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베트남 뒤집고 돌아온 ‘쌀딩크’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스포츠 감독이란 잘해야 본전인 자리다. 여간해선 박수받으며 떠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달랐다. 베트남 국민은 지난 5년간 ‘마법’을 선보인 그의 마지막을 뜨거운 환호로 배웅했다. ‘백수’ 감독과 축구 변방국이 함께 일궈낸 기적은 우리 국민들마저 놀라게 했다. 일명 ‘쌀딩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축구계에선 인간적인 리더십과 발상의 전환 전술을 꼽는다.

비록 완벽한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쌀딩크’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과의 동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지난 16일, 태국 빠툼타니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아세안축구연맹(AFF) 축구선수권대회(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0-1로 패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우승컵 탈환을 노리던 베트남은 대회 최다 우승국인 태국에 가로막혔다. 앞서 박항서호는 베트남에서 열린 1차전에서 2-2로 비겼다. 이들은 결국 합계 점수 2-3으로 밀리며 대회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5년의 매직
뜨거운 안녕

임기가 이달 말까지인 박 감독은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박 감독의 지도력은 이미 동남아 축구계에서 널리 인정받은 지 오래다. 이는 이번 대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승에서 마주친 ‘적장’도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국 축구 대표팀의 누안판 람삼 단장은 박 감독에 관해 “그를 정말 존경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바꿔놨다. 나아가 동남아시아 축구의 판도에 변화를 일으켰다”며 칭찬했다. 이어 “현재 세계 랭킹도 베트남이 96위, 태국이 111위로 차이가 있다. 베트남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며 박 감독을 추켜세웠다.


박 감독은 이날 경기 종료 후 베트남 사령탑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공식 기자회견에 임했다. 박 감독은 “이제 나는 더는 베트남 감독은 아니지만, 베트남과 베트남 U23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 될 것”이라며 “서로 좋은 추억을 영원히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마지막 경기 후 여전히 실망과 아쉬움이 있다. 나와 팀이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고 싶기도 하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선수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슬픔을 위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고 전했다.

박 감독의 삶은 두 번의 우연으로 크게 뒤바뀌었다. 박 감독이 축구계에 발을 들인 것도, 베트남으로 향한 것도 모두 그가 쉽사리 예상했던 길은 아니었다.

박 감독은 1957년 10월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경찰 간부 출신 아버지는 직무 중 부상을 입었던 국가유공자였다. 어머니는 지역 명문 진주여고를 나왔다. 이들은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했고, 그 덕에 박 감독은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냈다. 

축구를 굉장히 늦게 시작 편에 속했던 그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장래희망이 군인이었다. 그는 부모의 높은 교육열에 서울로 상경했다. 하지만 당초 목표였던 배재고 입학시험에 낙방했다. 대신 경신고로 향한 박 감독은 배재고 낙방에 좌절하던 중 훈련하는 축구부원들을 목격했다.

알고 보니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리던 차범근이 경신고 축구부 출신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 감독은 비록 늦깎이일지라도 축구부원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키 166㎝에 깡마른 체격, 전무한 경력 등이 걸림돌이었다. 경신고 축구부가 마땅한 강점이 없어 보이던 박 감독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어떻게든 축구를 하고 싶었던 박 감독은 인맥을 활용한 ‘낙하산’ 작전까지 불사했다. 그는 당시 경신고 축구부 감독과 절친했던 친척에게 부탁해 기어코 축구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축구 무경력자가 출전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늦깎이 축구선수·짧은 선수 생활…특이한 이력
베트남 지휘봉 잡고 대반전 일궈 국민 영웅 등극

당시 박 감독은 반년간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운동부에 들며 학사관리가 미흡해진 탓에 1년 유급까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종일 축구공을 가지고 훈련하며 실력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어느새 탄탄한 기량을 갖춘 미드필더가 된 그는 1976년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 골을 넣었다. 이 골로 경신고는 우승컵을 들었다. 한양대 진학 이듬해인 1978년에는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박 감독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1981년 실업팀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했다. 실업 선수로 데뷔한 직후 곧바로 육군 축구단에 입대해 군 복무까지 마쳤다.

