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자' 김한길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6.18 10: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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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놓쳤지만 당내 입지 탄탄 "지고도 이겼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이기고도 졌다. 아니 결과는 졌지만 과정은 사실상 이겼다." 이번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지난 9일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이해찬 대표에게 0.5%차 석패를 당했다. 전국 대의원 순회경선 12개 시·도와 권리당원 현장투표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했던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그야말로 이기고도 진 안타까운 결과였다. 친노 강세인 온라인 표심을 넘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이번 경선을 계기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선룰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지난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4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던 그다. 또 특정 계파와 세력의 뒷받침 없이 혈혈단신 경선에 뛰어들었던 그로서는 졌지만 화려한 컴백이었다.

민주당의 새지도부를 선출하는 임시전당대회가 예상 밖 흥행에 대성공했다. 총선패배 후 침체돼 있던 민주당엔 단비와도 같은 호재였다. 이번 전당대회 흥행의 중심에는 모두가 예상했던 이해찬 대세론을 누르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를 만들어낸 김한길 최고위원이 있었다.

김 최고위원은 이번 경선에서 이해찬 대표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당권을 놓쳤으나 '김한길 대안론'까지 만들어 내는 등 당내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양한 분야 '두각'
??승승장구 행보

선거기간 내내 이 대표는 '이-박 담합론' 전화인터뷰 보이콧, 종북색깔론 등 다양한 악재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모바일 표심이 승패를 갈랐다.

김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이후 처음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국 대의원 순회경선에서 12개 시·도가 저를 1등으로 뽑아주셨고, 권리당원 현장투표와 모바일투표에서도 모두 저를 1등으로 뽑아주셨다. 대의원과 당원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고도 대표가 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우회적으로 이번 경선이 당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음을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투표 결과에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대표직 수락 연설문까지 다 써놨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날 치러진 민주당 새 지도부 상견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김 최고위원의 불참을 놓고 전당대회 결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이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은 "대선 승리를 위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며 항간의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 다만 6·9 전당대회를 계기로 향후 대선후보 경선에서의 모바일 선거인단 구성 등 전반적인 룰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김 최고위원은 1953년 일본 도쿄에서 통일사회당 당수를 지낸 아버지 당산 김철, 어머니 윤초옥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김 최고위원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국으로 건너와 덕수초등학교와 대광중학교, 이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중앙여고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1981년에 소설 <바람과 박제>가 문학사상에서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게 된다.

0.5%차 석패…'한끗' 밀렸지만 저력 확인
'계파정치 타파' 대선 경쟁력 확보에 총력

또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 한국일보, 미주 중앙일보 등에서 언론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귀국 이후에는 방송위원회 기획국 국장, 방송위원회 사무총장서리, 기조실장 등을 지내다가 소설가로 활동한다. 김 최고위원은 소설가 활동 외에도 방송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김한길과 사람들〉의 진행을 비롯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교사, 소설가, 기자, 방송인, 정치인 등 모든 이들이 선망할 만한 직업들을 두루 거쳤으며, 모든 분야에서 승승장구했다.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현재의 부인인 9살 연하의 탤런트 최명길을 만나 결혼한 일화는 유명하다. 김 최고위원은 당시 초대손님으로 나온 최명길에게 생방송 중 '사귀는 사람 있냐?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느냐?'며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쳤다. 최명길은 후에 "생방송 중에 그런 질문을 받으니 꼭 선을 본 느낌이었다"고 그때의 느낌을 털어놓기도 했다.

1995년 최명길과 결혼한 김 최고위원은 1996년에 15대 국회에 전국구 의원으로 등원하며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1992년 대선 때 국민당 정주영 대통령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기도 했지만,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국민회의 선대위 대변인으로 영입돼 15대 국회에 전국구로 등원한 것이 본격적인 정치행보의 시작이었다. 그는 대중에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감각과 아이디어로 김 전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다. 김 전 대통령은 누가 어떤 문제에 대해 말하면 "김한길 의원하고 이야기했어?"라고 했을 정도로 그를 신임했다고 한다.


