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베트남 뒤집고 돌아온 ‘쌀딩크’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스포츠 감독이란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여간해선 박수받으며 떠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달랐다. 베트남 국민은 지난 5년간 ‘마법’을 선보인 그의 마지막을 뜨거운 환호로 배웅했다. ‘백수’ 감독과 축구 변방국이 함께 일궈낸 기적은 우리 국민들마저 놀라게 했다. 일명 ‘쌀딩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축구계에선 인간적인 리더십과 발상의 전환 전술을 꼽는다.

비록 완벽한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쌀딩크’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과의 동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지난 16일, 태국 빠툼타니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아세안축구연맹(AFF) 축구선수권대회(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0-1로 패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우승컵 탈환을 노리던 베트남은 대회 최다 우승국인 태국에 가로막혔다. 앞서 박항서호는 베트남에서 열린 1차전에서 2-2로 비겼다. 이들은 결국 합계 점수 2-3으로 밀리며 대회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5년의 매직
뜨거운 안녕

임기가 이달 말까지인 박 감독은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박 감독의 지도력은 이미 동남아 축구계에서 널리 인정받은 지 오래다. 이는 이번 대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승에서 마주친 ‘적장’도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국 축구 대표팀의 누안판 람삼 단장은 박 감독에 관해 “그를 정말 존경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바꿔놨다. 나아가 동남아시아 축구의 판도에 변화를 일으켰다”며 칭찬했다. 이어 “현재 세계 랭킹도 베트남이 96위, 태국이 111위로 차이가 있다. 베트남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며 박 감독을 추켜세웠다.


박 감독은 이날 경기 종료 후 베트남 사령탑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공식 기자회견에 임했다. 박 감독은 “이제 나는 더는 베트남 감독은 아니지만, 베트남과 베트남 U23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 될 것”이라며 “서로 좋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마지막 경기 후 여전히 실망과 아쉬움이 있다. 나와 팀이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고 싶기도 하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선수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슬픔을 위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삶은 두 번의 우연으로 크게 뒤바뀌었다. 박 감독이 축구계에 발을 들인 것도, 베트남으로 향한 것도 모두 그가 쉽사리 예상했던 길은 아니었다.

박 감독은 1957년 10월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경찰 간부 출신 아버지는 직무 중 부상을 입었던 국가유공자였다. 어머니는 지역 명문 진주여고를 나왔다. 이들은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했고, 그 덕에 박 감독은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축구를 굉장히 늦게 시작 편에 속했던 그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장래희망이 군인이었다. 그는 부모의 높은 교육열에 서울로 상경했다. 하지만 당초 목표였던 배재고 입학시험에 낙방했다. 대신 경신고로 향한 박 감독은 배재고 낙방에 좌절하던 중 훈련하는 축구부원들을 목격했다.

알고 보니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리던 차범근이 경신고 축구부 출신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감독은 비록 늦깎이일지라도 축구부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키 166㎝에 깡마른 체격, 전무한 경력 등이 걸림돌이었다. 경신고 축구부가 마땅한 강점이 없어 보이던 박 감독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어떻게든 축구를 하고 싶었던 박 감독은 인맥을 활용한 ‘낙하산’ 작전까지 불사했다. 그는 당시 경신고 축구부 감독과 절친했던 친척에게 부탁해 기어코 축구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축구 무경력자가 출전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늦깎이 축구선수·짧은 선수 생활…특이한 이력
베트남 지휘봉 잡고 대반전 일궈 국민 영웅 등극

당시 박 감독은 반년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운동부에 들며 학사관리가 미흡해진 탓에 1년 유급까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종일 축구공을 가지고 훈련하며 실력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어느새 탄탄한 기량을 갖춘 미드필더가 된 그는 1976년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 골을 넣었다. 이 골로 경신고는 우승컵을 들었다. 한양대 진학 이듬해인 1978년에는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박 감독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1981년 실업팀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실업 선수로 데뷔한 직후 곧바로 육군 축구단에 입대해 군 복무까지 마쳤다.

전역한 박 감독은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창단 멤버로 입단해 프로 무대에 섰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그는 1985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동시에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듬해에는 팀 주장으로 선임돼 팀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1988년 시즌이 끝난 후 돌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호적상의 나이 29세, 실제론 3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결국 실업팀, 군 복무 기간을 뺀 박 감독의 선수 생활은 단 4년에 불과했다.

박 감독이 성인 대표팀으로 뛴 경기는 선수생활을 통틀어 1경기뿐이다. 그는 1981년 3월 한일 정기전에서 전반 17분 교체 투입돼 73분간 뛰었다.

대신 박 감독은 이른 나이에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 후 친정 팀인 LG 치타스(전 럭키금성 황소)의 트레이너로 선임돼 1996년까지 활동했다. 이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해 2000년 시즌 시작 전까지 직을 수행했다.

국가대표 코치진에도 수차례 발탁됐다. 1994년에는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김호 감독을 보좌했으며, 2000년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 후임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내정되기도 했다. 그해 박 감독은 12월2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에서 감독대행 자격으로 경기를 지휘했다.

2002년엔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들 간의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감독은 4강 진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받았다.