전역한 박 감독은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창단 멤버로 입단해 프로 무대에 섰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2번이었다. 그는 1985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끄는 동시에 리그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듬해에는 팀 주장으로 선임돼 팀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그는 1988년 시즌이 끝난 후 돌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호적상의 나이 29세, 실제론 31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결국 실업팀, 군 복무 기간을 뺀 박 감독의 선수 생활은 단 4년에 불과했다.

박 감독이 성인 대표팀으로 뛴 경기는 선수생활을 통틀어 1경기뿐이다. 그는 1981년 3월 한일 정기전에서 전반 17분 교체 투입돼 73분간 뛰었다.

대신 박 감독은 이른 나이에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 후 친정 팀인 LG 치타스(전 럭키금성 황소)의 트레이너로 선임돼 1996년까지 활동했다. 이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해 2000년 시즌 시작 전까지 직을 수행했다.

국가대표 코치진에도 수차례 발탁됐다. 1994년에는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김호 감독을 보좌했으며, 2000년 허정무 감독의 사퇴 뒤, 후임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내정되기도 했다. 그해 박 감독은 12월20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정기전에서 감독대행 자격으로 경기를 지휘했다.

2002년엔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감독과 선수들 간의 가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감독은 4강 진출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여받았다.

그가 남긴
대기록들


월드컵 이후 2002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아 처음으로 감독직에 부임한다. 하지만 월드컵 4강 주역들을 일부 대동하고도 동메달에 그치자,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물론 일각에선 월드컵 준비에 너무 치중했던 나머지 아시안게임이 졸속으로 준비된 점, 전적만 놓고 보면 9전 7승 1무 1패(승부차기)였던 점 등을 감안하면 비판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박 감독은 결국 해임됐다.

그는 K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포항 스틸러스 코치를 거쳐 전남 드래곤즈 기술고문을 맡았다. 사실 박 감독은 당초 전남 감독직을 제안받았으나, 허 감독이 대표팀 수석코치를 그만두고 전남 감독으로 급히 부임하는 바람에. 사실상 명예직 수준이었던 기술고문 자리로 밀려났다.

그가 첫 프로 팀 감독을 맡은 곳은 고향을 연고지로 한 경남FC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 상주상무, 창원시청축구단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지도자 세대교체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7년, 팀을 나온 박 감독은 자신의 감독 생활도 사실상 끝난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동남아 진출을 제안하며 에이전트와 직접 연결해줬다고 한다. 

며칠 후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제의가 왔다. 박 감독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박 감독의 삶과 베트남의 축구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A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 지휘봉을 동시에 잡으며 전권을 부여받았다. 박 감독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권에 있던 베트남 축구를 100위권 이내로 진입시키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 감독의 지도를 받은 베트남은 2018년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이라는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았다. 이어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동남아시안게임(SEA)에서 60년 만에 베트남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2020년 5월에는 자국에서 열린 SEA에서 2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아울러 A 대표팀도 눈에 띄는 성과를 여럿 남겼다. 2018년 AFF컵 대회에서 우승에 성공했다. 2019 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 진출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베트남 최초로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이뤄냈다. 더 나아가 중국을 제압하며 최종예선 첫 승을 기록했다.

파파 리더십
동행 마무리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에게 훈장을 3개 수여했다. 베트남 국민은 박 감독 재계약·연봉 인상 운동을 벌였다. 박 감독은 국민적인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여러 광고에 출연했고, 그를 주제로 한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했다. 

이에 박 감독 한 명으로 양국 관계가 진전되는 듯한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우리 정부는 이 공로를 인정해 지난달 초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 방한으로 마련된 국빈만찬에서 박 감독에게 수교훈장 흥인장을 수여했다. 

박 감독의 성공 배경에는 냉철한 현실 인식에 따른 실리 추구형 전략이 깔려 있다. 박 감독은 부임 직후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으로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을 꼽았다. 심지어 지금도 박 감독의 전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움직이는 선수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축구계의 평가다. 

박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소 독특한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우선 그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4백 전술을 버리고 3-4-3 전술을 채택했다. 박 감독은 최후방 3백의 좌우를 일반적인 3백의 중앙수비수 2명 대신, 팀에서 가장 볼 간수를 잘하는 미드필더 선수들로 기용했다. 

