다. 너무 큰 몸 때문에. 지금 제 모습이 너무 싫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희는 “그랬더니 병원에서 저와 비슷한 거인증을 앓던 남성이 약물치료로 나은 사례가 있다면서 수술 말고 치료를 권했다. 매달 주사 한 번 맞고 약 타는 데 300만원씩 들었다”며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10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국위 선양한 만큼 도움을 주자’고 결론내렸다. 이분들의 나눔으로 생명이 연장된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도움의 손길은 또 이어졌다. 한 택시기사는 10년 넘게 몸이 불편한 김영희의 운전기사 역할을 자처했고, 집주인은 “평생 전세금을 올리지 않을 테니 이곳에서 편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배려했다.

쌀과 음료 등 식재료가 떨어질 때마다 몰래 채워주기도 했다. 제주도서 겨울마다 한라봉을 보내주는 따뜻한 이웃도 있었다. 선수 시절 혼자 경기를 보러 왔던 한 장애인은 김영희의 소식을 들은 뒤 매달 5만원의 성금을 보냈다. 

이런 김영희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있다. 바로 어머니의 유언이다.

모친은 “엄마, 아빠 다 죽고 너 혼자 되면 남에게 먼저 베푸는 삶을 살아라. 너가 나중에 늙어 걷기도 힘들 때 누가 널 도와주지 않는다”며 “힘들어도 누군가를 부축하고 일으켜야 너도 살 수 있다. 너가 먼저 고개 숙이고 베풀어야만 다른 사람들도 너를 돌봐주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기초연금과 메달 포상연금 등으로 생활한 김영희는 면도날 끼우기, 양말 실밥 제거, 전자제품 조립 등 가내 부업으로 장애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을 도왔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쌀 같은 구호품 등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하루 버는 돈은 1만원도 되지 않았지만, 김영희는 행복했다.

장애인 자원봉사는 김영희를 부끄럽게 했다. 불편한 몸으로 양말을 신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홀몸 노인에게 팥죽을 끓여주기도 하고 자신을 놀리던 꼬마들에게는 과자와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승합차에 과자, 음료수, 떡, 양말을 가득 싣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았다. 김영희가 문에 들어서자 50명의 장애 아이들이 겁을 내며 달아났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다가오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져 결국 친구가 됐다.

말단비대증 합병증으로 선수 생활 중단
“장애인 봉사 시작으로 우울증 치료해”

김영희는 아이들이 신고 있던 낡은 덧버선을 예쁜 수면양말로 바꿔 신겼다. 다리와 발가락이 휘어져 양말을 신기조차 어려운 친구를 만났을 땐 눈물이 흘렀다. 

이런 경험은 그의 삶을 바꿨다. 자신이 가진 아픔으로 끙끙 앓던 과거 모습을 부끄럽게 느꼈다. 헤어질 때면 손을 꼭 잡고 가지 말라고 외치던 아이들의 모습이 항상 눈에 아른거렸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시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양손 가득 물품을 들고 찾아갔다. 그렇게 김영희가 다녀간 장애인 시설 및 보육원만 4곳이다.

김영희의 모습을 본 동네 주민들도 나눔에 동참했다. 인근 중국집 사장은 “혼자 좋은 일 하지 말고 같이하자”며 70인분 자장면을 들고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다.

성금을 걷어 전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증상이 악화된 이후부터는 독거노인을 위한 나눔을 시작했다.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기엔 걷는 것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았다. 김영희는 보름을 굶었다는 할아버지를 위해 갈비탕을 사 드렸다. 동네 노인이 김영희의 집에 오면 호박죽도 만들고 가락국수도 만들어 대접했다. 남은 음식은 용기에 담아 싸드리기도 했다.

먼저 다가가니 사람들도 그에게 다가왔다. 이때부터 김영희의 별명은 ‘거인 아줌마’에서 ‘이쁜이’로 바뀌었고, 집은 동네 사랑방이 됐다. 이웃은 “아픈 데 없냐” “밥은 먹었냐”며 매일 찾아와 음식을 나눠줬다. 김영희는 혼자 사는 어른과 한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냈다. 덕분에 심각했던 외로움과 우울증을 떨쳐낼 수 있었다.

평생을 미혼으로 살아온 김영희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래층에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어린 자매에게 김영희는 또 다른 엄마였다. 성금이 들어올 때마다 생활비, 병원비는 물론 컴퓨터 등 필요한 학용품도 사줬다.