그런 신임을 바탕으로 그는 대통령선거 때마다 총괄기획을 맡아 성공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예상을 뒤엎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까지 선출돼 대야협상을 이끌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과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지난 2008년 1월 6일 대통령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며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두문불출하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치적 동반자 '최명길'
??평생의 가장 큰 자산

선거 과정도 무척 드라마틱했다.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을 겨냥하고 일찌감치 광진구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표밭을 다져 온 비례대표 전혜숙 의원을 공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전 의원이 당내 여론조사 과정에서 금품을 돌렸다는 의혹을 받게 돼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자 김 최고위원이 선거일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뒤늦게 전략공천을 받아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렇듯 정치에 입문한 후 승승장구 해온 김 최고위원지만 처음 정치에 입문하려 했을 때는 주위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너희 아버지(고 김철 사회당 당수) 때문에 가문이 평생 고생했는데, 왜 야당 하느냐.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다.

김 최고위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1주일동안 여행을 하며 가족들을 설득 시켰다. 그때 야당인 국민회의에 입당한 게 보람이 참 컸다. 그 당시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입문해서 1년 야당하고 10년 동안 여당을 했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그의 아내인 탤런트 최명길이다. 김 최고위원은 한 인터뷰에서 "계파도 없고, 세력도 없습니다. 있다면 (아내인) 최명길 하나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인 최명길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1년에 MBC 13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해 영화 <장미빛 인생>으로 프랑스 낭트영화제 여우주연상 및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바 있으며, 2002년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으며 단아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일각에서는 김 최고위원이 이번 경선 과정에서 '이해찬 대세론'을 무너뜨린 데에는 최명길의 득표력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의원들과 그 가족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최명길은 상대편 후보에게는 차라리 악몽과도 같았다. 이 대표의 측근은 "지역 대의원 대회장에 가보면 최명길씨가 항상 출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데 대의원들이 정말 좋아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침몰하던 민주당 구한 ‘윈윈’ 경선…패자 없었다
‘이기고도 진 선거’ 경선룰 전반적인 개정 불가피

실제로 최명길은 경선이 치러지는 현장에서 대의원들과 일일이 어깨동무를 하고 팔짱을 끼며 사진을 찍는 등 밀착형 스킨십을 시도했으며, 대의원들에게 직접 홍보전화를 돌리기도 하는 등 표심을 얻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최명길을 부각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력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한 기자간담회에서 "최명길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은 나를 '졸'로 보는 것"이라며 "19대 총선 승리에 대해 '김한길 저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보단 전부 '최명길 덕분에 됐다'고 했다. 이는 명백한 평가절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큼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는 "우리 집사람은 나 때문에 손해만 봤다. 정치를 시작할 때 '내가 생활비를 도와주진 못해도 뺏어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못지켰다. 정치생활을 하느라 차도 없었고, 선거사무실 청소를 내가 직접 할 정도로 어려웠을 때 집사람은 드라마 출연료를 선뜻 내어 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모두 끝났다. 비록 당권을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당내 입지를 확실하게 다진 김 최고위원은 우선 '패권적 계파정치'의 타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계파주의와 지역주의 논리로 특정세력을 결집시키려는 분파주의적 사고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서 "당내외의 모든 세력과 집단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으로 민주당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만이 대선 승리의 살 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친노니 친호남이니 하는 명찰을 모두 떼어버리고 우리당 모두가 오직 '대선승리'라는 하나의 명찰을 달고 한마음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행보는?
?계파정치 타파 총력

민주당 새 지도부는 19대 국회 개원 협상과 대여 투쟁은 물론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을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거친 감정적 대결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 대표와 김 최고위원이 그간의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고 환상의 팀워크를 보여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김한길 최고위원 프로필>

▲ 이대부속고등학교 졸
▲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
▲ 1985년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지사 지사장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비례)
▲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공보팀장, 인수위 대변인
▲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정책기획수석
▲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비례)
▲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
▲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구로을)
▲ 2006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 2007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표
▲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광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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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