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활한 임은정

2025.07.07 13:23:06 호수 1539호

어차피 갈 곳은 정해져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검찰 내부에서 오랫동안 ‘비주류’ ‘검찰 개혁론자’로 불렸던 대전지검 임은정 부장검사가 마침내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그동안 좌천성 인사를 여러 차례 겪으며 한직을 전전하던 그가 ‘검사의 꽃’으로 불리는 검사장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 1일 고검장·검사장 등 대검 검사급 7명, 고검 검사급 2명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는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뒤 단행된 첫 번째 검찰 고위 간부 인사다. 발표 시점도 예사롭지 않았다. 윤석열정부에서 두 번째 검찰총장을 지낸 심우정 총장이 인사 직전 전격 사의를 표명했고,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 양석조 서울동부지검장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던 주요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동부지검장
금의환향

사실상 ‘윤석열 사단’의 퇴장과 동시에, 새 정부의 방향성을 담은 첫 고위 인사가 전개된 셈이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정 기조에 부합하는 법무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배경에는 명백한 ‘물갈이’와 ‘쇄신’의 의도가 읽힌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검찰 조직 내 권위주의와 폐쇄성, 감찰 기능의 무력화, 검찰권 남용 문제 등을 정면으로 비판해 온 몇 안 되는 검사 중 하나였다. 임 지검장은 그동안 ‘검찰개혁’을 강하게 주장했고 그 행보로 인해 수차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실제로 임 지검장은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번 인사 전까지, 줄곧 부장검사급 직위에 머물렀다. 임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30기로,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정진우 지검장(29기), 대검 차장으로 승진한 노만석 고검장(29기)보다 한 기수 아래다. 또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임명된 김태훈 검사장과는 30기 동기다.


다시 말해 이들과 비교했을 때, 기수상 이미 충분히 승진 대상에 오를 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석열정부 시절 대구지검·대전지검 등 사실상 ‘검찰의 변방’이라 불리는 중경단 부장으로 전보되며, 검사장 승진 문턱에서 번번이 밀려났다.

임 지검장은 1974년 7월,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산 중구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내내 이곳에서 형성한 독서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깊은 사고력의 밑거름이 됐다.

부모는 동네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세 딸을 키웠고,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임 지검장은 자신이 어린 시절 공부에 매달린 배경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부모는 장녀는 교수, 차녀는 의사, 막내는 법관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었고, 임 지검장이 검사가 되면서 적어도 한 가지는 현실이 됐다.

어린 시절 그는 말도 더디고 글도 늦게 깨우친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낙제점을 받을 만큼 성적이 부진했지만, 책과 가까워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세계문학전집,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집을 탐독했고,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나갈 만큼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났다.

고전과 역사서를 즐기며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키워갔다. 이 시기의 풍부한 감성이 지금까지도 그의 내면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좌천성 인사로 한직 전전하다
‘검사의 꽃’ 검사장 타이틀 달아

임 지검장은 사법시험 준비를 위해 재학 중 두 차례 휴학을 했다. 5학년 때 두 번의 도전 끝에 1차 시험에 합격했고, 6학년 때는 2차까지 통과해 합격의 문을 열었다. 이후 그는 사법연수원 30기로 입소했다. 당시 30기는 연수원 역사상 수료생이 678명에 달할 만큼 대규모였고, 여성 연수생 비율이 10%를 넘기는 등 눈에 띄는 변화의 흐름을 보여줬다.

임 지검장은 이른바 ‘마지막 서초동 세대’기도 하다. 연수원이 경기도 고양시로 이전하기 전, 서울 서초동에서 수료식을 한 마지막 기수였기 때문이다. 연수원 시절에도 그는 반에서 문화 총무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동기 126명이 검찰로 진출했지만, 이후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임 지검장이었다.

검사 생활 중 성폭력, 권한 남용, 검찰 내 은폐 관행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검찰 내부 고발자’ ‘항명 검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수사·기소권 분리와 검찰과 감찰 독립성 확보 등 구조 개혁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임 지검장이 처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007년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공판 검사로 참여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는 1심 재판을 맡았고, 사건은 몇 년 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도가니>가 개봉하면서 사회적으로 재조명됐다.

수사와 재판이 충분했는지, 검찰이 이 사건을 성실히 다뤘는지를 두고 비판 여론이 이어지던 시점, 임 지검장은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사회적 비난에 공감한다”며 검찰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는 취지가 담겼다.

2009년 1월, 임 지검장은 검사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받는 자리인 법무부로 발령받는다. 당시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의 여성 평검사는 단 한 자리뿐이었는데, 임 지검장은 광주지검 최우수 검사로 선발되어 이 자리를 맡게 됐다. 이 시기 함께 법무부에서 일하던 인물 중에는 훗날 검찰총장이 된 이원석, 상사법무과에 있던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도 있다.

2012년 9월6일,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박형규 목사의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또 한 번 주목받게 된다. 검찰 지휘부는 판결에 대한 의견 없이 “판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백지 구형’을 지시했지만, 임 지검장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검사는 사실관계와 법률적 평가에 입각해 입장을 밝힐 책임이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당시 부장검사는 “무죄를 구형하면 검찰이 과거를 잘못 인정하는 셈”이라며 반대했지만, 임 검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검찰개혁
아이콘

같은 해 12월에는 또 다른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진보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진보당 고(故) 윤길중 간사장에 대한 결심공판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에 비판적이었던 ‘통일사회당’ 인사들이 일제히 체포·기소된 사건으로, 윤 간사장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북한 동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적용된 법은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이 법은 쿠데타 직후 박정희정권이 만들어낸 특별법으로, 제정 시점보다 과거의 일까지 소급 적용할 수 있게 해 형벌 불소급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의 유족이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다음 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을 맡게 된 임 지검장은 공판을 앞두고 무죄 구형 의견을 내부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 분위기는 또 달랐다. 상급자들은 “백지 구형이 관례”라며 입장을 정리했고, 수사 검사도 “재판부 판단에 맡기자”는 쪽이었다.