비록 3백이지만 좌우 사이드백이 마치 측면수비수처럼 빌드업에 가담하게 한 것이다. 대신 미드필더 4명 중 중앙의 2명은 왕성한 체력과 속도를 앞세워 유사시 중앙수비수 역할을 병행하도록 했다. 사실상 중앙수비수와 중앙미드필더들의 자리를 바꾼 것이다.

베트남은 이 역발상을 통해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질서 있는 공격·수비 전개가 가능해졌다.

냉철한 현실 인식, 실리축구 전략
따뜻한 리더십으로 선수단 이끌어

사실 이것이 완벽한 전술은 아니다. 상대의 최전방 공격수가 중앙 수비수들을 강하게 압박하면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상대 2선 공격수들의 공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감독은 베트남 대표팀의 경쟁상대로 꼽히는 국가 사이에선 큰 위협이 되는 공격수가 많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박 감독은 ‘파파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는 부임 후 베트남 문화를 존중하고 선수들을 자식처럼 대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8년 12월 스즈키컵 당시, 결승 1차전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던 중 비행기에서 부상 선수에게 자신의 비즈니스석을 양보한 미담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또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기자회견 중인 박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깡충깡충 뛴 적이 있었다.

이때 박 감독은 싫은 내색 없이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선수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였다. 박 감독과 선수단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박 감독은 선수단과 소통하기 위해 먼저 다가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대회마다 직접 의무실을 찾아가 부상 중인 선수들을 직접 위로했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선수들에겐 따로 양해를 구했다.

박 감독은 아직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국내 감독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박 감독이 직접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전에도 베트남과 한국에선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한국에는 저보다 훌륭한 후배, 동료가 많다. 한국에서 현장 지도자로서 할 역할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성격상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못 한다”며 “소속사 대표가 제 미래에 대해 몇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도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들과도 상의해야 할 부분이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게 저에게 적합한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분명한 건 제가 축구를 가장 잘할 수 있으므로 축구계에 종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감독은 행정가로 일할 생각도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국내에서 협회나 연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행정적인 건 제 능력이 안 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제안이 온다면 고려하겠지만, 협회나 연맹에 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한국과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제안이 온다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어디로?

당장 다음 월드컵부터 종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본선 참가국이 늘어났다. 아시아 국가의 본선 진출 자리가 늘어나면서, 이를 노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 국가들이 박 감독을 영입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감독 역시 아직 사령탑 자격으로 월드컵에 나서본 적이 없는 만큼, 이는 동기 부여를 명확하게 주는 제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 감독은 “이번 카타르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를 보면서 월드컵에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며 “부족하지만, 저를 불러준다면 한 번 생각은 해볼 것이다. 하지만 저를 불러주는 팀이 있겠느냐”고 웃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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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2025 국감 관전 포인트

