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이은해 검찰 거북한 딜레마, 왜?

“공소장 변경”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남정운 기자 =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이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 입증에 애를 먹자 재판부가 직접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의 부실수사나 혐의와 맞지 않는 무리한 기소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검찰이 추가한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다. 당초 경찰이 결론냈던 혐의와 같다. 동시에 인천지검이 외친 ‘검수완박 반대’의 정당성도 땅에 떨어지게 됐다.

국내 판례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적은 없다. 직접살인이 인정되면 유례없는 판결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지배에 의한 극단적 선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판례도 없다. 그만큼 재판부가 짊어진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검찰도 난감해졌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를 외치며 이은해 사건을 예로 들었으나 결론적으로 경찰 수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게 됐다.

‘부’한 글자에
형량 반 토막?

인천지검은 지난 4월 입장문을 통해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됐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경찰 차원의 재수사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이 충분했다는 취지의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일산서부경찰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이 사건의)일부 피의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긴 했지만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소추(공소 제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뒤집히게 됐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은해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바꿨다. 지난달 30일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면서 사실상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에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씨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씨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모씨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씨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에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에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에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 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재판부 “부작위 살인도 염두” 이례적 지적
‘가스라이팅 의한 살인’ 수사 논리 흔들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들의 형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 요청을 지적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작위로 재판을 수차례 진행하다 부작위가 추가된 것은 검찰의 논리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이씨 등이 가평 용소계곡에 갈 때 동행했던 그는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꼽힌다. 그의 증언이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다.

B씨는 검찰 질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말했다. B씨는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데 경황이 없었고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질 않았다. 현장 주소를 몰라 인근 펜션으로 가서 주인에게 주소를 묻고 계속 개인 휴대전화로 소방대원과 통화했다”고 답했다.

피해자 윤씨의 수영 실력을 알았는지를 묻는 말엔 “수영을 잘 못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B씨는 달아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선 이례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조사에는 성실하게 임해왔다.

앞서 경기일산서부경찰서는 2020년 12월 B씨를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가 살해된 사건에 B씨가 가담했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영상엔 당시 B씨가 용소계곡에서 물놀이하며 윤씨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B씨는 조씨와 친구 사이이며 이씨와도 알고 지낸 사이다.

가해자 형량
낮아질라 우려

앞서 B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인들과 공모해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60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판매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20년 12월 구속 기소돼 이듬해 5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는 인천지검이 계곡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사법당국에 따르면 당시 재감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그는 지난해 말 형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씨 등이 2차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도주한 시점과 시간상 근접해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씨와 조씨가 잠적한 이후에도 B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B씨가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신병처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변호인을 대동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B씨가 자신의 공범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달아난 이·조씨와 관련해서는 모종의 구체적인 진술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검찰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추가는 재판부의 부담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경찰의 수사 결론과 같아졌다.


사실상 경찰과
같은 결론으로

앞서 윤씨가 숨지자 변사사건으로 수사한 가평경찰서는 2019년 10월 내사 종결했고 유족 지인의 제보로 일산서부경찰서가 재수사를 벌여 살인 등의 혐의로 이·조씨를 불구속 입건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2020년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했다.

고양지청은 이·조씨가 인천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사건을 인천지검에 이송했고 인천지검이 지난해 12월까지 재수사를 하다가 이·조씨가 도주했다.

인천지검은 이례적으로 공개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직접 수사에 나섰던 인천지검 박세혁 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수완박법이 시행됐더라면 계곡 사건 이전 두 번의 살인미수에 대해 “수법과 시기가 달라 직접 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계곡 살인 자체를 무혐의 처분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사를 담당한 김창수 인천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높은 의혹 수준의 중요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낮은 강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기본적으로 내사 종결 사건이다. 사건이 잘 안 될 것 같은 각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이 사건 역시 ‘선수’의 냄새는 나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잡으러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지검, “검수완박이었으면 진실 묻혔다” 거짓 입장
일산서부서, 간접살인 불구속기소 성과 내 검찰로 송치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사건을 받았을 땐 공조할 경찰서가 없었다.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으므로 경찰의 협조는 은혜적인 것으로 남게 됐다”며 “이씨 등의 주민등록지를 관할하는 인천 소재 경찰서들 역시 1차 수사를 하지 않은 관서라서 적극적 협조 요청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검사는 인천지검 형사2부가 30대가 넘는 휴대전화 등을 새로 압수한 뒤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 분석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형사2부 검사들이 온라인으로 피해자 성묘를 했다며 검수완박 국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검사 수사 전면 폐지 이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영역들은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 말씀처럼 ‘증발’할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는 것도 계속 가능하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진실을 밝히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 죗값을 받아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은 검찰의 사실과 다른 입장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남 본부장은 “경찰이 단순 변사 종결한 것을 검찰에서 밝혀냈다는 일부 주장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는 점,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초 가평경찰서에서 변사자 부검과 통화내역, 주변인 조사, 보험 관계까지 조사했으나 명확히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 종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 달 후에 일산서부경찰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혀 송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감한 검
불쾌한 경

남 본부장은 또 “그 이후 검찰에서 추가 혐의 사실을 발견해 수사 중이라는 게 팩트다. 현 시스템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자 역할을 다한 것”이라며 “누구는 잘했고 못했고 하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곡 살인’ 최종 형량은?

이은해씨와 조모씨의 혐의가 살인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과 살인미수에 이어 부작위 살인죄까지 추가되면서 10년이 넘는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검찰이 기대한 형량보다 적은 형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씨와 같이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남편과 자녀, 친구 등을 독극물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일으킨 A씨는 사건 하루 전날, 보험료가 없어서 보험 설계사에게 보험료를 대납하게 하면서까지 딸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딸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2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원은 2005년 자신의 남편과 존속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해해 보험금을 타낸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벌어진 ‘포천농약 살인사건’의 범죄자 두 명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처럼 법원은 국민의 공분을 산 ‘보험 존속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무기징역’이란 법정 최고 수준의 형벌을 내렸다.

검찰이 추가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구조 의무가 있는지 여부 ▲살인의 고의 여부 ▲구조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 등이 핵심이다.

부작위범 성립 여부 관련, 이씨와 조씨가 구조의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씨의 경우 법률상 배우자로서 구조의 의무가 인정된다.

또 조씨 역시도 이씨와 함께 윤씨를 계곡으로 데려가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윤씨를 뛰어내리도록 종용해 위험 발생을 야기한 측면에서 그 의무가 인정된다.

이씨와 조씨가 이 점을 부인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2차례의 살인미수 정황, 피해자 명의의 거액의 생명보험이 가입돼있었던 점, 보험 시효가 4시간 앞둔 상황에서 발생된 (피해자의 사망)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의 고의 역시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현직 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윤씨가 뛰어내린 뒤 허우적대는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구조하지 않은 게 크다”며 “이씨도 조씨나 주변에 윤씨에 대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때 구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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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