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시즌 끝나지 않은 ‘개고기 논쟁’

“이제 그만” 동물자유연대 
“먹을 자유도” 대한육견협회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은 김칫국이었다. 지난해 말 정부 주도로 출범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가 공전만을 거듭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4월 유의미한 결론을 냈어야 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기간만 연장했다. 그 사이 ‘복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정말 우리 사회는 ‘개고기 논쟁’을 결판낼 준비가 된 걸까. <일요시사>는 각각 개 식용에 찬성·반대하는 두 단체에 개식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현주소를 물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인간에 의해 관리되는 모든 동물이 인도적 대우를 받고, 인간에 의해 이용되거나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동물의 수와 종을 줄여나감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사이 조화를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다. 

피학대 동물·유기동물 등 위기상황에 처한 동물의 구조, 농장동물·전시동물·실험동물 복지 제고를 위한 대시민 캠페인, 입법 및 정책 활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이들에게 개 식용을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개 식용을 반대하는 이유는?

▲개 농장의 열악한 사육환경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개 농장에서 태어난 개들은 평생을 뜬장이라 불리는 철망 위에서 살아간다. 관리의 품을 줄이기 위해서다. 발바닥의 좁은 면적에 체중이 실리다 보니 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가해진다.

사육 과정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개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농장에서 도살장으로 옮겨지는 개들은 한 마리가 제대로 서지도 못할 크기의 케이지에 구겨 넣어지고, 그 상태로 던져지기도 한다. 도살 과정에서는 대개 개에게 물을 끼얹고 전기로 감전을 시키는 데 극심한 고통이 수반된다. 쉽게 이야기해 감전사를 시키는 거다.


차라리 여기서 바로 죽음에 이른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곧이어 불에 그을려 털을 제거당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때까지도 죽지 않았다면 말 그대로 불에 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개 식용 찬성 측에서는 개고기가 몸에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2017년 전국 12개 재래시장에서 판매 중인 개고기를 수집해 검사했다. 조사 결과, 93개 샘플 중 3분의 2에 이르는 61개 샘플에서 8종의 항생제 성분이 검출됐다.

보다 엄격한 시·도축산물시험검사기관 기준을 적용해도 42개다. 일반 축종 축산물 검출 비율인 0.47%의 무려 96배에 달하는 수치다. 

세균 문제 또한 항생제만큼 심각했다. 함께 진행된 미생물 배양검사에서 대장균을 비롯해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연쇄상구균 등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균들이 검출됐다.

또 최근 인간을 넘어 동물 역시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동물의 희생 및 이용은 줄이고, 불가피하게 동물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개 식용 종식은 굳이 개를 식량으로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현 시대서 나타나는 시대적 변화의 당연한 산물이다. 굳이 개를 죽이지 않아도 돼 막자는 것과 개 식용을 용인해달라고 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생명 존중 사회에 부합하는지 되묻고 싶다.

“몸에 좋다고? 항생제·세균 가득”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개 농장 완전 폐지까지 필요한 기간은 얼마나 되나?

▲식품위생법상 개고기를 파는 행위 등은 이미 불법이다. 따라서 개 식용은 정부가 법에 따라 행정만 집행하면 당장이라도 사실상의 종식에 이를 수 있다. 다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부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 식용 금지에 이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절차적으로 식용 목적의 개 사육을 금지하는 입법 과정과 법 시행까지의 기간, 집행 과정 등에 소요될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짧아도 몇 년은 더 걸릴 문제다.

-개 농장 폐지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개 식용 종식의 가장 이상적인 경로는 사회적 합의로 향하는 것이다. 개 식용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종식에 동의하도록 설득해야 하고, 입법부와 행정부는 개 도살 금지 혹은 개 식용 금지와 같은 입법적 장치 확충과 산업 종사자를 위한 출구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개 식용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실질적인 개 식용 종식 절차에 들어설 때라는 의미다. 우선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적 장치를 만든 뒤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계도·철거명령·행정집행 등 행정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동시에 전·폐업을 원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행정적 지원을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일각의 “소·돼지는 되고, 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비판에 답한다면?

