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대 특검법 개정에 대한 여야 합의 번복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격돌했으나, 정 대표가 특검법 개정안 논의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것에 대해 본인의 부덕의 소치라며 당원·국민·의원들에게 11일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정 대표가 김 원내대표에게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김 원내대표도 “특검 기간 15일 단축 때문에 여야 합의를 깨는 게 맞느냐”고 주장하고 있어, 아직도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충돌의 불씨는 남아있다.
앞서 지난 10일 오후, 김 원내대표는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내란 특검의 기한 연장을 하지 않는 대신 정부조직법 통과에 국민의힘이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 강성 의원들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쏟아지자 정 대표는 재협상을 지시했다. 김 원내대표가 송 원내대표와 한 합의를 거부한 것이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즉시 “정청래는 공개 사과하라”고 직함도 빼고 직격탄을 날렸고, 페이스북에도 “그동안 당 지도부, 법사위, 특위 등과 긴밀하게 소통했다”고 알리며 정 대표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과 특검법 개정을 맞바꾸려 한 것은 내 뜻이 아니다”며 “나는 몰랐던 사안이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 후 민주당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입장과 달리 결국 수사 기간 연장과 인력 증원 부분은 원안대로 하고, 내란 혐의 사건 재판 ‘조건부 중계’와 특검의 수사 지휘권 일부 제외는 여야 합의안 취지를 살려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김 원내대표 협의안을 당론으로 정한 것이다.
이번 청·병(정청래·김병기) 갈등으로 김 원내대표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이 주장한 협의안을 관철시키면서 앞으로 여당 원내대표로서 민주당 내 법안처리 과정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필자는 청·병 갈등이 일단 진화됐지만, 이를 계기로 내년 6·3 지방선거까지 적잖은 파장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검찰 개혁 방향을 놓고 이재명 대통령과 정 대표 사이의 이견으로 명·청(이재명·정청래) 갈등이 노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병 갈등이 불거졌다는 걸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어느 정부나 임기 초 치러지는 지선이나 총선에서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주도권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대통령과 친한 인사를 공천하길 원하고, 여당은 당 대표가 자기 사람을 공천해 차기 대선서 유리한 구도를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때 대통령실이 친 대통령계 인사를 공천할 때, 대부분 원내대표 가드를 사용한다. 그래서 대선 후 선출되는 원내대표만큼은 대통령의 복심을 밀어준다. 역대 대통령이 다 그랬다. 김 원내대표도 이 대통령의 행동대장이라 불릴 정도로 친 이재명계의 핵심 인사다.
필자는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서 정 대표의 합의안 제동에 힘을 실어주고, 김 원내대표의 합의는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 내용과 달리 제스쳐는 김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병 갈등이 불거지자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발 빠르게 “당정대는 한 팀”이라며 진화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청·병 갈등이 “명·청 갈등의 신호탄이 돼 당정대 한 팀은 이미 깨지기 시작했다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정 대표는 지난 7일 ‘검찰제도개혁추진단’에 민주당 인사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도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과 갈등을 빚었다.
내년 6·3 지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은 민심에 초점을 맞추고, 정 대표는 당심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당심과 민심이 같다면 괜찮은데, 현재 이재명정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6·3 지선이 다가올수록 명·청 갈등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 대표는 여당 대표로서 형식상으로는 대통령과 대등하게, 때로는 당을 대표해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위치다. 이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를 모색할 때, 정 대표는 강경투쟁을 강조했다. 대통령은 중도를 신호 보내려 하지만, 당 대표는 당심을 의식해 더욱 선명성을 강조했다. 이 불협화음이 곧 ‘대통령과 당 대표의 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다르다. 김 원내대표는 당 ‘친명계’로 분류되고, 이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시절부터 핵심 보직을 맡아 호흡을 맞춰왔다. 무엇보다 법안 협상, 예산 처리, 야당과의 협상, 모두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당 대표의 원론적 발언이 아니라, 원내대표의 협상력과 실행력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형식적으로는 정 대표와 나란히 서지만, 실질적으로는 김 원내대표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는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 구조의 속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김 원내대표와 가까운 것은 국정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지만, 정 대표를 소외시키는 순간 민주당의 민주적 정당성이 약화될 수 있다. 이는 곧 이 대통령 자신에게도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균형 감각이다. 이 대통령은 김 원내대표와 실질적 협력을 유지하되, 정 대표의 권위를 존중하고 당심을 반영하는 정치적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안정적 국정 운영과 여당의 건강성을 동시에 지켜내는 길이다.
그러나 내년 6·3 지선을 앞두고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명·청 갈등을 예고하는 청·병 갈등 신호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