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2차 정상회담 제안 거절했다”

2010.08.10 09:03:58 호수 0호

자서전으로 본 DJ의 비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 생애를 기록한 자서전이 출간됐다. 이 자서전은 김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기 전, 만 6년 동안 준비돼왔다. 하지만 ‘내 자서전은 사후에 출판하도록 하라’는 유지에 따라 서거 1주기를 맞아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이야기들을 하나 둘 꺼냈다. 그가 겪은 숱한 고난과 역경만큼이나 자서전 안에는 ‘인간 김대중’과 ‘정치인 김대중’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맞아 자서전 출간
반평생 정치 인생 속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지난달 29일 출간됐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지난 2004년부터 김 전 대통령이 남긴 41회의 연설 기록을 토대로 2권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상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출생부터 정계 입문까지, 하권은 대통령 취임부터 생애의 마지막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첫 시작부터 김 전 대통령이 전 생애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가 ‘서자’였다는 사실이다. 

김 전 대통령은 “어머니는 평생 ‘작은댁’으로 사셨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다.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나는 서자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실을 감춘다 해서 어머니의 명예가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고, 나 또한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화해하셨을 것”이라며 자서전을 통해 처음으로 출생의 비밀을 밝혔다. 

반평생을 정치인으로 살았던 만큼 자서전에도 정치에 대한 내용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그의 정치인생에 빼 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8월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을 찾아왔던 날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에 그의 딸이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로 김 전 대통령을 방문한 날이었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뜻밖이었고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로 당시의 심경을 회고했다. 

그는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민주화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소 씁쓸한 속내를 전했다.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야당후보 단일화가 실패로 돌아간 데 대해 “오랜 독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치른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졌다. 나라도 양보했어야 했다” “너무도 후회스럽다”고 한 것. 

김 전 대통령은 “물론 단일화했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저들의 선거 부정을 당시로서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면서도 “국민들에게 분열된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며 자책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시선에는 날이 섰다. 김 전 대통령은 “민심에 대한 쿠데타이자 야합의 주역이 김씨였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보다 집권욕이 앞섰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며 “‘민주투사’ 김영삼은 이렇게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문민정부는 용을 그리려다 뱀을 그렸고, 그 자신도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로 변해 버렸다”고 혹평했다.

자서전에는 분단 55년 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에 얽힌 비화도 담겼다. 남과 북의 정상이 같은 차에 오르는 것을 본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을 ‘밀실대화’에 대한 내용이다.

김 전 대통령은 “사실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면서도 “다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마음을 놓으라고 얘기하며 ‘북에 오는데 무섭지 않았습니까, 무서운데 어떻게 왔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했다.

또한 당시 김 위원장이 ‘7·4 남북공동성명’을 예로 들며 ‘임동원(당시 대통령 특보), 김용순(당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자고 한 것을 설득해 두 정상 명의로 선언문을 작성한 경위도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설득과 임동원 특보의 지원사격에 김 위원장이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어서인지 무척 집요하군요”라고 하자 “김 위원장도 전주 김씨 아니오”라고 응수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라고 했고 김 전 대통령은 “개선장군 좀 시켜 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는 말로 되받아쳤다.

2002년 4월 임동원 특사 방북 때 김 위원장이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2차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해 왔으나 ‘답방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거절해 불발에 그친 2차 정상회담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 측에서 부탁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읽지 못했던 조사와 관련, “이제 비로소 그의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고 했다.

살아서 못 다한 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선 “과거 건설 회사에 재직할 때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냈다”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다” “그는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다”는 등 날선 비판을 했다.

특히 대북정책과 관련, “한국 외교 사상 가장 최악의 실패작을 다시 되풀이할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미처 못 담은 이야기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아 그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총 2권, 1356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못 담은 이야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김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했던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비서실장 겸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남긴 많은 인연과 사연이 ‘김대중 자서전’에 모두 포함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DJ라는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호칭할 때도 YS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았던 것이나, 시사만화를 보면서 ‘왜 내 코가 이렇게 크게 그려지느냐. 이건 아니지 않냐’고 했던 것 등을 예로 들었다.
박 비서실장은 또 “정치권에서 김 전 대통령이 대식가라고 하는데 대통령께서는 당신은 절대 대식가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 억울함은 우리 집사람이 한 번은 풀어줘야 한다’고 여사님께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치 생애를 같이 한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 전 대통령을 ‘눈물이 많고 정에 약한’ 이로 기억했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은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희호 여사와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다녔는데 꽃을 좋아해 꽃이 많이 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고는 했다”고 회고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