그가 남긴
대기록들


월드컵 이후 2002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아 처음으로 감독직에 부임한다. 하지만 월드컵 4강 주역들을 일부 대동하고도 동메달에 그치자,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물론 일각에선 월드컵 준비에 너무 치중했던 나머지 아시안게임이 졸속으로 준비된 점, 전적만 놓고 보면 9전 7승 1무 1패(승부차기)였던 점 등을 감안하면 비판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박 감독은 결국 해임됐다.

그는 K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포항 스틸러스 코치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 기술고문을 맡았다. 사실 박 감독은 당초 전남 감독직을 제안받았으나, 허 감독이 대표팀 수석코치를 그만두고 전남 감독으로 급히 부임하는 바람에. 사실상 명예직 수준이었던 기술고문 자리로 밀려났다.

그가 첫 프로 팀 감독을 맡은 곳은 고향을 연고지로 한 경남FC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상주상무, 창원시청축구단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지도자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7년, 팀을 나온 박 감독은 자신의 감독 생활도 사실상 끝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동남아 진출을 제안하며 에이전트와 직접 연결해줬다고 한다. 

며칠 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제의가 왔다. 박 감독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박 감독의 삶과 베트남의 축구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A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 지휘봉을 동시에 잡으며 전권을 부여받았다. 박 감독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권에 있던 베트남 축구를 100위권 이내로 진입시키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감독의 지도를 받은 베트남은 2018년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이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다. 이어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동남아시안게임(SEA)에서 60년 만에 베트남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2020년 5월에는 자국에서 열린 SEA에서 2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아울러 A 대표팀도 눈에 띄는 성과를 여럿 남겼다. 2018년 AFF컵 대회에서 우승에 성공했다. 2019 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베트남 최초로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이뤄냈다. 더 나아가 중국을 제압하며 최종예선 첫 승을 기록했다.

파파 리더십
동행 마무리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에게 훈장을 3개 수여했다. 베트남 국민은 박 감독 재계약·연봉 인상 운동을 벌였다. 박 감독은 국민적인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여러 광고에 출연했고, 그를 주제로 한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했다. 

이에 박 감독 한 명으로 양국 관계가 진전되는 듯한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우리 정부는 이 공로를 인정해 지난달 초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 방한으로 마련된 국빈만찬에서 박 감독에게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했다. 

박 감독의 성공 배경에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따른 실리 추구형 전략이 깔려 있다. 박 감독은 부임 직후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으로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을 꼽았다. 심지어 지금도 박 감독의 전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움직이는 선수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축구계의 평가다. 

박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소 독특한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우선 그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4백 전술을 버리고 3-4-3 전술을 채택했다. 박 감독은 최후방 3백의 좌우를 일반적인 3백의 중앙수비수 2명 대신, 팀에서 가장 볼 간수를 잘하는 미드필더 선수들로 기용했다. 

비록 3백이지만 좌우 사이드백이 마치 측면수비수처럼 빌드업에 가담하게 한 것이다. 대신 미드필더 4명 중 중앙의 2명은 왕성한 체력과 속도를 앞세워 유사시 중앙수비수 역할을 병행하도록 했다. 사실상 중앙수비수와 중앙미드필더들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베트남은 이 역발상을 통해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질서 있는 공격·수비 전개가 가능해졌다.

냉철한 현실 인식, 실리축구 전략
따뜻한 리더십으로 선수단 이끌어

사실 이것이 완벽한 전술은 아니다. 상대의 최전방 공격수가 중앙 수비수들을 강하게 압박하면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상대 2선 공격수들의 공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의 경쟁상대로 꼽히는 국가 사이에선 큰 위협이 되는 공격수가 많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박 감독은 ‘파파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부임 후 베트남 문화를 존중하고 선수들을 자식처럼 대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8년 12월 스즈키컵 당시, 결승 1차전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던 중 비행기에서 부상 선수에게 자신의 비즈니스석을 양보한 미담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또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기자회견 중인 박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깡충깡충 뛴 적이 있었다.

이때 박 감독은 싫은 내색 없이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선수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였다. 박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박 감독은 선수단과 소통하기 위해 먼저 다가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대회마다 직접 의무실을 찾아가 부상 중인 선수들을 직접 위로했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선수들에겐 따로 양해를 구했다.

박 감독은 아직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국내 감독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박 감독이 직접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에도 베트남과 한국에선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한국에는 저보다 훌륭한 후배, 동료가 많다. 한국에서 현장 지도자로서 할 역할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성격상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못 한다”며 “소속사 대표가 제 미래에 대해 몇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도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들과도 상의해야 할 부분이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게 저에게 적합한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분명한 건 제가 축구를 가장 잘할 수 있으므로 축구계에 종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감독은 행정가로 일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국내에서 협회나 연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행정적인 건 제 능력이 안 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제안이 온다면 고려하겠지만, 협회나 연맹에 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한국과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제안이 온다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어디로?

당장 다음 월드컵부터 종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본선 참가국이 늘어났다. 아시아 국가의 본선 진출 자리가 늘어나면서, 이를 노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 국가들이 박 감독을 영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감독 역시 아직 사령탑 자격으로 월드컵에 나서본 적이 없는 만큼, 이는 동기 부여를 명확하게 주는 제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 감독은 “이번 카타르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를 보면서 월드컵에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며 “부족하지만, 저를 불러준다면 한 번 생각은 해볼 것이다. 하지만 저를 불러주는 팀이 있겠느냐”고 웃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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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