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대담> 정세현이 보는 커지는 한국 역할론

2026.02.13 15:30:19 호수 1570호

“미·중·러 삼극 시대
미들 파워 역할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박형준 기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보다 길다”며 “협의·협상을 요구해 시간을 끌면서 관세 등 미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중·한러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일 양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나란히 가져도 문제 될 건 없다”고 전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민의정부·참여정부 등 2회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북한 관계자와 만나는 등 대표적인 협상주의 성향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일요시사>는 설을 앞두고 동북아 국제 정세·북한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미국은 9·11 테러 발생과 테러와의 전쟁 이후 군비 감축을 추진했다. 현재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 이해와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중국은 지난 2010년 G2로 올라섰다. 능력은 상대적인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 멱살잡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라왔다. 미국도 더는 군사력으로 중국을 누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관세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못 간다고 본다. 영국·독일도 중국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미국 일극 체제가 30여년 만에 무너지고 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러시아도 아직은 일정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즉, 미국·중국·러시아 삼극 체제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가 올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삼극 체제가 행사하는 슈퍼 파워가 될 순 없어도 바로 밑 미들 파워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중국·러시아의 밑에 들어가는 미들 파워가 아니다. 우리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외교가 자국 중심 성격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운 좋게 다가오고 있다.


-관세·그린란드 등에 대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선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는 평이 많은데….

▲우리에게 대미 투자 조기 집행을 요구하는 등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쉽게 항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들도 이 대통령의 지시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29년 1월까지고, 이 대통령의 임기는 오는 2030년 6월까지다. 미국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면, 협의·협상을 요구해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후 미국의 압력을 상쇄하는 외교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보유가 주한미군 감축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동안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유력한 경고 카드로 사용했다. 이젠 주한미군 감축 시도가 미국이 우리를 통제하는 수단이란 사실이 많이 알려졌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대로라면, 미군이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 상황은 우리가 전시 작전 통제권을 찾아오기 위해 빅딜을 시도할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관세·투자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킨 후 북한 핑계를 대면서 미국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을 받아왔다.

-일본도 원잠 보유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도 일본이 군대를 가진 보통 국가가 되는 것을 지지하는데….

▲일본이 원잠을 갖게 될 가능성은 있다.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얼마든지 허용해 줄 수 있다. 물론 일본이 원잠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가 가질 원잠의 위력이 약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일본에선 군대 보유·헌법 개정 반대 여론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최근 중일 관계는 대단히 안 좋고, 러시아도 일본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우리가 이를 잘 활용해서 한중·한러 관계를 잘 발전시키면, 한일 양국이 원잠을 나란히 가져도 문제가 될 거라고 보진 않는다.

-한국·일본이 원잠을 보유하면, 북한·중국·러시아는 어떻게 대비할 것으로 보이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북한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사자 기념관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의 희생을 잊지 말고,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에 대한 원조를 끊으면 안 된다는 신호를 러시아에 보내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러시아에 잠수함 저소음 기술·원자로 소형화 기술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러시아가 그렇게 쉽게 내줄 것 같지 않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전작권 반환 빅딜 기회”
“북·중·러 뭉친다? 한·미·일 동맹 추진 윤 정부 주장”

북·중 관계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연하장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최근엔 한중 관계가 가까워지니까 북한은 이를 불편해하면서 <로동신문>에 시 주석이 보낸 연하장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은 1950~1960년대 중국·소련 분쟁 당시 양국 사이를 오가면서 이익을 얻었다. 주체사상은 당시 북한 상황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논리였다. 북·중·러는 한 덩어리가 못 된다. 중국·러시아는 여전히 자존심 경쟁을 하고 있다.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가 동시에 성립될 순 있어도, 중·러 관계는 성립되기 어렵다.

북·중·러가 뭉칠 수도 있단 논리는 한·미·일 삼국 동맹 결성에 참여하길 원했던 윤석열정부가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중·러가 뭉쳐 우리의 대북 억지력을 약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가 돼 달라면서 스스로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했다. 남·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될 가능성이 있는 건가?

▲아직은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생각하긴 어렵다. 이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성사시킨 후 그 틀 안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뒷바라지를 자처한 것이다. 북미 관계를 개선해 동북아를 작은 평화의 마당으로 만든 후 그 평화의 아스팔트 위에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겠단 구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먼저 진행한 후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조율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뒤집어 진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직접 설득할 수 없으니, 페이스 메이커로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UN 제재 해제 등 보따리를 들고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END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측면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 개방 3000과 비슷해 보이는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입구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출구에서 거둘 수 있는 목표들을 연결했다. 그래서 이를 지적했더니, 위 실장은 이 목표들이 상호 작용을 하게 돼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가 지난해 9월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 특임교수는 자신의 유럽 출장 경험을 소개했다. 문 교수는 우리 대통령이 직접 UN 총회에 참석해 END 구상을 소개했기 때문에 이를 우호적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종말론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우리가 END는 한반도 냉전 종식을 의미한다고 얘기해도, 북한·제3국은 북한 체제 종말 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9·19 군사 분야 합의의 선제적·단계적 복원을 얘기했고, 곧 있으면 6개월이 돼가는데 실행이 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실행을 위해선 준비할 게 많고, 미국이 안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미적거리는 장성들을 강하게 지적해야 한다. 민주당도 지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 때문에 정신없다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을 뒷받침하면서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설치됐던 이유는 뭔가?