그렇게 8년간 아이들을 키웠고 고민 상담도 했다. 김영희는 “학교서 친구들이 계속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고 울었다. 안 그러면 엄청나게 맞는다면서 우는데, 나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학교 교장 선생님께 전화해 학교폭력을 해결해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며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서 아이 이야길 천천히 듣고는 해결을 약속했다.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됐고, 지금도 ‘이모 보고 싶다’며 연락이 온다”고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따뜻하게
기억되길

김영희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따뜻함은 여전하다. “제가 좋아하는 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하늘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그렇게 살라 하네.’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키가 큰 여자가 있었는데, 마음은 솜사탕이더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 덩치에 마음이 좋으면 안 된다. 이웃을 향한 작은 관심이야말로 나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절망 속에 있던 제가 일어선 것처럼.”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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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노 차준영’에 1조 물린 DL이앤씨···손배 소송전 전말

‘에테르노 차준영’에 1조 물린 DL이앤씨···손배 소송전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DL이앤씨가 시행사 시티원 차준영 회장과 다툼 중인 1조원대 공사비 정산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2월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보도에서 소송전의 내막을 설명했다. 이에 관해 차 회장은 “허위 보도”라며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항소심 재판을 최초로 언급한 <이데일리> 보도와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통일동산 공사비 소송의 규모와 구조 자체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차준영 시티원 회장은 통일동산 사업의 손실 구조를 발생시키고 떠난 뒤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으로 변신했다. 넥스플랜은 한 채에 200억~400억원에 달하는 아파트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사다. 18년째 흉물 방치 서울고등법원은 2026년 2월5일 선고한 항소심에서 DL이앤씨가 제기한 공사 대금 등 청구 사건과 관련해 시티원 측 항소를 기각했다. 1심 인용액 약 5184억원을 유지하면서 추가 청구액 약 45억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원금 기준 약 5229억원 규모의 채권이 인정된 것으로 나타난다. 판결문에는 기성 공사 대금, 연대보증에 대한 구상금, 대여금 채권이 각각 구체적으로 산정돼있다. 일부 채권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연 17%의 지연이율이 적용되는 구조도 확인됐다. 지연손해금까지 합산할 경우, 시티원과 차 회장의 최종 부담액이 총 1조원에 이를 수 있다. 일부 채권의 이자 기산일이 2009~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다 지연손해금까지 적용하면 실제 지급 총액은 1조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건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L이앤씨는 시티원과 공사비 4125억원, 공사 기간 28개월 조건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파주 통일동산 관광숙박시설 사업에 착수했다.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경기 파주시 탄현면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아울렛’ 인근에 지하 3층~지상 15층 규모 관광숙박시설(1265실)을 새로 짓는 사업이다. DL이앤씨는 2006년 12월 시티원과 도급계약을 맺고 이듬해 11월 착공에 나섰다. 2008년 9월 사전청약을 실시했으나, 청약률이 9%(118실)에 그쳤다. 사전 청약자들은 잇따라 해약에 나섰고 시티원은 본 계약에 나서지 않았다. DL이앤씨는 결국 공정률 33% 수준이던 2008년 12월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 12년 만인 지난 2020년 8월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한 기성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 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 등 총 573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와 공사비 소송 패소 최종 부담액 1조500억원 추산 차 회장은 도급계약상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 내 공사를 완료해야 하지만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DL이앤씨가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의 5%)과 미래 분양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 등 총 5327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반소했다. DL이앤씨는 “시티원이 도급 계약상 의무인 콘도 분양을 사실상 포기해 공사 대금을 지급받을 수 없게 돼 이에 불가피하게 공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차 회장은 “분양률이나 공사비 지급 여부와 무관하게 DL이앤씨에게 기간 내 공사를 완료할 책임 준공 의무가 있다”고 맞선 것이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까지 투입한 기성 공사비와 연대보증에 따른 대위 변제금, 대여금 등을 합산해 소송을 제기했다. 시티원 및 차 회장 측은 책임 준공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반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사 대금을 지급받기 어려운 현저한 사유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판단해 반소를 기각했다. DL이앤씨 측은 현재 차 회장 통장과 부동산에 대해 압류 조치를 취해둔 상태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강제집행 절차를 통한 채권 회수에 적극 나설 계획으로 알려졌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 12년 만인 지난 2020년 8월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차 회장은 통장 등이 압류되자, 친형인 차대영 명의 계좌를 빌려 에테르노 압구정의 분양 계약금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분양금이 넥스플랜으로 이체된 사실도 거래 내역서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차 회장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로드맵은 내용증명을 통해 “본인(차 회장)은 해당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며, 5184억원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고, 계좌 압류나 자금 유용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문에는 거액의 채권 인용 사실이 명시돼있고, 차 회장이 사건 당사자로서 소송에 참여한 구조가 확인된다. 