‘박 터질’ 2025 국감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추석 연휴 직후 진행될 국정감사에선 여야가 수많은 현안을 놓고 공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안을 밀어붙이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국민의힘이 이번에도 맹탕 국감을 진행하는 데 머무를지 많은 국민이 지켜볼 예정이다. 2025년 국정감사는 13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첫날인 13일엔 국방위·정무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이하 과방위)·국토교통위·법제사법위(이하 법사위)·행정안전위(이하 행안위)·기획재정위(이하 기재위)의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누가 또… 회피성 출장 정치적인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은 국회 운영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운영위는 대통령비서실 등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다. 지난달 24일 전체회의서 증인·참고인 명단을 확정할 때, 당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었던 김현지 제1부속실장 출석 여부는 큰 논란이 됐다. 이번 증인·참고인 명단에 김 실장은 명단에 포함되지 않자 운영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김 비서관은 절대 불러선 안 되는 존엄한 존재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평가받는 김 비서관을 국회에 보내지 않으면, 뭔가 숨기는 게 있기 때문이란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지난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었던 11명은 한 해도 빠짐없이 국감에 출석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간사인 문진석 의원은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은 정부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는 게 관례”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상혁 의원도 “대통령비서실 최종 책임자는 강훈식 실장”이라며 “비서실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여야의 논쟁이 이어지던 지난달 29일 돌연 김 실장을 제1부속실장으로 발령냈다. 김남준 당시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1부속실장은 국정감사에 출석할 의무가 없다. 김 실장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을 맺은 시기는 지난 1998년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소개한 것을 계기로 당시 이 대통령이 설립했던 성남시민모임에 합류했다. 장성철 공감과정책 소장은 지난 8월 “김 실장이 실세라는 소문은 자자했지만 누구도 만나지 않고, 로비도 안 통한다고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실장의 남편은 세무사인데, 사람이 너무 몰려 견디지 못한 남편은 얼마 못 가 개업한 세무사 사무소를 폐업했다”고 설명했다. 신상 정보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채 ‘대통령의 집사’로 통하는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됐던 인물 사례로는 박근혜정부 당시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있다. 이 전 비서관은 박근혜정부 ‘문고리 3인방’ 중 1명으로 거론됐다. 이런 전례가 있어서 야당도 김 실장에 대한 공세를 준비하려고 했다. 김현지 증인 거론되자 급하게 보직 변경 사이버 레커 피해자 쯔양도 참고인 출석 대통령실은 보직 이동으로 이를 피했고, 이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치적 구설수로 연결됐다. 김 실장이 대장동 소재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야권의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김 실장이 국회에 직접 출석해 야당의 공세를 받는 일은 피했지만, 여야 간 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선 오는 14일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의 신청으로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쯔양 측도 “국회 출석에 부담이 있었지만, 고민 끝에 사이버 레커 관련 추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결정했다”면서 출석 의사를 밝혔다. 쯔양은 구제역·카라큘라·주작감별사·크로커다일 등 온라인견인차 공제회에 소속된 유튜버들로부터 “과거사를 폭로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수익금 수십억원을 갈취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구제역은 항소심에서까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한 경제지의 법조 전문 기자로 근무하면서 이들이 쯔양을 협박하도록 배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최우석 변호사는 제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그외 유튜버들은 각각 징역형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쯔양을 공갈한 사실이 알려진 후 “기성 언론사와 비교해 사이버 레커에 대한 법적 규제가 너무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어 ▲수익 창출 정지 ▲처벌법 신설 ▲전담 규제 기관 신설 등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방위 국감에선 쯔양의 피해 증언을 토대로 그동안 제시됐던 관련 대책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많은 논점이 제기돼 여야 간 격론이 가장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교육위원회(이하 교육위)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를 겨냥해 리박스쿨 관련 공세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 학교’의 약자로 알려졌다. 리박스쿨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부정선거론에도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일각에선 “극우 성향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리박스쿨에 대해선 지난 대선서 일명 ‘자손군(자유 손가락 군대)’로 알려진 댓글 조작팀을 운영했단 의혹이 제기됐다. 자손군은 국민의힘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달면서, 이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함께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뜨거울 교육위 리박스쿨은 불과 하루 동안 진행되는 교육을 이수한 이들에게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을 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자격증 발급과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알선을 미끼로 댓글 작성을 제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강생과 교육 이수자를 상대로 김 후보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일각에선 “윤석열정부가 리박스쿨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리박스쿨은 서울교대와의 협약을 토대로 서울 소재 10개 학교서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직 우체국장이었던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교육부의 교육정책 자문위원 직함을 가졌던 것도 그동안 제기됐던 특혜 의혹의 일부분이다. 민주당에선 신문규 전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을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의 박사 과정 논문 관련 논란도 재점화될 예정이다. 김씨는 국민대 대학원에서 지난 2007년부터 2년 동안 3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이 중엔 ‘회원 유지’를 영문 ‘Member Yuji’로 표기한 논문도 있어 윤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부터 큰 논란이 돼왔다. 아울러 역술인의 홈페이지와 사주팔자 관련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을 출처 표기 없이 무단 전재한 논문도 있었다. 