▲개성공단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마산 수출 자유 공단을 토대로 설치됐다. 우리가 인건비를 보태주는 식으로 노동 집약적 산업부터 시작해 북한의 수출 능력과 자생력을 키우려는 취지로 설치됐다. 아울러 현대의 금강산 관광을 시작으로 북한의 관광 산업 성장을 도우려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 경제를 발전시켰으니 북한에도 적용하자는 취지였다. 북한의 국민 소득을 높여야 이들이 우리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한이 지난 2020년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하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 연락사무소는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로 설치됐다.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각종 합의 조치를 이행하지 못하자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미국은 남북 간 수많은 합의 조치를 접한 후 매우 놀랐다.

한미 워킹그룹도 족쇄가 됐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미의 모든 일이 결국 북핵 문제와 연결되고,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시도할 땐 한미 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치됐다. KTX 부설 등 각종 합의 이행 조치들이 한미 워킹그룹에서 나온 미국의 반대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자 북한에선 남한과의 합의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연락사무소도 필요 없다면서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2023년 주장한 적대적 두 국가론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2024년 주장한 두 국가론의 공통점·차이점은?

▲노태우정부에서 통일원 장관을 지낸 이홍구 전 총리는 지난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수립을 주도하면서 1단계 남북 연합 체제를 제안했다. 2개의 국가가 연합해 공존하자는 주장이었다. 남북은 지난 1991년 9월 UN에 동시 가입했다. 그로부터 석 달 후엔 남북 기본합의가 당시 정원식 총리와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 명의로 체결됐다.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면서 한반도 내 두 국가가 됐다.

“END 구상? 입구 없이 출구서 거둘 목표만 제시”
“남북은 이미 UN 동시 가입…1991년부터 두 국가”

임 전 실장은 남북이 30여년 넘게 두 국가로 살아왔단 것을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보수 언론에서 이를 두고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인정한 것처럼 보도했다. 임 전 실장은 ‘적대적’이란 단어를 빼고, 두 국가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북한 정권을 공식 대화 상대로 인정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적당히 구슬려 흡수통일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당 기간 두 국가로 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후계자들이 결정하도록 하자는 이야기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평화적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후 남북 대화가 바늘구멍만큼의 가능성을 뚫고 성사되면, 적대적 두 국가란 말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것이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보장해 두 국가 관계를 유지하면, 남북 연합으로 못 갈 것도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해·협력 → 남북 연합 → 통일 국가 완성이란 3단계 통일론을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도 김 전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과 연계되는 건가?

▲이 전 총리가 이미 당시 3단계 통일론을 초기 구상했다. 이 전 총리가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를 만나 3단계란 개념을 받아들여 3단계 통일론이 완성됐다. 사실상 여야가 합의한 통일 방안이었다. 문민정부가 주장했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도 결국 같은 주장이었다. 이를 다시 실현해 남북 연합으로 가자는 게 평화적 두 국가론의 철학적 뿌리라고 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평양 주둔을 제안한 이유는?

▲김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있어 믿을 수가 없다면서 이를 막으려면 남북이 손을 잡은 후 미군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 중국이 함부로 우리 강토를 넘보지 못한다면서 미군을 이용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야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김 전 대통령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황원탁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김 전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김 위원장에게 <로동신문>은 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인민이 아직 그걸 알면 안 된다’면서 ‘공개적으로 표명된 정책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외교의 세계는 원래 그렇다.

-비무장지대 안엔 태봉국 철원성이 있다. 남북은 지난 2018년 공동 조사·발굴을 합의했다.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북한은 이를 남한의 대북 공격 시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리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 복원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은 남한이 장난칠 것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 남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비무장지대를 들락거리면서 무슨 짓을 할지 안심하기 어렵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구상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얘기하는 거다.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정치인·공무원에겐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평양에 무인기를 띄워 12·3 내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내란 잔당이 아직도 뿌리 뽑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내란 잔당을 법적으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인사 조처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도 처음부터 삐라를 뿌렸던 게 아니다. NED(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는 냉전 시대에 CIA의 비밀 지원을 받던 반공 활동의 대안으로 설립됐다.

NED는 지금도 미국 의회의 승인·국무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강경 탈북자 단체를 지원한다. 그래서 삐라를 묶은 풍선 안에 미화 1달러 화폐를 넣어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정보사령부·미국 내 반 북한 세력과 연결돼있었다. 내란 잔당은 매우 넓고 깊게 분포돼 있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

-설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들에게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면?

▲<일요시사>는 정치·경제 등 우리 국민의 일상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를 놓고 정확한 보도를 해왔다. <일요시사>의 사세가 커질 수 있도록 많이 구독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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