▲‘소·돼지는 되고, 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비판이라기보다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 임종식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에 불과하다. 개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 중 누가 소·돼지는 되고, 개는 안 된다고 주장하나? 마치 개 식용 반대 측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처럼 비틀고, 이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동물보호와 권리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대부분 개뿐 아니라 소·돼지·닭 등 다른 동물의 고기 소비량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자유연대만 하더라도 육식을 줄이고 대신 채식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다만 개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의 식용을 금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장 모든 육식을 금지하자고 주장을 한다면 합리적이라고 수긍할 것인지 궁금하다.

“정부 적극적 금지 규정 만들어야”
“종사자 생계 지원 방안도 필요해”

-식용 개 업계는 머지않아 자연 소멸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제도화를 통해 ‘개 식용 금지’를 못 박을 필요성이 있나?


▲개 식용은 그 자체가 윤리적·법적인 문제로 뒤범벅돼있다. 그럼에도 ‘사양길에 들어섰으니 기다리자’식의 논리는 사회적 문제를 방치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개 식용 산업은 정부의 폐기물(음식물 쓰레기) 정책 등에 기대고 있다. 정부의 정책 전환과 개입 없이 시장에만 맡긴다면 생각보다 긴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개가 또 희생될 것이다. 동시에 제도화를 통해 개 식용 종식 및 금지에 도달한다면 오랜 세월 지속된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개 식용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오히려 제도화가 필요하다. 마땅한 대체 생계수단이 없어 개 식용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행위는 수용할 수 없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개 식용 산업의 몰락을 방관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 그리고 그와 생계를 같이 하는 이들의 삶의 붕괴를 방치하는 것과도 같다. 이 같은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개 식용 종식과 금지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개 식용 문제 관련한 활동 이력과 향후 계획을 알려달라. 

▲그동안 우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개 식용의 법적·윤리적 문제를 밝히고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편으로는 산업종사자들이 스스로 다른 생계를 찾도록 인내심을 갖고 정부와 개 식용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설득을 이어왔다. 하지만 해마다 희생되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완전한 종식에 이르기까지 필요하다면 대화에 응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고착된다면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불법 개 농장 및 영업행위 등을 몰아내는 데 보다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먹을 사람만 먹으면 된다”

대한육견협회는 개 농장을 운영하는 사육 농가가 모여 만든 협의체다. 전국적으로 1300개 남짓의 농가가 가입됐다. 이들은 개 식용 논쟁이 재점화될 때마다 최전방에서 사육농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여의도, 종로 등지에서 집회를 열고 개 식용 금지 정책 기조를 강화하는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 이들에게 개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를 물었다.

-개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는?

▲우선 반대할 이유가 없다. 수백년의 긴 세월 동안 많은 국민이 먹고 즐기고 있는 개고기를, 어느 순간 법령으로 다스려 먹을 자유를 박탈하려는 행보가 적절한가. 이보다는 사회적 흐름과 적절한 협의를 통해 어느 누구도 피해 보지 않도록 다 같이 노력하는 게 옳다.

우리나라는 식문화의 특성으로 볼 때 많은 잔반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이 먹다 남은 잔반을 가공해 동물에게 주고, 또다시 그 동물을 사람이 섭취하는 것보다 더 친환경적인 순환이 있을 수 있겠는가. 현재 일부 국민이 가지고 있는 개 식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반대파가 내세운 침소봉대한 자극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봐온 영향도 있다고 본다.

제대로 제도화해서 관리하면 일부에서 자행된다는 그런 잔인한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개선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부와 반대 단체들이 노력하는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개 농장 완전 폐지까지 필요한 기간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

▲법적으로 폐기하는 것보단, 흐름에 따라 자연도태되도록 지켜보는 것이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폐지 기간을 논하자면 20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 농장 폐지를 위해선 종사자 구제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 전업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폐업 시 생계 유지와 관련된 구직 활동 등의 기간을 고려한 보상이 필요하다. 생존권 보장을 위한 현실적인 구제방안을 검토해달라.

