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흉악범 얼굴 공개,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9 13:35:45
  • 호수 1409호
  • 댓글 1개

누군 덮고 누군 까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때 공개된 이기영 사진은 운전면허증 사진으로, 공개되자마자 실물과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처음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흉악범들의 사진이 공개될 때마다 제기돼왔던 문제다.

경기 파주시에서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지난 4일 검찰로 넘겨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음주 운전으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60대 택시 기사를 집으로 데려와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그 사진이
이 사람?

이보다 넉 달 앞선 지난해 8월에는 파주시 집에서 동거하던 50대 여성을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에 매장한 혐의도 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이날 이기영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송치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기영은 전 동거녀와 택시 기사에 대한 살인 혐의만 적용됐으나 택시 기사 살해 당시 재정 문제 등 전반적인 정황을 토대로 강도살인 혐의가 추가됐다. 

이기영은 검찰에 송치되면서 얼굴을 가렸다. 지난 4일 오전 9시, 경기 일산동부경찰서 정문 밖으로 나와 취재진 포토라인 앞에 선 이기영은 패딩 점퍼 후드를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이고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이날 포토라인 앞에서 얼굴이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기영은 지급된 마스크를 스스로 착용해 얼굴을 거의 가린 것이다. 이기영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합니다. 살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포토라인에서 이기영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이미 이기영의 신상은 공개됐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이기영의 나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신상을 공개하기 앞서 경기북부경찰청 신상공개위원회가 이기영의 얼굴과 나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기영이 최근 촬영한 사진 공개를 거부하면서 예전에 찍은 운전면허증 사진이 배포됐다. 현행법상 당사자가 거부하면 최근 사진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상 공개가 시작된 것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기는 2009년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 검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강호순의 신상 공개에 문제시된 것은 다음과 같다. 입법조사처는 ▲언론의 자유와 피의자의 인격권 및 무죄 추정 원칙 ▲(범죄와 형법의 대상 관련)명확성 원칙의 문제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위반 및 범죄자 사회복귀 저해 요인의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근거로 제시했다.

2009년 강호순 계기로 신상 공개 시작
심의위원회 내부 3명, 외부 4명 구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지만 피의자 신상 공개가 결정됐다. 2010년 4월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가 신설됐다. 같은 시기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제23조(현행 제25조)를 두어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는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 범죄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피의자 신상 공개 여부를 설명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도 비슷한 맥락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신상 공개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전에도 신상 공개 제도가 있었지만 성격은 다르다. 성폭력처벌법 제42조 이하 및 청소년성보호법 제49조 이하 규정과 같이 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보안처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재범 방지를 위한 목적을 띤다. 즉, 확정판결 받은 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사제재로서 가능했다.

이젠 법이 바뀌었다. 이제 피의자 신상 공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한다. 당연히 피의자 신상 공개는 절차가 정해져 있다. 공개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다. 2015년부터 경찰서나 지방경찰청별로 신상공개위원회가 신설돼 이곳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신상 공개 시점은 피의 사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완료됐다고 볼 수 있는 구속영장 발부 시점 이후를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이미 실명이 공개된 피의자의 경우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됐을 시 구속영장 발부 전에 신상공개위원회 결정을 거쳐 공개한다.

만약 수배 대상자라면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기반해 ▲얼굴 사진 ▲성명 ▲나이 ▲직업 ▲신체의 특징 등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공개한다. 그러나 이미 신병이 확보된 피의자의 경우는 ▲얼굴 ▲성명 ▲나이 등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식별 불가
밝히나마나

우선 특정강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 마지막으로 공개된 이기영을 포함한 총 15명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결정된 피의자는 총 9명이다. 특히 성폭력 범죄로 인해 신상 공개된 이들은 아동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공개됐다.

문제는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이라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다. 

2021년은 피의자 신상 공개 제도로 흉악범의 신상이 이례적으로 많이 공개된 해다. 총 10명으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김태현 ▲인천 노래방 손님 살해사건 허민우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사건 김병찬 ▲송파 전 여자친구 가족 살인사건 이석준 ▲인천 미주홀구 강도 연쇄살인사건 권재찬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백광석, 김시남 ▲남성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최찬욱 ▲남성 불법 촬영 나체 영상 유포 사건 김영준 ▲송파 전자발찌 훼손 연속 살인 사건 강윤성이 있다.

