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이은해 검찰 거북한 딜레마, 왜?

“공소장 변경”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남정운 기자 =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이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 입증에 애를 먹자 재판부가 직접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의 부실수사나 혐의와 맞지 않는 무리한 기소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검찰이 추가한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다. 당초 경찰이 결론냈던 혐의와 같다. 동시에 인천지검이 외친 ‘검수완박 반대’의 정당성도 땅에 떨어지게 됐다.

국내 판례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적은 없다. 직접살인이 인정되면 유례없는 판결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지배에 의한 극단적 선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판례도 없다. 그만큼 재판부가 짊어진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검찰도 난감해졌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를 외치며 이은해 사건을 예로 들었으나 결론적으로 경찰 수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게 됐다.

‘부’한 글자에
형량 반 토막?

인천지검은 지난 4월 입장문을 통해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됐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경찰 차원의 재수사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이 충분했다는 취지의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일산서부경찰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이 사건의)일부 피의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긴 했지만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소추(공소 제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뒤집히게 됐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은해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바꿨다. 지난달 30일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면서 사실상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에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씨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씨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모씨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씨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에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에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에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 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재판부 “부작위 살인도 염두” 이례적 지적
‘가스라이팅 의한 살인’ 수사 논리 흔들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들의 형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 요청을 지적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작위로 재판을 수차례 진행하다 부작위가 추가된 것은 검찰의 논리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이씨 등이 가평 용소계곡에 갈 때 동행했던 그는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꼽힌다. 그의 증언이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다.

B씨는 검찰 질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말했다. B씨는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데 경황이 없었고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질 않았다. 현장 주소를 몰라 인근 펜션으로 가서 주인에게 주소를 묻고 계속 개인 휴대전화로 소방대원과 통화했다”고 답했다.

피해자 윤씨의 수영 실력을 알았는지를 묻는 말엔 “수영을 잘 못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B씨는 달아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선 이례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조사에는 성실하게 임해왔다.

앞서 경기일산서부경찰서는 2020년 12월 B씨를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가 살해된 사건에 B씨가 가담했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영상엔 당시 B씨가 용소계곡에서 물놀이하며 윤씨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B씨는 조씨와 친구 사이이며 이씨와도 알고 지낸 사이다.

가해자 형량
낮아질라 우려

앞서 B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인들과 공모해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60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판매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20년 12월 구속 기소돼 이듬해 5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는 인천지검이 계곡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사법당국에 따르면 당시 재감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그는 지난해 말 형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씨 등이 2차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도주한 시점과 시간상 근접해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씨와 조씨가 잠적한 이후에도 B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B씨가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신병처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변호인을 대동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B씨가 자신의 공범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달아난 이·조씨와 관련해서는 모종의 구체적인 진술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검찰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추가는 재판부의 부담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경찰의 수사 결론과 같아졌다.


사실상 경찰과
같은 결론으로

앞서 윤씨가 숨지자 변사사건으로 수사한 가평경찰서는 2019년 10월 내사 종결했고 유족 지인의 제보로 일산서부경찰서가 재수사를 벌여 살인 등의 혐의로 이·조씨를 불구속 입건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2020년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했다.

고양지청은 이·조씨가 인천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사건을 인천지검에 이송했고 인천지검이 지난해 12월까지 재수사를 하다가 이·조씨가 도주했다.

인천지검은 이례적으로 공개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직접 수사에 나섰던 인천지검 박세혁 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수완박법이 시행됐더라면 계곡 사건 이전 두 번의 살인미수에 대해 “수법과 시기가 달라 직접 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계곡 살인 자체를 무혐의 처분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사를 담당한 김창수 인천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높은 의혹 수준의 중요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낮은 강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기본적으로 내사 종결 사건이다. 사건이 잘 안 될 것 같은 각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이 사건 역시 ‘선수’의 냄새는 나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잡으러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지검, “검수완박이었으면 진실 묻혔다” 거짓 입장
일산서부서, 간접살인 불구속기소 성과 내 검찰로 송치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사건을 받았을 땐 공조할 경찰서가 없었다.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으므로 경찰의 협조는 은혜적인 것으로 남게 됐다”며 “이씨 등의 주민등록지를 관할하는 인천 소재 경찰서들 역시 1차 수사를 하지 않은 관서라서 적극적 협조 요청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검사는 인천지검 형사2부가 30대가 넘는 휴대전화 등을 새로 압수한 뒤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 분석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형사2부 검사들이 온라인으로 피해자 성묘를 했다며 검수완박 국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검사 수사 전면 폐지 이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영역들은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 말씀처럼 ‘증발’할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는 것도 계속 가능하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진실을 밝히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 죗값을 받아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은 검찰의 사실과 다른 입장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남 본부장은 “경찰이 단순 변사 종결한 것을 검찰에서 밝혀냈다는 일부 주장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는 점,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초 가평경찰서에서 변사자 부검과 통화내역, 주변인 조사, 보험 관계까지 조사했으나 명확히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 종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 달 후에 일산서부경찰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혀 송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감한 검
불쾌한 경

남 본부장은 또 “그 이후 검찰에서 추가 혐의 사실을 발견해 수사 중이라는 게 팩트다. 현 시스템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자 역할을 다한 것”이라며 “누구는 잘했고 못했고 하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곡 살인’ 최종 형량은?

이은해씨와 조모씨의 혐의가 살인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과 살인미수에 이어 부작위 살인죄까지 추가되면서 10년이 넘는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검찰이 기대한 형량보다 적은 형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씨와 같이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남편과 자녀, 친구 등을 독극물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일으킨 A씨는 사건 하루 전날, 보험료가 없어서 보험 설계사에게 보험료를 대납하게 하면서까지 딸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딸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2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원은 2005년 자신의 남편과 존속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해해 보험금을 타낸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벌어진 ‘포천농약 살인사건’의 범죄자 두 명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처럼 법원은 국민의 공분을 산 ‘보험 존속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무기징역’이란 법정 최고 수준의 형벌을 내렸다.

검찰이 추가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구조 의무가 있는지 여부 ▲살인의 고의 여부 ▲구조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 등이 핵심이다.

부작위범 성립 여부 관련, 이씨와 조씨가 구조의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씨의 경우 법률상 배우자로서 구조의 의무가 인정된다.

또 조씨 역시도 이씨와 함께 윤씨를 계곡으로 데려가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윤씨를 뛰어내리도록 종용해 위험 발생을 야기한 측면에서 그 의무가 인정된다.

이씨와 조씨가 이 점을 부인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2차례의 살인미수 정황, 피해자 명의의 거액의 생명보험이 가입돼있었던 점, 보험 시효가 4시간 앞둔 상황에서 발생된 (피해자의 사망)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의 고의 역시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현직 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윤씨가 뛰어내린 뒤 허우적대는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구조하지 않은 게 크다”며 “이씨도 조씨나 주변에 윤씨에 대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때 구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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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