-“다른 고기도 많은 시대에 굳이 개를 먹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건 자유고, 그 논리에 따라 개를 안 먹을 수도 있다. 뭘 먹고 안 먹고, 육식하고 채식하는 건 모두 개인의 선택이다. 개인의 선택을 왜 사회가 강제하려 드는가? 물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은 먹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개가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은 아니지 않은가.

소·돼지·닭·오리처럼 개 식용은 다양성 문제다.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뭐라고 할 게 아니다. 만약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한다면, 이는 ‘먹어야 할 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파시즘 아닌가.

-개 식용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먹는 사람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국민 상당수가 개고기를 즐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한 동물단체에서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18.8%가 ‘개를 먹거나 먹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표본으로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5000만명 가운데 1000만명 정도가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나온다. 여론조사가 동물권 단체에서 의뢰한 것이니 문항 자체에 개 식용 반대 프레임이 있었을 것이고, 사회적 소망성 효과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다고 말하지 못한 응답자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비율은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울러 개는 돼지·닭·소·오리에 이은 5대 축종이다. 오리가 연간 9만2000톤 정도 소비되는데, 개는 7만톤이 소비되고 있다.

“개인의 선택 문제…사회 강요는 파시즘”
“식용 폐지하려면 합당한 대안 제시돼야”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하면 개 식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파는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는데?

▲식용견은 딱 보면 안다. 우리나라 개 사육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식용견은 30여년에 걸쳐 사육 농민들이 최고급 개고기 생산을 위해 개량한 품종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품종이다. 반려견보다 몇 배는 크다. 식용견은 체중이 최소 40㎏에서 90㎏까지 나간다.

육질이 좋고 껍질이 얇은 투견, 뚱뚱해서 고기 양이 많은 미견, 털이 긴 장모 등을 교접한 결과다. 반려견과 혼동할 수 없을 정도로 외견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처럼 식용견과 반려견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걸 구분해서 키우면 문제없다.

요즘 보면 반려동물이 다양해지면서 개 말고 돼지·닭(병아리)·오리 등도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더라. 개를 먹지 말라는 논리대로라면 이것들도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심지어 개가(식용견과 반려견이) 외견상 구분이 더 쉽다.

-반려견이나 진돗개를 사육해 도축하는 사례가 알려졌다

▲사실과 다르다. 개 식용을 업으로 하는 사람 입장에선 반려견을 잡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반려견 중에 소형견은 도축하면 2근 정도 나온다. 1근에 5000원쯤 하니까, 한 마리 잡으면 1만원 정도 나오는 셈이다. 반려견이 커지면 그만큼 육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 역시 돈이 되질 않는다.

개 한 마리 도축하는 비용이 5만~6만원 선이다. 여기에 유통비용은 별도다.

반려견 가져와서 도축해봤자 밑지는 장사인데, 업자들이 이걸 할 이유가 있겠나. 세간에 알려진 사례들은 대개 정식 개 농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제대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한두 달에 한 번씩 개인적으로 개를 잡아먹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한 일로 둔갑시키니 난감하다.

시골에서 노인이 자식이 놓고 간 반려견을 키우다가 줄 음식도 없고 하니 잡아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 역시 전문 개 농장과는 상관이 없는 얘기다. 또 가끔 개 사육농장에 자기가 키우던 반려견이나 진돗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잔인한가.

이걸 농민들이 굶겨 죽일 수도 없으니까, 농장 한 쪽에 묶어두고 밥을 주기도 한다. 개 농장에 개가 먹을 건 많지 않겠나. 그럼 동물단체에서 이런 걸 사진 찍어서 개 사육농장에서 반려견이나 진돗개를 도축한다고 거짓 프레임을 퍼뜨린다.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 식용 문제는 선거철 표심잡기 공약으로 매번 등장한다. 초복만 되면 그 논란이 반복된다. 정치적으로 활용하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해 안전한 먹거리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 식용견 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다. 이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제방안을 검토해달라.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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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