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청래의 ‘휴먼 에러’ 정당 공천의 무게 어디 갔나?

2026.01.08 10:40:18 호수 0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병기 의원 공천 과정에서 금품수수 논란 등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휴먼 에러”라는 표현으로 해명한 것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정 대표는 지난 6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저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생각이 들었는데, 이 외에는 다른 일은 없다고 믿고 있고 없기를 바란다”면서도 “시스템 에러라기보다는 휴먼 에러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의 발언은 공천이라는 민주주의 핵심 절차를 바라보는 집권여당 지도부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꼽힐만 하다.

정당 공천은 실수가 반복될 수 있는 행정 처리나 기술적 입력 오류가 아닌,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정치의 심장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무게와 책임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는 말로 가볍게 덮으려는 태도는, 시민의 선택권과 정당 민주주의를 동시에 경시하는 발상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 대표의 해명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동시에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김 의원 공천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절차상의 착오가 아니라, 공정성·투명성·책임성이라는 공천의 기본 원칙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공천은 정당 내부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검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과거부터 ‘시스템 공천’ ‘룰에 따른 공천’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했는지, 예외가 있었다면 왜였는지, 책임자는 누구인지가 설명돼야 한다.


그러나 ‘휴먼 에러’라는 말은 이 모든 질문을 한번에 무력화하고 있다. 설명을 요구하는 시민에게 돌아온 것은 납득 가능한 근거가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까운 언어였다.

더 큰 문제는 이 표현이 갖는 정치적 오만이다. 휴먼 에러는 대개 항공·의료·제조 현장 등에서 사고의 원인을 설명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조차도 요즘은 안전관리의 실패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표현으로 비판받는다. 하물며 공천처럼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권력 배분이 개입되는 사안에 이 용어를 쓰는 것은, 공천 과정을 단순 행정 실수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이는 공천이 가진 권력성과 책임성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었다”는 말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이 스스로 쌓아온 도덕적 자산에도 적잖은 상처를 입혔다. 민주당은 보수 정당의 불투명한 공천과 사천(私薦)을 비판하며, 정치개혁과 정당 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걸어 왔다. 그런 정당의 대표가 공천 논란 앞에서 휴먼 에러를 꺼내 드는 순간, 그동안의 비판은 자기부정으로 돌아온다.

시민들은 “과거에 비판하던 그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이 주장해 온 ‘다름’은 구호에 그치고 만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점은 언어의 책임이다. 정치 지도자의 언어는 단순한 설명을 넘어, 문제를 규정하고 책임의 방향을 설정한다. 휴먼 에러라는 말은 책임의 초점을 구조와 판단에서 개인의 실수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그 개인이 누구인지, 어떤 판단이 문제였는지는 흐릿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남는 것은 책임 없는 시스템과, 설명 없는 권력인데, 이것이 반복될수록 정치는 시민의 신뢰를 잃고 냉소만 키운다.

공천 논란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사실관계의 투명한 공개가 첫 번째다. 어떤 기준이 적용됐고, 어떤 절차가 있었는지, 예외가 있었다면 왜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정치적 책임의 명확화도 중요하다. 절차가 잘못됐다면 책임자는 책임을 져야 하고, 시스템이 허술했다면 개선안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유권자에 대한 사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는 법적 책임 이전에 정치적·도덕적 책임의 문제다. 공천은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라 당원들의 선택권과 직결된 공적 절차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이번 발언은 민주당이 공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공천을 ‘관리 가능한 내부 사안’으로 보는 순간, 정당은 시민과 멀어진다. 공천을 ‘민주주의의 관문’으로 인식할 때만 설명과 책임이 따라온다. 휴먼 에러라는 말은 그 관문을 가볍게 여긴 흔적처럼 보인다.


정당 지도부는 실수할 수 있으나 때론 실수를 대하는 태도가 정당의 수준을 말해주기도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설명하고, 책임지는 정치만이 신뢰를 회복한다. 반대로 실수를 언어로 희석시키고,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오류로 치환하는 정치는 불신을 증폭시킬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 대표의 휴먼 에러 해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단순한 표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천과 민주주의를 대하는 정치의 태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방어적 언어가 아니라, 성찰적 설명이다. 휴먼 에러라는 말 뒤에 숨을수록 공천의 무게는 더 무겁게 돌아올 것이다. 시민은 더 이상 가벼운 말로 무거운 권력을 설명하는 정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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