공판 전날 아침, 검찰 내부망에 ‘징계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무죄 구형은 재량이 아니라 의무”라고 밝힌 그는, 예정된 공판 시간에 직접 법정으로 향했다. 자신이 구형에서 배제된 상황이었지만, 검사 출입문에 무죄 구형 의사를 적은 쪽지를 붙이고 문을 잠근 뒤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사건은 무죄가 마땅하다”며 구형했다. 그날 오후,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윤 간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대검 감찰본부는 이를 문제 삼아 2013년 2월, 직무상 의무 위반과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법무부에 징계를 요청했고, 법무부는 임 지검장에게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임 지검장은 곧바로 법무부를 상대로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5년여에 걸친 법적 다툼 끝에 그의 징계는 취소됐다.

2017년 대법원은 “위법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징계 사유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승진에서 밀리고 주요 사건에서도 배제되는 고초를 겪게 된다.

2018년에는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다시 한번 내부 고발자 역할을 자처했다. 검찰 조직 전체를 흔든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서지현 검사가 과거 안태근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에 불을 붙인 결정적 계기가 됐고, 검찰 내부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백지 구형
지시 거부

당시 임 지검장은 이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목소리를 냈다. 서 검사의 폭로가 언론에 보도된 직후, 그는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렸다. 과거 자신이 직접 들었던, 간부의 발언을 폭로했는데 “피해자를 가만히 놔두라”는 발언이었다. 그는 조직 내부에서 서 검사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상부로부터 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임 지검장은 당시 글에서 “피해자보다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시선이 문제다” “서 검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검찰이 진실을 마주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내부 감찰 기록을 요청하고, 관련 인사들에 대한 책임 소재를 파악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제지에 부딪혔다.

그는 나중에 “상부로부터 조사 중단 요구를 받았다”고 밝히며, 감찰 과정 자체가 위로부터 차단됐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또 다른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가 민원인이 낸 고소장을 위조해 사건을 처리했지만, 검찰 수뇌부가 사표 수리로 마무리하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 지검장은 이를 두고 “직무유기”라고 판단했고,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전·현직 간부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 내부에서 무혐의로 종결됐다.

임 지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과거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윤석열정부 때는 대립이 심해졌다. 그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과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연이어 맡았고, 이 시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을 둘러싸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직접 갈등을 빚는다.

2020년부터 임 지검장은 검찰 내 감찰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에 이어 법무부 감찰담당관을 맡으며 조직 내 감찰 업무를 담당했다. 그 시기, 임 지검장이 가장 집중한 사건 중 하나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교사 의혹’이었다.

이 사건은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당시, 검찰이 재소자들을 통해 위증을 시켰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재명정부, 검찰개혁 시동
두 단계 건너뛰고 파격 승진

이른바 ‘증인 조작’ 논란으로, 과거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수감자들이 “검사로부터 위증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였다. 임 지검장은 당시 대검 감찰부 내에서 이 사건을 직접 감찰하려 했으나, 대검 수뇌부는 해당 사건을 감찰이 아닌 ‘인권부’로 이첩하는 결정을 내린다. 감찰권을 가지지 않은 다른 부서로 사건을 넘긴 셈이다.

이에 대해 임 지검장은 “대검이 감찰을 방해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21년 3월, 임 지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다.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위증 교사 여부를 들여다보던 중 감찰이 중단됐고, 대검은 정당한 이유 없이 사건을 인권부로 넘겼다”는 주장이었다.

글이 공개되자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논란은 급속히 확산됐다.

결국 법무부는 해당 사안에 대해 “감찰 정보를 외부에 누설했다”며 임 지검장에게 징계를 청구했다. 임 지검장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공수처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는 공수처에 윤 전 대통령이 감찰을 방해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2022년, 해당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후에도 여러 인터뷰와 강연, 2022년 출간한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를 통해 이 사건을 거듭 언급하며 “감찰이 무력화된 검찰은 자정 능력을 상실한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책에서 그는 지금의 검찰을 “고장 난 저울”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진실을 밝히는 조직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진실을 덮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문장은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 중 하나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둘러싼 감찰 갈등 이후, 임 지검장은 검찰 내 주요 보직에서 빠르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감찰담당관으로 일하던 그는 2021년 6월, 사실상 수사 권한과 무관한 대구지검 형사3부장으로 전보됐다. 대구지검은 검찰 내에서 ‘중경단(중요경제범죄조사단)’이란 명칭이 붙어 있지만, 실상은 수사 규모가 크지 않은 일선 청 중에 하나였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좌천”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2022년 7월에는 다시 한번 대전지검으로 전보됐다. 형사5부장이었다. 대전지검 역시 ‘지방 중간 규모 청’에 해당하며, 중앙지검이나 대검, 법무부 요직과 비교하면 검사 커리어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난 자리였다.

윤정부
대립각

이와 달리, 임 지검장이 이번에 맡게 된 서울동부지검은 정치·경제·선거 관련 사건이 집중되는 수도권 핵심 검찰청 중 하나로, 정권 초중반에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사건의 ‘선봉’이 되는 곳이다. 선거사범, 공공 수사, 경제범죄 등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몰리는 핵심 검찰청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과거 공공기관 채용 비리, 선거법 위반 수사, 노동 관련 쟁점 수사 등 여러 정치적 사건이 이곳을 거쳐 갔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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