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벤처계 신화' 김택진 NC소프트 대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26 16: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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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NC소프트 내려놓은 까닭 "제2의 도약 준비?"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흔히 우리나라에서 부자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그런데 이 회장조차 부러워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다. 이 회장은 한 사적인 모임에서 “삼성전자가 NC소프트와 같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설비투자와 많은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NC는 고작 3000여명의 인원으로 특별한 설비나 원자재 투입도 없이 고수익을 낸다”며 부러워했다는 소문이다. 물론 사적인 모임에서의 발언이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공감이 되는 대목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1조원대 부자에 등극한 김택진 대표. 어느새 그는 우리 사회의 신화적 인물이 되어 있었다.

최근 김택진 NC소프트 대표가 갑작스런 지분 매각으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8000억원이 넘는 여유자금을 손에 쥐게 되면서 모바일 사업으로 사업방향을 선회했다는 설, 부동산 사업을 시작한다는 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진출한다는 설, 야구단 운영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설 등 각종 소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공부에만 몰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김택진 대표는 지난 11일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통해 "지분을 매각하며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글로벌 게임시장 공략을 위해 넥슨과 힘을 합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가보다 낮은 매각 가격과 신작출시를 앞둔 이해할 수 없는 매각 시기, 최대주주에서 내려오면서까지 주식을 팔아야 했던 이유 등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게임사 간 M&A 중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매각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아직까지도 갖가지 설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세간에서는 벤처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김택진이란 인물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지금은 1조원대 부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김 대표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무척 가난했다. 1967년 서울 태생인 그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던 중 부도를 내면서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빚쟁이들에게 얼마나 심하게 빚독촉을 당했던지 김 대표의 아버지는 한동안 가출까지 했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빚쟁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꼭 갚을 테니 그때까지 자신을 믿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후 그의 아버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악착같이 양말과 옷 등을 팔아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갈 수 있었다.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김 대표는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더욱 공부에 몰두하며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수학과 과학을 유난히 좋아했던 김 대표는 중학교 시절에 이미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까지 마스터한 후 취미를 기계로 돌리게 됐다. 고등학생이 된 김 대표는 우연히 애플사에서 제작한 개인용 컴퓨터를 보게 된다. 컴퓨터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 김 대표는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전자공학에 눈을 돌린다.

1985년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교인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김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컴퓨터라는 기계의 원리를 마스터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컴퓨터의 메카였던 종로 세운상가를 찾았다. 그는 스무 살 때 그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컴퓨터에 관련된 소식과 외국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미 학점을 위한 전공 공부보단 자신의 지적욕구를 풀어주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렇게 컴퓨터를 공부하다보니 컴퓨터가 달라 보였다.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고 컴퓨터가 켜지는 과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손가락으로 파워버튼을 누를 때 메모리에 데이터가 저장되고 CPU가 데이터를 처리해 그래픽카드로 보내고 이를 모니터 화면으로 표시하는 모든 부팅 과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어린시절 이겨내고 맨손으로 1조원대 부자 등극
아래아한글 공동개발 등 천재적 행보…IT업계 판도 바꿔

김 대표는 대학 시절 '컴퓨터연구회'라는 컴퓨터연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들은 아마추어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통신 기반의 전자 게시판 버들골 BBS를 만들어 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김 대표가 동아리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학교 기계공학과에 다니던 이찬진이 워드프로세서 개발 참여를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워드프로세서가 바로 '아래아한글'이다. 아래아한글은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효시로 불릴 만큼 사회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래아한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설립한 회사가 바로 '한글과컴퓨터'다. 이같은 업적을 바탕으로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연구회 동아리 회원들은 한글과컴퓨터사의 중역으로 스카우트 됐지만 김 대표는 이찬진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부했다. 당시 김 대표의 꿈은 공과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려던 김 대표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현대전자 미국연구소에서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당시 김 대표는 병역이 미필인 상태였는데 현대전자가 제시한 혜택에는 병역특례가 있었다. 컴퓨터 산업의 메카인 미국에서 병역특례를 받으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런 뛰어난 능력으로 그는 병역특례요원 신분임에도 매년 승진을 거듭해 팀장 자리까지 단기간에 오르게 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김택진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그룹 내부에서 김택진이 개발한 아미넷을 두고 분열이 일어났다. 이러한 싸움에 염증을 느낀 김택진은 현대전자를 퇴사하고 1997년 3월 NC소프트를 창업하게 된다.