상상 초월 손배 액수 <일요시사>는 앞선 보도에서 통일동산 사업 1심 판결 규모와 함께, 차 회장의 또 다른 사업지인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 과정에서 제기된 자금 흐름의 수상한 점을 다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재무제표에 따르면 시티원과 차 회장의 현재 회사인 넥스플랜은 최근 자본잠식 상태로 나타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티원의 2024년 말 기준 부채 총계는 약 6289억원으로 자산(약 1359억원)을 약 4930억원 초과했다.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4930억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매출은 전무한 채 판관비와 이자비용 등 비용만 쌓이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판결 확정 및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될 경우, 사업과 재무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DL이앤씨 측이 채권 보전을 위해 압류 조치를 취한 만큼, 실제 집행 단계에서 어떤 자산이 대상이 될지도 향후 관전 포인트다. 차 회장이 현재 운영 중인 넥스플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넥스플랜의 2024년 말 기준 부채 총계는 약 5432억원으로 자산(약 5244억원)을 약 188억원 초과했다.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188억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당기순손실은 약 214억원에 달한다. 매출은 분양·용역 합산 약 669억원을 기록했지만 판관비가 전년(약 131억원)보다 3배 이상 급증한 약 399억원에 달했다. 이자비용도 약 261억원에 이르러 영업손실 약 111억원을 포함한 세전 손실 약 214억원이 발생하는 구조다. 넥스플랜은 현대건설과 손잡고 가수 아이유 등 유명인들이 분양받은 강남 초고가 하이엔드 주거 단지 ‘에테르노 청담’을 완판한 데 이어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29세대 규모의 ‘에테르노 압구정(총분양 예정가액 6860억원)’을 개발 중인 시행사다.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시티원과 관련 계열사의 재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에테르노 분양 자금이 신탁 구조 안에서 적정하게 관리됐는지도 쟁점이다. 부실한 재무 판관비만 ↑ 통일동산은 신세계사이먼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임진각, 출판단지와 인접한 관광 요지로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조성된 통일동산 지구의 핵심 숙박시설로 기대를 모았지만, 장기간 방치되면서 관광특구의 경쟁력 약화와 도시 이미지 훼손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시는 ‘부동산투자이민제 지구’ 지정, 국토교통부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 공모 추진 등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시티원 측은 전면 철거 후 아파트 단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DL이앤씨와 공사비 정산 갈등으로 인해 흉물로 남겨졌다. 현재는 지구단위계획 변경 가능성까지 거론되나 특혜 논란 우려도 적지 않다. DL이앤씨는 채권 확보를 위해 관련 자산 압류 조치를 취한 상태로, 판결 확정 시 강제집행에 나설 방침으로 전해졌다. 다만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시티원의 재무 여력이 취약해 실제 채권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지역사회에서는 “더 이상 흉물 방치를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자유로를 따라 오두산통일전망대, 임진각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앙상한 공사 현장이 도드라지는 등 통일동산 미관을 해치고 있는 이유에서다. 시 관계자는 “채무 정리 이후 사업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관광숙박시설 원안 복원, 주거·복합개발 전환, 공공 주도 방식이나 자력 재개 등 여러 방안이 가능하지만 결국 사업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창호 파주시 의원은 “2009년 4월 공사가 중단된 후 장기간 방치돼 지역의 흉물로 남아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지속되고 있다”며 “10년 이상 방치되니 짓다가 중단된 건물들이 시커멓게 변해 점점 더 흉물스러워졌다”고 밝혔다. 차가원-MC몽 불륜설 제보 배우 데리고 카지노 동행 탄현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공사가 중단된 콘도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며 “공사 중단 건축물로 인한 도시 미관 저해, 덩달은 주변 지역 쇠퇴화가 이어지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DL이앤씨가 시행사 시티원과의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지만 시티원 측은 항소심 패소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시티원(회장 차준영)은 2월24일 DL이앤씨가 낸 파주 통일동산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의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한편, 차 회장은 영화배우 김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 회장이 워커힐 카지노 VVIP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냐는 것이다. 차 회장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 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 회장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또 자신의 친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눠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MC몽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재차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 회장이다. 제보에 따르면 “차 회장이 MC몽의 해외 원정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압구정 모 샤브샤브 식당에서 식사를 접대했다”고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이 관계자와 나눈 카카오 톡 대화에서 “차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VVIP라 가능? 간 큰 회장님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또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