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보험공사 직원 뇌물수수 <풀스토리>

2010.05.11 09:23:46 호수 0호

“2억, 뇌물 아니라 빌린 돈이라고?”

한국수출보험공사 직원이 유명 교통카드 업체 회장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가 덜미가 잡혔다. 직원은 개인적인 채무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뇌물’로 판단했다. 빚이라고 하기엔 오고 간 대가가 큰 탓이다. 직원은 돈을 받은 대가로 업체에 대한 보증보험증권을 발급했다. 업체는 해당 증권으로 금융권으로부터 수백억원의 자금을 대출받는데 성공했다. 직원의 뇌물수수로 보험증권 발급 심사 과정에 허점이 드러난 공사 측은 난감한 표정이다.

‘뒷돈 대가 ’이비카드 270억 규모 보험증권 발급
직원·업체 ‘개인 채무’ 주장에 법원 ‘뇌물’ 판결


인천지검 특수부(이경훈 부장검사)는 올 초 한국수출보험공사 직원 김 모 차장(41)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동시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인천·경기지역 교통카드 발급업체 이비카드의 대주주인 홍 회장(59)을 약식 기소했다.

뒷돈 받고 심사 통과



검찰은 지난 2007년 김 차장이 홍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건네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자금을 대가성이 있는 뇌물로 판단했다. 실제 김 차장은 지난 2007년 10월 이비카드의 사업심사를 거쳐 270억원 규모의 보증보험증권을 발급했다.

당시 카자흐스탄 알마시티에 교통카드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던 이비카드는 이 증권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수백억원의 자금을 대출받았다. 이비카드가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통해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으로 대출받은 총 금액은 499억원이다.

검찰은 억대 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공사의 보증보험증권이 필수적이었던 만큼 김 차장이 업체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이를 대가로 한 뇌물이라고 주장했다.

인천지검 특수부 수사검사관실 한 관계자는 “이번 사업의 보증 심사는 그 규모가 작아 김 차장 개인이 심사 후 윗선에서 결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이 과정에서 김 차장이 심사에 주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통상 공사의 보험증권 발급 심사 과정은 팀별로 여러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이비카드의 해외사업에 대한 보증 심사는 평가 규모가 270억원 가량으로 다소 작았다. 이처럼 소규모 검사 시 공사는 팀별이 아닌 개인별로 심사를 맡기게 되고, 심사 담당자의 최종 평가서가 윗선에 보고 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 경우 윗선은 평가서대로 결재만 할 뿐 별도의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이번처럼 심사 담당자인 김 차장의 개인적인 평가에 의한 보험증권 발급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의 주장에 김 차장은 2억원은 뇌물이 아닌 단순히 홍 회장으로부터 빌린 돈이라며 맞섰다.
공사 측 한 관계자는 “김 차장이 이비카드의 사업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홍 회장으로부터 대여금 방식으로 2억원을 건네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 차장은 홍 회장에게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렸으며 현재까지 9000만원을 상환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김 차장은 홍 회장에게 담보도 내걸었으며 나머지 금액도 상환 중에 있어 개인적인 채무관계일 뿐이라고 해명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반박에 나섰다. 검찰 한 관계자는 “김 차장은 빚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는 2억원이라는 거금을 무이자로 빌려 썼다”며 “김 차장의 주장이 맞더라도 수년간 2억원을 통해 얻은 이자수익이 상당한 만큼 그 부분만큼 뇌물공여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4개월 만인 지난 2일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검찰에 의해 뇌물공여죄로 약식 기소된 홍 회장에 대한 선고가 내려진 것. 인천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학준)는 김 차장에게 전한 2억원을 뇌물로 판단, 홍 회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홍 회장은 “담보를 받기로 하고 김 차장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며 사례비 명목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홍 회장은 사례비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비카드가 해외에 교통카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돈을 대출받을 수 있었던 데는 공사의 보증이 필수적이었다”며 “이런 과정에서 건네진 돈을 일반적인 대여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홍 회장은 돈을 빌려주면서 김 차장이 담보로 제공하기로 한 근저당권설정등기가 완료됐는지 확인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팔린 사실도 알지 못했다. 또 대여금에 대한 이자나 원금 상환에 대한 독촉도 하지 않았다”며 “결국 건네진 2억원은 뇌물이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홍 회장이 담보를 받기로 하고 대여금을 준 점, 애초 김 차장의 적극적인 요구에 범행을 하게 된 점 등을 참작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공사, 관리소홀 ‘망신’

법원의 이번 판결로 공사 측은 입장이 난감해졌다. 애초 공사 관계자는 “이비카드에 대한 보험증권은 충분한 사업가치가 있기에 발급된 것으로 심사 과정에 있어 부정한 부분은 없었으며, 김 차장과 홍 회장은 개인적인 채권채무 관계일 뿐이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법원은 둘 사이 오고간 돈을 뇌물로 규정지었다. 결국 공사는 이번 판결로 내부 직원 관리 소홀과 소규모 심사 과정에서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이에 대해 공사 한 관계자는 “윤리지침상 직원이 고객과 개인적인 채권채무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이에 따른 내부적인 평가 후 인사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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