이 중 비수도권에서 신상 공개가 이뤄진 피의자는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백광석과 김시남이 유일하다. 이런 상황이니 피의자 신상 공개가 수도권 지역에서만 주로 이뤄진다는 점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선 경남 지역에서 신상 공개된 대표적인 피의자는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및 흉기 난동 살인 사건 안인득 ▲2017년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 심천우, 강정임이 있다. 


하지만 경남에서 일어난 강력 범죄 중에서 신상 공개가 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2020년 11월 일어난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과 2020년 12월 성탄절에 벌어진 응급구조사 폭행, 방치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양산 동거녀 살인 사건은 2020년 11월23~25일쯤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A(61)씨가 사실혼 관계인 B씨가 잔소리하는 것에 화가 나 B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토막 내 유기한 후 사체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 사건이다. A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2심 재판부로부터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성탄절 응급구조사 사건은 2020년 성탄절 전날인 12월24일, 경남 김해의 한 응급이송단 대표 C(44)씨가 직원인 응급구조사를 12시간가량 폭행하고 이튿날까지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언론 집중도 
사회 관심도

이들은 강력 범죄임에도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신상공개위원회 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상공개위원회 심의위원은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논의를 통해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7명 위원 중 3명은 경찰 측 내부 위원, 4명은 시민단체 혹은 관련 전문가 등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외부 위원이 전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멍이 발생한다. 


물론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 의견을 취합하고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외부 위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신상 공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에 명확한 원칙이 없다. 보통은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혹은 사회의 관심도가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이 같은 문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제주 경찰은 당초 피의자 2명에 대해 “신상 정보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전국에서 관심을 갖는 사안으로 떠오르자 경찰은 “신상공개위원회를 통해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서 경찰은 “잔인성 및 공공의 이익 등에 부합할만한 범죄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인지됐다. 신상공개위원회 개최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요건은 모두 수사 초반부터 언론 측에 공개한 내용이었다. 계획된 범죄인 점, 피의자가 범행을 자백한 점, CCTV 등을 통해 피해자 자택에 침입하는 과정이 촬영된 점 등은 모두 “신상공개위원회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경찰 결정이 내려지기 전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이처럼 현재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 혹은 언론과 여론의 관심도가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론이 피의자 신상을 먼저 공개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SBS가 텔레그램을 통해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 사진을 단독 보도했다. 

“실효성·기준 모호” 지적
사진과 다른 실제 모습들

당시 SBS 측은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인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중대 범죄라고 판단했다.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자는 차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희가 단독 취재한 내용과 함께 구속된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신상 공개 기준이 모호한 것이 문제지만, 신상 공개를 해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이기영의 사진과 현재 모습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상 공개가 결정된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 얼굴을 공개하고, 사진도 함께 배포한다.

그때 당사자가 동의하면 체포 후 촬영한 현재 사진(머그샷)을 찍어 공개하지만, 거부하면 신분증 증명사진을 공개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기영은 운전면허증 사진을 공개했는데, 네티즌들은 이기영 계정으로 추정되는 SNS에 올라온 사진과 차이가 있다며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김태현, 갓갓 문형욱, 안승진, 허민우, 조주빈, 고유정 등 신상공개 대상자도 실물이 달랐다.

논란이 거세지면서 국회에서도 흉악범 신상이 공개될 때 실물을 알아볼 수 있도록 최근 촬영한 얼굴 사진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살인·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은 최근 30일 이내에 촬영한 얼굴의 사진을 사용하도록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범죄 피의자 얼굴을 대중이 식별하는 데 용이해져 제도의 실효성이 커질 것이며, 궁극적으로 범죄로부터 국민 안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도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촬영해 공개하는 규정을 추가한 특정강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은 “실효성 없는 신상 공개로 인해 오히려 무분별한 신상 털기 같은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을 도모하려는 신상 정보 공개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피의자의 최근 얼굴 공개를 통해 피의자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관적 판단
기준 필요해

일각에서는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신상 공개 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법안 상정 이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신상 공개 제도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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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