논란이 불거진 후 국민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국민대는 지난 2021년 “만 5년이 지나 접수된 제보는 처리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검증 시효가 지나 본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여론의 비판을 이기지 못해 재조사에 착수했지만,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학회의 검증 기준을 알 수 없어 검증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의혹을 무마하려고 했다. 김씨의 논문은 지난 2022년 교육위 국감에서도 큰 화제였다. 김지용 국민대 이사장과 임홍재 총장은 해외 일정을 이유로 국감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민대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몰락하고,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난 7월이 돼서야 김 여사의 박사학위를 최종 취소했다. 이에 대해선 “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대응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어, 국감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이사장은 이번 국감서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물론 범여권도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윤 전 대통령은 조국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재인정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의 일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려다가 정치적으로 주목받았다. 조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형을 확정받았다가, 지난 8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조 비대위원장의 딸 조민씨에게도 논문 관련 논란이 있다. 조씨는 한영외고 1학년이었던 지난 2009년 대한병리학회지에 게재된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됐고, 이를 고려대학교 수시전형 자기소개서에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종원 대표 증인으로? 조씨는 단국대 의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 동안 인턴으로 활동한 후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논문은 연구부정행위가 인정돼 게재가 철회됐다. 조 비대위원장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비대위원장을 둘러싼 비판은 그가 석방된 이후 곧바로 정치 행보에 들어가고 비대위원장까지 맡으며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동원 고려대 총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지난 6월 학생 3명이 사망한 부산 브니엘예고 사태도 국감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사망한 학생들은 전임 강사와 심각한 마찰을 빚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전임 강사의 수업 중 태도를 문제 삼아 고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측에 “부실하게 운영돼 각종 민원이 이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아울러 “교장이 특정 학원과 연결돼 해당 학원에 다녀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선·후배 간 군기도 과도해 폭력적”이란 지적도 이어졌다. 현임숙 브니엘고 교장은 증인으로서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를 소관 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정무위에선 롯데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연이은 홈플러스 지점 폐쇄가 쟁점으로 두드러진다. 롯데카드에선 지난 8월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약 222만명의 결제 정보가 유출됐고, 47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롯데카드는 지난달 1일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신고했다. 홈플러스는 회생 절차에 돌입한 이후 임대료가 조정되지 않는 점포를 중심으로 총 15개의 점포를 폐쇄했다. MBK 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금융권에서 7조2000억원을 차입했다. 담보는 홈플러스 주식이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는 5조원대 부채를 떠안았고, 8년 동안 부담한 이자만 약 3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이후 지점 폐쇄에 대해선 “알짜 부동산을 매각해 차입금을 상환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카드와 홈플러스의 최대주주는 MBK 파트너스다. 정무위는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현안 많은 교육위, 여야 불꽃 공방 예상 롯데카드·홈플 논란에 김병주도 국회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선 하이볼 원산지 표기 논란을 놓고,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다. 앞서 백 대표는 매출·수익률 허위 과장 논란이 불거진 연돈볼카츠 사태와 관련해 국감 증인 출석 여부가 거론됐던 적이 있다. 백 대표는 지난 2월 돼지고기 함량 및 가격 논란에 휘말린 빽햄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속해서 그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와 관련해 광범위한 위법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법사위에선 최근 정치권 최대의 이슈로 거론되는 ▲대법관 증원 ▲검찰 해체 ▲조희대 대법원장 논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시도하는 대법관 증원과 검찰 해체 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에 대한 비판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최대 숙원이었던 검찰 해체를 달성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30일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청문회를 진행했다. 조 대법원장은 출석을 거부했고, 민주당은 고발 조치와 국정감사 증인 소환을 압박 카드로 제시했다.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에서 매우 꺼리는 이슈였기 때문에, 이번 법사위 국감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사법부의 대결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대왕고래 프로젝트 실패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등에 대한 정치적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해선 “윤석열정부가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반전하기 위해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이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으로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경우 “환경부가 재생에너지·원자력 발전을 맡고, 기존 화석연료 정책은 산업부에 남는 등 이원화한다”는 데 따른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선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국정감사 중 건강보험 재정 등 이슈가 여야 간 공방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간호사 증원 문제도 다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위에선 ▲해병 대원 특검법 ▲비상계엄 사태 ▲합참 이전 비용 등 이슈가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시설법 위반 논란과 관련해 장형진 영풍 고문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우려되는 맹탕 국감 이번 국감은 이정부 출범 후 처음 진행되는 국감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이 다수의 의석을 앞세워 각종 현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장외 투쟁 ▲중도 공략 ▲특검법 방어 등 당내 현안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많은 현안 앞에서 이전처럼 존재감 부각 목적의 쇼 위주로 진행되는 맹탕 국감으로 끝나진 않을지, 국민의 시선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