NC소프트 창업
찬사와 비판의 공존

NC소프트는 Next Company의 약자다. NC소프트는 창업 첫 해부터 자체개발한 컴퓨터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소위 대박을 쳤다. 리니지는 출시되자마자 MMORPG(다중접속 온라인게임)시장을 선도했다. 현재까지 누적회원만 1000만 명에 달한다. 리니지의 성공은 곧 전국적인 인터넷 인프라 구축, PC방 보급의 확대, 정부의 IT 육성정책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NC소프트 게임의 심각한 중독성 때문에 '게임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일부 유저들은 게임을 하느라 학교, 직장 등에 가지 않거나 심지어는 며칠동안 게임을 하다 과로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로 인해 어린 학생들이 수백만원을 부모 몰래 결제하거나, 게임 내 사기 등으로 순식간에 전과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이러한 부작용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김 대표에 대해 '합법적인 마약상'이라는 비판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한 전문가는 "이미 수많은 온라인게임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비단 게임폐인이라는 집단이 생겨난 것이 NC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NC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사실이다. 또 NC는 게임중독의 문제점 등이 제기된 이후에도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수익창출에 더욱 매진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비판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늘 이러한 비판에 시달려 왔기 때문인지 김 대표는 지난 2011년 프로야구 제9구단 NC다이노스의 창단을 신청하면서도 창단이유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빚을 갚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우리(NC소프트)가 젊은이들을 골방에 가둬놨다. 골방에 있던 젊은이들이 탁 트인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호연지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그래서 프로야구단을 꼭 창단하고 싶다"고 밝혔다.

화려한 성공 이면엔 '합법적 마약상' 비판도
NC다이노스 창단 "청소년들에게 빚 갚겠다"

김 대표의 이러한 사죄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여전히 젊은이들을 골방에 가둬두고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NC의 위선일 뿐"이라며 폄하했다.

한편 김 대표의 야구사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본 스포츠 만화 <거인의 별>을 보고 주인공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봇대에 폐타이어를 매달아놓고 방망이질을 해가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 투수가 우상이었던 김 대표는 야구단을 통해 게임산업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가 NC다이노스에 쏟고 있는 애정은 각별하다. 전지훈련장을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매스컴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부인 윤송이 박사와 함께 NC야구단의 연고지인 경남 창원에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의 부인인 윤 박사는 무척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 과학고를 조기졸업(2년)하고 한국과기대(KAIST)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3년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 한다. 당시 만24세로 한국인 최연소 MIT박사 기록이었다. 미국컴퓨터공학협회(ACM)가 매년 전세계에서 단 한 명에게 주는 최우수학생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28세의 나이로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의 최연소 상무로 진급하며 ‘천재소녀’로 불렸다. 김 대표와 윤 박사는 지난 2004년 3월 윤 박사가 NC소프트의 사외이사에 선임되면서부터 서로 인연을 맺게 돼 지난 2007년 결혼했다. 당시 김 대표는 재혼이었다.

유별난 야구사랑
속죄의 의미도?

최근 김 대표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부담스러울 정도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정계진출설까지 나돌았던 까닭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 지분매각이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단순한 포석인지 아니면 또다른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의중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창업자로서 지난 16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NC소프트의 최대주주 자리까지 내려놓으면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떠한 신화를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김택진 대표 프로필>

▲ 대일고등학교 졸
▲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
▲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 중퇴
▲ 1989 아래아한글 공동개발
▲ 1989 한메소프트 창립
▲ 1991 현대전자 보스턴 파견 근무
▲ 1995 현대전자 아미넷 개발 팀장
▲ 1997 NC소프트 창립
▲ 2011 NC다이노스 구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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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